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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 징용 피해에 대한 개인 청구권 소멸 여부를 둘러싼 한일 양국 간의 분쟁이 극에 달하고 있다. 논란의 쟁점은 결국 한반도를 식민지화 했던 일제의 만행에 대한 청산 여부이다. 청산은 크게는 공식적인 사과와 구체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으로 나눠질 수 있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시원스러운 게 없는 실정이다.

하지만 일본 측은 이미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고 말한다. 그러한 주장의 가장 큰 맹점은 그들의 징용 행위에 대한 피해 규모를 그들 스스로도 모른다는 점이다. 아니 모른다기보다 파악조차 하려 않고 있다. 그 이면에는 자신들이 한 행위에 대한 철저한 은폐 의도가 깔려 있을 것이다.

국무총리실 산하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 진상규명위원회'가 2004년부터 2015년까지 조사한 바에 따르면 강제 징용 피해자는 14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이 숫자는 그나마 몇 가지 증거 자료들이 제출되어 인정받은 사례들이고, 실질적인 피해자는 훨씬 많다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런데 만약에 일본 측이 은폐할 뿐만 아니라, 우리 쪽에서도 해방 직후에 벌어진 일이라 피해 구제의 대상이 아니라고 여기는 사건이 있다면 믿을 수 있을까?

묻어뒀던 역사,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
  
1945년 8월, 해방으로 온 나라 백성들이 기쁨에 빠졌던 순간에 수많은 이들이 거대한 배와 함께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은 사건이 벌어졌다. 하지만 그들이 죽어야만 했던 이유는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고, 가해자 혹은 사건의 책임이 있는 이들로부터 어떤 배상도 사과도 받지 못했다. 바로 징용노동자들을 태우고 한반도로 향하던 귀국선 '우키시마호' 폭침 사건이다.

이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 <우키시마호>(감독 김진흥, 제작 메이플러스)가 오는 9월 개봉한다. 김대중 대통령 서거 10주년을 맞이하여 제작된 다큐멘터리 <민주화의 불꽃 김대중>을 감독한 김진홍 감독의 작품이다. 그동안 주목 받지 못하고 잊혔던 한 많은 이들의 이야기가 이번 다큐멘터리 영화 상영을 계기로 문제 해결의 전환점을 맞길 바란다. 
  
1945년 8월 15일 태평양전쟁을 일으킨 일본은 공식적으로 항복을 선언했다. 그날 항복을 선언하는 일본 천황의 육성이 라디오를 통해 전파되면서 우리 국민들이 환호하는 광경은 아주 익숙한 장면이다. 하지만 그 시점으로 일본의 만행은 중단된 것이었을까? 해방의 기쁨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비극의 시작이었던 사건이 있었다.

8월 22일 일본 북동부 아오모리현 오미나토 항에는 귀향의 꿈에 부푼 한국인 승선자 3725명(일본 정부 추산)을 태운 우키시마호(4702톤)가 부산항으로 출발했다. 그런데 항해 도중 갑자기 교토부 마이즈루만으로 배를 돌렸고 8월 24일 기항 중에 배가 폭발하여 침몰했다. 이 사고로 배에 탄 한국인 귀향자 524명과 일본 해군 25명이 수장되었고 더 많은 이들이 실종되었다.

당시 한국 정부가 있었다면 이 사건은 어마어마한 사건으로 부각되었을 것이다. 많은 이들이 한스러운 죽임을 당한 것이다. 하지만 식민지 치하에서 이제 벗어나 채 열흘이 안 된 한반도에서 이들의 억울한 죽음을 항의하고 사고의 원인을 밝힐 힘은 없었다.

당시 일본 정부는 미군이 설치해 놓은 기뢰 때문에 침몰했다고 주장했지만 일본이 고의로 격침시켰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배에는 부산으로 가는 해도도 없었으며 충분한 연료조차 실리지 않았다. 결국 배는 부산으로 향하지 않았고 일본 열도 연안을 따라 남하하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사고 이후 일본 정부는 선체 인양 등 제대로 된 사고 수습도 하지 않았다.

우키시마호 사고는 수십 년간 묻혀 있었다. 1992년 희생자와 유족들이 일본 법원에 국가배상청구소송을 했지만 일본 법원은 일본 정부의 안전 배려 의무 위반을 사유로 생존자 15명에 1인당 300만 엔 배상을 판결했을 뿐 가해자의 어떤 공식적인 사과도 없었다. 더 기가 찰 노릇은 2003년 이 판결마저 오사카 고등재판소에서 원고 패소 판결이 났을 뿐 어떤 진상규명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무리 가해국 일본에서 열린 재판이지만 재판을 치루기 위해서는 원고든 피고든 꽤 많은 사고조사를 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한국 학계와 유족들은 사망자 549명·실종자 미상이라는 주장과 달리 탑승자 8000명에 실종자가 3000명 정도이며, 일본 정부의 고의 폭파라고 주장해왔지만 당시 배에 폭발물이 있었다는 기록은 밝혀진 게 없었다. 과연 일본은 무엇을 아직 숨기고 있는 것일까?

우키시마호는 왜 폭탄을 안고 출항했나
  
2016년 우키시마호 희생자추모협회는 일본 정부의 고의 폭침설을 뒷받침하는 일본 정부의 문서를 공개하기도 했다. '발신전보철'로 알려진 일본 방위청 문서를 '우키시마호 폭침 한국인 희생자 추모협회' 김문길 고문이 일본인으로 부터 입수하여 2016년 8월 8일 부산에서 열린 진상규명 세미나에서 공개한 것이다.

문서는 출항 이틀 전인 1945년 8월 22일 일본 해군 운수본부장이 선장에게 보낸 '항행금지 및 폭발물 처리'문서였다. 문서에는 '8월 24일 이후 현재 출항 중인 경우가 아니면 항행을 금지하며, 항행 중일 경우 폭발물을 피해가 없을 해상에 투기할 것이며, 항행하지 않고 정박 중이면 육지의 안전한 격납고에 폭탄을 넣어 두라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우키시마 호에는 분명 폭탄이 있었음에도 그냥 출항을 했다.

생존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배에서 폭탄을 해상으로 투척한 적이 없으며 심지어 폭발 전에 배에서 바다로 뛰어 내린 일본인들이 있었다고도 한다. 다분히 일본의 고의적인 폭침을 의심케 하는 정황들이다. 일본 정부는 해당 문서를 철저히 감추고 있었다. 이전까지 우키시마호에 폭탄이 실려 있었다는 문서는 공개된 적이 없었고 심지어 재판과정에 이 문서가 존재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언론에 공개된 적이 없었다. 자료가 잘 남겨져 있고, 사건 해결 의지만 있다면 충분히 원인을 밝힐 수 있는 일이었다. 전범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사과는 커녕 진상규명마저 나 몰라라 하고 발뺌부터 하는 일본 정부의 빗장걸기가 문제였다. 

실제 생존자 증언에 따르면 고의 격침을 주장하는 내용들이 존재한다. 이번 다큐멘터리에서 과거 사고 생존자들의 살아있을 당시 채록한 인터뷰들이 공개된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당시 배에서 일본 해군으로 근무했던 일본인은 기관실 옆 창고에 폭탄이 설치되어 있었다는 증언도 했다고 한다. 생존자 고 주윤창씨는 일본 헌병이 폭탄에 설치된 전선을 자르려고 했다는 증언하기도 했고, 폭발 직전 해군들이 구명보트로 빠져나갔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일본과 한국 정부 모두 외면한 우키시마호 사건
 

여기서 또 하나의 문제는 우리 정부의 태도다. 이 사건 또한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인해 배상을 했다는 일본의 입장은 그렇다 치고 당시 우리 정부는 1945년 8월 15일 이전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우키시마호 피해자들에게는 보상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이후 유족들의 끈질긴 요구로 진상규명에 대한 노력이 일부 이루어졌으나 형식적으로 끝났다는 게 유족들의 주장이다.

결국 우리 정부의 활동으로는 2008년 '일제강점하 강제동원 피해진상 규명위원회'에서 소송에 관련한 자료집 2권이 나온 게 현재로선 전부라고 한다. 해방의 기쁨을 안고 귀국하던 우리 동포 500여 명이 수장된 대형 참사이자, 일제 식민지 억압과 착취가 종식된 상황에서 패전에 대한 보복성으로 이루어진 범죄일 가능성이 존재하는 사건에 대해 함구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현재 일본은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에 대해 일본 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2018년 10월 우리 대법원의 판결에 반발하여 징용피해자에 대한 배상대신 무역보복을 가하고 있는 중이다. 물론 우리 정부도 그리고 국민들도 의연히 대처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게 아니라 한일 청구권 협정과 별개로 개인들의 손해배상 청구에 대해 정부가 적극적인 지원과 구제에 나서야 한다.

'해방 직후 벌어진 일이라고 해서 배상의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식의 얼토당토 않는 논리들을 펼쳤던 1965년 당시 박정희 정권의 행위에 대한 반성도 있어야 할 것이다. 개인이 희생당하는 일을 줄여나가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가 해야 할 당연한 역할임을 새겨야 한다.

그동안 우키시마호 사건이 미디어에서 조명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우키시마호 사건은 묻혀 있다가 1965년 재일 사학자 박경식씨가 '조선인 강제연행의 역사'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다시 알려지기 시작했다.

이후 1977년 일본의 공영방송 NHK가 <폭침>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방영하여 일본인들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으며 1984년에는 재일동포 르포작가 김찬정씨가 '우키시마호, 부산으로 향하지 않았다'를 출간하기도 했다. 1992년에는 일본 시모키타지역문화연구소장인 사이토 사쿠지씨가 '아이고의 바다'를 출간했으며, 이 책은 1996년 국내에서 번역되어 출간되었다.

이 사건이 국내 제대로 처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92년 충북 <영동신문>이 영동군에 거주하고 있는 우쿠시마호 생존자를 인터뷰하면서였다. 당시 영동신문의 신재식 회장은 직접 생존자들과 희생자 유가족들이 일본 법원에 소송을 내도록 도와주기도 했다고 한다.
    
1996년에는 우키시마호 시건을 모티브로 한 <아시안블루>라는 극영화가 일본에서 개봉되기도 했다. 이 영화는 재일동포들이 '우키시마호 사건 제작지원 연락회의'를 구성하고 3년간 3억 엔의 제작비를 모금하여 만들어졌는데 일본 개봉당시 30만 정도가 관람을 했으며 한국에서도 상영되었다.

북한에서는 2002년 우키시마호 사건을 극화한 <살아있는 영혼들>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져 평양국제영화제에서 공개되었으며 2003년 전주 국제영화제에 초청되어 상영되었다. <아시안 블루>에서는 사망자가 524명으로 나왔지만 북한 영화에서는 사망자를 거의 4000명으로 추정했다.

국내에서는 1996년 8월 11일 KBS가 다큐멘터리 <귀국선 우키시마, 부산으로 오지 않았다>를 방영한 바 있고, MBN이 2015년 8.15 특집 2부작으로 방영한 <제국의 감춰진 칼날, 귀국선>을 방영했다. 시사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2010년 7월 18일에는 MBC <신비한TV, 서프라이즈>에서 이 사건을 다루었다.

북한에서는 2003년 이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국제포럼을 개최하면서 이 행사 홍보를 대대적으로 벌였다. 영화 <살아있는 영혼들>을 TV에서 수차례 방영하여 북한 주민들이 우키시마호 사건에 대해 대부분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는 전술한 바와 같이 몇몇 미디어들에서 파편적으로 다뤄졌다. 여전히 우키시마호 참사에 대한 정부나 국민들의 관심이 높지 않은 편이다.
 
일본 정부는 모든 식민지에 대한 억압과 약탈, 그리고 전쟁에 대한 책임에서 이제 자유롭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키시마호 사건을 보면 아니라는 게 티저 포스터의 메시지다.
▲ 다큐멘터리 "우키시마호" 포스터 일본 정부는 모든 식민지에 대한 억압과 약탈, 그리고 전쟁에 대한 책임에서 이제 자유롭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우키시마호 사건을 보면 아니라는 게 티저 포스터의 메시지다.
ⓒ 메이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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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수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참사였다. 그것도 해방이 되어 고국으로 돌아갈 희망에 부풀었던 징용피해자와 그 가족들의 희망을 좌절시킨 범죄였을 가능성이 있다. 패전국 일본이 이들의 귀국을 막기 위해 고의적으로 배를 침몰시켰다는 정황들이 존재하는 상황이므로, 더욱더 진실은 밝혀져야 한다. 

오는 9월 바로 이 우키시마호 사건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개봉한다. 얼마 전 개봉확정과 동시에 공개된 티저 포스터를 보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담겨 있다. '독도는 일본 땅이다, 위안부는 보상했다, 강제징용은 없었다, 생체실험은 증거가 없다, 그리고 우키시마호는 사고였다!'. 그리고 마지막엔 '살인자 일본은 진실을 은폐하고 있다'라는 문구가 적혀있다.

'일본 정부는 모든 식민지에 대한 억압과 약탈, 그리고 전쟁에 대한 책임에서 이제 자유롭다고 주장하지만 우키시마호 사건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게 티저 포스터가 말하고자 하는 바라고 생각한다. 온 나라가 일본의 경제 보복에 대항해 분연히 일어서고 있는 시점인 만큼,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 사회의 어떤 울림을 만들어낼지 기대된다.

덧붙이는 글 | 이글은 블로그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와 동시에 제공됩니다.


태그:#우키시마호, #강제징용, #폭침, #다큐멘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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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료방송 채널에서 교양다큐멘터리를 주로 연출했, 1998년부터 다큐멘터리 웹진 '드가의 다큐멘터리 이야기'를 운영. 자연다큐멘터리 도시 매미에 대한 9년간의 관찰일기 '매미, 여름 내내 무슨 일이 있었을까' 2016년 공개, 동명의 논픽션 생태동화(2004,사계절출판사)도 출간. 현재 모 방송사에 근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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