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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 전쟁 발언까지 나오고 있다. 군소정당인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NHKから國民を守る党)'의 마루야마 호다카 중의원 의원이 발언의 진원지다.

2013년 6월 17일 창당된 'NHK로부터 국민을 지키는 당'은 처음에는 'NHK 수신료 내지 않는 당(NHK受信料不払い党)'으로 출범했다. 일본 최대 공영 방송사인 NHK의 부패를 척결하고 방송법을 개정하는 한편, 직접민주주의를 실현하자고 주장하는 정당이다. 9월 2일 현재, 지방의원 27명에 참의원 1명과 중의원 1명을 보유하고 있다.

이 당의 유일한 중의원 의원인 마루야마는 최근 한국 국회의원들의 독도 방문과 관련해 전쟁 선동으로 비칠 수 있는 발언들을 지난 8월 31일 트위터에 실었다. "전쟁으로 되찾을 수밖에 없는 것 아닐까"라며 "한반도 유사시에 우리 고유의 영토에 자위대가 출동해 불법 점거자를 쫓아내는 것을 포함한 다양한 선택지를 배제해서는 안 된다"는 게 그의 망언이다.

"군대를 보내 한국을 치자" 익숙한 그 주장
 
 중의원에서 발언하는 마루야마 호다카.
 중의원에서 발언하는 마루야마 호다카.
ⓒ 마루야마 호다카 트위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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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민감한 시기에 국회의원이 전쟁을 부추기는 듯한 발언을 하는데도 일본 정부는 수수방관만 하고 있다. 2일 오전 정례 기자회견에서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정부 대변인)은 "개개 의원의 발언에 대해 정부가 논평하는 것은 삼가고 싶다"며 마루야마를 방치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러면서 스가 장관은 마루야마에게 도리어 힘을 실어주는 언급을 남겼다. "다케시마가 역사적으로도 국제법상으로도 명확하게 일본 고유의 영토인 점에 비춰보면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다"면서 마루야마가 아니라 한국 국회의원들에게 비판의 화살을 돌렸다.

스가 장관은 마루야마 의원이 지난 5월 러시아를 상대로 전쟁 발언을 했을 때는 정반대의 반응을 보였다. 러시아가 지배하는 쿠릴 4개 섬을 방문한 마루야마가 '전쟁을 해서라도 되찾아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자, 스가 장관은 기자회견을 통해 "진정으로 유감이다"라며 "외교 협상에 따라 북방영토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겠다는 정부의 방침에 변함이 없다"며 신속히 진화하려는 태도를 보였다.

이처럼 일본 정부는 마루야마의 발언에 대한 대응을 통해 러시아와 전쟁할 뜻이 없음을 신속히 표명했다. 하지만 한국에 대해서는 그런 표명을 하지 않고 있다. 개별 의원의 발언이라서 논평을 삼가겠다는 말만 하고 있다.

일본은 1875년에 군함 운요호(운양호)를 보내 강화도에서 시비를 걸고 굴욕적인 강화도조약(조일수호조규)을 강요했다. 1894년에는 동학농민군을 진압하고 일본 국민과 공사관을 보호하겠다면서 군대를 보내 조선에 대한 영향력을 확장했다. 그렇게 군사적으로 기반을 닦은 뒤 조선 영토를 순차적으로 강점했다. 1905년 2월 22일에는 독도를 자국 영토로 편입하고, 1910년 8월 29일에는 나머지 조선 땅을 강점했다.

군사와 외교 양 방향으로 전개된 이 같은 조선 침략을 사상적으로 뒷받침한 것이 바로 정한론(征韓論)이다. 군대를 보내 한국을 치자는 이 주장은 1868년 메이지유신으로 막부 정권(무신 정권)이 무너지고 왕정복고라는 이름으로 일왕(천황)의 지위가 회복된 뒤부터 본격적으로 힘을 얻었다. 정변으로 인한 내부 혼란을 잠재우는 한편, 장래의 대외팽창을 이루려면 한반도부터 차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 결과였다.

이같은 정한론을 선도적으로 제기한 인물이 요시다 쇼인(1830~1859년)이다. 스물아홉이라는 젊은 나이에 사형선고를 받고 참수됐지만, 그 짧은 생애 동안에 그는 많은 것을 남겼다. 그중 하나가 바로 정한론이다.

군사학자인 그는 일본이 서양열강의 압박을 막아내기 위해서는 조선은 물론이고 만주와 중국까지 정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의 침략을 또 다른 외부에 대한 침략으로 이겨내야 한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역사학자 이종각의 <원흉과 원훈의 두 얼굴: 이토 히로부미>는 이토 히로부미(이등박문)의 스승인 요시다 쇼인의 발언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을 보여주는 발언이다.
 
"옛날 성시(盛時)와 같이 조선을 공격하여 공물을 바치게 하고, 북쪽으로는 만주 땅을 손에 넣고, 남쪽으로는 타이완과 루손 제도를 취하여 일본 땅으로 삼아 더욱 진취의 기상을 보여주어야 한다."
 
'옛날 전성기 때 한국이 일본에 조공을 했다'는 허구의 역사를 근거로 제시한 뒤, 그때처럼 조선을 굴복시키고 나아가 만주·타이완·필리핀까지 차지하자고 외쳤던 것이다. 이런 논리에 따르면, 일차적으로 침략을 받는 대상은 조선이었다. 조선을 넘보는 이 같은 정한론이 메이지유신 이후 일본 정계를 지배하는 주요 사상으로 자리를 잡았던 것이다.

한반도는 어떻게 일본 손에 넘어갔나
 
 요시다 쇼인.
 요시다 쇼인.
ⓒ 위키백과(퍼블릭 도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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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정한론으로 인해 직접적 위험에 노출된 게 조선의 섬들이었다. 조선 서해의 강화도와 동해의 울릉도·독도가 일차적인 침탈 대상이 됐다. 조선 영토의 약한 부위를 상대로 정한론이 꿈틀대기 시작했던 것이다.

1978년에 유철종 전북대 교수가 쓴 '독도 문제와 정한론의 정치사적 고찰'이라는 논문은 강화도와 울릉도·독도를 상대로 정한론이 구체화되는 과정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괄호 속의 한글은 이해의 편의를 위해 추가한 부분이다.
 
"1875년 9월 20일 영국의 지원을 받은 명치정부(당시 일본정부 별칭)는 이제 성숙 단계에 접어든 정한론을 시험하고자 현대식 기선 군함 운양호를 탐수(探水, 바다 측량)라는 명목으로 조선의 내해(內海, 연해)에 불법 침범시켜 무력시위를 통한 강화도 사건을 야기하였다. 그 결과, 일본 주도의 불평등조약인 한일통상수호조약(강화도조약)이 체결·조인되었으며 아세아에서 신흥 제국으로 성장한 일본은 대륙침략정책을 청사진에 따라 착실히 실천에 옮길 수 있었다."

- 전북대 사회과학연구소가 발행한 <사회과학연구> 제5집. 이 학술지는 지금의 <지역과 세계>.
 
정한론에 입각해 일차적으로 공략한 곳이 강화도였다. 이 공략이 성공해 강화도조약 체결이 성사되자, 일본이 다음 표적으로 삼은 곳이 바로 울릉도·독도였다. 위 인용문의 이어지는 대목이다.
 
"운양호 사건 이후부터는 일본에서 울릉도와 독도에 깊은 관심을 갖고서 내도(來島, 섬 방문)하는 자가 급증함으로, 1881년 조선 정부는 독도 개척의 편의를 심사하기 위하여 이규원을 검찰사로 임명하여 울릉도와 독도에 파견시켰는데, 그는 보고서에서 '최근 일본인의 침범으로 양도(兩島, 울릉도·독도)에는 도벌(盜伐, 불법 벌채)의 피해가 극심하다. 그러므로 조속히 국가의 기본정책을 공도 정책(섬을 비워두는 정책)으로부터 이민정책(주민거주 정책)으로 전환하여야 할 것이다'라고 건의하였다. 이에 고종은 울릉도 개척령을 발포함과 동시에 도장(島長)을 설치하여 강원·경상·전라·충청도의 지방민을 울릉도에 이주시켰다."
 
정한론에 입각해 조선을 침범하는 정책이 강화도에서 성공하자 일본이 울릉도·독도를 건드리기 시작했으며, 이에 대한 대응 차원에서 조선 정부가 울릉도·독도 방어에 관심을 기울이게 됐다는 내용이다.

정한론에 입각해 조선 도서 지역을 건드리는 전략은 강화도로부터 시작했다. 울릉도와 독도는 그다음이었다. 하지만, 정한론의 결과로 일본이 가장 먼저 차지한 섬은 독도였다. 일본은 1905년에 독도를 시마네현에 편입시키고 그로부터 5년 뒤 조선 전체를 강점했다. 강화도보다 경계가 취약했던 독도가 정한론에 일차적으로 노출되고, 그렇게 해서 독도가 넘어간 뒤 국토 전체가 넘어갔던 것이다.

마루야마 호다카보다 더 위험한 한 사람 
 
 < MBC 스페셜 > '아베와 일본회의'편 중 한 장면
 < MBC 스페셜 > "아베와 일본회의"편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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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루야마 호다카가 군소정당 출신이라 하여 그의 전쟁 발언을 가벼이 봐서는 안 된다. 마루야마 호다카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 있다. 그의 트위터에 걸린 타이틀 사진 속에 그 인물이 있다. 의사당에서 발언하는 마루야마 맞은편의 아베 신조 총리대신이 바로 그다. 아베 총리의 정신적 멘토가 누구인가를 생각하면, 정한론이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아직도 여전히 생생히 살아 있음을 느끼지 않을 수 없게 된다.

아베의 전기를 저술한 노다니엘 교토산업대 객원연구원은 저서인 <아베 신조의 일본>에서 "나와의 인터뷰에서 아베 신조는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두 인물로 요시다 쇼인과 기시 노부스케를 꼽았다"면서 "아베의 이념주의, 특히 그의 우익 사상은 요시다 쇼인에 대한 사상적 동경에 바탕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아베 신조가 요시다 쇼인을 존경한다는 것은 아베가 요시다의 정한론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음을 의미한다. 정한론이 결코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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