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는 500채 이상의 성도 보유하고 있죠." 2008년 시작한 세계 최대 숙박 공유 서비스 에어비앤비 CEO 브라이언 체스키의 자부심 넘치는 말이다. 2015년 3월 기준으로 전 세계 190개국 3만 4000여 개 도시에서 하루 평균 100만 실의 빈방을 여행객에게 연결해 주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6천여 곳이 등록되어 있다. 이제 어디든 여행을 가면 '에어비엔비'만 있으면 잠잘 곳 걱정은 없다. 

그런데 그 에어비앤비가, 숙박 공유 서비스를 넘어 세계 부동산 시장의 큰손이라면? 재개발, 철거, 그리고 이제 젠트리피케이션까지, 도시화의 그늘에서 벌어지는 문제들은 우리 사회에서 더는 낯선 것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 상승은 더 이상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전 세계의 도시들이 급등하는 집값에 신음하고 있다. 그리고 그 급등하는 전 세계의 집값에 '검은 손길'이 드리워져 있다면?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는 바로 이 문제를 추적하고 기록한 영화다.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사진.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사진. ⓒ EBS

 
누구를 위해 도시는 존재하는가 

전 세계를 다니며 주택 문제를 조사하는 것이 임무인 UN주거보장 특별 보고관 레이라니 파르하는 5월 1일 집세 거부 운동을 조사하기 캐나다 토론토로 향한다.

바퀴벌레와 쥐가 수시로 출몰하고, 수리를 하지 않아 물이 줄줄 새는 낡은 집. 그래도 참으려고 했다. 하지만 새로 이 건물을 산 집주인은 집세를 대폭 올리며 이들을 내쫓으려 한다. 이곳을 떠나면 더는 이 도시에서 살 곳이 없는 사람들은 집세 거부 운동을 벌이지만 당국은 '업무 방해'라며 법적 조치를 취한다.

지난 30년간 토론토 주택 가격은 425% 인상됐다. 그동안 평균 가구 소득은 133%가 올랐을 뿐인데. 정체된 임금에도 불구하고 집값만 나날이 치솟은 것이다. 부동산 업자들은 낡은 건물을 사들여 리뉴얼된 새 건물을 올린 뒤 집세를 획기적으로 올린다. 가난한 이들은 더더욱 허덕이고 중산층조차 도시에 살 여유가 점점 없어진다. 

이게 비단 토론토만의 문제일까? 영화 한 편으로 유명해진 도시, 영국의 노팅힐. 이곳의 주민들은 영화로 인한 유명세보다, 다양한 신념과 색깔을 지닌 사람들이 서로 친근한 이웃으로 어울려 지낼 수 있었던 가족 같은 분위기의 노팅힐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그런데 그 노팅힐이 변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부동산을 사들이면서부터다.

그중 한 곳인 '밸그레이브'. 부유한 사람들은 몇천만 파운드를 퍼부어 건물을 사 리뉴얼한 뒤 더 높은 가격을 책정해 세를 내놓았다. 당연히 높아진 가격에 살 수 없는 사람들은 조금씩 노팅힐에서 내쫓기고, 이제 그 거리엔 오가는 사람들이 없어졌다. 80%가 빈 거리가 된 곳. 지방의회 의원은 당당하게 "노팅힐에서 살 여력이 없으면 노팅힐에 있으면 안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나고 자라 가정을 꾸리고 살아왔던 이들이 이제 와서 내쫓겨야 하는 것일까? 

칠레 수도 산티아고에서 차로 2시간 거리에 있는 아름다운 항구 도시 발파라이소라고 다를까? 지반이 내려 앉아가는 집이 있다. 집주인은 어떻게든 세입자들을 내쫓으려 한다. 이곳 주민들의 건강을 책임지던 병원은 철거되어 고급 콘도로 거듭났다. 하지만 콘도는 비어있다. 이곳 주민들은 그곳에 살 여력이 없다. 올리브 등 각종 과실나무가 주렁주렁 열리던 에덴동산 같던 발파라이소는 사라져가고 있다. 

뉴욕 할렘가 1700가구가 살던 건물은 건물주가 바뀌자 집세가 900달러나 폭등했다. 안 그래도 하루가 다르게 오르는 집값 때문에 소득 대비 90%를 집값으로 내야 했던 입주민들에게 이 놀라운 폭의 집세는 어불성설이다. 연봉이 십만 달러(한화 약 1억 2천만 원)는 되야 감당할 수 있는 집세다. 

스웨덴도 마찬가지다. 스웨덴의 주거 시스템은 국민들의 자부심이었지만, 이 역시 변했다. 부동산 자본이 스웨덴에 진출하면서 스웨덴 저소득층용 주택을 마구 사들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를 보수해 50% 이상 집세를 인상해 내놓았다. 영화에 등장한 한 스웨덴 주부는 "더 이상 집세가 올라가는 걸 감당할 수 없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평범한 가족들이 살던 공영 주택단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세계 어느 곳으로 눈을 돌려보아도 마찬가지다.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사진.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사진. ⓒ EBS

 
세계 도시 부동산 급등의 배후, 누구일까? 

빈티지 옷가게가 생기고 허름한 옷을 입은 예술가들이 카페에 앉아 예술을 논할 때, 바로 그때가 그 동네를 떠날 때라는 우스갯소리는 오늘날 세계 여러 도시들이 마주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빗댄 말이다. 

하지만 컬럼비아대 세계 도시 이론 연구의 선도자 사스키아 사센은 현재 세계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도시의 몰락은 보다 심각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뉴욕 할렘가의 건물을 사들인 회사는 대표적인 부동산 사모 펀드 회사 블랙 스톤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에어비앤비의 회사명도 등장한다. 2003년부터 쭉 비어 있었다는 런던 벨그레이비어의 고급 주택들. 자산이 된 건물들은 누군가의 자산이 되어 불려지고 있다. 반면 사람들은 일을 열심히 하지만, 살 집이 없다. 무분별한 투자와 그들이 이용하는 금융 시스템은 그들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법'을 활용하고, 사람들은 자신들이 살아오던 도시의 터전에서 쫓겨나고 있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조셉 스티글리츠 교수는 이렇게 주택에 투자한 부동산 사모 펀드들은 돈이 주택에 묶여 있는 걸 원치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투자자를 끌어들여 자신들이 가진 만 채의 집을 증권으로 만들어 팔고, 집이 증권이 되는 순간 쉽게 매도할 수 있는 '자본 이익'으로 변신, 1초도 안 되는 시간에 35번 사고팔 수 있는 '극초단타 매매' 대상이 되어 오로지 돈벌이의 대상으로 전락하게 된다고 경고한다. 

사스키아 사센은 오늘날 금융의 방식은 고전적 은행과 다르다고 안타까워 한다. 자신들의 고정 고객을 위해 봉사한 고전적 은행과 달리, 마치 금광을 채굴하듯 이윤이 되는 것이라면 갖은 수단을 마다하지 않고 팔고자 한다는 것이다. 채굴이 끝나면 폐허가 된 곳을 놔두고 떠나는 금광업자처럼 자신의 이익을 뽑아낸 뒤에 그곳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에 대해 책임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금과 달리 오늘날 부동산을 움직이는 금융에 사람들은 삶의 터전을 빼앗긴 채 쫓겨나고 있다. 

전 세계 자산으로서의 부동산이 현재 217조 달러다. 이는 전 세계 GDP보다 많은 금액이다. 즉, 이런 자본주의적 문제에 대해 정부가 책임져야 하는데 1980년대부터 벌어진 각국 정부와 자본의 이익 간 격차로 인해 정부들의 역할이 제한될 수밖에 없다는 한계가 있다.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사진.

영화 <푸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 스틸 사진. ⓒ EBS

 
도대체 그 돈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 

전세계에서 가장 큰 부동산 사모펀드 회사 블랙 스톤의 존 그레이 대표는 금융 위기를 기회로 아주 싼 가격에 단독 주택을 대량으로 사서 수리해 이윤을 얻었다고 자랑스럽게 자신의 출발을 회고한다. 

스웨덴에서처럼 한 지역을 몽땅 사들여 입주민을 내쫓고 고급화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개발 방식. 하지만 이런 과정에서 정부는 손을 놓고 있거나, 법적 절차를 핑계로 압류를 부추긴다. 혹은 규제 철폐나 완화 등 법과 제도의 이점을 이용하는 이들의 편에 서기 십상이다. 더 많은 정보는 부도덕한 엘리트들에게 전해지고, 이들은 부를 창출하는 대신 기존의 부를 빼앗는 방식으로 자신의 부를 축적한다. 

심지어, 마약, 인신 매매 등의 불법 경로를 통해 벌어들인 돈은 역외 조세 피난처에 만들어진 회사를 통해 전세계 식당, 호텔, 콘도 등 부동산을 되파는 과정을 통해 자연스레 돈세탁이 된다. 

어디 불법적인 자본 뿐일까. 아마존, 페이스북, 넷플릭스 등 자본이 가장 먼저 하고자 하는 일이 바로 세금을 덜내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이탈리아는 정직한 근로자가 60%의 세금을 내는 반면, 조 단위 수익을 내는 회사는 단 4%의 세금을 낸다고 한다. 그 세금을 덜 내는 방식 중 하나가 바로 '비싼 부동산'이다. 아파트를 사재기 하며 돈을 불리는 부도덕한 방식이야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레토릭'아닌가. 

거기에 이런 사모펀드에 출자하는 공공 자금들도 있다. 부동산 사모펀드의 출처를 찾아 전세계를 유랑한 끝에 도달한 곳은 뜻밖에도 우리나라, 대한민국이다. 바로 우리나라 연기금이 더 많은 수익을 내기 위해 기꺼이 부동산 사모 펀드 등에 투자를 해왔다는 것이다. 

도시는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할까? 

전세계를 돌며 부조리한 부동산 자본에 의해 쫓겨난 사람들, 그리고 그로 인해 죽은 도시가 되어가는 삶의 터전을 기록했던 레이라니 파르하가 도달한 건 바로 '인권'이다. 도시에서 일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살아가야 할 곳이 바로 도시가 아니냐고. 그런 의미에서 주거권은 곧 '인권의 문제'가 아니냐고.

우리가 살던 그 집의 집세를 올린 주인은 누구일까? 우리가 낸 돈이 우리의 주거권을 위협하게 된 세상. 영화 <펀드-누가 집값을 올리는가>는 인권의 차원에서 주거권을 들여다보고, 이제라도 힘을 모아 주거권을 지키자고 호소한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이정희 시민기자의 개인 블로그(http://5252-jh.tistory.com)와 <미디어스>에도 실립니다.
<EIFF 2019-푸시-누가 집값을 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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