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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의 노동시간센터에서 운영 중인 '산재보험 연구모임'은 논의한 주제들을 갈무리하여, 지난 8월부터 10여 차례에 걸쳐 국내 유일 노동안전보건잡지 월간 <일터>에 [산재보험 톺아보기]에 연재합니다. 이번 두번째 글은 두 차례 걸쳐 '산재보험 확대적용 문제'를 다뤄보려 합니다. - 기자말

일하던 사람이 일과 관련된 원인에 의해 질병, 부상, 사망을 당하는 것이 산업재해다. 하지만 모든 산업재해가 모두 산업재해보상보험에 의해 보상받는 것은 아니다. '모든 산재를 산재로' 하자는 말장난 같은 구호는, 그래서 나오게 됐다.

우리나라 산재보험은 현재 '근로자를 사용하는 모든 사업장'에서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것이 의무이지만 '노동자'에게만 적용된다. 자영업자나 특수고용노동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병에 걸려도 산재보험을 통해 보상받을 수 없다. 노동자 중에도 여전히 산재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농업, 임업, 어업의 5인 미만 사업장은 산재보험이 의무 가입 대상이 아니다.

사업장은 적용 대상이고, 거기서 일하는 노동자인데도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지 못하는 질병, 부상도 있다. 산재보험의 요양급여는 '4일 이상의 요양을 필요로 하는 질병이나 부상'에 대해서만 지급된다. 3일 이내의 요양으로 치유될 수 있는 질병이나 부상은 해당이 안 된다. 산재보험 적용 확대 과정을 살펴보고 앞으로의 과제를 짚어본다.

500인 이상 대기업부터 시작된 산재보험

산업재해보상보험은 건강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보다 먼저 시작됐다. 한국에서도 1963년 법이 제정되고 1964년 노동청 출범과 함께 시행되었다. 4대 사회보험 중 최초다. 1964년 처음 시행된 사업장은 노동자 500인 이상의 광업과 제조업이었다. 산재 발생 위험이 높은 광업에 먼저 적용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500인 이상 대기업에서 먼저 시작된 것은 고개가 갸웃해진다. 작은 사업장일수록 사고 위험이 높은 것은 동서고금의 진리인데 말이다. 우리 산재보험 제도가 처음부터 노동자 권리와 형평성은 물론 노동력 재생산 문제보다 보험 재정 안정화와 행정 편의를 중요시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이렇게 시작된 산재보험은 10여 년이 지나 1972년 30인 이상 사업장으로 확대됐고, 1992년이 되어서야 5인 이상 사업장까지 확대될 수 있었다.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사업장에만 적용되는 반면 산업재해보상보험 적용 대상 사업장은 2000년 7월부터 1명 이상의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2018년에는 1인 미만 노동자를 고용하고 있는 사업장까지 확대됐다. 즉 노동자를 고용하는 사업장은 무조건 산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모든 노동자는 자동적으로 산업재해에 대해 산재보험으로 보상받을 권리가 있다. 사업주가 보험에 가입하고 있지 않았을 때 발생한 사고나 질병에 대해서도 노동자는 산재보상을 받을 수 있다.

지금도 산재보험 사각지대의 노동자들

지금의 적용 범위까지 확대되는 데에도 50년이 넘는 긴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여전히 사각지대가 남아 있다. 농업, 임업(벌목업은 제외), 어업 및 수렵업 5명 미만인 사업장은 산재보험 적용 사업장이 아니다. 이렇다 보니 농업, 임업, 어업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등록 이주노동자 중 산재보상보험에 가입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엄연히 국가 대 국가의 협약을 근거로 '노동'을 하러 온 이주노동자들이다. 대한민국 정부는 이주노동자들의 자유를 제약하는 고용허가제까지 시행하고 있다. 이주노동자는 말과 문화가 달라 사고 위험이 크다. 그런데도 노동자로서 당연히 누려야 할 '산업재해 발생 시 치료받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문제다. 농축산업과 어업에서는 사업자 등록이 돼 있지 않은 곳에서도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어 이주노동자들이 건강보험 직장가입도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주노동자의 산재보험, 직장 건강보험은 전면 의무화돼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모든 농업, 임업, 어업의 노동자들에게도 산재보험이 전면 적용돼야 한다.

가구 내 고용 활동 역시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근로기준법에서도 '가사 사용인'을 법 적용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에 따라 가사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연차나 휴식 시간, 퇴직금 등을 보장받지 못하고, 산재보험에 따른 산재 보상도 받을 수 없다. 그래서 2017년 겨울 국회에 제출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은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이 노동자를 직접 고용하고 사용자로서 책임을 묻게 하자고 제안한다. 이를 통해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을 적용하고, 사회보험 가입을 의무화하게 된다고 한다. 하지만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 당사자와 관계자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음에도 아직도 해당 법안은 국회에 계류 중이다. 최근에는 이런 공백을 이용해 플랫폼을 활용한 '특수고용' 형태의 가사 노동이 늘고 있는 등 다른 측면에서 노동권 사각지대의 가사노동자가 급증하고 있다. 그렇기에 '노동자'임에도 산재보험에서 배제되고 있는 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노동자가 아니라서?

산재보험 적용 대상 논의에서 더 주목받는 것은 특수고용형태 근로자(이하 특수고용노동자)들과 자영업자 문제다. 한국 산재보험은 2010년부터 특수고용 노동자 중 일부를 특례 형태로 산재보험 적용 대상에 포함하고 있다. 지금도 보험·신용 카드·대출모집인, 건설기계 운전자, 학습지 교사, 골프장 경기보조원, 택배, 퀵서비스, 대리운전 노동자에게만 산재보험이 적용된다.

하지만 '노동자'와 달리 '특수고용노동자'는 보험료의 50%를 납부해야 하며 이를 이유로 본인이 적용 제외 신청을 하면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 사업장을 강제 가입시켜 보호가 필요한 노동자에게 권리를 보장한다는 사회보험의 원리를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회사의 압력 때문에, 번거로워서 당장 필요성을 못 느껴서 산재보험 가입을 미루게 된다. 2018년 조사에서도 여전히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70% 미만으로 나타나고 있다. 특히 이 중 자신이 일하는 보험 회사의 민간 보험에 가입해, 산재보험을 대체하게 되면서 이중의 착취에 처하는 보험모집, 보험설계 노동자들의 사례는 다음 달 기사로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한다.

 
 특례 형태로 사회문제가 된 노동자들에 한해 차츰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방향은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을 충실히 실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산재보험 제도의 제대로된 운영을 위해서는 전면적용이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특례 형태로 사회문제가 된 노동자들에 한해 차츰 산재보험 적용을 확대하는 방향은 산재보험제도의 취지을 충실히 실현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산재보험 제도의 제대로된 운영을 위해서는 전면적용이 원칙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다.
ⓒ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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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고용노동자들의 치료받을 권리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자 산재보험 대상에 특수고용노동자들을 일부 포함하게 되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특수고용노동자의 '근로자성' 문제를 다루지 않으면서 일부 노동자만 '보호'하려는 접근이어서 10년이 지난 지금도 제자리걸음과 다를 바 없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특정 업종에서 사회적 문제가 대두되고 나면 해당 업종만 특례를 추가하는 식의 접근은 결국 해당 노동자들에게도 큰 실효성이 없고, 특수고용 노동자 전체로 확장성도 없었다. 따라서 사실상 노동자인 특수고용노동자의 산재 발생 책임을 누가 지느냐, 노동안전보건 예방책임은 누구에게 있느냐에 대한 물음과 답변을 담은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유사한 논리가 영세 자영업자에게도 적용된다. 산재발생의 위험이 높은 영세 자영업자도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현재는 재해위험이 높은 자영업자 일부 직종에 대해서만 산재보험 가입을 허용하지만 보험료는 100% 본인 부담이다. 나날이 기존의 근로계약으로 포괄할 수 없는 다양한 방식의 노동이 등장하고 자영업자와 임금노동자 경계에 놓인 일자리, 사실상 본인의 노동에 따른 소득에 의존하는 노동자가 늘고 있다. 여기서 발생하는 산업재해로 인한 손실 역시 적극적인 재활과 사회 복귀 대상이 돼야 한다. 이는 단순히 도덕적 요구만이 아니라 산재보험 제도의 목적과 취지에 비춰 봐도 그러하다.

산재보험 목적과 취지를 다시 들여다본다

산재보험은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발생하는 심각한 직업병과 사고 재해에 분노한 노동자들의 저항이 사회주의 정치세력으로 결집 된 19세기 말 독일에서 시작됐다. 산재보험을 제도화한 것은 노동자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 뿐만이 아니었다. 생산력 유지 및 증진의 측면에서 노동자의 신체와 건강을 관리하는 것, 즉 다친 노동자가 치료와 재활을 통해 사업장에 복귀하는 것이 국가와 자본에도 중요한 과제라는 점을 직시한 독일 정부가 내놓은 타협안이었다.

이렇듯 단지 노동자들의 분노에 찬 저항만이 아니라 산업재해 자체가 국가와 자본을 위협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회의 재생산을 위해서라도 산업재해를 예방하고 '일하는 사람의 제대로 치료받고 재활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력 재생산에 대한 사회적 책임이라는 산재보험 제도의 취지를 살리는 방향으로 우리나라 산재보험 제도를 다시 설계해야 한다. 그 논의의 출발은 산재보험 적용 대상의 전면적인 확대에서 시작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 최민님이 작성하셨습니다. 또한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서 발행하는 잡지 <일터> 9월호에도 연재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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