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과 자유를 기치로 재즈 신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블루노트 레이블이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혁신과 자유를 기치로 재즈 신에 거대한 족적을 남긴 블루노트 레이블이 올해로 창립 80주년을 맞았다 ⓒ 마노엔터테인먼트

 
지난 8월 15일 음악 영화 한 편이 개봉했다. 막이 오른 지 이제 5일. 전국의 상영관은 단, 8개가 남았다. 스펙터클, 오락성, 압도적인 줄거리를 내포하지 않은 탓일까? 공개 직전 숱한 음악 애호가들의 기대를 샀던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스크린 수는 여러모로 아쉬움을 준다. 하지만 안타까움을 속단하기는 이르다. 멀고도 험난한 길을 좇아 시원한 좌석에 앉게 되면 꽉 채운 사운드로 흘러나오는 음악과 말의 향연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블루노트 레코즈를 통해 발매된 음반들

블루노트 레코즈를 통해 발매된 음반들 ⓒ 마노엔터테인먼트

 
펼쳐내고 쏟아내는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블루 노트 레코즈>(이하 블루노트)는 재즈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아니 깊게 받아들였을 음반사 중 하나다. 지금도 카페나 거리에서 종종 흘러나오며 사랑 받고 있는 'Don't know why'의 노라 존스와 두말하면 입 아플 재즈 거장 마일스 데이비스, 존 콜트레인, 허비 행콕, 웨인 쇼터 등 많은 뮤지션이 모두 블루 노트를 통해 음악을 시작했고, 진행했으며, 이곳을 거쳐 갔다.
 
극은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진행된다. 2017년 레이블 소속 뮤지션들이 함께 만든 기념작 < Our Point Of View >의 녹음 현장에서 진행된 재즈와 펑크를, 재즈와 일렉트로니카를 결합하며 경계를 없앤 허비 행콕과 10여 차례 그래미상을 받으며 변치 않는 관록의 힘을 보여주고 있는 웨인 쇼터의 인터뷰는 1939년 뉴욕에서 결성된 블루노트의 첫 시작을 되짚는다.
 
 창립자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

창립자 알프레드 라이언과 프랜시스 울프 ⓒ 마노엔터테인먼트

 
"잘 팔리는 시장에 있었던 것도 아니고, 잘 팔리는 앨범을 만들려고 했던 것도 아니다."

 
블루노트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온 알프레드 라이언과 전문 사진가 프랜시스 울프가 합심하여 만들었다. 그들이 내세운 가치는 '자유'와 '혁신'. 팔기 위한 음악이 아닌 음악을 위한 음반을 만들기 위해 연주자들에게 리허설을 필수 절차로 제시했고, 이에 따른 별도의 비용도 챙겨 전했다. 히트가 목적이 아니었기에 전속 계약에 있어서도 망설임이 없었다. 상업성 부재를 이유로 그 어떤 도장도 찍지 못하던 피아니스트 델로니어스 몽크에게 길을 열어준 건 다름 아닌 블루 노트였다.
 
이 외에도 젊은 뮤지션 로버트 글래스퍼, 데릭 호지, 켄드릭 스콧이 바라본 블루노트의 현재와 그 존재 가치를 재고하는 말들은 사이사이 펼쳐지고 쏟아지는 강렬하고 탄도 높은 재즈 선율과 만나 스펙터클 너머 청각의 즐거움을 선사한다.
 
 프랜시스 울프가 직접 찍은 사진들. 영화의 흐름을 만드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프랜시스 울프가 직접 찍은 사진들. 영화의 흐름을 만드는 주요 요소 중 하나다 ⓒ 마노엔터테인먼트

 
역사를 밟아 나가다

또한 86분간 영화는 블루노트의 역사를 밟아 나가며 창립 80주년의 위엄을 포착한다. 앞서 언급한 델로니오스 몽크, 마찬가지로 피아니스트인 버드 파웰, 드러머 아트 블레키, 마일스 데이비스가 블루노트의 초창기 부흥을 이끌었다면 1960년대 비틀즈, 밥 딜런 등이 끌어온 록의 발현은 그들 커리어의 쇠퇴를, 종국에는 해체를 일으킨다. 이러한 흥망성쇠는 그저 나열되지 않는다. 연대기별로 당시를 대변할 수 있는 노래들이 군데군데 퍼지며 재즈의 역사를 읊고 창립자 프랜시스 울프가 직접 찍은 현장 사진들은 그 시대를 보여주는 입체적인 통로다.
 
이를 통해 이제는 트레이드마크가 된 블루노트만의 음반 커버를 이해하게 되고 그래픽 디자이너 레일드 마일즈가 확립시킨 그들만의 커버 폰트를 흡수하게 된다. 시류와 대중이 아닌 자신들의 방향에 따라 음악을 만들었던 블루노트가 시류와 부딪혀 잃게 된 것들을 뒤좇으며 뮤지션들의 인터뷰를 섞고 미국 대중 음악사를 풍부하게 녹여냈다. 근사한 별미는 성공과 실패, 재결합과 고전 등 포인트가 되는 지점에서 박진감 있게 터져 나오는 재즈 연주. 음악 다큐멘터리가 뽐낼 수 있는 가장 품격 있는 카타르시스를 담았다.
 
 영화는 선, 후배 뮤지션이 모여 레코딩을 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영화는 선, 후배 뮤지션이 모여 레코딩을 하는 장면을 중심으로 흘러간다 ⓒ 마노엔터테인먼트

 
제한을 없애는 것에 대하여

'타협하지 않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했다'는 블루노트의 캐치 프레이즈는 한 번의 해체 및 침체기를 발판 삼아 세상과의 조우를 선언한다. 그건 바로 힙합을 통한 부활이다. 어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사이프레스 힐, 드라 소울, 최근 켄드릭 라마까지 그들의 음악은 새 활로를 통해 복제되고 변형되어 나아갔다. 거장의 뒤를 이을 신생 음악가의 발굴 또한 계속됐다. 말 그대로 블루노트의 재즈는 현재 하나의 장르를, 공식을 전파 중이다.
 
세밀하게 블루노트를 분석하는 탐구형 작품은 아니다. 해석은 짧고 관조는 길다. 블루노트의 역사를 살았고 살아갈 음악가들의 생생한 인터뷰와 끊임없이 흘러나오는 콘서트 실황과 같은 재즈 연주. 제한을 없애고 재즈의 즉흥성, 유연성을 통해 세상과 소통한 재즈 레이블의 블루노트의 그 날들을 전시하듯 들려준다. 질문. 재즈란, 음악이란 무엇일까? 여기 향유하는 소리의 맛만을 따라 열정을 쏟은 일대기가 있다. 장르의 마니아도 입문자도 땀 흘리기 좋을 음압들이 잔뜩 터져 나온다. 재즈와 음악의 본질과 함께 말이다.
블루노트레코즈 음악 영화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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