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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사용하는 어휘를 살펴보면 그 사람의 거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다. 그가 속한 사회경제적인 위치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성품까지 그가 사용하는 어휘가 말해준다. 나아가 같은 어휘라도 억양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사용자에 대한 정보가 파악된다.

개인이 사용하는 어휘는 그가 살아가는 경로와 경험에 의해서 자연스럽게 형성된다. 한 사람의 언어의 한계는 곧 세계의 한계라는 비트겐슈타인의 말은 통찰력이 넘친다. 또 지식인이나 작가는 '이름 모를 꽃'이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아야 하는 사람들이다.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이야말로 작가나 지식인이 우선 갖추어야 할 덕목이다.

독서의 가장 큰 장애는 어휘력이며 독서의 가장 큰 이득도 어휘력이다. 모국어로 쓴 책이라도 난이도에 따라서 어휘력 부족으로 읽기가 힘든 경우가 있다. 또 글을 쓰다보면 아직 말문이 터지지 않은 아기처럼 그 물건을 칭하는 어휘를 알지 못해서 답답증이 폭발할 때가 있다. 독서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어휘력에 목말라하는 이유다. 단기적으로 그리고 확실하게 어휘력을 증가시키기 위해서는 사전만한 것이 없다.

글 솜씨뿐만 아니라 풍부한 어휘력에 감탄하게 되는 작가는 모두 사전을 가까이 한 사람들이다. 국어사전, 유의어 사전, 어원사전은 어휘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최고의 비책이다. 사전을 마치 소설을 읽는 것처럼 첫 쪽부터 차례로 읽을 필요는 없다. 사전의 특성대로 모르는 단어를 찾아보거나 심심할 때 아무 쪽이나 펼쳐서 모르는 단어 위주로 읽으면 된다.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유희가 지은 어휘사전이자 일종의 백과사전인 <물명고>는 적어도 한국어로 글을 쓰는 작가나 한국어를 좀 더 진지하게 공부하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보물이나 다름없는 책이다. <물명고>는 순 우리말에 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에 지어진 책이니 만큼 한자에 대한 이해도 길러진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물명고> 겉표지
 <물명고> 겉표지
ⓒ 소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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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문화권에 속하는 한국어의 상당수는 한자다. 한글세대는 한자어의 음만 익숙하지 한자어의 의미를 모르는 경우가 많다. 영어공부만 해도 그렇다. 수업시간에 시도 때도 없이 듣는 문법 용어의 대부분은 한자다. 명사(名詞), 대명사(代名詞), 동사(動詞), 가정법(假定法), 부정사(不定詞) 등 한자 이름 자체는 그 쓰임을 정확히 말해주고 있는데 한글세대인 학생들에게는 그 의미를 별도로 설명해줘야 한다.

<물명고>는 우리 민족과 친숙한 사물의 우리말 이름과 함께 한자식 표기를 알려줌으로써 요즘 유행하는 통섭이나 학문 융합의 본보기이기도 하다. 또 사물의 다양한 우리말 유의어가 풍부한 보물선이기도 하다.

전형적인 한자를 잘 모르는 세대에 속하는 내가 예전에 리영희 선생이 쓴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우익과 좌익이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공존하는 세상을 꿈꾼다는 취지답게 좋은 비유가 사용된 제목이라고 생각했더랬다.

<물명고>를 읽기 시작하면서 알게 된 것인데 우익과 좌익에 사용된 익(翼)이 날개라는 뜻이라니. 그러니까 우익과 좌익이라는 말 자체가 오른쪽 날개, 왼쪽 날개라는 뜻이다.

연(燕)이 제비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니 어린 시절 책을 읽다가 연미복(燕尾服)이 나왔을 때 어떻게 생긴 옷인지 궁금해서 사전을 찾아보고 그림을 보고서야 겨우 그 생김새를 짐작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난다. 연미복은 제비꼬리처럼 생긴 남자 예복이었던 것이다. 또 흥부 놀부의 성이 연이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된 것이 제비를 연상해서 그런 것이 아닌가라는 추측도 하게 된다.

386세대이면서 소, 돼지, 닭을 직접 사육하고 도살해서 음식으로 먹었던 시골 출신인 나도 닭이라는 동물 이름과 함께 연상시킬 수 있는 어휘가 '치킨' 말고 그다지 없다. 돼지도 마찬가지다. 나만 해도 살아온 인생의 경험과 읽은 책으로 알게 된 그 동물의 특성이나 연관된 역사는 조금 알지만 닭이나 돼지 같은 우리와 친숙한 동물조차 그와 관련된 어휘는 빈곤하다.

<물명고>에는 닭을 단지 치킨을 생산하기 위한 재료로 쓰기 위해서 콩나물시루처럼 구겨 넣어서 '상품'으로 사육하는 세상에 사는 사람들로서는 듣도 보도 못한 어휘의 잔치가 펼쳐져 있었다.

오직 치킨으로만 닭을 만나는 요즘 사람들이 아닌 닭과 함께 살았던 시대의 사람들은 닭과 함께 보내는 시간만큼 다양한 명칭이 있었다. 치킨이 아닌 닭이라는 가축이 생생이 살아 있었다. 우선 촉야, 벽치, 추후자, 대관랑, 구칠타, 찬리채가 모두 닭의 다른 이름이다.

힘이 매우 센 닭, 늙은 닭이 난 병아리, 쑥처럼 흐트러져서 어지럽게 된 머리를 가진 닭, 수염이 달린 닭, 얼룩점이 박힌 닭을 칭하는 명칭이 따로 있었고 닭이 살찌고 울음소리가 긴 것, 닭이 날개를 치는 소리, 닭 새끼가 껍질을 깨고 나오는 소리, 많은 닭들이 밤에 우는 것, 어둑어둑한 무렵에 혼자 우는 것, 닭을 몰아내는 소리를 구분하고 이른 뜻하는 어휘가 따로 있었다.

나는 어린 시절 마음껏 계란을 먹고 제사를 모실 때면 어김없이 한 마리씩 잡아서 제사상에 올릴 만큼 닭을 여러 마리 키웠던 집 아들이었다. 그런데도 닭이 올라 앉아 있는 곳을 일컬어 '홰'라고 하고, 앍을 낳거나 깃들이기 위해서 둥글게 만든 집을 '둥우리'라고 한다는 것을 <물명고>를 읽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닭이 친숙한 존재였고 그와 관련된 어휘와 표현이 발달된 만큼 닭과 관련된 어휘에는 그 시대의 문화와 시대상도 담겨 있다. 가령 수탉의 다리 뒤쪽에 나 있는 뾰족하고 딱딱한 돌출물을 '며느리발톱'이라고 한다. 보기에도 마치 혹처럼 생겨서 좋지 않고, 특별한 기능도 없는 이 부위를 왜 하필 '며느리발톱'이라고 불렀을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남존여비사상과 연관이 있을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하찮은 존재를 여성에 비유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귀하게 대접받지 못하고 고생을 하는 존재라는 의미로도 생각될 수 있다.

며느리발톱은 사실 닭뿐만 아니라 말이나 소 그리고 개도 가지고 있는데 인터넷에 며느리발톱을 검색하면 강아지 발에 붙어 있는 며느리발톱에 관한 고민이나 그 처치 방법에 관한 게시물이 대다수다.

확실히 어휘는 그 시대를 반영한다. 반려동물로 개를 많이 키우는 시대니 당연한 일이겠다. 한편 닭이 하늘을 향해 날아오르는 소리를 한음이라고 하는데 실제 능력이나 됨됨이에 비해서 명성이 지나치게 높은 상황을 비유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닭은 날 수가 없는 가축인데 분수에 맞지 않게 하늘을 나는 새처럼 비행하려는 상황을 비꼬는 말이다.

또 밤 11시에서 새벽 1시 사이에 우는 닭이나 닭이 날이 샐 무렵에 너무 시끄럽게 우는 것을 황계라고 불렀는데 사람 입장에서는 모두 성가신 일이라 전쟁으로 인한 난리가 날 징조라고 생각하였다고 한다.

<물명고>가 알려주는 돼지에 관한 어휘도 다채롭고 흥미진진하다. 우선 어진백, 대란왕, 오장군, 흑면랑, 장훼장군, 발하, 저(猪), 희가 모두 돼지와 같은 말이다. 그러고 보니 <서유기>에 등장하는 돼지 머리를 가진 인물의 성이 저(猪)인 이유를 알겠다.

참고로 저(猪)는 성이고 팔계가 삼장법사가 지어준 이름이다. 새끼를 밴 돼지, 거세한 돼지, 태어난 지 넉 달 된 돼지, 여섯 달 된 돼지, 쌍둥이 돼지, 세쌍둥이 돼지, 세 살 된 돼지, 머리가 짧고 살갗이 쭈글쭈글한 돼지를 따로 구분해서 부르는 어휘가 있다는 것이 놀랍다.

돼지가 성내는 소리, 놀라는 소리, 새끼 돼지의 소리, 숨 쉬는 소리, 아파하는 소리, 돼지를 부르는 소리(루루로로)를 뜻하는 표현이 따로 있었고 돼지 밥, 돼지 발자국, 돼지가 잠자는 곳, 돼지 똥, 돼지 몸에 사는 이, 돼지를 매는 말뚝을 일컫는 말이 있었다. 돼지라고 하면 삼겹살만 생각하게 되는 요즘 시대에는 쓰일 수가 없는 말들이 되었다.

현대인들이 돼지가 아파하는 소리를 한번이라도 들은 적이 있을까. 돼지를 부를 일도 없고 돼지를 사육하는 사람들조차 돼지를 매는 말뚝 따위가 있을 리가 없다. 요즘에는 돼지 밥이든 소 밥이든 닭이 먹는 밥이든 모두 '사료'일 뿐이다.

돼지고기를 이용한 음식의 종류는 늘었고 풍부해졌지만 돼지에 관련된 어휘는 거의 다 없어졌다. 돼지는 그저 집안에 함께 사는 생명체가 아니고 먹거리 상품을 생산하는 공산품에 지나지 않는 세상이라는 것을 실감한다.

<물명고>와 같은 고전을 읽다보면 우리가 요즘 흔히 사용하는 표현이나 단어의 어원을 알게 되는 경우가 많다. 가령 목화에서 실을 뽑는 기계 즉 물레는 목화씨를 우리나라에 들여온 문익점의 손자 문래의 이름에서 나온 것임을 알 수 있다.

또 <물명고>에는 내가 좋아하는 우리말 '낭패(狼狽)하다'에 대한 어원 이야기가 나온다. 낭패하다는 원하는 일이 수포로 돌아가거나 기대한 일이 어긋나는 것을 뜻한다. 낭은 뒷다리가 매우 짧고 패는 앞다리가 매우 짧은 전설상의 동물이다. 낭과 패는 모두 한쪽 다리가 짧으니 혼자서는 움직이지 못하고 서로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서 협동을 해야 살아갈 수 있다.

다시 말해서 낭과 패가 움직일 때는 낭이 패를 업고 낭의 앞다리와 패의 뒷다리를 이용해야 한다. 그러니 낭과 패는 서로를 잃어버린다면 극심한 실패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며 낭패하다는 이 상황을 두고 한 말이다.

며칠 전 아내와 함께 거실에 함께 있었다. 나는 드라마와 <물명고>를 오가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아내는 헬스용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내가 책을 읽다가 두루미가 학의 다른 이름인 것을 새삼 알고 아내에게 이 사실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아내는 다른 새가 아니냐고 대답했다.

모처럼 아내에게 잘난 척을 하고 뿌듯해 하고 있었는데 잠시 뒤에 아내가 내가 며칠 째 넋을 잃고 보는 드라마에 나오는 남자 주인공이 내 인생 드라마라고 생각하는 <나의 아저씨>의 여자 주인공 '이지안'을 괴롭히는 사채업자라는 사실을 아느냐고 묻는다. 물론 금시초문이다. 아내는 나처럼 책을 읽고 얻은 지식이 아니고 순전히 눈썰미로 스스로 찾아 낸 것이다. 나와 아내는 경로와 습득 방법은 다르지만 서로에게 취약한 지식을 채워주는 관계가 아닌가 싶다.

피자를 먹을 때는 아내는 토핑을 좋아하고 나는 아내가 여차하면 남기는 테두리 빵을 좋아한다. 치킨을 먹을 때는 아내는 가슴살을 나는 날개와 목살을 좋아한다. 낭패라는 말을 사용할 때 일반적으로 일이 틀어지고 난감한 상황을 떠올리기 쉬운데 낭과 패는 서로 붙어 있고 협조하면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조화를 이룬다. 아내와 내가 취향과 성향이 약간 다른 것이 어쩌면 낭과 패처럼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는 관계가 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닌지 재미난 생각을 하게 된다.

역시 가장 정겨운 것은 개와 관련된 말들이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 개가 등장하면 이름이 '바둑이'인 경우가 많았는데 털에 검은 점과 흰 점이 마치 바둑알처럼 섞여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아무 생각이 없이 그냥 개 이름이 바둑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둑알을 닮았다고 해서 바둑이였던 것이다. 바독이, 바두기가 같은 말이다.

다리가 짧고 목이 작은 개를 발바리라고 한다. 어린 시절 시골 어른들이 덩치가 작은 개를 가리켜 발바리라고 불러서 나도 그렇게 불렀는데 그냥 시골 동네에서만 통하는 극본이 없는 사투리 인줄 알았다. 발바리라는 말이 이미 조선시대 백과사전에 등장하는 유서 깊은 말이라니 신기할 따름이다.

물명고 - 상

유희 (지은이), 김형태 (옮긴이), 소명출판(2019)


태그:#물명고, #소명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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