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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내년 도쿄 올림픽 때 전범기인 욱일기를 갖고 경기장에 출입하는 것을 금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4일자 언론보도에 따르면, 한국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가 욱일기의 경기장 반입금지를 요구하는 결의를 채택하고, 한국 외교부가 욱일기 사용 금지를 요청한 것과 관련해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조직위원회는 "반입 금지품으로 하는 것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는 방침을 밝혔다.

"욱일기는 일본 국내에서 널리 사용되고 있으며, 깃발을 게시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 선전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는 게 조직위의 설명이다. 지금대로라면, 내년 올림픽 중계방송을 통해 전범기가 세계인들의 시선을 자연스레 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일장기와 햇살 무늬가 결합된 욱일기(욱일승천기)는 일제 패망 이전에는 육군 군기 및 해군 군함기로 쓰였고, 현재는 육상 및 해상 자위대 군기로 쓰이고 있다. 각 조직의 욱일기가 똑같지는 않다. 둥근 원이 정중앙(육군·육상자위대)에 있는가, 약간 왼쪽에 치우쳐(해군·해상자위대) 있는가, 햇살 개수가 16개인가(육군·해군·해상자위대) 8개인가(육상자위대)에 따라 문양이 조금씩 다르다.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본제국 해군의 욱일기, 일본제국 육군의 욱일기, 육상자위대의 욱일기,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왼쪽 상단부터 시계 방향으로 일본제국 해군의 욱일기, 일본제국 육군의 욱일기, 육상자위대의 욱일기, 해상자위대의 욱일기.
ⓒ 위키백과 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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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로 대한제국을 모욕한 일본

'떠오르는 아침 해(旭日)'라는 의미의 욱일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일본군국주의의 아시아·태평양 침략전쟁이 자행됐기 때문에, 이 지역 사람들한테는 욱일기가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욱일기가 멸망 직전의 대한제국 사람들한테는 다소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일본의 대외침략이 본격화되기 전인 이 당시 한국인들에게는 욱일기가 모멸감을 주는 깃발로 비칠 만했다.

1905년 일본은 을사늑약(을사보호조약)을 강요하고 외교권을 빼앗았다. 그런 뒤 이 늑약에 따라 이듬해에 한국통감부를 설치했다. 이때는 대한제국이 있었으므로 '한국'통감부라는 이름의 기관을 설치했고, 1910년 8월 대한제국이 없어진 뒤에는 한국이란 명칭을 쓸 필요가 없으므로 '조선'총독부란 명칭의 기관을 두게 된 것이다.

과거에 유목군주인 칸이 한(汗) 혹은 한(韓)으로도 표기된 데다가 대한이란 명칭의 황제국까지 있었으므로 일본은 한국이란 국호를 그리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대한을 조선으로 바꾸고 식민통치기관도 '조선'총독부로 명명한 것이다.

일본이 아직은 '한국'이란 국호를 존중해줘야 했던 시기에 초대 통감이 된 게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다. 그는 1906년에 초대 한국통감으로 부임했다. 이때 일본은 이토의 부임을 기념하고 한·일 친선을 도모하고자 기념엽서 한 장을 발행했다.

일본인들은 이 엽서에 이토의 얼굴과 16개 햇살의 욱일기를 등장시켰다. 거기에 더해 태극기도 함께 등장시켰다. 대한제국 사람들이 불쾌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단순히 태극기가 등장한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욱일기 및 이토 얼굴보다도 아래에 태극기가 배치된 점이 기분 나쁠 수밖에 없었다. 욱일기와 이토 얼굴을 통해 '칸의 나라' 대한제국의 국기에 모욕을 줬던 것이다.

개인이 소장 중인 이 그림엽서를 소개한 목수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의 논문 '일제강점기 국가상징 시각물의 위상 변천-애국의 아이콘에서 상표까지'는 이 엽서에 관해 이렇게 설명한다. 아래 글 속의 '또 다른 엽서'는 이 엽서를 가리킨다.

"이토 히로부미를 주제로 한 또 다른 엽서는 태극기와 일본기가 함께 제시되어 있어, 양국의 가교로서 이토 히로부미를 등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욱일승천기를 오른쪽 위에 두고 태극기를 왼쪽 아래에 두어 은연 중에 위계의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가 2014년 발행한 <한국근현대미술사학> 제27권.

 
 한국통감부 설치를 기념하는 1906년 그림엽서. 개인이 소장 중인 이 엽서의 이미지는 목수현 논문에 수록돼 있다.
 한국통감부 설치를 기념하는 1906년 그림엽서. 개인이 소장 중인 이 엽서의 이미지는 목수현 논문에 수록돼 있다.
ⓒ 목수현·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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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김수영이 1945년 창작한 시 중에 <공자의 생활난>이 있다. 시의 첫 대목은 "꽃이 열매의 상부에 피었을 때/ 너는 줄넘기 작난(作亂)을 한다"는 구절이다. 우리말 '장난'의 원래 한자 표현인 '작난'이란 글자를 넣은 작품이다.

1906년의 일본인들은 욱일기를 갖고 한국을 폄하하는 '작난'을 했다. 이런 '작난'은 이듬해 10월의 일본 왕세자(황태자) 방한을 즈음해서도 일어났다. 요시히토 왕세자(훗날의 다이쇼 일왕)의 대한제국 방한을 기념해 발행한 그림엽서에도 욱일기를 등장시키고 대한제국을 모욕한 것이다.
 
 일본 왕세자의 대한제국 방문을 기념하는 1907년 그림엽서. 부산박물관이 소장 중인 그 엽서의 이미지는 목수현 논문에 수록돼 있다.
 일본 왕세자의 대한제국 방문을 기념하는 1907년 그림엽서. 부산박물관이 소장 중인 그 엽서의 이미지는 목수현 논문에 수록돼 있다.
ⓒ 목수현·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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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진에는 다섯 사람이 등장한다. 중앙이자 맨 위에 있는 인물이 요시히토, 그 오른쪽이 대한제국 순종황제, 왼쪽이 왕족인 다케히토다. 아래 왼쪽은 이토 히로부미, 그 오른쪽은 도고 헤이하치로 대장이다.

그런데 이 사진에는 사람들 외에 또 다른 생명체가 등장한다. 욱일기 반대편에 닭 한 마리가 있다. 순종황제 바로 옆에 닭이 있는 것이다. 이 그림엽서에서 닭은 욱일기의 카운트파트 역할을 하고 있다. 한·일 양국을 소재로 한 엽서에서 욱일기의 대응물로 닭이 등장했다면, 이 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일본인들은 조선을 닭으로 묘사하는 일이 많았다. 동학혁명을 빌미로 일본이 조선에 군대를 파견하고 청나라와 전쟁을 벌이는 상황을 풍자한 당시의 일본 만화에서도 닭이 그런 의미로 쓰였다. 만화를 소재로 일본제국주의의 팽창 과정을 설명한 한상일·한정선의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에 그 만화가 소개돼 있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의 조선침략을 풍자하는 만화.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에 수록돼 있다.
 청일전쟁 당시 일본의 조선침략을 풍자하는 만화.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에 수록돼 있다.
ⓒ 한상일·한정선·일조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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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닭'으로 표현한 만화, 그 속에 담긴 뜻

이 만화에는 일본의 별칭인 '야마토'를 상호로 쓰는 요릿집이 등장한다. 야마토 식당은 닭과 돼지 요리를 판다. 그런데 식당 주인은 소 잡는 검은 식칼로 닭을 잡는다. 들고 있는 칼에 우도(牛刀)라고 쓰여 있다. 소 잡는 칼로 닭의 몸통을 자르기 전에 그는 닭의 모가지부터 비튼다. 이 모습을 보고 손님들은 살 돈이 없다며 발길을 돌리려 한다. 이 그림의 의미에 관해 <일본, 만화로 제국을 그리다>는 이렇게 설명한다.

"닭 요리를 사 먹으려는 손님(청나라)이 살풍경을 보고 좋아하고 있으나, 주머니가 비었기 때문에 사 먹지 못하고 되돌아갈 수밖에 없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즉 조선을 지배하려는 청나라는 결국 실력(돈)이 없어 조선 지배를 포기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머지않아 청나라인은 손님이 아니라 닭과 같이 도마 위에 오르게 될 운명이라는 것을 풍자한 것이다. 야마토 가게라는 일본 요릿집은 닭(조선)과 돼지(청나라)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이라는 간판을 붙이고 있음이 이를 암시한다."

이처럼 조선을 닭에 비유하는 당시 일본 만화는 한둘이 아니었다. 위의 목수현 논문은 이렇게 말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일본을 상징하는 태양을 향해 닭이 바라보고 있는 모습으로 조선을 상징하는 것이 눈에 띈다. 일본이 한국을 식민지화하는 것을 닭의 목을 비틀어 잡는 것으로 묘사하여 그리는 등, 닭 이미지는 정치적인 상황을 빗댄 만화에도 다수 등장하였다."

이런 설명들을 통해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조선을 닭으로 묘사하고 그 닭이 욱일기를 바라보는 위의 1907년 그림엽서는 조선을 '일본 해바라기'로 만들려는 제국주의자들의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그런 욕망을 나타내는 한편 한국인들의 기를 꺾고자 일본인들이 욱일기와 닭을 사용했던 것이다. 그래서 대한제국 사람들은 욱일기를 보며 모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런 욱일기가 도쿄 올림픽을 통해 전 세계인들 앞에서 펄럭이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웃나라들의 요청이 없더라도 평화적인 스포츠 행사에서 전범기를 치우는 게 마땅한데도, 현재까지는 일본의 행동이 제지되지 않고 있다.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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