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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세모녀가 남긴 마지막 메모 송파세모녀가 남긴 마지막 메모_송파경찰서 제공
 송파 세모녀가 남긴 마지막 메모(송파경찰서 제공)
ⓒ 송파경찰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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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은 왜 '죄송한 것'이 되었을까.

세상을 떠나기 직전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남겨야하는 사람이 있었다. 가진 것이 하나도 없고, 가진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에 온통 빚만 가지게 된 사람의 삶은 세상을 떠날 때에도 "죄송한" 삶이 되었다. 온통 죄송함으로 가득 차 있었던 그의 죽음은 죽은 이후에야 사람들의 마음을 울렸다. 감각은 분명 스며드는 것이지만 동시에 뾰족한 것이기도 했다.

가난이 '죄송한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감각, 누구도 가난으로 인해 목숨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감각, 이것은 다만 이름 없는 사람의 비극이 아니라 내 주변에서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다는 감각, 그렇기에 이 죽음은 사회적인 죽음이라는 감각이 사람들을 일깨웠다. 복지 제도 속에서도 존재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던 한 가족은 그렇게 죽음 이후 새로운 이름을 부여받았다. 그들의 죽음 이후 사람들은 그들을 '송파 세 모녀'라고 불렀다.  

2019년, 아직도 가난해서 죽는 사람들이 있나요?

세상이 한 번에 바뀐다면 우리는 비극 이후의 세상을 고민해볼 수 있겠지만 죽음은 꾸준히 반복되었다. 굶어 죽는 사람이 없을 것이라는 희망찬 새 시작을 연 21세기 이후에도 사람들은 굶어 죽었다.

지난 8월 12일, 배고픔을 피해 탈북한 새터민 모자가 굶어 죽었다. 집 냉장고 안에서는 쌀과 반찬 대신 고춧가루만 발견되었다. 수도요금과 전기요금은 몇 달째 밀린 상태였고, 사망하기 얼마 전 마지막으로 인출한 통장 잔액은 고작 3000원 정도였다. 국가 지원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그들은 여전히 가난하게 살아야 했고, 마땅히 도움을 요청할 공간도 없었다.

그리고 9월 5일, 경제적 어려움을 겪던 40대 남성과 그의 가족들이 숨진 채 발견되었다. 그의 집 현관에서는 밀린 우윳값 26만원 고지서가 함께 발견되었고, 그의 옷 안에는 '사채'가 언급된 유서가 들어있었다. 그것은 사회복지의 날 바로 이틀 전에 일어난 비극이었다. 
 
 지난 8월 12일, 관악구에 사는 새터민 모자는 생활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관악구 모자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지난 8월 12일, 관악구에 사는 새터민 모자는 생활고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이들을 기리기 위해 <가난 때문에 세상을 떠난 관악구 모자 추모제>가 진행되었다.
ⓒ 홈리스행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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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모녀 법'이라고 불리는 법이 시행되었지만 복지 사각지대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저소득 가구가 먼저 요청하지 않아도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은 공공임대주택과 영구임대주책 거주자로 제한되었다. 이런 까닭에 전세 아파트에 살고 있었던 40대 남성의 가족과 재개발 임대 주택에 거주하고 있던 새터민 가족은 지원을 받지 못했다. '복지 수혜를 받을 만한 사람'의 기준은 까다로웠지만 가난에는 이유가 많았다.

가난에 대한 뾰족한 감각은 참사가 벌어질 때마다 사람들의 마음을 두드렸지만 몇 가지 믿음은 그대로 남았다. 복지 수혜를 받을 만한 사람은 따로 존재한다는 믿음이 그것이었다. 복지 수혜는 너무 많으면 사람들이 게을러질 수 있다는 믿음이 그것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여전히 복지를 받을 만한 사람을 선별하고, 그 사람이 형편이 나아졌을 때 복지 수혜를 받을 수 없게 만들어야 하며, 가난을 증명해야한다는 믿음이 이어졌다. 이러한 믿음은 가난을 '죄송한 것'으로 만들었다.

'기본소득'이 도입되었다면

그렇지만, 가난은 죄가 아니다. 가난이 죄가 되는 원인은 가난이 원래 죄였기 때문이 아니라 가난을 죄로 만드는 사회 시스템이 잔존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새로운 상상을 전개해볼 권리가 있다. 애초에 가난한 사람들을 선별해내지 않으면, 가난한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이 아니라 동료 시민으로서의 자격을 먼저 가질 수 있다면, 노동하지 못하거나 노동하지 않는 인간도 존엄을 보장받을 수 있다면. 이러한 질문들이 풀리게 될 때, 우리는 다른 사회의 문을 마침내 열 수 있는 열쇠를 가지게 될 것이다.
 
 2018년 11월 10일 진행된 기본소득정치연대 외 단체들이 주최한 <온국민기본소득대회>. 각자가 생각하는 "기본소득 실현을 가로막는 이유"를 상자에 쓴 후, 벽을 만들어 사회자가 무너뜨리고 있다.
 2018년 11월 10일 진행된 기본소득정치연대 외 단체들이 주최한 <온국민기본소득대회>. 각자가 생각하는 "기본소득 실현을 가로막는 이유"를 상자에 쓴 후, 벽을 만들어 사회자가 무너뜨리고 있다.
ⓒ 기본소득정치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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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 세 모녀 사건은 나에게 기본소득이라는 아이디어를 남겼다. 생존을 넘어 누군가가 삶을 계획할 수 있는 힘을 가질 수 있는 방안, 더 많은 민주주의, 더 많은 사람들의 자유, 그리고 수치스럽지 않은 삶을 위해서는 기본소득이 모두에게 필요했다. 모두에게 조건 없이, 개별적으로 현금을 지급해야한다는 아이디어는 가난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기본소득은 가난한 존재가 죄책감을 가지고 복지의 수혜자가 되어야 한다는 믿음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오히려 그것은 인간의 최초의 권리, 즉 모든 인간은 국가로부터 배당받을 수 있다는 권리를 호명했다. 지구와 대지, 생태환경, 우리가 만들어 내는 지식, 나아가 빅데이터와 네트워크 수익이 태초에는 모두의 것이라면, 우리가 가난한 것은 태초에 나누어져야 할 것들을 빼앗아간 국가의 책임일 수밖에 없다.

우리는 기본소득당을 만들 자격이 있다

9월 8일, 나는 새로운 믿음을 실현하기 위해 여정을 시작했다. 나와 함께 모인 사람들은 비정규직 노동자이거나 알바 노동자였고, 실업자였으며, 장애인이었다. 우리는 사회 속에서 쉽게 "잉여 인간"으로 분류되는 사람들이었다.

각자가 모임에 참여한 이유는 조금씩 달랐다. 누군가는 복지 탈락으로 인해 모멸감을 내면화하고 살아가야 하는 이야기를 털어 놓았다. 누군가는 너무 일을 많이 해서 조금은 쉬고 싶다고 고백했다. 그래도 목적은 같았다. 그날은 '기본소득당'이 처음으로 세상에 공개되는 날이었다. 장내에 모인 150명의 기본소득당 발기인들은 힘차게 "모두에게 기본소득을!"이라고 외쳤다.
 
 지난 9월 8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기본소득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진행되었다.
 지난 9월 8일, 서울 홍대입구역 근처에서 <기본소득당 창당 발기인대회>가 진행되었다.
ⓒ 신민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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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처음 대선 공약에 기본소득이 등장한 지 12년이 지났다. 그리고 2019년, 기본소득을 가장 큰 아이디어로 하는 정당을 창당하고자 하는 시도가 시작되었다. 기본소득이 처음 한국 사회에 알려진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모두에게 무조건적이며 개별적으로 나누어주는 기본소득은 시행된 적이 없다. 이러한 상황 속 우리의 도전은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이미 새로운 아이디어가 선포되었다는 점이다. 상상할 수 있는 권리가 모두에게 있다면, 우리는 분명 자격이 있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과 가난하지 않은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으로서가 아니라 인류의 일원으로서,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구성원으로서,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우리는 외친다.

"우리는 기본소득을 받을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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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공동체 <너머> 대표이자 기본소득당 서울 창준위원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