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버링 무비는 영화 작품을 단순히 별점이나 평점으로 평가하는 것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넘버링 번호 순서대로 제시된 요소들을 통해 영화를 조금 더 깊이, 다양한 시각에서 느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편집자말]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

▲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 EBS 국제다큐영화제 2019 타이틀 ⓒ EIDF


*주의! 이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01.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앞에 지어진 크고 아름다운 유리 피라미드. 루브르 박물관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알지 못하더라도 이 유리 피라미드의 모습만큼은 다양한 미디어를 통해 접해 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완성시킨 이가 프랑스인 혹은 유럽 사람이 아니라 중국계 미국인 이오밍 페이(I.M.Pei)라는 점이다.

20세기 주요 건축가 중 한 명으로 현대 건축 역사에 이름을 남긴 거의 유일한 중국인이자, 정통파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장인으로까지 추앙 받는 존재. 미국 내셔널 갤러리 동관, 인디애나 미술관, 달라스 시청, 홍콩 중국은행 타워, 미국 로큰롤 명예의 전당 등을 직접 건축한 그는 현재까지도 많은 건축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남아 있다.

페이는 지난 5월 15일 102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생전에 많은 유명한 건물을 건축했지만, 그 중에서도 앤 메이크피스의 작품 <아이엠 페이의 건축 세계>가 조명하는 것은 쑤저우 국립 박물관이다. 그의 작품 세계에 대한 기본 정신을 바탕으로 건축된 이 건물은 페이의 마지막 걸작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이 다큐멘터리를 관통하는 핵심 주제는 전통의 유지와 변화의 모색 사이에서 가져야 할 건축가의 방향성에 대한 문제인데, 이는 아이엠 페이가 평생 고민해왔던 문제임과 동시에 마지막 프로젝트라 할 수 있는 쑤저우 박물관 프로젝트의 핵심이기도 하다. 작품의 서두에서는 이 문제와 관련한 아이엠 페이의 인터뷰가 하나 등장하는데 이는 러닝타임 속에서 반복적으로 강조되는 그의 철학과도 같다.

'전통을 존중하기 위해서는 변화도 받아들여야만 해요.'
'역사를 생생하게 만들면서도 미래로 나아갈 방법은 뭘까요?'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 EIDF


02.

실제로 페이가 루브르 박물관 앞에 현 피라미드 형상의 유리 구조물을 세운다고 했을 때, 파리의 모든 시민들이 그를 비난했다고 한다. 구조물의 형태가 파리라는 공간이 갖고 있는 전통성을 해치는 것은 물론, 그런 상상력을 펼치려는 자가 이방인이자 동양인이라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그때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건축가의 대열에 올라 있었기에 명성이나 이름값의 문제는 아니었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그의 건축물은 이제 파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되었지만, 당시의 프랑스 사회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이다.

이 경험을 통해 페이가 얻은 것은 건축가의 역할, 그 본질에 대한 것이었다고 한다. 건축가의 일이라는 것이 단순히 하나의 구조물을 설계하고 짓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을 공유하고 실제의 삶을 살아내는 이들과의 소통을 먼저 해결해야 한다는 것임을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홍콩에 있는 중국은행 타워를 지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이 건물의 형태로 중국을 상징하는 대나무를 선택했다. 자랄 때마다 마디를 더하며 하늘을 향해 솟아오르는 대나무의 모습이 성장하는 중국의 위상을 표현하기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현지의 중국 사람들은 외형보다 풍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문제는 그의 설계가 지역의 풍수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오히려 풍수와 관련해서는 최악의 위치와 모습을 했다는 지적이 있었다고. 중국은행 타워 역시 현재는 많은 이들의 찬사를 받고 있지만 건축 당시에는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루브르 박물관에 이어 이번에도 역시 건축에 있어 사람들을 설득하고 결과물을 보여줌으로써 취향을 강요하는 현지인들과 타협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그는 알게 되었다고 한다. 다만 그의 마음 속에서 변하지 않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면, 그것은 바로 여론을 수렴하는 일만큼이나 더욱 중요한 것은 옳은 방향으로 바꿀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한다는 점이었다. 언제까지나 과거에 붙잡혀 있을 수는 없으니까.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 EIDF


03.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의 내용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쑤저우 박물관 프로젝트는 위에서 언급한, 그의 다른 모든 작업들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모두 복합적으로 결합돼 쉽지 않은 작업이었다. 일단, 쑤저우가 2500년의 긴 역사를 가진 전통을 중시하는 도시라는 것이 문제였다.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고령 주민들은 자신의 모든 기억이 녹아있는 도시를 떠나려 하지 않을 뿐더러 그곳의 모습이 급격하게 변하는 것에 거부감을 갖고 있었다. 외형적으로는 수로를 낀 형태로 물로 가득한 도시라는 점과 오래된 도시였던 만큼 나무와 기와, 벽돌만으로 건물이 지어져 왔다는 환경이 그에게는 또 다른 문제가 되었다.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는 그가 핵심이라고 생각하는 유지와 변화 양쪽 모두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진행 과정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 역시, 앞서 그가 겪어왔던 것들과 다르지 않은 전통의 유지와 변화 사이의 갈등이었다. 특히, 쑤저우 시의 관계자들은 지붕을 기와로 덮는 쑤저우의 전통을 무시하고 돌로 천장을 마감하려는 그의 아이디어에 크게 반발했다. 빠르게 변화하고 있는 중국의 혁신적 정신을 표현하기 위한 뜻에서 벽이 지붕이 되고, 지붕이 벽이 되는 방식을 선택한 페이의 의지에 정면으로 반하게 된 것이다.

다만, 이와 같은 문제에 대해 페이는 자신의 지난 경험을 거울 삼는 모습을 보여준다. 전체를 수정할 수는 없지만 그 대신 담당자들의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하는 모습으로 다가가 일부 조정을 거치며 함께 만들어 가고자 노력한 것이다. 특히, 건물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이 건물이 박물관으로서의 소명을 다할 수 있도록 내부에 전시될 조각의 배치까지 신경 쓰는 모습으로 모두의 이해를 구한다.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 EIDF


04.

그가 쑤저우 시로부터 쑤저우 프로젝트를 제안 받았을 때 나이는 이미 80대 후반이었다. 일반적으로는 일선에서 물러나 여생을 즐겨도 좋을 시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이 프로젝트를 거절하지 못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는 명나라 시절부터 500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건물이 중국에 없었다는 점이다.

중국 건축의 부흥기에 지은 건물이라고 할 만한 건물이 없었기에 이에 대한 아쉬움으로 자신이 대표가 되어 조국을 위한 새로운 프로젝트를 이끌고 싶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마오쩌둥의 현대화 작업이나 문화대혁명 시기의 분위기, 건축 방식에 대한 반발도 함께한다. 급진적인 개발만 쫓다 보니 창의적이지 못하고 천편일률적인, 날림으로 급하게 세운 말도 안 되는 건물들이 중국 전역에 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페이는 이에 대해 큰 실망감을 갖고 있었다.

두 번째 이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종류의 것이었는데, 쑤저우라는 도시가 주는 의미가 큰 영향을 미쳤다. 쑤저우는 페이 가문이 600년이 넘도록 살아왔던 터전이었고, 그 역시 어린 시절을 통해 자신의 삶의 방향을 만들어준 곳이나 다름이 없었다. 실제로 박물관 내에 마련된 한 연못은 그가 어린 시절 뛰어 놀던 장소를 그대로 보존해 둔 공간으로 마련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어쩌면 자신의 마지막 작품이 될지도 모르는 프로젝트를 자신의 모국에 자신의 고향에 세운다는 점에서 개인적인 의미가 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70년에 가까운 세월을 미국에서 보낸 페이는 이 곳 사람들에게 외지인이나 다름없었을 것이지만, 그에게 있어 쑤저우는 영원한 마음의 안식처와도 같았다.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다큐멘터리 <아이엠 페이의 건축세계> 스틸컷 ⓒ EIDF


05.

생전에 그는 자신의 건축물을 두고 모더니즘이라든가 포스트모더니즘이라든가 하는 용어로 구분짓는 행위에 대해 대단히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페이는 그런 용어보다는 어떻게 하면 건축을 좀 더 삶의 가까운 일부로 적용할 수 있는가 하는 지점과 변화와 유지 사이에서 어떤 방법을 찾아내 나아갈 수 있는가 하는 일이 자신에게는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미국 건축계에 파란을 일으키며 현재까지도 미 건축 역사상 최고의 건물 중 하나로 평가 받는 존 F. 케네디 박물관을 건축한 것도 페이였고, 중국의 개혁개방 이후 외국 국적 건축가에게 처음으로 의뢰된 건물인 향산 호텔 작품을 남긴 것도 페이였다. 세계 각국에서 이런 중요 프로젝트를 그에게 맡길 수 있었던 것은 그의 그런 철학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했고, 그 철학을 결과적으로 세상에 내놓았기 때문은 아닐까 하고 영화를 보고 나면 생각하게 된다.
EIDF 다큐멘터리 EBS 아이엠페이 건축가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영화가 숫자로 평가받지 않기를 바라며 글을 씁니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