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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는 다른 가축에 비해 분명 사람과 정서적 교감이 가능한 몇 안 되는 동물 중의 하나라는 사실에 공감한다. 그래서 사람과 함께 살아가는 '반려견'이라는 호칭에도 동의한다. 과거에 강아지를 데려와 좁은 마당에서 키우며 여러 해 동안 가족처럼 지낸 적도 있었다.

그렇게 개를 좋아하고 개와 얽힌 추억도 제법 많은 편임에도, 개를 키워보지 않겠냐는 지인의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았던 이유는 간단하다. 개의 끼니를 챙겨주는 일이 시골에서 전원생활 중인 나를 구속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다른 집 반려견처럼 호강하지는 못할망정 겨우 집 지키는 파수꾼으로 취급당한다면, 개의 입장에서 불평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 역시 개를 포기했던 이유 중 하나였다. 그리고 개를 몇 번 잃어버리고, 또 개의 죽음을 봤던 나로서는, 정이 든 만큼 보내는 아픔도 크다는 사실을 알기에, 개를 다시 키울 엄두가 나지 않았다.

우리 집에 눌러앉은 야옹이
 
젖을 먹이는 야옹이 지난해 여름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야옹이의 모습. 똘망이가 많이 닮았다.
▲ 젖을 먹이는 야옹이 지난해 여름 새끼들에게 젖을 먹이는 야옹이의 모습. 똘망이가 많이 닮았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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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2018년 봄, 한 번도 가까이 해 본 적 없고 가까이할 생각도 못 했던 고양이와 인연을 맺었다. 아내가 가끔 남은 음식을 문 밖에서 어정대는 들고양이에게 나눠준 게 발단이었다.

고양이는 때가 되면 찾아와 그릇을 비웠고, 아무것도 없는 날에는 음식을 요구하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고양이를 별다른 이름 없이 '야옹이'라고 불렀다. 우리의 낯을 익힌 고양이는 어느 날부터 나를 보면 다가와 몸을 뒤집는 묘기를 보였다. 내가 만지는 것도 거부하지 않았다.

고양이를 만지는 걸 꺼리던 아내 역시 다른 들고양이들을 내쫓으면서 야옹이에게 먹이를 챙겨 주었고, 끼니때 야옹이가 보이지 않으면 걱정도 했다. 때가 되면 부엌 문 앞에 앉아 기다리는 야옹이를, 우리는 미워할 수 없었다. 더구나 그때 야옹이는 임신 중이었다.

여름으로 접어들 무렵으로 기억한다. 며칠간 보이지 않기에 아내와 나는 어디 좋은 데로 찾아갔으려니 여겼는데, 어느 날 야옹이가 홀쭉하고 까칠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를 놀라게 했다.

모르는 곳에서 출산했으리라고 짐작한 아내는 그런 야옹이에게 우유를 사다 먹이고 수산물 시장에서 참치 머리를 얻어다가 여러 끼니 끓여주기도 했다. 그러는 동안 야옹이는 내가 부르면 다가와 몸을 낮추며 친근감을 보였다. 바짓가랑이에 몸을 비비기도 했다.

한 달쯤 지났을까? 아내가 지나가는 말로 "야옹아, 네 자식이 몇 마리니? 한 번 데리고 와라" 했다. 말을 알아들은 것처럼, 다음날 야옹이는 4마리의 새끼를 데리고 나타나 보란 듯이 부엌문 앞에서 젖을 물렸다. 그날 이후 야옹이는 우리집 마루 밑에 자리를 잡고 새끼들과 함께 아예 눌러앉아 버렸다.

끊을 수 없는 인연  

새끼들을 다 거두기에 부담이라는 생각에 동물 구조센터에 연락을 했다. 이미 젖을 뗄 정도로 자란 고양이는 데려갈 수 없다는 대답을 들었다.

그렇다고 어린 것들을 강제로 몰아낼 수는 없었다. 두 마리는 어렵게 지인에게 보낸 뒤, 야옹이와 수컷 새끼 두 마리는 일단 우리 집에 두었다.

고양이들은 아침저녁 끼니때면 합창을 하며 먹이를 달라고 졸라댔다. 도통 울타리 밖으로도 나가지 않았고, 그렇게 함께 사는 날이 늘어만 갔다. 동물을 거두지 않겠다던 스스로와의 약속을 깨는 행위였지만 정말 어쩔 수 없었다. 고양이와 인연을 도저히 끊을 수가 없던 것이었다.

새끼 두 마리에게 각각 똘망이와 꼬마라는 이름을 붙여줬고, 고양이 전용사료도 집에 들여놨따. 어느 정도 철이 든 똘망이와 꼬마도 제 어미를 본받은 것인지, 내 앞에서 배를 내보이곤 했다. 뒹굴고 만져주면 얌전하게 앉아 좋아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럴 때면 훗날 우리가 돌봐줄 수 없게 될 경우를 생각하며 고양이들에게 "자급자족!"이라는 구호를 가르쳤고, 다른 좋은 집을 찾아보라고 타이르며 혼자 웃기도 했다.

비바람치고 찬 바람이 불어도 떠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고양이 가족을 위해 추위를 피할 박스를 하나 마련해 주었다. 세 마리의 고양이가 좁은 공간에서 몸을 포개고 겨울을 났다.

비로소 아내와 나는 텔레비전을 켜고 동물, 특히 고양이에 관한 프로그램을 시청하기에 이르렀다. 인터넷에서 경험자들의 이야기를 읽으며 고양이의 습성에 관한 공부도 시작했다.

따로 사는 두 아들도 전화할 때면 고양이들의 근황을 묻는 등 관심을 보였다. 고양이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알려주었으며, 작은아들은 주말이면 고양이 간식을 들고 와서 고양이들과 놀아주기도 했다. 어물쩍하는 사이에 고양이들은 주민등록에 등재되지 않은 동거족이 된 셈이다.

사실 고양이는 집을 지켜주고 멧돼지를 막아주는 존재도 아니다. 부르면 살갑게 꼬리를 흔들며 달려오는 존재도 아니다. 그래서 그들을 강제로 쫓지는 않겠지만, 혹시 떠나가서 오지 않는다고 해도 기다리지 않겠다고 했다. 

그렇게 불가근불가원(不可近 不可遠)의 경계를 지키는 우리에게 서운했던 것일까? 자급자족, 자력갱생하라는 말을 알아듣고 좋은 곳을 찾아 떠난 것일까? 아니면 어미의 마음으로 똘망이와 꼬마에게 안전한 공간을 물려주고 떠난 것일까? 그도 아니면 예기치 못한 사고를 당해 고달픈 유랑의 세월을 마감해버린 것은 아닐까?

지난 7월 13일 밤, 거의 1년 넘게 가족이 되어준 야옹이는 아무런 단서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사라졌다. 며칠이면 돌아오리라고 여겼는데 달포를 지난 지금도 소식이 없다.

예쁜 이름으로 불러주지 못해 미안하다
 
똘망이 호기심이 많고 활발하며 나무를 잘 타기에 붙인 이름이다.
▲ 똘망이 호기심이 많고 활발하며 나무를 잘 타기에 붙인 이름이다.
ⓒ 홍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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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어미가 떠난 줄 아는지 모르는지, 어미를 찾을 생각이 없는 것인지, 아니면 그들 사이에 어떤 묵계가 있었던 것인지, 똘망이와 꼬마는 오늘도 정원의 나무들과 잔디밭을 놀이터 삼아 놀다가, 때가 되면 당연한 것처럼 거침없이 먹이를 달라고 떼를 쓴다.

떠나가면 끝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야옹이가 갔음직한 곳을 가만히 기웃거리고, 마을 고양이들이 자주 모이는 폐가를 둘러보았던 이유를 굳이 설명하고 싶지 않다.

걱정하는 아내에게 "좋은 인연을 찾아갔을 것"이라고 말하지만 똘망이와 꼬마의 모습에서 야옹이의 모습이 보이는 건 도무지 어찌할 수 없다. 

풀리지 않는 물음을 남기고 가버린 야옹이. 예쁜 이름을 지어주지 못해 아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고양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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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트워크부 에디터. "쓰는 일에, 그렇게 해서 당신을 만나는 일에 나는 어느 때보다 욕심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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