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이 존폐의 기로에 섰다

< 1박 2일 > ⓒ KBS2

 
"오랜 논의 끝에 올 하반기 방송을 목표로 < 1박 2일 시즌4 > 기획에 착수하기로 결정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온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가족 예능 부활을 최우선 가치로 삼고 프로그램을 준비하도록 하겠다."


지난 29일 KBS는 무기한 제작 중단 중이었던 KBS2 < 1박 2일 >의 부활을 공식화했다. 앞서 KBS는 지난 3월 버닝썬 사건 수사의 여파로 출연자인 가수 겸 방송인 정준영의 단톡방 사건과 차태현·김준호의 골프 도박 논란이 불거지자 < 1박 2일 >의 제작 중단을 알린 바 있다. 다시 방송될 < 1박 2일 >에 관해, 아직 구체적인 방영 시기나 출연진 등 방향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그 '초심'의 정체나 '가족 예능 부활'의 기치가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없다. 하지만 KBS 입장에서 일요일 장수 프로그램으로서의 인지도와 고른 시청률 등을 이유로 < 1박 2일 >을 이대로 버릴 수는 없다는 '의지'만큼은 분명하게 피력한 셈이 됐다. 결국 KBS 대표 예능은 부활을 선언했지만, KBS 대표 탐사보도 프로그램에는 '사망선고'가 집행됐다.

KBS의 발표 다음날인 지난 30일, KBS1 <추적 60분>이 1326회 방송을 끝으로 폐지를 알렸다. 2017년 8월, 1년여의 휴지기 끝에 의욕적으로 부활한 지 2년 만에 KBS를 대표하는 탐사보도, 추적 저널리즘이 역사 속으로 영원히 사라지게 된 셈이다.

< 1박 2일 >의 부활과 <추적 60분>의 폐지는 KBS의 현재를 가늠할 수 있는 상징적인 지표라 할 만하다. 그렇기에 더더욱, <추적 60분>의 '막방'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게 다가올 수 밖에 없었다.
 
 <추적 60분>

<추적 60분> ⓒ KBS

 
36년 <추적 60분>의 발자취

'1020 세대' 시청자라면, 1326회라는 숫자가 쉬이 다가오지 않을지 모를 일이다. '불금' 밤 KBS1에 편성된 <추적 60분>은 최근 들어 급격히 영향력을 잃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Since 1983 추적의 시간'이란 부제에서 알 수 있듯, <추적 60분>이 36년간 쌓아온 명성과 금자탑은 분명 한국 저널리즘 역사에 어떤 족적을 남겼다. 물론 명암도 존재했다.

'끝'이란 자막과 함께 폐지를 공식화한 <추적 60분>의 '스완송'은 마지막까지 그러한 자찬과 자성을 동시에 담고 있었다. 그러나 2019년의 시점에서 보자면, 자찬은 낯간지러웠고 자성은 무뎠다.

이제는 일상이 된 '테드'나 '세바시'와 같이 출연자들이 강연 형식으로 무대에 나선 뒤, 정리 영상과 인터뷰 등을 엮어 낸 마지막 방송은, 한 마디로 산만했다. 1326회라는 그간의 무게를 내려놓기엔 아쉬움이 컸기 때문일까. 그 시간들을 정리하기에 너무나 할 말이 많아서였을까.

"<추적 60분>이 영향력을 갖게 된 데는 단순한 정보 전달의 차원을 넘어서 과학적인 실험과 구체적 대안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강연에 나선 전 <추적 60분> 책임프로듀서 및 MC인 구수환 PD는 그간의 보도를 돌아보며, 후반부에서는 눈물까지 글썽였다. KTX 여성승무원 부당해고 사건을 보도했을 당시, 방송된 내용을 보고 당사자들인 해고 노조원들이나 그 가족들이 흘린 눈물의 의미를 전하던 와중이었다. 이런 보도를 돌아보며 구 PD는 <추적 60분>이 지닌 '사회적 약자를 위한 스피커'로서의 기능을 강조했다.

맞다. <추적 60분>은 최근까지도 '2019 쪽방촌 리포트'나 '장애인 시설 인권 실태', '삼성의 노조 파괴 공작' 등 사회적 약자나 권력 고발 기능을 계속해 왔다. 그래서 이날 마지막 방송은 <추적 60분>이 카메라를 가져댔기에 직접적인 변화의 불씨를 당길 수 있었던 사례와 인물들을 여럿 소개했다.

'삼성 백혈병' 사건의 피해자인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나 '서울시 공무원 간첩조작 사건'의 피해자인 유우성씨와 그의 부인도 스튜디오에 직접 출연했다. 지난 2009년 살인누명을 쓰고 머나먼 타국인 온두라스의 감옥에 수감됐었던 <온두라스 감옥에서 온 편지-"나는 살인범이 아니에요">편의 주인공 한지수씨도 그 중 한명이었다.

"사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 이렇다 우는 사람 힘든 사람 보면 자기도 힘들어요. 하지만 <추적 60분>은 그런 우리 마음속에 있는 작은 불씨를 '야 우리는 이런 불씨가 있다 이거다 있어' 이렇게 알려주는 것 같아요."

자화자찬과 자성, 면죄부 사이

맞다. 이런 순기능들을 무시할 순 없다. 아니, 그런 역사가 바로 공영방송의 탐사 저널리즘이 존재 이유를 증명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질문을 해야 한다. 그런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추적 60분>은 왜 폐지돼야 하느냐고. 이날 마지막 방송 역시 부분적으로나마 그런 질문을 하고 있었다. '자성'이란 표현을 쓴 이유다.

카메라만 들이대도, 현장 보도만 해도 그 다음날 여론이 시끌했다고 한다. 1980년대가 그런 시절이었으리라. 인신매매 현장에 ENG 카메라를 들이대고, 몸에 좋다면 코브라의 독마저도 들이키는 사람들을 그대로 방송에 내보내던 그 시절. 당시 막내 PD였다던 전 EBS 정해랑 사장이 추억했던 그 시절 <추적 60분>은 말 그대로 '사회적 공기'였을 터.

하지만 <추적 60분>은 그 당시 독재정권에 칼을 들이대지 못했다는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시청률 40%를 찍었다던 화양연화를 추억했다. 물론 지적이 없진 않았다. 1996년 일선 PD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고위층이 진행자만 내보낸 채 한총련 사태 보도를 강행했던 '흑역사'도 소개됐다. 보수정권 들어 외압의 과정을 설명했고, 4대강 보도나 천안함 보도가 '불방'됐던 기억도 끄집어냈다.

그에 앞서 강연자로 등장한 중앙대 정준희 교수는 과거 공영방송의 '엘리트' 주의를 지적하기도 했고, 민주언론시민연합 김언경 사무처장은 세월호 참사를 외면했던 지상파 탐사보도프로그램의 그림자를 꼬집기도 했다. 이날 마지막 방송이 자화자찬에 끝나지 않고 일말의 자성이 포함될 수 있었던 대목이랄까.

하지만, 자성이 얼마나 날카로웠고 또 진정성이 느껴졌느냐는 별개의 문제다. 36년 간의 역사를 훑고, 순기능을 역설하고 피해 당사자들의 '고마움'을 나열한 뒤 나온 구색 맞추기식 '자성'은 셀프 면죄부거나 '우리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에 가까워 보였다.

굳이 비교하자면, '공영방송 정상화' 직후 MBC가 <뉴스데스크>를 통해 직접 사과하고 2주간에 걸친 특집 방송을 통해 통렬하고도 처절히 반성했던 것과는 다소 큰 차이랄까. 이후 MBC는 <스트레이트>를 신설했다.

반면 KBS는 이렇다 할 반성 없이 탐사보도 프로그램을 관성적으로 지속했다. 그리고, <추적 60분>은 36년의 역사를 뒤로 한 채 폐지를 맞았다. 그리고, 최근 비상경영체제를 선언한 KBS는 이제 신설 탐사보도프로그램을 선보인다는 계획을 내놨다.

비상경영 시대의 공영방송 KBS
 
 KBS 사옥

KBS 사옥 ⓒ KBS

 
23일 <미디어오늘>에 따르면, KBS 김덕재 제작1본부장은 22일 시청자위원회에서 "두 개의 프로그램인 <추적 60분>과 < KBS스페셜 >을 이번에 없앤다"며 "시사직격(가제)이라는 탐사 다큐프로그램으로 아젠더 기능이 있는 프로그램을 론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또 < KBS스페셜 > 폐지와 함께 '다큐존' 편성 구간을 신설, 다큐멘터리를 집중시키는 한편 <토론쇼 시민의회>와 같은 시민 참여형 토론 프로그램을 신설한다고 한다. 이 같은 프로그램 신설과 편성 조정이 올해만 '1000억 적자'가 예상된다는 KBS의 경영난에 얼마나 도움이 될까. 이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회의적인 입장이다.

이를 위해 최근 방송통신위원회가 공개한 '2018년 N스크린 시청행태 조사' 결과를 보자. 스마트폰 보유자 중 1개월 내 1번 이상 방송 프로그램을 시청한 이용자가 가장 많이 찾은 채널은 SBS였다고 한다. 그 뒤를 이은 것이 MBC와 JTBC, KBS2, tvN 순이었다고 한다. 이 결과는 KBS가 현재 시청자들에게 어떤 이미지인지, 또 영향력이 왜 미비한지를 드러내는 일례라 할 수 있다.

전통적인 TV 시청자가 스마트폰으로, PC로 이탈한 지는 이미 오래됐다. 그 시간 동안 KBS 시사 교양 프로그램이 어떤 반향을 일으켰는지, 그저 관성대로 프로그램을 만들고 보도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볼 일이다. 그저 채널 이미지가 낡았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플랫폼보다 내용과 형식, 관점 면에서 모두 '올드'하다는 것이 문제란 얘기다.

"아주 큰 고민이다. KBS 1TV에 사실 구석구석 찾아보면 좋은 프로그램이 있지만 관심을 못 받는다. 화제가 잘 되지 않았던 맹점이 있었다." (KBS 김덕재 제작1본부장)

동의한다. KBS1 <거리의 만찬>은 미비한 시청률에 비해 뛰어난 완성도를 자랑하는 중이다. 최근 화제를 일으킨 <시사기획 창>의 '밀정' 2부작은 공영방송이라 할 수 있는 아젠다와 노력, 화제성을 동시에 잡은 수작이었다.

비단 공영성의 회복이 전부가 아니다. 촛불혁명 이후 시민들의 관심 덕분에 정상화를 이룬 공영방송이 어떠한 어젠더를 제시하고 이를 공격적으로 실천할까의 문제다. 한국도 언젠가는 영국 BBC와 같은 공영방송을 가져야 하지 않겠는가.

작금의 연성화 기획, 관성화 보도는 외면 받을 수밖에 없다. < 1박 2일 >을 부활시키고, <추적 60분>을 폐지한 KBS의 진짜 위기는 바로 여기에 있지 않을까. SBS <그것이 알고 싶다>도, MBC < PD수첩 >과 <스트레이트>도 비슷한 위기 속에서 안간힘을 쓰고 있다.
추적6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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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작업 의뢰 woodyh@hanmail.net, 전 무비스트, FLIM2.0, Korean Cinema Today, 오마이뉴스 등 취재기자, 영화 대중문화 칼럼니스트, 시나리오 작가, 각본, '4.3과 친구들 영화제' 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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