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월 블랙리스트에 항의해 세종시 문체부 청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문화예술인들

2017년 1월 블랙리스트에 항의해 세종시 문체부 청사 앞에서 항의시위를 벌이고 있는 문화예술인들 ⓒ 성하훈

 
블랙리스트 실행자들에 대한 인사 문제로 인해 문화예술인들의 항의를 받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지난 7월 1일 단행된 국장급 인사 일부를 재검토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체부는 30일 '최근 문화예술현장의 블랙리스트 관련 문체부 국장급 인사(7.1.) 비판'에 대한 입장을 내고 블랙리스트 피해 문화예술인들의 항의를 일부 수용하기로 했다.
 
문체부는 지난 7월 1일 국장급 인사를 단행하면서 블랙리스트 수사외뢰 대상자들을 포함시켜 논란을 일으켰다. 당사자의 요청이라는 이유로 이들의 인사를 외부에 공개하지도 않았다. (관련 기사 : 블랙리스트 관련자 주요 보직 임명에, 문화예술계 화났다)
 
이에 블랙리스트 피해 단체들이 모인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비판 성명을 발표했고, 지난 7월 17일에는 이들과 문체부의 논의 기구인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제도개선 이행협치추진단'(이하 이행협치추진단) 회의에서 블랙리스트 피해자였던 민간위원들(김미도, 이양구, 이원재, 정윤희, 현린)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민간위원들은 문체부의 인사가 블랙리스트 재발 방지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지적했고, 블랙리스트 관련 '주의' 처분을 받은 예술정책관 인사에 대해서도 추가로 문제를 지적했다.
 
박양우 장관의 안일했던 인사
 

이에 대해 문체부(박양우 장관)는 "'2018년 10월 블랙리스트 관련 혐의로 수사 의뢰된 3인이 6개월 이상 대기발령 상태에 있는 등, 소속기관 국장급 5개 직위가 장기 공석으로 업무 수행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며 인사가 이뤄진 배경에 대해 해명했다.
 
수사 의뢰된 3인으로 지난 7월 1일 인사에 포함된 이들은 김아무개 국립한글박물관장과 김아무개 해외문화홍보원 해외문화홍보기획관, 용아무개 국립중앙도서관 디지털자료운영부장 등이다. 이들은 블랙리스트 문제가 공개될 당시 해외문화원장 등으로 있다가 귀국해 대기발령 상태에 있었다. 예술정책관은 조아무개 콘텐츠정책국장이 전보됐다.
 
 적폐청산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2018문화예술인 대행진 - 블랙리스드 블랙라스트(Blacklist Blacklast)’가 지난 2018년 11월 3일 오후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주관으로 여의도 국회 앞을 출발해 청와대 앞까지 열렸다.

적폐청산과 블랙리스트 책임자 처벌을 촉구하는 ‘2018문화예술인 대행진 - 블랙리스드 블랙라스트(Blacklist Blacklast)’가 지난 2018년 11월 3일 오후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 주관으로 여의도 국회 앞을 출발해 청와대 앞까지 열렸다. ⓒ 권우성

 
문체부는 "위 3인 관련 검찰 수사는 관련 재판 종결 이후에나 본격 진행될 것으로 예상되고, 수사 및 재판이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불안정한 상황에 있다"며 소속 기관 국장 직위는 기관장을 보좌하고, 문체부 본부 등 외부 기관과 원활한 업무 연계를 수행하는 자리로, 소속 기관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는 차원에서 위 3인에 대한 전보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어 "관련 법령에 따라 6개월 이상 대기발령을 지속하기가 어려운 사정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문체부는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문화예술현장과 이행협치추진단 민간위원들의 문제 제기와 계속되는 우려를 해소하기 위하여 장관과 차관이 7월 26일과 8월 9일 두 차례에 걸쳐 이행협치추진단과 관련 사항에 대한 논의를 진행했다"고 전했다.
 
이행협치추진단과 논의 결과 ▲ 관련 법령에 따라 6개월 이상 대기 발령을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의뢰자 3인 중 기관장 직위에 해당하는 1인과 인사검증 과정에서 면밀한 검토가 부족했던 예술정책관 전보 인사에 대한 재검토를 진행하기로 하고 ▲ 수사 의뢰자 3인에 대하여는 향후 검찰에서 형사 기소가 제기될 경우 즉시 직위해제 조치를 하고(국가공무원법 제73조의3), ▲ 불기소처분시에는 중징계를 하겠다는 당초 합의 내용('2018.12.31.)을 성실히 이행할 것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향후 블랙리스트와 같은 불행한 사태를 반복하지 않고, 신뢰받는 정부 부처로 거듭나기 위한 방안도 제시했다. ▲ 블랙리스트 관련자는 당시 담당 업무와 관련이 없는 직위로 배치하여 당시 담당 분야와는 다른 업무를 수행하고 ▲ 블랙리스트 사태 수습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신규자를 포함하여, 블랙리스트 재발방지 교육 계획을 수립해 지속하겠다는 것이다. 또 이행협치추진단과 함께 피해자 명예회복과 사회적 기억사업을 계획을 수립해 추진하고, 분야별 제도 과제 이행을 위하여 문화예술현장과 함께 더 긴밀한 소통을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문화예술계를 비롯한 안팎의 비판 여론에 부담을 느낀 문체부가 한 발짝 물러서는 모양새지만, 일단 문체부가 문화예술계의 항의를 받아들였다는 점에서 인사 재검토는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한 조치다. 다만 차관을 역임해 내부사정을 잘 아는 박양우 문체부 장관의 인사가 안일했다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문화예술인들 역시 문체부의 의지에 의구심을 나타내면서 계속 지켜보겠다는 분위기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의 한 관계자는 "주요보직을 받은 사람만 조치가 취해질 걸로 알고 있다"며 "특별한 보직이 아닌 사람들은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라면서 앞으로 문체부의 태도를 주시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블랙리스트 실행자가 예술대학 총장 임명돼
 
한편 블랙리스트 문제는 최근 문체부에서 퇴직한 블랙리스트 관련자가 국내 한 대학 총장에 임명돼 반발이 일어나고 있는 등 여전히 논란이 진행되고 있다. 여론의 관심이 잦아들면서 피해자들은 아픔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관련자들은 처벌은커녕 영전하는 모양새까지 나타나면서 문화예술인들에게 상실감을 안겨주고 있는 것이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지난 8월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에 선임된 블랙리스트 관련자 송수근 전 문체부 차관에 대한 임명 반대 운동에 나서겠다며 9월 2일 계원예대 앞에서의 기자회견을 예고했다. 송 총장은 지난 8월 1일 계원예술대학교 총장에 임명됐고, 9월 2일 취임식을 열 예정이다. 계원예대는 일부 학생들을 중심으로 총장 임명을 반대하는 비상대책위원회가 꾸려진 것으로 알려졌다.
 
송 전 차관은 블랙리스트 실행에 미온적이었던 문체부 관료들이 박근혜 정권에 의해 대거 경질된 후 기획조정실장에 임명돼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시행에 있어 실질적 역할을 했다.
 
법원 판결문 등에 따르면 송 전 차관은 실장에 임명된 후 당시 청와대의 그동안의 지시사항을 파악해 '건전문화예술 생태계 진흥 세부 실행계획'이라는 제목의 보고서를 만들어 당시 장관에게 보고했고, 장관을 통해 보고를 받은 당시 김기춘 비서실장은 추진하라고 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련 기사 : "용서가 안된다"던 청와대가 만든 '극비 리스트')
 
그 후 송 실장은 문체부에 설치되는 '건전 콘텐츠 활성화 TF'의 단장을 맡아 매주 1회씩 개최하는 TF 회의를 통해 김기춘 실장에게 보고된 내용이 제대로 이행되는지 점검하고 이를 장관과 청와대 교문수석실에 계속 보고했다.
 
송 실장의 '문예기금' 관련 문화예술분야, '세종도서' 관련 미디어 분야, 영화진흥위원회 관련 콘텐츠 분야에 대한 종합 대책은 실제 그대로 시행됐고, 그 결과 2015년도와 2016년도 예술위의 문예기금 지원대상자 선정은 블랙리스트에 따라 결정됐다. 

문화민주주의실천연대는 송 총장 임명 반대를 위한 서명도 받고 있는데, 블랙리스트로 문화예술인들의 배제와 차별에 앞장선 사람이 예술대학 총장을 맡는 것이어서 논란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블랙리스트 문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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