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저녁 서울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 축하공연

29일 저녁 서울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열린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 축하공연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20~30대 여성 관객이 상당히 많이 참여하는 영화제다. 매해 상영관은 젊은 여성들로 가득 차고, 감독과의 대화 등도 늘 열띤 분위기가 가득하다. 여성을 주제로 한 영화제로서 독특한 자기 색깔을 구현하며 안정적으로 잘 정착한 영화제로 꼽힌다.
 
올해 21회를 맞는 서울국제여성영화제(이하 여성영화제)가 29일 저녁 서울 마포구 상암동 문화비축기지에서 변영주 감독과 김민정 배우의 사회로 개막식을 갖고 막을 올렸다. 'the튠'의 개막축하공연을 시작으로 오석근 영화진흥위원회 위원장의 축사, 올해의 보이스상 시상, 박남옥상 시상, 개막선언 순으로 이어졌다.
 
변영주 감독 "어떤 소식에 걱정하지 말고 편히 즐기길"
 
오석근 영진위원장은 축사를 통해 "영화제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관객이고, 관객들이 영화를 얼마만큼 느끼고, 즐리고 영화를 통해 느끼고 삶에 영향을 미치느냐가 영화제의 핵심"이라며 "관객들의 질문과 박수와 비판이 영화인들이 다음 영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된다"면서 "여성영화제가 여성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드는 데 중요한 밑거름이 되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개막식에서는 김은실 이사장이 나와 우리 사회 여성들에게 희망을 준 개인과 단체를 대상으로 '올해의 보이스상'을 시상했다. 여성의 목소리를 내는 데 돋보인 개인과 단체들이다. '미투 운동'의 상징적 인물인 서지현 검사를 비롯해 사립유치원 문제에 발벗고 나선 '정치하는 엄마들',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2018 총여학생회 폐지 반대와 재건을 위한 네트워크' 등이 수상했다.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박남옥상을 수상한 장혜영 감독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식에서 박남옥상을 수상한 장혜영 감독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한국 최초의 여성감독인 고 박남옥 감독을 기리기 위한 박남옥상 수상자로는 유튜버이자 작가인 장혜영 감독이 수상했다. <어른이 되면>을 연출한 장혜영 감독은 수상 소감을 통해 "영화가 세상을 바꾸지는 못하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꿀 수 있다"며 변화하는 세상을 향한 바람을 전했다.
 
지난해 20회 행사를 치른 여성영화제는 21회를 맞아 탄탄한 모습이 돼야 했지만 지난 3월 집행위원장 연임 문제로 갈등이 생기면서 내분이 일기도 했다. 여성영화제를 처음 시작했던 이혜경 이사장이 사퇴하고, 새로 김은실 이사장과 변재란 조직위원장, 박광수 집행위원장, 권은선 부집행위원장의 집행부가 구성되면서 다소 서둘러 준비한 영화제가 됐다.
 
하지만 전임 집행위원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밝히며 갈등을 겪은 주요 여성 영화인들의 불참은 눈에 띄었다. 이를 의식한 듯 변영주 감독은 "어떤 소식에 걱정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마음 편히 즐겨달라"며 영화제가 정상적으로 개최된 것에 방점을 찍었다.
 
개막작은 '가부장제에 맞서는 젊은 여성' 다룬 작품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신은 존재한다, 그녀의 이름은 페트루냐>

21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으로 상영된 <신은 존재한다, 그녀의 이름은 페트루냐>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개막작은 마케도니아 영화 <신은 존재한다, 그녀의 이름은 페트루냐>가 상영됐다. 2014년 실제 발생한 사건을 모티브로 제작된 영화다. 동유럽의 그리스 정교 세계에서 행해지는 구세주 공현 축일 이벤트를 통해 심각한 곤경에 빠진 한 여성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고 있다. 신부가 십자가를 물에 던질 때 그것을 잡는 자에게는 한 해 동안의 행운과 번영이 약속되는데, 여성 주인공 페트루냐가 그 십자가를 잡으면서 일어나는 거센 논란이 내용이다.
 
여성은 그 이벤트에 참여할 자격이 없다는 사회적 인식 때문에 남성 참여자들은 그녀에게서 십자가를 빼앗으려 난리고, 지역 공동체는 일제히 그녀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페트루냐는 십자가를 내놓길 단호히 거부하면서 지역에서의 논란이 커진다.
 
남성 중심 사고에 맞서 페트루나를 도우려는 여성 방송인의 고군분투와 함께 그를 회유하기 위해 불법적인 행동을 마다하지 않는 경찰과 남성중심 사회의 모습은 중세 사회를 옮겨 놓은 듯한 분위기를 보여준다. 가부장제에 맞서 끝까지 십자가를 돌려주지 않고 맞서는 젊은 여성의 모습을 통해 여성영화제가 갖는 의미를 잘 살려낸 작품이었다.
 
여성영화운동 '바리터' 30년 재조명
 
개막작을 시작으로 올해 여성영화제에서는 오는 5일까지 31개국 119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한국영화 100년을 기념해 한국영화 속 여성의 얼굴들을 조명하는 프로그램과 폴란드의 여성영화, 30년을 맞는 한국여성영상집단 '바리터 특별전' 등이 주목되고 있다.
 
첫 번째나 두 번째 작품을 만든 여성감독을 대상으로 한 국제장편경쟁에는 8편의 영화가 상영된다. 여성의 몸과 사랑을 성찰하는 안케 블론데 감독의 <도리아 B의 베스트 앨범>, 무너진 집에 갇힌 소녀를 통해 소녀성을 질문하는 아만다 크레이머 감독의 <레이디월드> 등 젊은 여성 감독 작품들이 눈에 띈다.
 
한국 장편경쟁에는 김유리 감독의 <영하의 바람>, 권우정 감독의 <까치발>, 이길보라 감독의 <기억의 전쟁> 등 7편이 올랐다.
 
 폴란드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자유노조의 잊혀진 전사들>

폴란드 특별전에서 상영되는 <자유노조의 잊혀진 전사들> ⓒ 서울국제여성영화제

 
폴란드 특별전은 강대국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가 한국과 비슷한 폴란드의 여성영화라는 점에서 관심을 모은다. 홀로코스트를 경험한 감독이 수용소 내 여성 포로들의 삶을 극화한 1948년 작 <마지막 무대>, 공산화된 폴란드 하층계급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려낸 1981년 작 <외로운 여인>, 폴란드 여성운동사를 그린 <자유노조의 잊혀진 전사들>과 <우먼파워> 등이 상영된다.
 
한국 영화운동에서 여성주의영상집단으로 주목받았던 <바리터>의 30년을 되돌아보는 특별전도 의미 있는 프로그램이다. 영화아카데미 출신 김소영 감독과 이화여대 변영주 감독을 주임으로 서선영, 도성희, 김영, 홍효숙, 문혜주, 임혜원이 참여해 1989년 만들어진 '바리터'는 최초 여성집단창작자집단이기도 했다.

지난 30년의 의미를 재조명하면서 1990년 만들어진 단편영화 <작은 풀에도 이름이 있으니>를 상영한다. 지금은 한국영화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바리터 구성원들이 참여하는 스페셜 토크 행사도 9월 1일 열릴 예정이다.
 
한편 개막식에 참석하지 못하고 영상으로 축하를 대신했던 박원순 서울시장이 개막식 후 이어진 리셈션에 참석해 축사를 전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올해 여성영화제는 5월에 열리던 행사가 8월도 옮겨진 데 이어 장소도 기존 신촌에서 상암동으로 이동해 메가박스 월드컵경기장에서 영화제의 모든 행사가 진행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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