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포스터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포스터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작전명 174'로 불리는 장사리 상륙작전은 본래 당시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에게 부여된 임무였다. 치밀하게 훈련받은 군인조차 버거웠을 해안 상륙작전에 이례적으로 학도병이 동원됐다. 전쟁 자체가 비극이라면 그 비극이 품은 가장 어두운 비극의 단면이다.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아래 <장사리>)은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전쟁의 비극 한가운데를 조명하고 있다. 772명의 학도병 중 139명 전사, 92명 부상. 그 외 나머지 인원이 대부분 행방불명이 된 이 전투를 소재로 스크린에 제법 현실적으로 구현해냈다.

영화가 스스로 밝히듯 실화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전쟁 후 이 학도병들의 이름을 찾기 위해 분주히 다녔던 이명흠 당시 중대장의 사연, 미군 종군 기자와 참전 용사들의 일부 기록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발휘해낸 결과물이다. 인천상륙작전 전날 일종의 교란 목적으로 진행된 이 상륙작전은 사실상 '자살 유격대'로 볼 수 있을 정도로 열악했고, 위험했다. 

우려했던 지점 숨기기

기록이나 자료가 다른 전투에 비해 부족한 것으로 알려진 장사리 전투는 분명히 비극성을 내포한다. 영화 역시 그것을 포착하고 있다. 앳된 얼굴에 교복을 입은 채 전투에 임하는 다수 캐릭터를 내세워 관객에게 어떤 애잔함을 느끼게 한다. 이명준 대위(김명민), 류태석 상사(김인권), 박찬년 중위(곽시양) 등 정식 군인 그룹과 북한 출신인 최성필(최민호), 대구 등지가 고향인 기하륜(김성철), 국만득(장지건) 등의 학도병 그룹을 양 축으로 이들이 전쟁에 점차 익숙해져 가다 비극을 함께 맞이하는 과정을 영화적으로 구성해놨다. 

가장 우려했던 지점이 영화 제작사인 태원엔터테인먼트에서 그간 보여왔던 한국전쟁에 대한 태도다. 태원엔터테인먼트는 <포화 속으로>(2010), <인천상륙작전>(2016) 등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영화를 꾸준히 제작해 왔는데 특유의 반공 메시지와 강한 신파성으로 평단에서 혹평 내지는 일종의 보수 진영 논리 강화로 활용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장사리>까지 묶여 '반공영화 3부작'이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

이 기준만 놓고 보면 지난 18일 언론에 먼저 공개된 <장사리>는 무난한 편이다. 앞선 두 영화에 비할 때 전쟁에 내몰린 청년들의 모습을 내세웠기에 반공 메시지보다는 반전 메시지에 집중한 모양새다. 밸런스와 만듦새만 놓고 보면 <포화 속으로> <인천상륙작전>보다 한 발 나아간 면이 있다. 전쟁에 학도병을 내몰게 된 책임 당사자들이 영화 중간중간 악하게 묘사되는데 이 역시 전쟁의 책임을 이들에게 일부 돌려주려는 시도로 보인다.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관련 사진.

영화 <장사리: : 잊혀진 영웅들> 관련 사진. ⓒ 태원엔터테인먼트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컷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스틸컷 ⓒ 워너 브러더스 코리아(주)

 
이런 설정이 진정성 있기 위해선 영화에서 언급되는 사건과 책임자들 모두에게 같은 기준이 적용돼야 할 터. 하지만 <장사리>의 선택이 조금 묘하다. 영화 초반 자막으로 설명되는 맥아더 장군과 후반 부분 학도병을 구하자고 결정하는 미군 장교에 대해선 또 다른 태도를 취하고 있기 때문. 한국전쟁 당시 연합군 총사령관이었던 맥아더 장군의 위업을 찬양하고 인정하는 태도를 <인천상륙작전>에서 취한 바 있어서일까.

반공 DNA

<장사리>에서도 여전히 맥아더는 신성불가침 영역이다. 한반도에서 벌어진 비극이 과연 공산당과 인민군, 정국이 불안했던 대한민국만의 사정이 아님은 현대사에서도 이미 밝혀졌다. 한국전쟁은 곧 미국-소련으로 대표되는 냉전 시대의 비극 중 하나였다는 거시적 관점은 무시한 채 미국은 선한 편, 북한 인민군은 악의 축이라는 구도를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는 일부 미군 간부와 한국군 간부를 비판하면서도 미국과 맥아더 미화는 놓지 않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이중잣대가 아닐 수 없다. 

반공영화로 비치는 앞선 두 작품보다 나아졌다지만 <장사리>의 영화적 약점도 여전하다. 학도병을 이끄는 이명준 외 군인들은 모두 책임감이 강한 이들로 묘사되고, 학도병들에게 주어진 캐릭터적 성격 역시 전형적이다. 북한 출신이지만 학도병에 자원한 인물, 먹보지만 힘이 센 인물, 북한 출신을 강하게 증오하는 인물 등은 캐릭터만으로 충분히 이들의 갈등 관계를 예상하게 한다. 물론 상업성을 갖춘 대중영화여야 하기에 가장 쉬운 선택이겠지만 이보다 앞서 나온 여러 한국전쟁 배경 영화들이 이뤄놓은 성과를 거꾸로 돌려놓은 모양새다. 

진짜 애국이란 무엇인가. <장사리>는 이에 대해 영화 속 대사로 이미 답을 내놓는다. '나라 없이 가족이 존재하겠는가'. '나라 없이 우리가 존재하겠는가'라며 학도병에게 외치는 이명준 대위의 모습에서 군인 논리가 엿보인다. 보수애국 진영 논리를 위시한 반공 DNA가 있다는 사실. "반공 아닌 반전의 메시지 담아내려 했다"는 곽경택 감독의 말이 더욱 힘을 받으려면 좀 더 깊은 고민을 했어야 했다.

배우들의 열연과 실제 전쟁에서 학도병이 겪었을 처참한 외로움과 고통 등이 영화 대사와 따로 노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만큼 영화적 감동이 반감된다.

한 줄 평: 허울뿐인 반전, 진짜 애국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평점: ★★★(3/5)

 
영화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관련 정보

연출: 곽경택, 김태훈
출연: 김명민, 김인권, 최민호, 김성철, 곽시양. 장지건, 이재욱, 이호정 등
특별출연: 동방우(명계남), 조지 이즈, 메간 폭스
제작: 태원엔터테인먼트
공동제작: 필름295
제공: 워너브러더스 픽쳐스, 한국투자파트너스
배급: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러닝타임: 104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9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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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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