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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터프런트 공원을 비추는 햇살이 아름답다.
▲ 워터프런트 공원에서 바라본 모습 워터프런트 공원을 비추는 햇살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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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에 있는 찰스턴의 7월은 무더웠다. 30도를 웃도는 기온에 습도는 95%를 넘었다. 다운타운 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얼굴은 대부분 벌겋게 달아올랐고 몸집이 큰 관광객들의 걷는 모습은 힘에 겨워 보였다. 자녀들과 함께 하는 가족 여행객이 많았고 그들의 손에는 안내서가 들려 있었다.

찰스턴, 많이 들어본 듯한 이름이지만 정확하게 아는 것은 별로 없는 도시, 한여름 그곳을 방문하였다. 인기 있는 여행지도 아닌 곳에 가고 싶어진 것은 노예 거래 시장이 있었다는 그곳의 역사가 궁금해졌기 때문이다. 

찰스턴은 영국의 식민지 시절인 1670년 생긴 도시로, 찰스턴이라는 지명은 영국 왕 찰스 2세의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이후 찰스턴은 노예 거래의 중심지가 되어 부를 쌓고 번성했다. 역사가들에 따르면 아프리카에서 건너온 흑인 노예의 반 이상이 찰스턴으로 들어왔다고 한다.

찰스턴은 남북전쟁 이전까지 인구 구성에서 흑인 노예가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으나 이곳의 모든 정치와 부를 지배한 사람들은 몇몇 대농장주와 상인들이었다. 이들은 주 정부로 하여금 연방법 실시를 거부하도록 하였으며, 1860년 12월 20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연방 탈퇴 법령이 이곳에서 통과되었다. 이를 계기로 남북전쟁이 시작되었다. 

이러한 역사가 말해주듯  찰스턴에는 흑인 노예의 역사가 모든 곳에 녹아 있었다. 찰스턴이 자랑하는 남북전쟁 이전에 건축된 저택들은 모두 흑인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지어진 것이다. 한때의 부와 명성 역시 노예 시장과 흑인들의 목숨과 바꾼 쌀농사로 얻어낸 것들이다.

19세기 초까지 찰스턴은 미국에서 가장 큰 노예 수입항이며 쌀 수출항이었다. 지금은 다시 야생풀밭과 악어의 서식지로 돌아갔지만, 찰스턴은 대규모 쌀 농장들로 유명했다. 흑인 노예들은 열사병과 각종 부상으로 시달리며 악어와 뱀 그리고 모기로 가득한 습지를 개척해 쌀을 생산했던 것이다. 
 
찰스턴 해안에서는 모래 사장보다는 습지가 형성되어 야생초들이 자라고 있다.
▲ 찰스턴의 바다 찰스턴 해안에서는 모래 사장보다는 습지가 형성되어 야생초들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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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진 경치와 융성했던 문화 유적을 보기 위해 찰스턴을 방문한다면 실망할 것이다. 이미 다녀왔다는 한 지인은 "뭐 볼 게 있다고 찰스턴을 가냐"는 말을 했다. 미국 대부분 도시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역사가 길고 옛 건축물이 많다고 하지만 수천 년 역사를 지닌 우리의 눈에는 그저 현대적인 빌딩이 별로 없는 다소 쇠락한 모습만 눈에 띌 뿐이다. 

이른 오후에 도착한 우리는 일단 맥주로 땀부터 식히고 찰스턴 다운타운 탐험에 들어갔다. 다운타운은 해변을 따라 서너 블록 안에 형성되어 있어 길눈이 소경에 가까운 우리에게도 금방 익숙해졌다. 화이트포인트 가든으로 가서 남북전쟁의 시발지인 섬터 요새를 멀리서 바라보고, 해변을 따라 형성된 워터프론트 공원의 유명한 파인애플 분수 앞에서 더위를 식히기도 했다. 

그리고 다음 날 간 곳이 이번 찰스턴 방문의 목적지라 할 수 있는 'Old Slave Mart Museum'(구 노예시장 박물관)이었다. 미국에서 가장 큰 규모의 노예 경매 시장이 있던 찰스턴에서는 야외에서의 노예 경매가 금지되자 옥내 경매시장들이 생겨났다. 그중 'Old Slave Mart'는 노예 수용소, 감옥, 부엌, 시체 안치소 등을 갖춘 높은 벽돌 담으로 둘러싸인 4층짜리 종합 건물이었다. 현재는 대부분의 시설이 사라지고 담과 노예 전시실만이 남아있는 현존하는 거의 유일한 노예 경매시장 터다.
 
다운타운 안에 있어 원거리 촬영은 힘들며 박물관 안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좌측으로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벽돌 담이 보인다.
▲ Old Slave Mart Museum 다운타운 안에 있어 원거리 촬영은 힘들며 박물관 안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 좌측으로 시멘트가 떨어져 나간 벽돌 담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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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박물관이 눈으로 작품을 감상하거나 역사 유물을 감상하는 곳이라면 찰스턴의 'Old Slave Mart Museum'은 눈으로 읽는 박물관이다. 예전 노예 전시실만이 남아있는 박물관은 2층으로 된 60평도 안 되는 아주 조그만 곳인데, 내부 전시실에는 마치 그림과 사진 도표 등이 드문드문 나오는 커다란 활자로 책을 펴 놓은 듯한 스토리보드가 노예 경매에 대한 모든 것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과거 노예 유령이 나타나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한다고 할까?

설명에 따르면, 흑인 노예의 값을 현재 화폐로 환산하면 평균 3만 달러 이상이었고 노예상들은 노예의 값을 올리기 위하여 늙은이는 머리를 검게 물들이고 피부는 윤기가 나도록 기름을 발랐다고 한다. 또한, 일반적으로 알려진 바와 달리 노예상들은 피부에 깊은 상처가 있는 노예는 반항적인 노예로 비칠까 우려하여 긴 채찍 대신 나무 손잡이가 달린 짧은 가죽 끈을 사용했다고도 한다.

남북 전쟁 전 찰스턴 재정의 근간이 된 노예 중심 경제체제와 여기서 각종 이득을 취했던 은행과 보험 관계자 및 노예상들 간의 유기적 관계를 읽다 보니 가슴 한켠에서 분노가 치밀고 먹먹해지기까지 했다. 

우연히 옆을 보니 한 흑인 여성이 열심히 보드를 읽고 있었다. '그녀는 어떤 감정으로 이 자리에 서 있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그녀도 노예의 후손이 분명할 것이기에, 한때 식민지라는 아픈 역사를 지닌 나라의 국민으로서 그녀의 분노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하였다. 

나 역시 박물관을 방문하기 전 흑인 노예들이 입었던 옷이나 족쇄, 체벌 도구, 무기 등과 같은 시각적인 전시물을 기대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Old Slave Mart Museum을 통하여 나는 시각적 효과가 거의 없는 읽을 거리만을 제공하는 박물관도 이토록 인상 깊고 깊은 감동을 준다는 새로운 경험하게 되었다. 오히려 다른 박물관보다 오래오래 소중하게 기억될 것 같다.

태그:#찰스턴, #OLD SLAVE MART 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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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반 동안 대한민국의 이곳저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엘에이로 돌아왔습니다. 이곳에서도 열심히 다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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