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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를 흔들었던 '조국 법무부장관 후보자 논란'은 9월 9일 오전 문재인 대통령의 임명 결정을 통해 새로운 국면으로 전환됐습니다. 하지만 소위 '조국 사태'는 우리 사회에 여러 가지 시사점을 남기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조국 사태'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기다립니다.[편집자말]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직 자진 사퇴 촉구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렸다.
 "조국 교수 법무부장관직 자진 사퇴 촉구 제3차 서울대인 촛불집회"가 지난 9일 오후 서울 관악구 서울대 아크로폴리스 광장에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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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20대가 화두다. 많은 언론들은 지난 '조국대전'을 중계하듯 보도하며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20대의 분노를 대서특필했다. 기회는 평등하고, 과정은 공정하며, 결과는 정의롭게 만들겠다던 현 정부가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있음이 조국 후보자로 드러났고, 이것이 20대를 화나게 했다는 것이다.

실제 조국 후보자에 대한 20대의 지지율은 이번 사태 동안 극심하게 요동쳤다. 30대, 40대보다는 덜 하지만 그래도 현 정권에 우호적이었던 20대는 조국 후보자의 의혹이 불거지자 곧바로 반대 여론으로 돌아섰으며, 이런 흐름은 조국 후보자가 장관으로 임명될 때까지 지속됐다.

특히 이런 20대의 분노를 가시화한 것은 고려대나 서울대 등에서 벌어졌던 촛불시위였다. 일부 학생들은 조국 후보자의 딸에 대한 특혜가 최순실 딸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며 촛불을 들었고, 대부분의 언론들은 이를 집중 보도했다. 심지어 일부 언론들은 이를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이끌어냈던 이화여대생들의 촛불집회와 비교하기도 했다.

야당을 비롯한 보수 세력들은 이제 20대가 현 정권에 대한 지지를 거둬들였다고 주장했고, 보수 유튜버들은 기꺼이 현장에 가서 실시간으로 중계했다. 서울대 학생들이 조국 후보자를 제일 부끄러운 동문으로 뽑았다는 설문조사는 이런 보수 세력의 주장에 적잖은 힘을 보태줬다.

20대는 왜?

이에 대해 정부 여당의 일부는 불순한 정치세력이 기획한 것 아니냐며 음모론적 시각을 드러냈지만, 그건 오판이다. 비록 일부 학생들이 보수 세력과 긴밀한 관계였음을 감안하더라도, 어쨌든 20대가 이번 사태에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기 때문이다. 정치적 성향과는 별개로 이번 조국 사태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 20대는 분명 30대, 40대와는 다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무엇 때문에 그들은 더욱 분노하는 것일까?

이와 관련해서 몇 년 전에 읽은 책 한 권이 떠올랐으니, 바로 사회학자 오찬호의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였다. 2013년에 나온 책이지만 그의 분석은 2019년에도 유효하게 읽힌다. 오히려 그가 당시 발견한 20대의 경향성이 시간이 흐를수록 더욱 짙어지고 있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는 10년 전 이미 '20대는 더 이상 진보적이지 않다'고 주장했다. 많은 이들이 학생들의 촛불집회를 진보적인 잣대로 해석하려 하는데, 그것은 착각이다. IMF 이후 무한경쟁 속에서 자라나는 세대들은 그 전 세대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들에게서 발견한 또 다른 반쪽은 암울하기 그지없는 승자독식 사회에서 더 암울하게 변해버린 이십대, 다소 과격하게 말하자면 괴물이 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괴물이 되어버린 이십대이다. 부당한 사회구조의 '피해자'지만, 동시에 '가해자'로서 그런 사회구조를 유지하는 데 일조하는 존재란 얘기다. - 5p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
 
오찬호 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오찬호 저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개마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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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오찬호의 문제의식은 2008년 당시 20대가 예전과 달리 KTX 비정규직 여승무원 등 사회적 약자에게 가혹하다는 사실에서 출발한다. 당시 그는 학생들과 KTX 비정규직 승무원 사태에 대해 토론을 하던 중이었는데, 학생들은 정규직을 요구하는 KTX 비정규직 승무원들에게 '날로 정규직 되려고 하면 안 되잖아요'를 외쳤다고 한다.

저자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는 20대가 결코 소수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가 만난 20대는 구조적일 수밖에 없는 사회적 불평등을 내면화하고,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고수하기 위해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와 같은 20대의 인식은 언제부터인가 우리 사회에서 필독서로 자리 잡은 자기계발서 열풍과 긴밀하게 관련돼 있음을 주목한다. 현재 우리 사회가 처해 있는 이 구조적인 불평등을 해결하기 위해 사회구조적인 접근이 필요하지만, 20대 학생들은 이와 같은 구조에 수긍하고, 자기계발서에서 말하는 바와 같이 그 모든 문제를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이다.

즉, 사회는 원래 힘든 곳이고, 지금 내가 겪고 있는 고생은 모두 자신의 탓이다. 그러다 보니 20대는 항상 스스로를 다그칠 수밖에 없고, 그러지 않은 타인에 대해 더욱 엄격할 수밖에 없다. 구조 속에서만 사고하기 때문이다.
 
'자기계발에 열심이지 않은 게으른 자'와의 비교에서 자신의 현재에 대한 위안과 만족을 구한다는 점... 자기계발로 둔갑한 취업준비 과정이 아무리 희생과 상처를 요구하더라도, 이것이 누군가에 비해 시간을 체계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라면 그 자체를 기꺼이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 60p

노력이 더 많은 쪽이, 즉 남들보다 시간 관리를 더 잘 해온 사람이 사회적 우대를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다. 결국 동일하게 주어진 시간을 더 가치 있게 효율적으로 잘 사용한 능력이 검증되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직급의 차별은 정당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차별의 근거가 정당하므로, 해고당하거나 비정규직이 될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차별도 당연한 것이다. – 76p
 
저자는 이런 20대의 인식 때문에 그들이 타인의 고통에 무감각해지고, 편견을 확대재생산하며, 사회가 제시하는 기존의 길만 맹목적으로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세상을 자기계발의 논리로 바라보다 보면 그 모든 것이 개인의 잘못인 이상 공감 능력이 떨어지고, 사회적인 고정관념에 매몰되기 쉽기 때문이다.

학력위계질서에 민감한 20대

현재 20대 학생들에게 절대적인 기준이 되고 있는 학력위계는 이와 같은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그들은 이전 세대보다 학벌을 따지고 대학서열에 민감하다. 대학서열을 자기계발의 결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수능점수는 다른 이를 평가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이다.
 
지금의 이십대들이 수행하는 '학력의 위계화된 질서'에 관한 집착은 과거의 학력주의보다 훨씬 더 정교해졌고 자기 내면화의 강도도 훨씬 높다. 이들에게 학력에 근거한 비교와 차별은 당연한 것이 되었고, 이를 의문시 할 이유를 굳이 찾지 않는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한다. - 108p

다른 이보다 '위'에 있다는 걸 확인하기 위해, 이들은 서열에 예민할 수밖에 없다. 이른바 개인의 '신분 상승'이 실현되기 힘든 세상에서, 적어도 자기 노력의 결과가 평가절하되는 것만큼은 반드시 막아야 하는 것이다. – 149p

따라서 이번 사태에서 조국 후보자의 딸이 부정입학일 수 있다는 사실에 고려대와 서울대 학생들이 특히 분노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그것은 그들이 과하게 정의롭거나, 기득권의 특혜에 민감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들이 누리고 있는 노력의 결과가 오염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기인했을 가능성이 크다. 많은 이들이 지적하고 있듯이 그들도 역시 조국 후보자의 딸과 같은 입시유형으로 '명문대 학벌'이라는 상징자본을 획득했으며, 누구보다 많은 장학금을 받고 다니지 않는가.

언론들은 마치 그들이 20대 전체를 대표하듯 보도하지만, 그것은 절반의 진실일 뿐이다. 그들은 20대 중 그 누구보다도 특권을 누리고 있는 이들이다. 경북대 학생들의 외침이 그들과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승자독식문화를 극복하자

저자는 이와 같은 20대의 자화상이 결국 우리 사회의 승자독식문화에서 비롯한 것임을 지적한다. IMF를 거치면서 사회는 각박해졌고, 정부는 더 이상 개인의 삶을 돌보지 않았다. 기존의 공동체는 깨어졌으며, 개인들은 각자도생의 길로 들어섰다. 이와 같은 사회에서 자기계발 열풍은 20대에게 절박함의 표현이요 생존의 방법이다. 그리고 자기계발의 신화는 아직까지 지속되고 있다.
 
지금의 이십대들은 유년시절부터 이미 남들을 밀어내고 안도감을 얻는 방식에 익숙해져 왔다. '왕따'라는 집단 문화도 "자기가 낙오자가 될까봐 불안한 나머지 자기가 아닌 다른 사람을 그 자리에 세우고 싶어"하는 개인들이 누군가를 멸시하는 대열에 동참함으로써 자신은 그 멸시받는 대열에 들지 않기 위한 안도의 행위였다. – 176p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가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대 아크로광장에서 열린 '조국 교수 STOP! 제2차 서울대인 촛불집회' 현장에서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 서울대 촛불집회 현장 찾은 강용석-김세의 강용석 변호사와 김세의 전 MBC 기자가 지난 8월 28일 오후 서울대 아크로광장에서 열린 "조국 교수 STOP! 제2차 서울대인 촛불집회" 현장에서 유튜브 방송을 진행하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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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0대의 분노를 논하기에 앞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한 세대를 자기계발로 몰아붙인 우리의 비극적인 사회 시스템이다. 이와 같은 고찰 없는 20대 담론은 편파적이며, 정파적이다. 왜 20대가 이번 '조국대전'에 특히 분노했는지 다층적인 해석이 필요하다. 그것은 20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대한 문제이며, 우리가 극복해야 할 구조이기 때문이다.

'조국대전'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 괴물이 된 이십대의 자화상

오찬호 지음, 개마고원(2013)


태그:#20대, #조국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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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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