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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 기사] "경찰이 침탈하면..." 도로공사 본사 점거 농성장의 긴장감
 
9월 16일 고열감기로 119에 실려가는 요금수납노동자
 9월 16일 고열감기로 119에 실려가는 요금수납노동자
ⓒ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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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7일 농성 9일 차, 오전 4시 45분. 경북 김천시 율곡동 한국도로공사 본사 2층 로비에서 농성 중인 톨게이트 요금수납노동자들이 일어나기 시작한다. 5시가 되니 자회사 직원들이 출근하기 시작한다. 건물 청소 담당 노동자들도 새벽에 출근하지만, 요금수납노동자들이 사용하는 공간은 청소하지 않는다.

농성 중인 노동자들이 지금까지 청소를 해왔다. 추석 연휴가 지나면 해주겠지 하는 마음으로 참고 기다렸다. 추석 연휴 전에는 요금수납노동자들이 청소 노동자들에게 배 상자를 전달하기도 했다. 집회 때 청소노동자 등과 불필요한 마찰이 없도록 하자는 내용을 공유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연휴 끝난 지 이틀이 지나도록 청소를 해주지 않고 있다. 도로공사에서 환풍기를 꺼서 농성장 공기 순환이 되지 않아 먼지가 가득하다. 추석 무렵부터 기온이 떨어지는 가운데 공기 순환이 되지 않자 노동자들 간에 감기가 급속도로 전염되고 있다. 또, 피부염 환자도 생겨나고 있다. 남자 화장실에는 센서 전기 차단으로 악취가 진동하고 있다.

단전된 지 6일 차가 되었고, 화장실과 로비 등 청소를 해주지 않은지 일주일이 넘었다. 필자도 전날 밤 3층 화장실에서 씻다가 바닥 상태가 보이지 않아 몇 번이나 미끄러질 뻔했다. 17일 아침에 미끄러져 다친 노동자가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필자도 전날 저녁에 두통과 목 안이 따갑고 아픈 감기 기운이 있어 감기약과 진통제를 먹고 잤다. 환기가 되지 않아 피부염도 심해지고 있다. 수면도 문제다. 정작 필요한 곳의 전기는 끊으면서 밤에는 로비 전체에 불이 환하게 켜져 있다. 전기세 절감을 위해서도 수납노동자들이 직접 불을 끄고 켜면 좋은데 그럴 수가 없다. 손수건을 눈 위에 올려 불빛을 피해 보지만 숙면을 취하기는 어렵다.

17일 밤, 감기 환자들 때문에 쌍화탕을 들여와 복용하게 하려 했지만, 경찰은 용기가 유리병이라는 이유로 반입하지 못하게 했다. 아니면, 경찰이 보는 앞에서 다 먹으라고 했다. 수납노동자들은 "10병을 한 번에 원샷 하라는 거냐"라며 항의했지만, 경찰은 태도를 바꾸지 않았다. 

전날 십여 명 정도였던 감기 환자가 아침이 되니 20~30명 정도로 늘어나 있다. 당뇨와 고혈압, 디스크 등 기존에 질병이 있던 노동자들과 농성 초기 경찰·도로공사 직원의 물리력으로 다친 노동자들도 힘든 조건에서 계속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17일 밤 일주일 동안 심한 고열로 고통받던 노동자 한 명이 119에 실려 나갔다. 전날 오겠다고 했던 국가인권위원회는 끝내 오지 않았다. 

아침에 이 문제로 노동자들이 회의를 했다. 화장실 청소는 계속하기로 했고, 로비도 청소 도구를 들여와서 청소하는 문제를 이야기한다. 여기저기서 기침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전기 줘! 전기 줘!"
 
9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전기공급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중인 요금수납노동자들
 9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전기공급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중인 요금수납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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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연휴가 끝난 17일 오전부터 마음이 불편해지기 시작했다. 단전은 도로공사가 작정하고 한 것이니 쉽지 않을 거란 생각도 했지만,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했다니 연휴가 끝나면 해결될 것이란 기대가 있었다. 적어도 화장실 청소는 해줄 것이라 생각했는데, 오전 5시부터 청소노동자들이 출근하면서도 2층 화장실 청소를 해주지 않았다. 50명인 청소노동자들 중에 단 한 명도 화장실도 로비도 청소하지 않았다. 

"화장실 청소 오늘도 안 되어 있네요? 짜증 안 나세요?"
"우린 직접고용 큰일 해야 하는데, 그런 자잘한 일로 신경 쓰면 되겠어요?"


서안산톨게이트 노동자들의 말을 듣고 올라오는 화와 짜증을 가라앉히며 하루를 보냈다. 안 그래도 마음이 불편한데 감기 환자가 늘어나고 피부염 환자가 속출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안 되겠다 싶었다. 

오전 9시 50분, 대구 국가인권위원회에 전화했으나 "확인 중", "검토 중", "검토해봐야"라는 말만 돌아온다. 또, 진정된 사건에 대해 조사 중인데 대구 국가인권위원회가 아니라 서울 본부에서 총괄한다고 했다. 

"우리(대구 국가인권위원회)가 확인해본 바로는 2층 화장실에는 불이 들어오고, 3~4층은 도로공사가 차단한 게 아니라 노조원들이 빨래를 하다가 물이 튀어 전기누전으로 차단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확인을 해서 도로공사에 요청을 해도 도로공사에서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쩔 수 없어요." 

언제까지 조치를 할 것인지 물으니 이날 검토할 거라고 한다. 긴급조치에 대해서도 같은 답변을 한다. 3층의 경우, 화장실과 복도는 불이 안 들어오지만 화장실 맞은편 사무실에는 불이 들어온다는 이야기를 하니 역시 확인해봐야 한다는 말을 한다.

2층 남자 화장실 소변기 물이 안 나오는 것도 이야기했으나 같은 답변이 돌아온다. 16일 방문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왜 오지 않았냐고 하니 그런 말 한 적이 없다고 한다. 17일 방문할 것인지 물으니 그것도 검토해봐야 한다고 한다. 

이심전심일 걸까? 오전 10시 30분, 수납노동자들이 참다못해 1~2층을 이어주는 계단 입구에 앉았다. 차단된 전기 복구와 화장실 등 청소를 해달라는 요구를 하기 위해서다. 

"시설관리 직원들이 전기 안 고쳐주고 화장실 청소 안 해주죠? 이제부터 시설관리 직원들 못 올라오게 막읍시다. 전기 일부러 끊은 겁니다. 전기 고쳐주고 화장실 청소 다 해줄 때까지 막아요."
"전기 줘! 전기 줘!"

청소, 청소, 청소...
 
청소가 안된 2층 화장실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장근섭 지청장
 청소가 안된 2층 화장실 상태를 확인하고 있는 장근섭 지청장
ⓒ 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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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즈음 장근섭 대구지방고용노동청장과 과장급 직원들이 농성장에 왔다. 노동조합에서는 장근섭 청장에게 이강래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직접 참석하는 교섭 재개와 전기·화장실 등 농성 생활 관련 문제, 경찰의 사생활 침해 문제 해결을 요구했다.

남성 경찰들이 오후 11시부터 5~6시간 정도를 제외하고 하루 종일 여성 노동자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있어 여경으로 바꾸어주거나 뒤돌아 있게 해달라는 요구다. 한국도로공사 부사장을 면담하고 왔다는 장근섭 지청장은 2~4층 화장실과 복도 등을 둘러보고 사측과 다시 이야기하겠다며 농성장을 떠났다. 

수납노동자들은 농성장 내 계단 쪽과 복도에서 시설 관리하는 자회사 직원들의 출입을 막았다. 그러자 자회사 직원들이 112에 감금당했다고 신고하여 파출소에서 출동하고 기존에 들어와 있던 경찰들은 채증을 하며 수납노동자들을 연행하겠다고 했다. 

"감금 아니에요. 4층에 통로가 있어요. 거기로 가면 되잖아요?"

수납노동자들은 자회사 직원들이 4층 통로로 다니면 되는데 일부러 농성장을 지나가면서 마찰을 유도하고 있다고 했다. 

"청소를 왜 안 하시는 건데요? 청소 안 하는 이유를 대세요. 도로공사에서 시켜서 안 하는 거라면 그렇게 얘기하시면 되잖아요. 9일째 화장실 청소가 안 되고 있어요. 화장실 심각해요. 물도 안 돼. 불도 안 켜줘요."

"우리를 사람 취급 안 하는 겁니다."  

"몸 불편한 분들 많은데, 깜깜한데 오르내리다가 다치면 어떻게 해요?"

"청소. 청소. 청소. 청소. 청소...  9일 째에요. 9일째. 이쪽으로 가시고 청소해 주세요. 그럼 보내드릴게요."


청소, 청소, 청소... 민주일반연맹 남정수 교육선전실장이 '청소'라는 말을 한 것은 필자가 들은 것만 최소 30~40번 이상 되는 듯하다. 

"얼굴 채증 다 하세요."

경찰이 여러 대의 카메라로 채증을 한다. 

"우리가 여기 들어온 거 자체가 불법이라고 하면서 새삼스럽게 왜 찍어요? 여기가 도로예요? 여긴 도로가 아니라 회사 건물이에요. 경찰 직권남용입니다. 연행할 거면 여경 투입해요."

"전기세 아껴요. 그만 찍어요. 아무것도 안 하잖아요."

"지청장님, 우리 농성하러 왔다가 청소 때문에 연행당하게 생겼어요. 도로공사에서 정보과 형사 전화도 안 받는 상황이에요. 상황 정리 좀 해주세요."


1시간이 넘도록 상황 수습이 안 되자 남정수 실장이 장근섭 지청장에게 전화했지만, 고용노동부 구미지청장을 보내서 확인해보게 하겠다는 답변만 들었다.

화장실 청소는 끝끝내 안 된다고
 
9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전기공급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중인 요금수납노동자들
 9월 17일 오후 3시 30분경 전기공급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중인 요금수납노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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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네가 깡패가?"
"니네가 깡패가?"


1층에서는 자회사 직원 수십 명이 구호를 외치며 요금수납노동자들에게 항의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농성장으로 들어오는 계단 입구 밑에서는 체격이 좋은 여러 명의 자회사 남성 직원들이 경찰을 뚫고 들어오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다. 

1시간 30분가량 경찰·자회사 직원들과 대치한 끝에 하루에 한 번 시설관리 자회사에서 기계를 이용해 2층 바닥 청소를 하고 17일 오후에 3층 전기를 공급한다는 답변을 받았다. 도로공사가 의도적으로 전기 끊은 것이 입증된 것이다.

하지만 화장실 청소는 끝끝내 안 된다고 하여 문제가 완전히 해결이 될 때까지 경찰과 함께 사용하는 2층 화장실은 요금수납노동자들과 경찰 측이 공동으로 관리하고, 3층은 요금수납노동자들이 관리하기로 했다. 또, 화장실 청소와 2층, 4층 전기 공급은 이후에도 계속 요구하기로 했다. 

12년 동안 한국도로공사 남인천톨게이트에서 요금수납 업무를 해오다가 해고된 백홍기씨는 이날 상황과 관련하여 자회사 직원들이 경찰을 뚫고 들어오려 할 때 너무 무서웠다고 했다. 

"어제 깜빡하고 핸드폰을 안 들고 3층 화장실에 갔어요.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손으로 변기를 더듬어 가며 변기에 앉아서 볼일을 봤어요. 변기 위생 상태도 전혀 확인이 안 되고 바닥은 물 때문에 미끄럽고요." 

백홍기씨는 시설관리 하는 노동자가 그 화장실에 센서 장치가 있다며 그냥 들어가라고 해서 상황을 이야기했더니 도로공사에 대해 욕했다며 도로공사가 모든 조치를 한 게 맞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용역업체 사무장의 요구로 사무장과 그 자녀들의 김장김치까지 담아주며 근무했다는 홍기씨는 경찰은 수납노동자들을 전혀 보호해주지 않고 사측 사람들만 보호해준다며 억울함을 호소한다. 

"전기가 들어오면 빨래를 걷는 걸로 하겠습니다"
 
4층에 걸려있던 빨래들
 4층에 걸려있던 빨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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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한 지 2시간이 넘도록 전기가 들어오지 않자 요금수납노동자들은 전기 공급을 요구하며 오후 3시부터 다시 경찰 앞에서 전기 공급을 요구하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얼마 뒤, 3층 전기를 공급하는 대신 4층에 걸려있는 요금수납노동자들의 빨래를 걷어달라는 요구가 들어왔다는 내용이 전달된다. 

"전기 하지 마요."

"냅두세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고 해요. 그냥 후레쉬 들고 다닐게요. 청소도 뭐고 우리가 다 할 테니."

"전기는 인권 문제인데 그게 빨래하고 바꿀 일인가요?


조합원들의 마음이 상했다. 전기가, 인권이, 생명이, 빨래하고 바꿀 일인가? 청소도 마찬가지다. 혹시 빨래를 널어서 전기를 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다면 빨래 때문에 전기 공급이 중단되었다는 말은 사실일지도 모르겠다. 그 주체가 도로공사인가 빨래인가의 문제가 있을 수는 있겠지만, 어떻게 보면 양자는 맥락상 같은 것일 수도 있겠다. 

알고 보니 자회사에서 3층 전기 스위치를 올렸는데, 한국도로공사에서 다시 내렸다고 한다. 다시 올리는 조건으로 요금수납노동자들의 회의실 쪽에 걸려있는 빨래를 걷어달라고 했다는 설명이 전해진다. 전기 올리는 것과 빨래 걷는 것을 동시에 하자는 것이다. 이후에도 청소와 4층 전기 공급은 계속 요구할 것이라는 내용도 공유가 되자 요금수납노동자들이 빨래 걷는 것에 동의를 한다. 

"각자 위치에 있다가 전기가 들어오면 빨래를 걷는 걸로 하겠습니다."

잠시 후, 전기가 들어오고 수납노동자들이 4층에 있는 빨래를 걷는다. 그나마 햇볕이 들어오는 유일한 공간이었기에 빨래를 걷는 모습에서 아쉬움이 느껴진다. 

"본사에 계신 요금수납 조합원 여러분, 고속도로 업무 수행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하고 있으니 지금 즉시 건물 밖으로 나가주시기 바랍니다."

빨래 걷는 것을 보고 내려오니 안내 방송이 계속 나온다. 3층 화장실 전기 공급이 되고 한국도로공사도 마음이 상한 것일까? 오전에 전기 공급과 로비 청소에 관한 1차 합의가 되었을 때도 안내 방송이 수차례 나왔었다. 가을 햇살에 뽀송뽀송 잘 마른빨래처럼 요금수납노동자들의 눅눅한 마음도 뽀송뽀송하게 잘 마를 날이 곧 오기를 바란다.

*한편 한국도로공사 관계자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전기를 일부러 끊은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며 "갑자기 전기 사용량이 늘거나, 누전이 된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전기는 수리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나, 농성자들이 막고 있어 진입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주장했다.

화장실 청소 문제에 관해서는 "갑자기 본사에 들어와서, 청소까지 해달라고 하는 상황 아니냐"라며 "화장실 진입도 어렵다. 오히려 17일에는 시설관리 직원들이 감금당하기까지 했다"라고 밝혔다.

태그:#톨게이트수납노동자, #톨게이트농성, #직접고용, #요금수납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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