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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억'. 김환기 작가 작품이 기록한 한국 미술품 최고 경매 가격입니다. '868만원'. 한국의 미술 작가들이 1년 동안 작품 활동을 통해 얻는 평균 수입입니다. 극과 극의 양면이 공존하는 한국 미술계를 '미술톡(talk)'으로 들여다봅니다.[편집자말]
 
지난 16일 대안정치연대의 연석회의 모습. 몬드리안의 그림을 차용한 현수막이 보인다.
 지난 16일 대안정치연대의 연석회의 모습. 몬드리안의 그림을 차용한 현수막이 보인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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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 기자회견장. 민주평화당 출신 국회의원들이 탈당을 선언하며 돌돌 말린 대형 현수막을 펼쳤다. '대안정치연대'라는 새 이름과 함께 눈길을 끈 건 검은 수직선과 수평선, 그리고 빨강, 파랑, 노랑으로 칠해진 직사각형이었다. 영락없는 피에트 몬드리안(1872~1944)의 추상화였다(관련 기사 : 민주평화당 과반 의원 집단탈당... "제3세력 결집").

대안정치연대의 '몬드리안 현수막'은 여전히 각종 행사 때마다 등장하고 있다. 이 현수막을 기획한 유성엽 의원실 관계자는 18일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디자인이 맞다"라며 "검은색 수직선과 수평선이 포개져 있는 것은 10명의 의원들이 서로 협력하면서도 평등한 구조를 유지한다는 의미이고, 사각형 속 파랑·빨강·하늘색·초록·노랑은 5당을 상징한다. 몬드리안 원작과 달리 검은 선들이 닫혀 있지 않고 뚫려 있는데, 이는 다른 당과 열린 자세로 소통하겠다는 뜻"이라고 했다.
 
몬드리안의 작품 'Composition II with Red, Blue, and Yellow'
 몬드리안의 작품 "Composition II with Red, Blue, and Yellow"
ⓒ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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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의 로고로 쓰인 건 이례적이지만,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그동안 다양한 디자인으로 소비돼 왔다. 원피스의 문양부터 양말, 가방, 신발, 폰케이스는 물론 삼성 반도체 공장 외벽에까지 출현한다.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입생로랑 원피스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입생로랑 원피스
ⓒ Yves Saint Laur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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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양말.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양말.
ⓒ Mitch Dow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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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가방. www.redbubble.com 제공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가방. www.redbubble.com 제공
ⓒ EvilGrav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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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핸드폰 케이스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핸드폰 케이스
ⓒ Wal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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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나이키 운동화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나이키 운동화
ⓒ N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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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삼성 나노시티 기흥캠퍼스 1라인 건물 모습.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디자인이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 위치한 삼성 나노시티 기흥캠퍼스 1라인 건물 모습. 몬드리안 그림을 차용한 디자인이다.
ⓒ 삼성반도체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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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까지 추상화처럼 꾸민 몬드리안... 남은 건 스타일뿐

추상 회화의 선구자로 불리는 몬드리안은 세상의 본질을 드러내는 방법으로써 추상화를 발전시켰다. 본질적이지 않은 것들을 다 덜어내고, 덜어지지 않고 남은 것들을 인수 분해해 사물의 정수만 골라냈다. 결국 수직선과 수평선, 사각형, 색의 3원색(빨강·파랑·노랑) 같은 아주 기본적인 조형 요소들만 남았고, 그것들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몬드리안은 "아름다움의 감정은 대상 특유의 외관에 방해받게 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대상은 조형적인 재현에서 추상화되어야 한다"고 했다.
  
몬드리안의 작품 'Composition with Red Yellow and Blue'.
 몬드리안의 작품 "Composition with Red Yellow and Blue".
ⓒ arthistoryproje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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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 에른스트 곰브리치는 그의 책 <서양미술사>에서 "몬드리안은 외형의 베일을 헤치고 나아가 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진실에 도달하고자 했던 신비주의자였다"고 했다. 미술사가 마이어 샤피로는 저서 <현대미술사론>에서 이렇게 썼다.
 
"몬드리안은 몇몇 논문에서 자신의 목표는 '순수한 관계들'을 담은 미술을 성취하는 것이라고 쓴 바 있다. (중략) 몬드리안의 추상화는 일부 그의 동시대인들에게는 감정보다는 이론으로부터 도출된 극히 경직된 산물로 비쳤다. 사람들은 감각과 혼합되지 않은 기본 색채를 완고하게 고수한다는 점에서 그를 편협하고 교조적인 화가로 생각했다. (중략) 1920년대와 30년대의 그의 추상화들이 그 직선의 형태들로 인해 교조적인 한계를 안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러한 불변의 요소들은 길이, 굵기, 간격의 세심한 변주를 통해 개성적인 조합에 채용한 힘의 척도를 구성한다. (중략) 그러한 특성들은 그리스 사원의 조화처럼 눈에 직접 다가온다."  
 
 
추상 미술에 얼마나 경도됐던지 그는 작업실마저 자신의 추상화처럼 꾸몄다고 한다. 몬드리안을 연구한 수잔네 다이허 박사는 책 <피트 몬드리안>에 이렇게 적었다.
 
"핵심 요소를 향해 감축해나가는 그의 새로운 작품 스타일... (중략)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업실을 점차 양식에 맞춰 개조했다. 벽을 칠해 색면으로 장식하고 자신의 작품들을 걸어뒀다. (중략) 몬드리안은 단순한 가구 몇 점과 오래된 난로를 제외한 모든 사물들을 색칠하거나 직접 만들었다. (중략) 그가 자신의 작업실을 꾸미는 방식은 자신의 이론에 대한 일종의 언급과도 같은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미지로부터 모든 개인적인 것을 제거하고자 했고 무엇보다도 그의 어린 시절 불행한 기억들을 없애고자 했다(그는 어렸을 때 가난했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했다고 한다)."
 
잘 팔리는 이미지가 된 몬드리안의 추상화가 폰케이스 무늬, 어느 공장의 외벽, 정치 세력의 로고로 변용되는 동안 그의 철학적 고집은 어느새 공기 속으로 녹아 없어진 듯하다. 남은 건 스타일뿐이다.

태그:#몬드리안, #미술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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