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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자도 내 맘대로 맞춤 주문하는 시대. 하나의 정답만을 강요하는 결혼 제도에 끼워 맞춰 살아야만 할까? 좋은 것은 취하고 불편한 것은 버리면서 나에게 꼭 맞는 결혼 생활을 직접 만들어가려 한다.[편집자말]
부부는 일심동체라는 말에 공감할 수 없다면 우리는 불량 부부일까? 결혼 후 4년 동안 함께 살다 보니 누구보다 서로를 가장 잘 아는 파트너가 됐지만,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서로의 취향과 방식을 이해하는 게 너무 어려울 때도 있다. 

모든 것을 함께 하거나 이해하기에 우리는 개와 고양이만큼이나 달랐다.

개와 고양이가 쉽게 친해질 수 없는 이유는 서로를 싫어해서가 아니라 의사소통 체계가 다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개는 기분이 좋을 때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지만 고양이는 기분이 나쁠 때 꼬리를 흔들어 바닥을 탁탁 때린다. 

사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사랑할 때 굳이 일심동체가 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어쩌면 다를 수밖에 없는 두 인격체가 매사에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강박이 결혼생활을 더 어렵게 느끼게 해왔던 것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다행히 세상에는 성향이 다른 두 동물이 한 집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는 모습도 드물지 않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한 명은 활기차게 산책하러 나갔다 와야 기분이 가뿐해지고, 다른 한 명은 집에서 나른하게 졸고 있는 걸로 만족하더라도, 각자가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함께 살아가고 있다.   

고양이처럼 고요히 공감하는 아내 
 
원하는 자리에 조용히 머무는 고양이
 원하는 자리에 조용히 머무는 고양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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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부부는 고양이 세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고양이를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나와 너무나 다르다는 걸 알고는 깜짝 놀라곤 했다. 고양이와의 소통은 눈빛에서 눈빛으로 흐르며, 대개는 아주 고요한 가운데 이루어졌다. 내가 거실 테이블에 앉아 있을 때 고양이들은 테이블 반대편이나 책장, 또 바닥에 누워 각자의 시간을 보냈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함께 있다는 느낌이 충만해 행복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남편은 고양이들의 그런 '고양이다운' 반응을 다소 심심하고 밍밍하게 느꼈던 것 같다. 그는 고양이와 조용히 교감하기보다는 명확하고 또렷하게 소통하기를 원했다. 물론 고양이는 그의 욕구에 그다지 부응하지 않았고, 그가 '앉아'나 '발'이라고 말하면 고양이는 멀뚱멀뚱 앉아 있다가 앞발을 들어 그루밍을 했다. 결국엔 남편이 고양이들의 방식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남편은 나에 비해 고양이들의 욕구나 건강 변화에도 둔감한 편이었다. 나는 고양이를 유심히 살피고 부족한 것이나 원하는 것을 알아서 충족해 주려 노력했다. 고양이가 밥을 안 먹으면 초조하고 불안했다. 집에서 조금만 큰 소리가 나도 고양이가 스트레스를 받을까 염려하고, 어딘가 아파 보이면 빨리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그를 재촉하곤 했다. 

그럴 때 남편은 '괜찮아 보이는데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 해?'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나는 그가 원래부터 동물과 친숙하지 않아 고양이의 신호를 잘 알아채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강아지처럼 활기차게 소통하는 남편 
 
우리 가족이 된 개와 고양이
 우리 가족이 된 개와 고양이
ⓒ 박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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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우리는 큰 개를 한 마리 입양했다.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일이었고 남편이 무척 원하기도 해서 8개월에 파양된 리트리버를 데려오게 됐다. 나는 동물은 가리지 않고 좋아하기 때문에 개와 함께하는 생활도 자연스레 스며들 거라 생각했는데, 개의 방식은 내게 익숙한 방식과 많이 달랐다.

가장 큰 변화는 프리랜서인 내가 하루 종일 집에서 일을 하는 동안 개가 잠시도 내게서 눈을 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한 공간에 머물러도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듯한 고양이와 달리, 개는 오로지 나만 지켜보다가 슬며시 잠이 들고, 산책이라도 나갈라 치면 신이 나서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했다. 한 자리에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이 익숙한 나는 개의 시선을 느낄 때마다 무언가라도 해야 할 듯해서 곤란한 기분이 들곤 했다. 

하지만 남편은 드디어 제 판이 깔렸다는 듯 신바람이 났다. 그는 출근 전에 새벽같이 일어나 개를 산책시키고 오고, 퇴근한 뒤에도 바로 개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낮에도 산책을 한 번 나갔다 오라며 내게 당부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산책할 때 개와 함께 달리고, 집에 돌아온 뒤에도 기본적인 훈련을 하거나 장난감으로 놀아주며 시간을 보냈다. 그저 각자의 방식대로 함께하는 것에 만족하는 나와 달리, 남편은 반려동물과 적극적으로 소통하고 함께 에너지를 분출하는 활동을 즐거워했다. 

무엇보다 나는 고양이보다 덩치가 크고 표현이 또렷한 개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비교적 둔감했다. 하지만 남편은 표현이 없는 고양이를 대할 때와 달리, 개를 대하며 어린아이 다루듯 온갖 걱정을 했다. 밥을 안 먹는다 싶으면 해결책을 찾느라 분주했고, 슬개골 탈구를 미리 예방해야 하니 집에 매트를 깔아야 한다고 야단이었다. 사실, 내가 고양이를 대하며 했던 행동을 딱 그대로 하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무심해 보이던 태도가 고양이에게 애정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으나, 공정한 깨달음을 위해 할 수 없이 말했다.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야?" 남편도 대답할 말이 없어 웃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서로 다른 행동을 했는지 얼떨결에 이해하게 됐다. 

반려동물과 살아가는 미래 

우리는 각자 일을 하고 있지만 결혼 후에는 함께 저금을 해왔다. 돈을 쓸 때도, 모을 때도 온전한 내 것이 아니라 공동의 소유인 셈이다. 그래서 남편과 이전에 그런 얘기를 한 적이 있었다. 우리에게 3천만 원의 용돈이 모인다면 뭘 하고 싶으냐고. 남편은 차를 사고 싶다고 했고, 나는 여행을 가고 싶다고 했다. 어차피 없는 돈이니, 서로가 원하는 일을 위해서 양보할 수는 있다고 가상의 선심을 쓰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최근에 개와 고양이를 기르면서 우리는 동물들과 조금 더 편하고 자유롭게 지낼 수 있는 집을 함께 떠올려보곤 한다. 작게라도 테라스나 마당이 있는 교외의 집에 살면서, 어떻게 출퇴근을 하고 사회생활을 해나갈지 진지하게 고민하기도 한다. 

좋아하는 것과 취미, 생활 방식이 다른 우리는 부부이기 이전에 각자의 존재로서 스스로에게 충실하게 살아가고 싶다. 하지만 우리의 모든 것이 하나로 일체되지 않더라도 서로를 존중하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공존할 수 있다고 믿는다. 때로는 손을 잡고 함께 걷다가, 때로는 혼자서 길을 빙 돌아 각자의 관심사에 집중하기도 하는 것은 오히려 우리가 합리적으로 함께할 수 있는 약속이기도 하다. 

아마 우리 집에서 가족이 된 개와 고양이들처럼, 우리 역시 언제까지고 서로 다른 채로 지내게 될 것이라고 나는 여긴다. 하지만 가끔 다른 길로 걷더라도 우리에게는 결국 함께 지내고 싶은 둥지가 있고, 같이 행복을 나누고 싶은 공통의 미래가 있기에 여전히 '부부'로서 살아가고 있다. 

태그:#개, #고양이, #신혼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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