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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슬산에 다녀온 사람들도 빙하기 암괴류라면 잘 알지 못한다. 비슬산 참꽃 축제라면 고개를 끄덕인다. 비슬산 고위 평탄면에 참꽃이 만개한 풍경. 하지만 이곳은 참꽃이 아니라 돌(토르, 너덜겅, 돌강)이 세계적 관상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비슬산에 다녀온 사람들도 빙하기 암괴류라면 잘 알지 못한다. 비슬산 참꽃 축제라면 고개를 끄덕인다. 비슬산 고위 평탄면에 참꽃이 만개한 풍경. 하지만 이곳은 참꽃이 아니라 돌(토르, 너덜겅, 돌강)이 세계적 관상품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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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장이나 마찬가지이지만 대구에도 자랑할 만한 역사 문화유산이 여럿 있었다. 그 중 북경성만큼이나 아름다웠다는 대구읍성, 3천 기나 있어 세계에서 가장 많았다는 고인돌, 도시 곳곳을 아름답게 꾸미고 있던 호수는 이미 잃어버렸다. '잃어버렸다'는 것은 되살려낼 수 없다는 뜻이다.

복원이 가능한 것으로는 공원 또는 동물원 이미지로 추락한 달성토성이 첫 손가락에 꼽힌다. 동물원과 테니스장을 내보내고 국가 군사 시설다운 정체성을 회복시키면 출중한 사적지의 풍모는 얼마든지, 언제든지 되살려낼 수 있다. 기네스북에 오른 '대구약령시'도 약간의 노력만 보태면 충분히 옛 명성을 되찾게 될 것이다.

없어진 것도 많지만 생생한 것도 많다

대구에는 조금만 복원하면 세계적 자연유산으로 되살아날 빙하기 유적도 있다.  비슬산 빙하기 돌강 유적이 바로 그것이다. 100만㎡에 이르는 어마어마한 고위 평탄면, 대견사터의 배경을 이루고 있는 장엄한 바위산(Tor), 산 입구에서부터 정상부까지 이어지는 너덜겅(Talus) 및 암괴류(Block stream)와 마주서면 누구나 경탄을 금하지 못한다.
 
비슬산 대견사 터의 토르(바위산)와 대견사 석탑. 그러나 지금은 절터에 현대식 절집이 건립된 탓에 이와 같은 풍경을 볼 수 없다.
 비슬산 대견사 터의 토르(바위산)와 대견사 석탑. 그러나 지금은 절터에 현대식 절집이 건립된 탓에 이와 같은 풍경을 볼 수 없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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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본 대견사터의 풍경. 지금은 현대식 절집이 건립되어 있는 탓에 이와 같은 절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여름에 본 대견사터의 풍경. 지금은 현대식 절집이 건립되어 있는 탓에 이와 같은 절경을 보는 것은 불가능하다.
ⓒ 정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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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압권은 산 정상부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이어지는 돌강이다. 비슬산에 가면 각이 진 너덜겅과 둥글둥글한 암괴류가 강을 이루고 있는 풍경을 볼 수 있다. 흔히 산사태가 아닌가 짐작하지만 그렇지 않다. 이곳 암괴류는 8만~1만 년 전 지구의 마지막 빙하기 때 지표면의 흙이 씻겨 내려가자 산비탈 땅속 깊은 곳에 묻혀 있던 바위들이 흘러내리면서 차곡차곡 쌓은 듯 남은 것이다.

빙하기 돌강은 영국 다트무어, 미국 시에라네바다, 호주 타스마니아의 것이 많이 알려져 있다. 하지만 비슬산의 것이 더 유명하다. 다른 곳의 돌강들은 700∼800m 규모이지만 비슬산의 것은 2km나 되기 때문이다. 천연기념물 435호로, 각국의 관련 학자들이 수시로 찾아오는 세계적 자연유산이다.

보기 드문 문화재, 아름다운 경관 자랑

비슬산 빙하기 돌강의 가치를 잘 말해주는 전문가의 해설을 읽어본다. 아래의 인용문은 한국학중앙연구원이 편찬한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달성 비슬산 암괴류' 항목 중 일부이다.
 
암괴류는 비슬산 해발 약 1,000m 부근에서 시작된다. 서로 다른 사면을 따라 내려오던 암괴류가 해발 약 750m 지점에서 합류하여 약 450m 지점까지 이어진다. 암괴류의 규모는 길이 2㎞, 폭 80m, 두께 5m이며, 암괴들의 직경은 1~2m에 이른다. 면적은 989,792㎡이다. (중략) 

주위 자연에서 좀처럼 보기 드문 문화재로, 지형경관도 매우 수려하여 찾는 이들이 많다. 비슬산 암괴류는 지난 최종빙기 동안 한반도의 주빙하 기후를 입증할 수 있어 학술적으로 가치가 크다. 동일한 사면경사를 나타내는 산지에서 발달하는 암괴류 중 세계에서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원형도 잘 보존되어 있다.
 
암괴류가 산사태 같은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는 모습. 산사태가 아니다. 빙하기 지구 대지각 변동 때 땅속에 있던 둥글둥글한 돌덩어리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하강하면서 이룬 돌강이다.
 암괴류가 산사태 같은 모습으로 형성되어 있는 모습. 산사태가 아니다. 빙하기 지구 대지각 변동 때 땅속에 있던 둥글둥글한 돌덩어리들이 하늘로 솟구쳤다가 하강하면서 이룬 돌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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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과사전은 '세계 최대 규모일 뿐만 아니라 원형도 잘 보존되어 있다'라고 기술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비슬산 돌강의 하단부는 일정 부분 잘려버렸다. 계곡 하류의 좌우에 옹벽을 설치하면서 돌강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파괴했기 때문이다. 둥글둥글한 바위들의 틈을 시멘트로 메워 편편하게 만든 탓에, 이곳이 세계적 빙하기 유적인지 가늠조차 하기 어렵게 되고 말았다.

파괴된 하류 일대만 원상태로 되돌리면 비슬산 돌강은 세계 최고의 빙하기 유적다운 면모를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 제일의 유산을 이대로 훼손된 채 방치할 수는 없다. 지금은 등산을 하는 사람만 제대로 비슬산 빙하기 유적을 즐긴다. 하류를 조속히 복원하여, 등산을 할 수 없는 사람들도 산 입구에서 충분히 세계 제일의 빙하기 유적을 감상할 수 있게 되기를 소망한다. 
 
세계 최대의 비슬산 암괴류를 마구 난개발하여 계곡을 메우고, 겨울이면 '얼음 축제'를 한다면서 놀이터로 만들어버린 모습
 세계 최대의 비슬산 암괴류를 마구 난개발하여 계곡을 메우고, 겨울이면 "얼음 축제"를 한다면서 놀이터로 만들어버린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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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암괴류유적, #빙하기, #비슬산, #돌강, #너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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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한인애국단><의열단><대한광복회><딸아, 울지 마라><백령도> 등과 역사기행서 <전국 임진왜란 유적 답사여행 총서(전 10권)>, <대구 독립운동유적 100곳 답사여행(2019 대구시 선정 '올해의 책')>, <삼국사기로 떠나는 경주여행>,<김유신과 떠나는 삼국여행> 등을 저술했고, 대구시 교육위원, 중고교 교사와 대학강사로 일했습니다.

오마이뉴스 편집기자. 시민기자 필독서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저자, <이런 질문, 해도 되나요?> 공저, 그림책 에세이 <짬짬이 육아>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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