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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초등학교 5학년 강물과 마이산이 엄마가 함께 나누는 책이야기입니다. - 기자말

나는 새로운 책을 접하면 줄거리, 목차, 작가에 대해 살펴보는 편이다. 웹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만난 책 <회색 인간>은 신선하고 작가 김동식은 매력적이었다. 옆에 있던 남편에게 작가의 이력을 읊어주었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주물 공장에서 10년 동안 노동을 했어. 게다가 평생 읽은 책이 2권 뿐이래. 지금까지 써온 단편 소설이 500편이 넘고, 지금도 계속 쓰고 있대."

흥분한 내 목소리를 듣고 옆에 있던 강물이의 질문.

"엄마, 그래도 작가가 될 수 있어? 무슨 책이야?"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된다. 며칠 후 군산의 한길문고에 김동식 작가가 온다는 포스터를 접했다. 포스터를 본 강물이의 말.

"나도 갈래. 엄마 이 책 사줘. 꼭 읽어 볼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강물이는 책을 찾았다. 나는 어린이용 책이 아니어서 '읽다 말면 어쩌지?' 하는 걱정을 담아 "단편 소설이라서 이야기가 짧아. 처음 3개 정도만 읽어봐"라며 책을 주었다. 마이산에게도 같은 말을 해줬다.

"처음 이야기 3개 정도만 읽으면 강연 듣기가 더 좋을 거야."

강물이는 김동식 작가에게 푹 빠졌고 나 역시 그랬다. 뒤늦게 책을 읽기 시작한 마이산도 마찬가지였다.

강물 : "엄마, 책이 어렵지 않아. 어른 책인데."
마이산 : "나도 나도. 뭔가 새로워. 좀 이상하기도 해. 그런데 재밌어."
 
강연회에서 사인 받은 책들
▲ 김동식 작가의 책들 강연회에서 사인 받은 책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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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강물이는 <회색 인간>을 학교에 가지고 갔다. 쉬는 시간, 점심시간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결국 완독했다.

강연 당일, 강물이와 마이산은 각자 작가에게 질문하고 싶은 내용까지 정해두었다. 김동식 작가의 강연은 그의 솔직함으로 시작했다. 그 솔직함이 나 뿐만 아니라 초등학생인 강물이와 마이산을 사로잡았다.

중학교를 중퇴하고,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시작한 PC방 알바. 서울로 상경해서 시작한 주물 공장의 일. 급여가 2배 이상이어서 만족스러웠던 일이 너무 단조로워 시작한 공상. 그 공상이 머릿속의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인터넷 게시판에 실려 인기 글이 되고 그 글들이 모여 책이 되는 이야기. 머릿속의 이야기를 글로 쓰고 싶었던 김동식 작가는 글 쓰는 법을 몰랐다.

"평생 읽은 책이 열 권이 안 되고... 그것도 교과서에 나오는 것들일 거예요. 글을 쓰고 싶은데 배운 적이 없으니까 네이버에 들어가서 '글 쓰는 법'을 검색했어요. 보니까 기승전결이라는 것이 있어야 하고, 접속사를 많이 쓰면 안 되고, 간단명료하게 써야 하고, 그런 내용들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배운 대로 써서 글을 올리기 시작했어요."

그의 이야기가 글이 된 과정이다. 그는 솔직하고 겸손하다. 그는 상대의 조언을 감사히 받아들인다. 그의 강연을 들으며 내가 생각한 그는 그렇다.

그의 인생이 하나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 속에 중요한 울림이 있었다. 그의 마음가짐, 사람을 대하는 자세가 나의 마음속에 머릿속에 각인되었다. 중학교를 중퇴한 그는 스스로 맞춤법에 약하다고 했다. 그는 그의 글에 맞춤법 지적을 당하면 댓글에 "감사합니다"를 먼저 썼다고 한다. 그 후 똑같은 맞춤법은 틀리지 않도록 노력했고 사실 그랬다. 그 말을 듣는 순간 다른 강연 후기에서 읽은 내용이 떠올랐다.

게시판에 글 쓰던 시절의 댓글 : "작가님의 이야기에 개연성이 너무 없어요."
김동식 작가 : "댓글 감사합니다. 그런데 개연성이 뭔가요?"  
 
작가에게 사인받는 사진
▲ 사인을 기다리는 아이들 작가에게 사인받는 사진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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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법과 마찬가지로 그는 개연성에 대해 배웠다. 독자들의 댓글을 무조건 감사해하며 배우려고 하는 자세를 가진 그는 발전하는 게 당연했다. 옆자리에 있던 강물이와 마이산을 슬쩍 봤다. 지루해하지 않으며 초롱초롱한 눈빛을 작가에게 보내며 강연을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책에서 읽었던 에피소드에 대한 내용이 나오면 뿌듯해하며 미소를 지었다.

강연이 끝나고 질의응답 시간이었다. 강물이는 묻고 싶었던 질문이 강연 중에 설명이 되어서 아쉬워했다. 마이산은 손을 번쩍 들고 질문을 했다.

마이산 : "글을 쓰다가 쓸 수 없을 때(막힐 때) 어떻게 하나요?"
김동식 작가 : "아무것도 안 합니다."

간단명료한 대답이었다. 작가는 쓰다가 막히면 미련 없이 그만 쓴다고 했다. 그런 이야기가 그의 컴퓨터 메모장에 100여 개가 넘는다는 부연설명까지. 마이산은 작가에게도 쓰다 만 이야기가 있다는 새로운 사실을 배웠다.

나는 책산책(책모임), 에세이 쓰기에서 들은 책, 배운 내용 등을 아이들에게 이야기해준다. 물론 강의처럼 하지 않고 흘려듣도록 유도하면서 가장 재밌었던 내용, 흥미를 가질 만한 내용으로 간추려서 한두 문장만 던져준다. 그 영향인지 요즘 아이들은 부쩍 내가 읽는 책에 관심을 보인다.

처음엔 아직 어린 아이들이 어른 책을 접하기에 어려울 것 같아 만류하기도 했다. 어떤 글에서 '아이들은 어른의 생각과 다르게 자신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만큼, 받아들일 수 있는 만큼만 받아들인다'는 내용을 접하고, 그 뒤로는 아이들이 자유롭게 보도록 했다. 아이들이 질문을 하면 내가 아는 범위에서 답해주고 내가 모르는 내용은 같이 검색해서 찾아보기도 한다.

그날 아이들과 나는 책에서 그 책을 쓴 작가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우리가 배운 내용은 각자 다를 것이다. 그 속에서 겹치는 부분은 분명하게 있었다. 그 겹치는 부분으로 우리는 공감대를 형성했다.

그 공감대 속에서 나는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는 뿌듯함', 아이들은 '엄마 책을 읽고 같이 강연을 들은 자부심'으로 같이 행복해했다. 김동식 작가의 상상력과 성실함이 우리에게도 전해졌고 계속 자라고 있는 중이다.
 
양심고백, 13일의 김남우, 회색인간에 받은 사인들
▲ 나와 강물이, 마이산이 받은 사인 양심고백, 13일의 김남우, 회색인간에 받은 사인들
ⓒ 신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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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브런치에 실을 예정입니다.


태그:#김동식 작가, #회색인간, #양심고백, #13일의 김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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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둥이 아들을 키우며 꿈을 이루고 싶은 엄마입니다.아이부터 어른까지 온 가족이 다같이 읽을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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