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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날 재판에는 언론의 관심도 집중됐다. 카메라 앞에선 재심청구인들. (오른쪽부터 고호석, 최준영, 설동일, 이진걸, 노재열)
 영화 <변호인>의 실제사건인 "부림사건"이 지난 2014년 2월 13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열린 재심에서 33년만에 무죄 선고를 받았다. 이날 재판에는 언론의 관심도 집중됐다. 카메라 앞에선 재심청구인들. (오른쪽부터 고호석, 최준영, 설동일, 이진걸, 노재열)
ⓒ 정민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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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인가 '국가보안법'이라는 단어는 처벌보다 과거 처벌에 대한 반성인 재심사건을 통해 더 많이 듣게 되었다. 재심은 판결이 이미 확정되었지만 사실인정에 중대한 오류가 있는 경우 당사자 등의 청구에 의해 그 판결의 당부를 다시 심리하는 제도다. 즉, 과거 판결이 잘못되었으니 비록 재판은 확정되었지만 다시 재판을 받을 기회를 주는 것이다. 지난 2014년 2월 13일,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은 영화 <변호인>의 배경이 된 부림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재심 중에는 유독 국가보안법 사건이 많다. 부림사건 역시 국가보안법 사건이었다. 영화 <변호인>에서는 검사뿐만 아니라 판사, 심지어 변호인 중 일부까지 유죄를 전제로 놓고 재판을 시작한다. 판사는 변호인인 송우석 변호사에게 "태동건설에서 스카웃 들어왔다며? 아 그렇게 중요한 일 앞두고 빨갱이들 뭐하러 변호해. 아... (피고인 중) 누구 친척 있어? 누군지 얘기하면 내가 알아서 신경 써줄게"라고 말한다.

심지어 공동 변호인인 공안검사 출신 박병호 변호사도 "니 국보법 사건의 본질이 뭔지 아나? 형량싸움이야. 형량! 유무죄가 아니라고!"라며 무죄를 주장하는 송우석 변호사에게 핀잔을 준다.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인 무죄추정의 원칙은 온데간데없고, 재판에 공정하게 임해야 하는 판사 심지어 피고인의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변호인까지 이미 유죄를 전제로 재판에 임하는 것이다.

이처럼 국가보안법 사건은 판사와 변호인까지 아예 유죄를 전제로 임하는 재판이었다. 오직 피고인만 무죄를 주장하기 일쑤였다. 그나마 대부분 불법적 장기 구속과 악랄한 고문에 극도로 위축되어 무죄를 강하게 호소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이처럼 유죄가 전제로 진행되는 재판이 공정할 리는 만무했을 것. 그만큼 부당한 판결이 많았을 것은 당연했다. 국가보안법 사건에 유독 재심결정이 많았던 이유다.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어 억울하게 유죄를 선고받은 사건 중에는 '어촌마을 간첩단 사건'이 상당히 많다. 지금처럼 GPS 등 위성항법장치가 발달하지 못했던 과거에는 물고기들을 따라가던 고기잡이배가 북한 영해를 침범하는 일이 잦았다. 물고기 잡는 데 정신이 팔려 배가 북한 영해를 침범하는지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북한 영해에 들어간 배 중 많은 수가 북한 해군에 나포되곤 했다. 이들 중 일부만 남한에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남한에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을 마냥 다행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북한에 다녀온 인사라고 하여 경찰의 감사를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무덤에 있는 줄 알았던 국보법이 다시 등장했다
 
 김용태 등이 탔던 어선이 납북되었다가 귀환될 당시의 신문기사
 주문진 오징어 배(대복호)가 북한경비정에 납치됐다가, 귀환될 당시의 신문기사.
ⓒ 네이버 뉴스라이브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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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선이 완고하게 버티고 있고 매스컴을 통해 북한을 접할 기회도 거의 없었던 때라, 북한 땅을 밟아보고 온 납북 어부들은 지역사회의 관심 대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아무도 북한 이야기는 묻지도 답하지도 못했다. 국가보안법 때문이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며 긴장감도 같이 흐려지면, 간혹 동네 주민들과 술 한잔 기울이며 자신도 모르게 북한 이야기를 하게 되곤 했다.

이는 곧 납북 어부가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놓고 북한을 찬양한 사건으로 둔갑됐다. 몇몇 경우는 간첩단 사건으로 확대되기까지 했다. 북한 땅을 밟은 어부뿐만 아니라 부인, 자녀, 그리고 친척과 이웃 주민들까지 수십 명이 하루아침에 간첩단이 되어 처벌을 받는 경우까지 있었다. 1947년 발생한 울릉도 간첩단 사건에서는 무려 47명이 간첩으로 몰려 억울한 처벌을 받아야 했다. 물론 이 사건 역시 지난 2014년 재심을 통해 40년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납북어부들에게 적용되었던 대표적인 국가보안법 조항은 '찬양·고무죄'였다. 주민들과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북한 이야기를 한 것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정을 알면서 반국가단체나 그 구성원 또는 그 지령을 받은 자의 활동을 찬양·고무·선전 또는 이에 동조하거나 국가변란을 선전·선동한" 행위로 둔갑해 버린 것이다.

국가보안법 사건이 모두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영화 변호인이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듯 많은 사건에서 피고인은 고문을 당했다. 또, 정의롭지 못한 재판을 통해 억울한 피해자가 만들어졌다. 이는 오늘날 재심사건 중 많은 비율이 국가보안법 사건이라는 것이 증명해주고 있다. 하지만 사법부가 재심을 통해 과거 국가보안법에 의한 억울한 처벌을 스스로 반성하고 있는 현재, 이제 무덤에 들어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국가보안법이 다시 등장했다. 게다가 거론되는 법조항은 바로 그 '찬양·고무죄'다.

젊은이들의 거리 홍대에 김일성, 김정일 부자의 사진과 인공기가 내걸린 술집이 등장했다. 인테리어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던 해당 술집은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 덕에 오픈하기도 전부터 온갖 이슈를 독차지했다. 만약 마케팅이 목적이었다면 대성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논란이 일자 영업주는 스스로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를 철거했다. 이슈 끌기를 넘어 국가보안법이 적용돼 처벌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관할 구청인 마포구는 '북한식 술집'에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가 걸렸다는 민원이 접수되자 관련 내용을 서울지방경찰청 보안부에 이첩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가 있으니 수사해 달라는 것이었다. 하지만 대부분 전문가들은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만으로 국가보안법의 '찬양·고무'에 해당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을 보였다. 실제로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가 이적표현물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례도 있다(대법원 2011. 7. 28. 선고 2009도9152 판결 등).

술집에까지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개업을 위해 공사 중인 '북한식 주점' 건물 외벽에 부착된 인공기와 김일성 부자 초상화가 철거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인공기와 김일성·김정일 부자 초상화가 철거된 '북한식 주점' 건물 모습.
 16일 경찰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마포구 지하철 2호선 홍대입구역 인근에서 개업을 위해 공사 중인 "북한식 주점" 건물 외벽에 부착된 인공기와 김일성 부자 초상화가 철거됐다. 사진은 이날 오후 인공기와 김일성·김정일 부자 초상화가 철거된 "북한식 주점" 건물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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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심을 통해 뒤늦게 무죄를 선고받은 수많은 국가보안법 사건들 역시 피고인들의 행위가 이적행위에 해당해 국가보안법이 적용되었던 것은 아니다. 1948년 12월 1일 대한민국 정부가 일본 제국의 '치안유지법'을 기반으로 일제강점기의 '보안법' 등을 참고하여 제정한 국가보안법은 태생적으로 '개인'이라는 구체적 존재보다는 '국가'라는 추상적 공동체의 이익을 중요시했다. 이는 국가 권력에 따라 얼마든지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국가보안법 적용이 어렵다거나 부당하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은 국가보안법의 역사와 함께 언제나 제기되던 지적이다. 그러나 언제나 국가보안법은 꿋꿋이 적용되어왔고 억울한 피해자들을 만들어 왔다. 그리고 2020년이 다가오는, 국가보안법이 만들어진 지 70년이 넘어가는 지금까지 여전히 살아 있다. 게다가 노이즈마케팅이라도 해서 영업을 해보겠다는 서교동의 한 술집에까지 '찬양·고무죄'의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국가보안법이 존재하는 한 앞으로 40년 후 자신이 운영하던 술집에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를 내걸었다가 억울하게 옥살이를 했던 '홍대앞 술집 간첩단 사건'의 한 노인이 천고만난 끝에 재심을 받아 무죄를 선고받는 일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백주에 젊은이들의 거리 홍대 한복판에서 김일성 부자 사진과 인공기를 내걸은 일이 '찬양·고무죄'에 해당할 우려가 있다며 관할 구청이 수사기관에 사건을 이첩하는 것이 오늘날의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국가보안법이 살아 숨 쉬는 한 납북어부 간첩사건 같은 억울한 범죄자들이 다시 만들어질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광민 변호사는 부천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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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이며 부천시청소년법률지원센터 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는 '헌법 쉽게 읽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