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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세상에 태어나서 시를 쓰기를 바라고, 시인이 되기를 원했던 게, 너무 부끄럽고, 앞장서지 못하고, 그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기만 한 게 부끄러워서 서명을 못 하겠습니다.
- 영화 동주(2016) 中, 죄를 인정하라는 일본 고등 형사에게 동주가 한 대사 -


일본의 경제보복과 관련해 "독립운동은 못 했어도 불매운동은 한다"는 우리 국민을 보면서 독립투쟁의 일선에서 직접 싸운 투사도 아니었지만, 우리에게 민족의 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을 전해준 윤동주 시인이 생각났다. 광복절을 앞둔 지난주 서울 종로구에 있는 윤동주 문학관을 찾았다.
    
윤동주 문학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이다. 폐 수도가압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 윤동주 문학관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이다. 폐 수도가압장을 개조해서 만들었다.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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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된 수도가압장을 고쳐 지었다! 그 이유는?

윤동주 문학관은 친구 정병욱과 소설가 김송의 집에서 하숙 생활을 했던 곳으로 2012년도에 건립했으며, 2015년 '서울아름다운 건물찾기 공모전'에서 건축상을 받았다. 윤동주 문학관은 일반적인 문학관과 달리 '폐기된 수도가압장'을 개조해 만들었다.

"가압장은 느려지는 물살에 압력을 가해 다시 힘차게 흐르도록 돕는 곳입니다. 윤동주 시인의 시는 지친 우리의 삶을 위로하는 '우리 영혼의 가압장'이라는 의미에서 수도가압장을 개조해서 지었습니다."
- 김가영 윤동주 문학관 담당자


소박한 삶을 지향했던 시인의 마음을 따라 누구나 방문해서 위로받고 가는 장소로 전시관을 꾸민 것이다. 실제로 입장료는 무료였고, 근처에는 '시인의 언덕'이라 불리는 산책로가 구성되어 있었다. 각박하게 흘러가는 현대인의 삶 속에서 시인의 시는 잠시 쉬어가며, 자신을 돌아보는 안식처가 된다.

시인의 발자취를 살펴보는 제1 전시관 시인채

문학관은 모두 3곳의 전시관으로 구성돼있다.

제1 전시관 시인채는 시인의 시집과 고향 용정에 있던 유품을 전시해둔 장소다. 그가 다녔던 연희전문학교(현 연세대학교)에서의 모습을 비롯해 가족사진, 시 초고본,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징역 2년 형을 선고받은 판결문까지 삶의 전반적인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왼쪽 벽면에는 그의 유고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다양한 판본과 외국어로 번역된 본이 전시되어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외국에서도 윤동주의 시를 상당히 주목하고 읽혔다는 의미로 그의 시어는 국내를 넘어 많은 사람에게 위로가 되어 주었다.
  
윤동주 문학관 제2 전시관 야외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 제2 전시관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이 모티브다.
▲ 윤동주 문학관 제2 전시관 야외에 위치한 윤동주 문학관 제2 전시관이다. 윤동주 시인의 시 "자화상"이 모티브다.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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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을 담아낸 제2 전시관 열린 우물

제2 전시관은 야외전시로 윤동주의 시 '자화상'에 등장하는 우물에서 모티브를 얻어 용도 폐기된 물탱크의 윗부분을 개방하여 중정(中庭)을 만들었다. 물탱크에 저장되었던 물의 흔적이 벽체에 그대로 남아있어 시간의 흐름과 기억의 퇴적을 느끼도록 해준다.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표지를 모티브 삼아서 한쪽에 풀을 많이 심었어요. 특히 밤에는 별이 잘 보이고 바람도 불어와서 '자화상' 시의 모습을 더 잘 느낄 수 있어요. 저녁에 방문하시는 많은 분이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라는 구절이 딱 떠오른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 윤동주 문학관 자원봉사자-
  
윤동주 문학관 제3 전시관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제3 전시관이다. 영상을 상영하는 곳으로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다.
▲ 윤동주 문학관 제3 전시관 물탱크를 개조해서 만든 제3 전시관이다. 영상을 상영하는 곳으로 어둡고 쓸쓸한 분위기다.
ⓒ CPN문화재TV 임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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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삶을 영상으로 보는 제3 전시관 닫힌 우물

제3 전시관은 물탱크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해서 만든 장소로 어둡고 눅눅한 느낌이었다. 특히 출입문도 무거운 철문이고 의자 역시 작은 앉은뱅이로 불편함이 느껴졌다. 감옥을 연상시키는 느낌에 몇몇 관람객들은 불편함을 이야기했으나 영상이 시작되자 그 불만들은 싹 사라졌다. 상영이 끝나자 눈물을 보이는 관람객도 보였다.

영상은 15분의 분량으로 윤동주 시인의 삶의 이야기, 시인으로서의 작품관, 조국의 독립을 바랐던 마지막 최후까지 담겨있었다. 후쿠오카 형무소에서 숨을 거둔 시인의 사연과 영상이 상영되는 현장의 느낌이 큰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 많은 사람이 영상에 더 집중했다.

"제3 전시관이 기억에 남아요. 폐기된 물탱크가 그대로 남아있어서 어둡고 축축한 곳이었어요. 그곳에서 영상을 보니까 너무 가슴 아픈 거예요. 이 물탱크보다 더 힘든 곳인 감옥에서 얼마나 힘들고 괴로웠을까. 얼마나 고국으로 돌아가고 싶었을까..." - 김성순(여/56) -

윤동주는 독립투쟁의 일선에서 직접적으로 싸운 투사도 아니었고, 당대 유명한 시인도 아니었다. 그런데도 그가 남긴 시에 담긴 민족의 정신과 독립에 대한 열망은 현재까지도 사람들에게 읽히고 있다. 29살의 어린 나이로 사망했지만, 70년이 넘은 지금까지 사람들의 기억에서 살고 있다.

그것은 그의 시어가 우리의 생활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자연이 많고, 힘든 우리의 삶을 공감하며 위로해주기 때문이 아닐까.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일본과 경제 전쟁을 벌어지고 있는 74주년 광복절에 즈음해 어두워진 하늘 아래, 조금은 무더운 바람을 느끼며 그를 기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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