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전 세계 어디도 마찬가지겠지. 연극을 해서 부자가 될 수는 없을 거야!"

2009년 한국 공연 팀과 아르헨티나로 투어 공연을 갔을 때, 그곳에서 만난 한 예술가가 했던 말이다. 지난 해 우연히 마주친 일본의 공연기획가는 내게 "순수하게 예술만 하고 살면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냐?"고 물었다. 한국의 거리예술축제를 찾은 그는 다양한 국적의 예술가들이 모인 네트워킹 파티에서 단연 화두가 된 것도 바로 그 물음이었노라 했다.

잡지 에디터로 사회에 첫발을 디뎠던 나는 2년이 채 되지 않아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가?' 하고 진지하게 질문을 던지게 됐다. 계산기를 두드리는 셈법 대신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끈질기게 따라가다 보니 '공연'이라는 두 글자가 남았다.

그 글자가 다음 목적지로 나를 이끌었다. 운 좋게도 극단에서 기획자로 일할 기회를 얻었고, 그곳의 삶에 익숙해져 갔다. 그러나 불경기나 불운한 사건들이 찾아올 때면, 공연시장은 한없이 연약한 존재로 위축되곤 했다.

성수기와 비수기가 너무 뚜렷한 절기 속에서 적은 월급을 받으며 일했지만, 늘 나를 매료시켰던 공연의 세계 속에 있다는 것이 그저 행복했다. 그 월급만으로는 생활이 어려워 근무가 끝난 시간부터 새벽까지 밤새 일하는 동대문의 한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극단의 상황이 극단적으로 어려울 때는 월급을 받기에도 죄송해지곤 했다. 그즈음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에디터 경력을 살려 각종 사보나 잡지에 글을 연재하기도 하면서 자연스럽게 여러 가지 일들을 동시에 시작하게 됐다. 극단과 협의해 공연이 없는 시기에는 다른 일들을 하면서 수익의 빈틈을 메웠다. 당시만 해도 그 일들은 공연기획자로서의 삶을 지탱할 수 있게 해주는 부업 정도로만 생각했다.

일과 일 사이의 접점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직종 같지만, '문화예술'이라는 하나의 축을 중심에 두고 일하는 세계의 폭을 넓혀간다는 감각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직종 같지만, "문화예술"이라는 하나의 축을 중심에 두고 일하는 세계의 폭을 넓혀간다는 감각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공연기획자를 주업으로 삼으며 에디터·통역가로서의 일들을 동시에 해나가는 일상을 살다보니, 가끔 나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의문을 품게 됐다. 여러 가지 분야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는 삶을 부러워하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도대체 정체가 뭐예요?"라며 혼란스러워하는 이들도 생겨나기 시작했다. 걱정스러운 조언도 쏟아졌다.

"한 가지만 집중해도 될까 말까 한데, 그렇게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지금 하는 일을 과연 제대로 할 수나 있겠어?"
"어릴 때야 이것저것 해보는 것도 좋지만, 이제 제법 나이도 들었으니 그런 삶을 지속하는 건 무리 아닐까?"

회사에 다니다가 퇴사해 프리랜서로 일하고, 다시 회사에 들어가는 시행착오를 되풀이한 것도 불안감이 증폭된 까닭이었다. 프리랜서로 글을 기고했던 잡지나 사보가 하나둘씩 사라지고, 업무 제안을 받았던 행사나 공연이 취소되는 사태들을 맞닥뜨리면서 늘 '안정적인 삶'으로 무게추가 쏠리곤 했다. 그러나 그 선택을 후회하고 번번이 내가 살던 세계로 다시 돌아오게 됐다.

이제는 내가 하는 여러 일들 중, 어느 하나도 사소하다거나 부업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게 됐다. 얼핏 보면 전혀 다른 직종 같지만, '문화예술'이라는 하나의 축을 중심에 두고 일하는 세계의 폭을 넓혀간다는 감각으로 일을 해나가고 있다.

줄곧 '매체가 사라지면, 글을 쓸 수 있는 무대도 소멸된다'고 생각했던 나는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자로서 글을 쓰면서 그 생각을 바꾸게 됐다. 올해 초부터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http://omn.kr/1jatc) 코너를 연재하면서 많은 예술가와 독자들을 만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난 4월 <오마이뉴스>에서 '이달의 뉴스게릴라'로 선정된 일을 계기로 글쓰기에 더 자신감을 갖게 됐다.
     
조만간 문화예술을 소개하는 새로운 연재도 시작할 계획이다. 첫 번째 타자는 이미 준비돼 있다. 지난 8월 24일 금천예술공장에서 열린 '다빈치 크리에이티브 2019' 발제자로 나왔던 사이보그 예술가 '닐 하비슨'에게 인터뷰를 승낙 받았고, 질문지를 작성해서 보냈다. 답을 받는 대로 번역하고, 기사로 잘 다듬어 <오마이뉴스>에 기고할 예정이다. 

N잡러에게 명절 연휴란

돌아보면, 명절이나 휴가 시즌에 제대로 쉬어본 기억이 거의 없다. 공연단체를 따라 서울과 지방, 해외로 공연 투어를 다니기도 했고, 주말을 반납하고 기사를 쓰거나 통역 아르바이트를 한 적도 많다.

이번 추석에도 예외는 없다. 지난 2010년 '광주국제공연예술제'에서 통역으로 일하다 알게 된 프랑스 거리예술단체 오스모시스(Osmosis)와 합작해서 만든 '철의 대성당'이 '울산프롬나드페스티벌'(9월 20일~22일)에 공식 초청됐기 때문이다. 축제가 코앞으로 다가온 데다 16일 팀 멤버들이 입국하기 때문에 사전에 챙겨야할 것들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프랑스 예술 감독과 스케줄 및 사전 점검 사항을 점검하느라 연휴 첫날은 꼬박 일만 했다.
     
또한 오는 11월 한국에서 <로미오와 줄리엣> 공연을 예정 중인 유럽 극단의 서울 투어 프로젝트를 돕고 있는데, 그들의 홍보자료를 번역하고 비자 발급에 필요한 서류들을 챙기다 연휴 내내 밤을 샜다. 시차가 있는 해외 팀과 일하는 경우에는 밤을 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지난 2015년부터는 중·고등학교 진로특강에 '공연기획자' 혹은 '에디터' 멘토로 참가해 학생들과 만나고 있는데, 이번 달에 학교 수업 및 진로직업체험박람회 부스 참가가 예정돼 있어 연휴 틈틈이 수업 자료를 수정·보완했다. 연휴의 마지막 날은 '종로의 기록, 우리동네 예술가'의 마지막 인터뷰 기사를 올리는 것으로 마감했다.

공연기획자라는 특성상 명절이나 주말에 더욱 바빴던 만큼 가족과 친구, 친척들과는 함께 한 시간은 손에 꼽을 정도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일들을 처리하느라, 각종 행사나 대소사에 빠지게 되는 일도 많았다. 올해도 잠깐 비는 시간에 음식을 장만하는 어머님을 도와 전을 부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일을 핑계로 늘 중요한 순간에 빠져왔기에 불효녀라는 죄송한 마음은 지울 길이 없다.

하고 싶은 일을 계속 할 수 있는 동력들을 찾다보니 다양한 일을 하는 'N잡러'로서의 삶을 살고 있지만, 일과 삶의 균형을 어떻게 현명하게 유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언제나 숙제로 남는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주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후원하기

서울의 문화예술 프로그램 및 문화예술인에 관련된 글을 기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