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비열한 거리> 포스터

영화 <비열한 거리> 포스터 ⓒ CJ 엔터테인먼트

 
오늘 필자가 꺼내고 싶은 이야기는 꽤 옛날 작품 속 인물에 대한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13년 전, 2006년에 개봉한 <비열한 거리>는 '누아르' 장르로 병두(조인성 분)라는 삼류 조직폭력배의 삶을 담은 영화다.

우선 필자는 누아르 영화 혹은 악역에 대한 일종의 동경이 있었다. 대개 악역은 완벽하다. 그들은 웬만해선 빈 틈을 보이지 않는 철두철미한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주인공 혹은 선한 역에 선 사람들과 벌이는 날선 공방전 속에서도 돈이든 복수든 자신이 원하는 것을 행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아마 이러한 '주인공의 역경을 헤쳐나가는 일대기'를 위해 만들어진 작위적이고 보편적인 설정이 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것 같다. 그랬기에 늘 영화에서 괜히 조직폭력배나 비리 공무원 캐릭터들에게 마음이 갔다.

2006년도 영화지만, 필자는 <비열한 거리>를 2016년에야 처음 봤다. 여태껏 쌓아올린 경험으로 미루어 보아 잔인하고 완벽한 조직폭력배의 이야기를 기대했지 않았나 싶다. 하지만 이 영화는 필자에게 전혀 다른 감상을 가져다 줬다. <비열한 거리>에서 조직폭력배에 대한 미화는 그저 병두를 연기한 배우 조인성이 너무 잘생겼다는 것뿐이다.

'생계형 조직폭력배' 병두
 
 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 컷

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 컷 ⓒ CJ 엔터테인먼트

 
병두는 쉽게 얘기해서 '생계형 조직폭력배'다. 그에게는 책임져야 하는 빈곤한 가정이 있다. 조직 생활에서도 겨우 일수꾼 정도로 전락한 그의 벌이로는 결코 이 가정을 돌볼 수 없었다. 그는 조직의 뒤를 봐주는 황 회장(천호진 분)에게 눈엣가시인 부장 검사를 처리해달라는 부탁을 받게 된다. 그렇게 그는 일생일대의 선택이자 도전을 통해 임무를 완수해내며 조직 생활의 입지를 단숨에 끌어올리는 데 성공한다.

입지가 차츰 올라간 병두는 형님이라고 부르는, 자신의 직계 상관쯤으로 활약하는 상철(윤제문 분)을 그의 여동생 결혼식에서 죽인 후 그 자리를 꿰차는 데 성공한다. 황 회장의 오른팔까지 올라간 그는 현주(이보영 분)라는 여성과도 사랑을 싹 틔우고자 했으며, 우연찮게 만난 영화 감독을 꿈꾸는 동창 민호(남궁민 분)와도 우정을 이어간다. 일수꾼 노릇을 하며 찾지 못했던 자신의 삶을 차츰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를 향한 사회의 시선은 따가웠으며, 현주와의 사랑에도 실패한 병두는 공허함에 민호를 찾았다. 그는 조직 생활의 비참함과 황 회장의 오른팔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민호에게 하소연하지만, 이후 민호가 그를 모티브로 영화를 만드는 바람에 황 회장을 비롯한 모든 조직원들에게 신의를 잃게 된다. 결국 그는 황 회장의 사주를 받은 자신의 오른팔 종수(진구 분)에게 죽임을 당한다. 영화는 실종 처리된 병두 어머니의 장례식으로 끝을 맺는다.

치밀한 조직, 그에 속한 일반적인 개인
 
 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 컷

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 컷 ⓒ CJ 엔터테인먼트

 
조직은 개인의 생명력을 먹고 산다. 조직은 특정 개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조직은 자리에 어울리는, 그것을 수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을 뿐이다. 병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병두는 이를 알고 있었으면서도 아예 알지 못했다. 병두는 자신의 형님인 상철을 죽이고 그 자리를 꿰찬 인물이다. 그랬던 그 역시 황 회장의 신의를 잃게 되자, 바로 자신의 오른팔인 종수에게 같은 최후를 맞이하게 된다.

생계형 조폭 출신 병두에게, 권력보다는 잡일이 어울렸던 그에게 조직은 너무 치열하고 철두철미한 곳이었다. 그는 결코 자신을 지우고 살지 못했다. 그에게는 아직 철없는 낭만이 있었고, 미처 놓지 못한 사회를 향한 미련이 있었다. 현주를 향한 사랑이 있었고, 민호와 나눈 우정이 있었다. 그리고 오른팔인 종수에게는 언제나 형님이고 싶었으며, 황 회장의 일선이고 싶었다.

그랬던 그였지만 조직폭력배로서 발을 담근 사회는 자신에게 한없이 냉혹했다. 민호에게 그의 삶과 조직에서의 삶은 다른 세계였다. 그저 소비되는 이야기로 전락한 병두의 삶은 심지어 종수에게는 형님으로 비치지도, 조직의 일원으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는 세상을 자신과 자신이 아닌 것으로 분류했으며, 그 전제의 모순을 결코 알지 못했다.

물론 그는 오만하지 않았다. 그는 보통 사람이었다. 자기가 받아온 것처럼, 혹은 자신이 원했던 형님의 모습으로 조직의 일원들을 챙기고자 했다. 사랑과 우정도 찾고자 했다. 병약한 어머니를 챙기고 직계 여동생에게 용돈도 챙겨주고 싶었다. 그랬던 그에게 일수꾼 너머의 삶은 너무 가혹했다. 본능과 경험으로 손익을 구분했던 그 시절과는 차원이 다른 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는 성장하지 못했다. '목숨을 걸고'라는 관용구를 내건 일들에서 실제로 죽음 그 자체를 생각할 수 있을까? 강한 결의쯤으로 치부하는 것이 보편적일 것이다. 병두의 인생은 정말 그러했다. 자신의 신분으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그의 애절한 눈빛에서, 또 자신의 조직원들, 그러니까 자신의 이름에다 형님이 아닌 '조직의 치부' 따위를 씌웠을 그 옛날의 또 다른 자신에게 배신 당한 그 허망한 눈빛에서 필자는 그의 인간성을 느꼈다.

일원이기를 원했던 조직, '병두'로 살아가고 싶었던 사회
 
 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 컷

영화 <비열한 거리> 스틸 컷 ⓒ CJ 엔터테인먼트

 
여기서 표현한 인간성은 고귀한 성품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다. 그저 사회라는 유기체의 일원이 아닌, 개인이자 인간 그 자체로 살아가는 그 모습이라는 말이다. 부속품이나 태엽 바퀴가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의식 말이다. 결국 그가 속한 폐쇄적이고 은밀한 집단에서, 자의를 지우지 못한 행위는 결국 죽음으로 귀결되어 버렸다.

사회의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조직에 속하기에 병두는 적합한 사람이 아니었다. 때론 숨어야 했고, 더 먼 곳으로 달려가야 했던 병두는 자신이 열망하던 사회를 찾아 뒤를 돌아봤다. 결국 그 사회에 병두가 설 자리는 없었다. 정확히는 그 사회는 병두를 필요로 하지 않았다.

아마 이 영화를 보지 않았거나 멜로나 드라마 장르를 소화한 조인성 배우에 익숙한 사람들에게 '조직폭력배를 연기한 조인성'이라는 구절은 굉장히 어색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럼에도 필자가 이 작품을 수작으로, 또 병두를 내 인생 최고의 캐릭터로 꼽는 이유는 조직 생활의 낭만으로 영화를 전개한 게 아니라 조인성의 비열하지만 처연한 인생을 담은 작품이기 때문이다.

단연코 이 작품을 보고 조직폭력배에 대한 동경과 선망을 가질 사람은 없다고 생각한다. 호봉이나 계급 따위를 두지 않는 조직의 가장 선봉에 섰던 병두가 꿈꿨던 것은 그에게 가 닿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그는 쉬지 않고 그것들을 좇았다. 상철이 사라진 자리에 앉은 병두는 사랑에 실패했을 때, 우정에 배신당했을 때, 자신이 그날의 형님처럼 사라져갔을 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 글은 결코 자신을 지우지 못한 '인간' 병두에게 바치는 헌사다.
영화 비열한거리 사회 개인 조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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