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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6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를 듣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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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임명에 반대해 온 서울대와 고려대가 실시하고 있는 촛불집회의 불씨가 꺼지지 않고, 다른 대학가에도 퍼질 수 있도록 저희 연세인이 앞장서서 불을 붙였으면 한다."

고려대, 서울대, 부산대에 이어 이번엔 연세대란다. 지난 11일 '제1차 조국 사퇴 요구 시위'를 천명하고 나선 건 한 연세대 졸업생이었다. 이날 자신을 연세대 졸업생이라고 밝힌 A씨는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용하는 인터넷 커뮤니티 등에 16일 오후 연세대 신촌캠퍼스 백양로 광장에서 조국 법무부장관의 임명 반대 집회를 연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날 오전 '단독'이란 꾸미말을 붙여 한 경제지가 이를 즉각 보도했고, 삽시간에 또 다른 인터넷 커뮤니티와 소셜미디어 등으로 게시글이 공유됐다. A씨는 "총학생회가 조 장관 인사청문회 이전 집회를 열지 회의를 했으나 명분이 충분하지 않아 열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전달받았다"라며 "지금은 장관 임명이 됐기 때문에 그때와 상황이 달라졌다"라고 밝혔다.

재빠르게 이날만 수십 건의 기사가 쏟아졌다. 대부분이 '서울대, 고려대에 이어 연세대까지, SKY 학생들 모두가 조국 장관 반대에 나섰다'는 데 주목했다. 그리고 이날, 조국 장관은 '청년 전태일' 소속 청년 11명을 만났다(관련 기사 : 조국 만난 '흙수저' 청년들 "기대할 테니 행동으로 보여달라").

현충원 참배를 제외한 사실상 첫 외부 공식일정이었다. 앞서 조 장관이 한 약속도 지킨 셈이 됐다. 법무부는 이날 '법무부TV' 유튜브 채널과 공식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비공개로 진행된 '2030 청년들 만남' 영상의 일부를 공개했다. 사실 그 짧은 영상을 통해나마 보고 싶었던 것은 조 장관의 '태도'와 '매너'가 궁금해서였다. 그리고 조 장관은 또 다른 약속을 했다. 약속의 내용은 이랬다.

끝나지 않은 분노, 조 장관의 약속

"제 사퇴를 요구하는 서울대 학생이든 어느 대학 학생이든 간에 그 학생들의 비판의 내용을 듣고요. 그 내용에 대해서 답할 기회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오해가 있다면 풀고 서로 소통을 하려면 소통을 하겠습니다. 저의 본의가 전달되도록 노력할 것이고 제가 잘못한 게 있으면 사과를 하겠습니다."

앞서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조 장관은 서울대 학생들의 '반대 집회'에 대한 물음에 이렇게 답했다. 하지만 만남이 먼저 성사된 것은 후배이자 제자가 아닌 이른바 '흙수저 청년'들이었다. "인사청문회 준비과정에서 (만남을) 요청받았다는 걸 듣고 당시에 바로 응하고 싶었다"라던 조 장관은 모두 발언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 자리 한 번만으로도 해소될 거라고 생각도 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약속은 지켜야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오늘은 제가 무슨 말을 하는 자리는 아니고 여러분들이 하는 이야기를 제가 듣고, 법무부 차원에서 어떤 것을 할 수 있을까를 제가 고민해 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저한테 하고 싶은 얘기 다 해주시면 됩니다." 

앞서 고려대 학생들이 2차 집회를 예고한 직후였던 지난 8월 29일, '청년전태일'은 기자회견 열고 당시 후보자였던 조 장관에게 공개대담을 요구했다. 이어 '조국 후보에게 이질감과 박탈감을 느끼는 2030청년들과 조국 후보와의 공개 간담회'를 열었지만 조 후보자는 일정상 이유로 참석하지 못했다.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도 "흙수저 청년 세대들이 저한테 면담 요청을 해서 봉투가 하나 왔습니다"라며 이들의 면담 요청을 소개했던 조 장관. 임명 직후인 지난 10일 대담을 역제안했다는 조 장관은 이날 오전 특성화고 졸업생, 청년 건설노동자, 코레일 비정규직 청년노동자, 무기계약직 물리치료사, 취업준비생, 특성화고권리연합회 회장 등을 직접 마주했다.

"저나 제 가족이 우리나라에서 혜택 받은 층에 속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태어났고 그렇게 자라왔다는 점 제가 인정하고 있고, 그 점에서 합법이나 불법이니 이런 문제가 아니라 그 자체만으로도 이곳에 계신 많은 분들에게 실망감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었다는 점은 겸허히 인정합니다. 특히 청년 여러분들이 느꼈던 실망감이나 분노 이런 것들을 어느만큼 제가 해소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걱정이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청년전태일이란 단체의 성격이 어떠하든) 이건 진짜라고 느꼈다. '조국 논란'의 와중에 가장 뼈아픈 목소리가 바로 이 '청년전태일'의 비판과 박탈감 호소였다. 평소 목소리조차 내지 못한 이들의 '조국 비판'이야말로 교육과 입시를 필두로 불붙은 계급론과 불공정·불평등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청년층의 분노를 가장 현실적으로 반영한다고 봤다. 그런데, 현실은 조금 달랐다.

의혹 보도가 쏟아지던 지난 8월 말, 지상파 3사 및 종편 4사 메인뉴스 중 청년전태일의 '조국 비판'을 개별꼭지로 보도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실제로 그랬다. 지난 8월 31일 JTBC<뉴스룸>만이 <한국당, "조국 사퇴" 3차 장외집회... 청와대 향해 행진> 꼭지에서 청년전태일 김종민 대표의 인터뷰를 짤막하게 다뤘을 뿐이다.

서울대와 고려대의 집회의 경우, 대다수 방송사 메인뉴스들이 생중계로 연결하며 '청년층의 분노'를 전달했던 것과는 확연히 비교되는 보도 행태다. 방송 뉴스에서조차 외면 받는 '흙수저들의 분노'는 '청년층의 분노' 중에서조차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셈이다.

그래서 더 궁금했다. 조 장관이 과연 청년전태일과 실제로 만날지, 또 만난다면 언제쯤 만남이 성사될지, 또 그들과 만나면 어떤 태도를 보일지 말이다. 이들의 실제 목소리를 들어 보자.  

또다시 소외된 목소리들 
 
2017년 5월 27일 오후 서울지하철 구의역 승강장에서 문화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는 모습.
 2017년 5월 27일 오후 서울지하철 구의역 승강장에서 문화제 참석자들이 헌화하고 있는 모습.
ⓒ 신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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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의역 사건 고 김군의 친구들입니다. 은성 PSD시절부터 같이 근무했었습니다. (김군의) 동료들이 사건 이후 정규직이 됐다고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사건은 엄청났죠. 신입 실습생들 뽑는데 95%가 다 부정처리였습니다. 이 청년이 홀로 강원랜드를 상대로 소송을 합니다. 그런데 소송 과정에서 불가능하겠다고 하는 현실의 벽을 경험하면서 결국 결혼을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습니다. 이게 작년 일입니다."

"현장에 오셔서 이나라 병원 노동자들의 현 상황과 청년들이 노조할 권리를 요구하면 어떻게 짓밟히고 있는지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이 나라 교육에서 선발된 과정에서 전 일찍이 낙오를 했어요. 그리고 제가 일하는 건설현장은 산재사고 사망률 1위거든요. 지금도 죽어가고 있고. 당장 내 동료가 옆에서 손가락이 잘리고..."


대통령도, 국무총리도 아닌 법무부장관을 향해 "현장에 와 달라"라고 호소하는 이들의 절박함에 평소 우리 사회는 얼마나 응답하고 있었나, 누구 하나 목숨을 잃어야 쳐다 본 건 아니었나 되묻지 않을 수 없다. 파급력이 큰 방송사 메인뉴스를 언급한 것은 그래서다. 역시나 이날 지상파 3사 및 종편 4사 메인뉴스 중 조 장관과 이들의 면담을 개별 꼭지로 다룬 것은 JTBC와 MBN이 '유이'했다.

아울러 일간지 및 각종 매체들이 '조국 청년층 달래기'에 초점을 맞춘 가운데, <'두번 퇴짜' 놓은 청년들 만난 조국, 딸 의혹 얘기는 안했다>(중앙일보), <금수저 장관의 흙수저 간담회... 2030 "또 들러리 서야 하나">(문화일보), <좌파 청년들 만나 '공정·정의·희망 사다리' 든 조국>(조선일보), <청년들 달랜다면서... 대화 내용 공개 안 한 '조국 간담회'>(뉴데일리)와 같이 '제 논에 물대기' 식으로 이날 간담회를 '해석'한 언론도 적지 않았다.

상징적이지 않은가. 청년전태일과 조 장관의 만남을 전하는 일부 언론의 양상이. 무관심이거나 적극적으로 이용하거나. '조국 논란' 와중에 청년층의 분노를 전하던 다수 언론들의 양상은 어느 쪽이었을까. 의혹 보도를 쏟아내던 시기의 보도들이, 그 논조가 과연 조 장관의 딸이 다녔던 명문대 학생들만이 아닌 청년층의 폭넓은 목소리를 담았다고 자신할 수 있겠는가.

혹여 '입시 의혹'에 맞춰, 'SKY 캐슬'과 같은 호기로운 이슈를 이용해 자사 입맛에 맞게 상위층 일부 학생들의 분노와 박탈감만 취사선택했을 가능성은 없었을까. 그러한 보도가 다시 여론에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또한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청년전태일의 목소리를 외면해 온 지상파 방송사들과 자사 논조에 부합하는 방향의 '헤드라인'을 선보인 매체들의 취사선택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조국이 조국에게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청년시민단체 '청년전태일'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지난 11일 정부과천청사 법무부에서 청년시민단체 "청년전태일" 회원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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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무부TV'를 구독한 이유도 그래서다. 비록 4분여의 짧은 영상일지라도, 방송 뉴스에서 볼 수 없었던 청년전태일들의 얼굴을, 목소리를, 그들의 호소를 두 눈으로 확인해 보고 싶었다. 간담회에 앞서 40여 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는 이들은 조 장관의 '경청'을 주목하면서도 입장문을 통해 향후 조 장관의 '행보'와 '실천'을 그리고 "대담 이후"를 강조하고 있었다.

김 대표 또한 <오마이뉴스>와의 전화 통화에서 "(조 장관이) 청년들의 목소리를 시종일관 진지하게 들었다"라며 "경청하는 장관의 태도에서 향후에 기대를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했다"라는 소감을 밝히기도 했다.

누군가는 분명 이날 조 장관과 청년들과의 만남을 여느 정치인과 다를 바 없는 '쇼'의 일환이라 평가절하 할지 모른다. 그럴 수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반문할 수 있을 듯하다. 청년전태일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거나 이용하는 취사 선택보다 오히려 그런 쇼가 더 필요한 것 아니냐고.

한국사회의 계급 불평등이란 '판도라의 상자'를 (자의든 타의든) 열어버린 조 장관 본인은 물론이요, 문재인 정권의 장관들이, 여당 의원들이, 공직자들이 그리고 조 장관과 함께 비판을 받았던 '86 진보' 기득권 세대들이 오히려 더 "현장에 와 달라"는 '청년전태일들'의 목소리를 청취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아울러 그렇게 각자의 위치에서 "할 일을 해나가는" 지속적인 '쇼'가 절실한 것 아니겠냐고. 시혜의 시선이나 단발성 정치 공학의 일환이 아닌 일말의 '경청'과 '실천'을 담보해내는 것이 수반돼야 하는 것은 기본일 테고. 그것이야말로 '조국 논란'이 던져 준 시대적 과제라는 데 이견을 제기할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조국 논란'을 지켜 본 온 전 국민이, 전 언론이 조 장관의 사모펀드와 사학재단 재산의 사회 환원 약속을 감시할 태세다. 조 장관의 이날 만남이 쇼인지 아닌지도, 이날의 '약속'을 지키는지 여부도 '조국 의혹' 마냥 검증처럼 감시하면 될 일이다. 물론 검찰 수사가 언제까지 이어질 지 알 수 없는 상태지만.

결국 '조국 반대' 집회에 참석한 학생과 소통하겠다던 다짐을 포함해 조 장관의 '약속'들이 '조국이 조국에게' 부메랑처럼 되돌아 갈 테니까. 바로 이런 약속들이.

"이 상황이 어떻게 종결되든 간에 그 장학금 문제는 아까 사모펀드 문제와 함께 다 일괄적으로 정리를 해서, 아까 흙수저 청년들이건 또는 흙수저 청년 아닌 저소득층 아동을 위한 쪽이든 그쪽의 교육 관련해서 써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조국 법무부장관, 9월 2일 기자간담회에서)

태그:#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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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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