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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인터뷰는 문화체육관광부와 지역문화진흥원이 주최하는 지역문화인력 지원사업의 일환인 '도봉구민청 돋보기 프로젝트'를 통해 진행됐습니다. - 기자말

자연, 그중에서도 높고 푸른 '산'으로부터 우리가 얻는 위안은 실로 대단하다. 때로는 가족처럼, 때로는 친구나 이웃처럼 언제나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는 산은 지역주민과 등산객들에게 더없이 소중한 존재일 것이다. 그러나 그런 즐거운 산행 속에는 늘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산행 중 간혹 맞닥뜨리는 위급하고 두려운 상황에서 나를 구해줄 사람은 누구일까. 이 기사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 모두를 지켜왔던 그 '누군가'에 대한 이야기다.

지난 8월 13일, 도봉산 119 산악구조대 사무실에서 박평열 구조대원을 만나 인터뷰했다.
    
 훈련중인 박평열 구조대원.
 훈련중인 박평열 구조대원.
ⓒ 고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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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특수구조단 도봉산 산악구조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소방교 박평열입니다. 소방관 경력으로는 9년 차인데, 이곳에서는 제가 막내입니다(웃음)."

- 산악구조대가 하는 일을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저희는 서울시 119특수구조단 소속이고, 산 속에서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위급상황에 대비하고 있다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북한산, 관악산에도 저희와 같은 산악구조대가 있어요."

- 주로 어떤 일을 하시나요?
"여기(도봉산)는 북한산 국립공원 일부로 지정돼 있기도 하고, 서울 근교에 위치한 큰 산이라 외국인 등산객도 일부러 찾아올 정도로 인기가 좋아요. 암벽 등반을 즐기러 전국 각지에서 방문하시고요. 그럴수록 산악사고는 더 다양하고 많아지죠. 벌 쏘임부터 산행 중 골절, 추락, 심장마비와 같은 사고와 화재, 멧돼지 등 야생동물이 나타났을 때도 저희가 출동하고 있습니다."

- 근무 인원과 환경은 어떤가요?
"도봉산 산악구조대에는 10명이 근무하고 있어요. 지대장님과 대장님은 주간 근무를 하시고 나머지 8명은 4조 2교대로 일합니다. 근무조를 짜서 대원들이 주간 근무(9시간)와 당번 근무(24시간)를 번갈아 하고 있어요."

- 그렇군요. 어려운 점은 없으신가요?
"교대 근무지만 휴식 시간(48시간)도 가지고 있고, 대원들이 모두 일당백이라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어서 괜찮아요. 인원이 적을 때에도 출동에 대비할 수 있도록 서로 적응하고 노력해 왔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현실적인 이유로 선택했던 직업, 지금은 내 '삶' 됐죠

- 산악구조대에 오기 전에는 소방서에서 오래 일하셨잖아요. 어떻게 소방관이 되신 건가요?
"소방관이 되려고 했던 건 군대를 다녀온 이후의 일이에요. 전 25살에 특전사를 제대했는데, 주변 친구들은 벌써 안정적인 직장을 구했더라고요. 학교 졸업장이나 직장을 중요시하는 사회적인 인식도 부담됐고, 게다가 그 무렵 저희 아버지 건강이 나빠지셔서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절실함이 커졌죠. 고민하던 차에, 특수부대 출신에게는 소방공무원 특채 지원 자격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렇게 도전했고, 소방관이 됐죠."

- 주변 영향도 있었나요?
"네. 저희 부모님이 의용소방대에서 30년 가까이 일하셨고, 두 분 모두 소방대장까지 하셨어요. 가족들을 보며 간접경험을 많이 한 터라 '소방관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 남들보다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었죠.

그런 부분들이 소방관을 준비할 때 큰 도움이 됐어요. 소방관을 특수한 직업처럼 느끼시는 분들이 많겠지만, 저 역시 남들처럼 미래에 대한 걱정이나 취업 고민 등 평범한 과정을 거쳐 여기까지 왔어요. 지금은 제가 선택한 이 길이 우연이자 삶이라 생각해요."

- 그럼 산악구조대에는 어떻게 오게 되신 건가요?
"출동을 하다 보면 소방관들도 화재, 구조 등 자신이 강점을 보이는 환경이 각각 달라요. 보통 산이라고 하면 꺼리는 사람들도 많지만, 저는 평소에 산악에 관심도 많았기 때문에 인사이동 시기에 직접 지원을 해서 오게 됐어요."

구조는 대원과 요구조자가 서로 함께 하는 것

- 현장 이야기도 해볼게요. 산의 경우 차량 진입이 어려운데, 장비나 의약품 등 구조에 필요한 물건은 직접 짊어지고 오르시는 건가요?
"그렇죠. 상황에 따라 달라지지만, 보통 10kg 안팎의 배낭을 메고 산에 올라요. 그리고 빨리 가려면 최대한 짐은 실속 있고 가볍게 챙겨야 해요. 저희는 뛰는 게 아니라 속보처럼 빠른 걸음으로 산에 오르는데, 평지에서는 누구나 빠르게 걸을 수 있지만, 산은 다르잖아요. 저희도 사람이니 험한 산을 오르다 보면 내 다리가 남의 다리처럼 느껴질 정도로 괴로울 때도 있어요. 하지만 그걸 이겨내야 요구조자 곁으로 갈 수가 있으니까, 평소에도 열심히 노력하죠."
 
 도봉산 산악구조대 출동 현장 모습.
 도봉산 산악구조대 출동 현장 모습.
ⓒ 고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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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고가 들어왔을 때, 위치는 어떻게 파악하시나요?
"아무래도 산 속에서 일어나는 사고들이니, 신고가 들어왔을 때 곧바로 저희가 정확한 위치를 파악할 수는 없어요. 어려움도 있죠. 산에서 내 위치를 설명하라고 하면 누구나 힘들잖아요. 두려운 마음에 침착해지기도 힘들고요.

그래도 요즘은 휴대전화로 위치 추적이나 사진, 좌표 전송이 가능해서 도움이 돼요. 신고 시 주변을 살펴보고 특이한 나무, 바위 모양을 설명해주시면 대원들이 훨씬 수월하게 위치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저희도 평소에 산을 많이 다니면서 구석구석을 머릿속에 저장해두고 있어요."

- 위치 파악이 특히 어려운 경우가 있다면요?
"아무래도 신고자분이 술을 드셨을 때죠. 취한 상태로 설명도 없이 '빨리 오라'고만 하시면 저희도 파악이 어렵거든요. 술을 모여서 함께 드시는 경우도 많은데, 그럼 케어해야 할 사람이 더 늘어나는 거고요. 산에서의 음주는 되도록 자제해주시면 하는 바람이에요."

- 밤낮으로 구조 활동을 하시는데, 체력적으로도 힘들 때가 많겠어요.
"몸이 힘든 것보다 사람들을 지켜보며 안타까움을 느낄 때가 더 커요. 사람들은 힘들 때 산을 많이 찾거든요. 아무도 날 받아주지 않는데, 이 자연은 날 받아준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그래서 여기서 잘못된 선택을 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주변에 '나 죽으러 간다'라는 유서 형태의 문자를 남기면 사람들이 신고하고, 그럼 저희는 그분을 찾기 위해 온 산을 미친 듯이 뒤져요. 그럴 때 마음이 아프죠. 삶을 그런 식으로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어요."

- 동시 출동이 필요한 상황이라거나, 중환자가 발생했을 때는 구조 인원이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나요?
"사람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정말 뭐든 하게 만들어요. 그것보다 높은 산은 없죠(웃음). 그때 생겨나는 힘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저희도 사람이니 정말 불가능한 상황이 오면 헬기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근처에 일선 구조대가 있기 때문에 지원 요청을 할 수도 있고요. 공백이 없도록 늘 신경 쓰고 있어요."

사고 트라우마를 이기게 하는 힘

- 벌써 경력이 9년 차시잖아요. 기억에 남는 일들이 있나요?
"예전에 승강기 고장으로 내부에 갇혔던 할아버님을 도와드렸던 적이 있어요. 저희 복장을 보고 소방관이라는 걸 아셨고, 구조 이후에 아내와 같이 택시를 타고 소방서에 찾아오셨어요. 몸도 불편하셨는데, 저희 주겠다고 수박을 두 통이나 들고 오셨더라고요. 죄송한 마음에 받지 않았지만, 고마워하시던 그 마음은 잊을 수가 없어요. 사람들의 고맙다는 한마디가 저희에게는 정말 특별해요. 몇 번을 들어도 기억에 남거든요."
 
 암벽에서의 구조 현장.
 암벽에서의 구조 현장.
ⓒ 고경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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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험하셨던 적도 있었겠어요.
"그렇죠. 제가 노원소방서에 근무할 때였어요. 동부간선도로 사고 현장에 출동했었는데, 저희는 신고자분께 교통사고라고만 전달받았거든요. 그래서 방화복이나 장비를 챙기지 않고 바로 출동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현장에 가보니 차량에서 불꽃이 보이고, 연기도 피어오르는 거예요. 사고가 난 건 24인승 정도 되는 미니버스였어요. 주말 아침이라 아이들이 타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기 때문에 더 아찔했죠.

다가가 보니 다행히 아이들은 없었지만, 신고자분이 사고 충격으로 의식을 잃고, 탈출하려다가 조수석에 안전벨트를 맨 채로 쓰러져 계셨어요. 차량 뒷바퀴가 계속 돌아가며 불길은 화상을 입을 정도로 거세지고 있었고요. 결국 저와 동료들이 맨몸으로 진입을 해서 차 유리창을 깨고 그분을 구조했어요."

- 모두에게 위험했던 순간이군요.
"그 일이 있고 나서, 팀장님이 '고맙다'고 하셨어요. 원래 소방관들은 '수고했어', '고생했다'라는 말은 자주 해도, 고맙다는 말은 잘 꺼내지 않는 것 같아요. 업무가 위험하고 힘들어도 저희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니까, 그런 표현 하기 어렵거든요.

살릴 수 있는 사람을 살리지 못했을 때는 저희도 정말 힘들어요. 다 같이 죄책감을 느껴 고통스럽고요. 저희가 힘을 합쳐서 사고를 막아냈고, 대원들도 그런 (요구조자를 구하지 못한) 아픔을 겪지 않아도 됐다는 부분에 대해서, 고맙다고 말씀해주신 것 같아요."

사람 지킬 때 보람 느껴
 

- 근무하면서 느끼는 가장 큰 어려움은 어떤 건가요?
"아무래도 가족한테 미안한 마음이죠. 같이 많은 시간을 보낼 수가 없으니까요. 소방관뿐 아니라 교대근무를 하는 직장인 분들은 다 공감하실 것 같아요. 저도 소방관이 되고 나서 명절 때 한 번도 집에 가본 적이 없어요. 가려면 갈 수는 있지만, 구조대는 공휴일에 더 바쁘잖아요. 혼자 집에 내려가면 동료들에게도 미안해요.

이런 부분에서 느껴지는 공허함이나 슬픈 마음은 타인을 도우면서 이겨내고 있어요. 누군가를 내 손으로 구했을 때의 그 기쁨과 보람이 저를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만들어요."

처음 소방관이 된 순간부터 지금까지, 9년간 박평열 구조대원이 구조한 사람의 수는 약 1500여 명. 그는 긴 인터뷰 말미에 시민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요즘에는 시민들이 소방에 관심도 많이 가져주세요. 가끔 인근 산으로 지원 출동을 가게 됐을 때 저희 차량이 보이면 정말 모세의 기적처럼 길을 열어주시는 모습들도 봐요. 구조대원을 생각하고 아껴주시는 그 마음을 저희도 느낄 수 있어요.

하나 부탁드리자면 산행 시에 술은 자제해주시고, 무리하게 산을 오르는 것은 주의해주셨으면 해요. 사고가 생겼더라도 저희를 믿고, 위치를 말씀해주세요. 건강하고 행복하세요. 저희가 가까운 곳에서 함께할게요."


도봉산 산악구조대 대장 이재홍, 박태성, 조성훈, 이현정, 이상수, 고현귀, 용대남, 윤순진, 최진웅, 박평열 구조대원. 보이지 않는 곳에서 늘 우리와 함께하고 있는 모든 구조대원의 이름을 기억하고, 함께 응원해주길 바란다. 구하려는 마음 앞에서 이들이 넘지 못할 산은 없을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고경연 시민기자는 도봉구민청 돋보기 프로젝트 기획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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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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