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시내 기차역 초등학교 주택가가 모여 있는 도심 속을 지나다보면 웬 성벽이 나타난다. 사적 제 96호 경주읍성(경상북도 경주시 동부동, 북부동 일대)이다. 큰 도시에서 마주치곤 하는 도성과 달리 읍성이란 이름이 정답다. 옛 읍성이지만 시민들과 차량이 쉴 새 없이 읍성 사이를 지나간다. 아주 먼 옛날 말과 마차와 주민들이 오가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곳은 고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 행정적 기능을 함께 하는 성이다. 무려 고려 현종 때(1012년) 경주방어사를 두면서 흙을 사용하는 토성 형태로 쌓았다가 고려 우왕(1378년)때 현재 모습처럼 돌로 고쳐 쌓았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기록에 의하면 이곳에 조선 태조의 어진이 있었고 관아와 우물 80여개, 해자까지 있었다고 한다. - 읍성 안내판 참조.
해자(垓子)란 동물이나 외부인, 특히 외적으로부터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해 고대부터 근세에 이르기까지 성의 주위를 파 경계로 삼은 구덩이를 말한다. 방어의 효과를 더욱 높이기 위해 해자에 물을 채워 넣어 못으로 만든 경우가 많았다.
이 성은 임진왜란 때 화포장 이장손이 발명한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일본군을 물리친 곳이다. 비격진천뢰(飛擊震天雷)는 조선 중기에 군사목적으로 사용된 폭탄으로, 5백~6백보의 사정거리를 가지는 일종의 시한폭탄이다.
경주읍성 대부분은 일제강점기에 헐리고 현재는 동부동에 성벽 90m 정도만이 남아있다. 완전히 복원한 성벽과 무너진 성벽을 자연스레 복원한 것이 이어져 있다. 허물어진 옛 모습 그대로 복원한 성벽과 돌무더기들에 자꾸만 눈길이 머물렀다.
멀끔하게 변신한 문루와 성벽은 별로 감흥이 일지 않았는데, 무너진 성벽은 보는 이의 상상력과 감성을 한껏 고양시켜 주었다. 해질녘 낮게 드리운 햇살 사이로 무너져 가는 성벽의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