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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질 검사가 끝나고 주방에 붙이는 스티커
 수질 검사가 끝나고 주방에 붙이는 스티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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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동으로 갑니다. 각 조에 배치된 가구 수는 ○○가구이고 검사할 목표량은 ○○개입니다. 오늘도 수고하세요."

나는 지난 3월 5일부터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 관할 기관인 중부수도사업소 소속 수질검사원으로 일하고 있다. 서울시의 6개 수도사업소에서 시행하는 이 사업의 명칭은 '아리수품질확인제'다. 일자리 창출과 서울의 수돗물인 '아리수' 홍보를 목적으로 한다. 벌써 10년째 진행하고 있다. 사업에 참여하는 분은 모두 여성이며 8개월의 기간제 근로자로 일한다.

일을 시작한 지 벌써 5개월이 넘었다. 2인 1조로 짜인 8개 조가 있다. 7개 조는 매일 아침 각 가정이나 학교, 관공서에 수질 검사하러 나간다. 나머지 1개조는 사무실에 남아 수질검사 결과지를 입력한다. 오전 9시에 출근해 간단히 조회를 하고 배정된 지역으로 '출장'을 간다. 이동할 때는 사무실에서 준비한 승용차(경차)를 이용한다. 

어느덧 중년이라는 나이대에 들어서니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다. 지난 1월 우연히 서울시 공공일자리를 검색하다가 이 일자리를 발견했다. 자격조건 중에 눈에 띈 것은 '여성만 지원 가능'하다는 내용이었다. 성차별적 구인 조건은 아닐까 하는 의심이 들었지만 오로지 내 관심은 '합격'에 있었다.

서류와 면접 전형을 거쳐 기대하던 합격 통보를 받았다. 3월 5일, 드디어 첫 출근을 했다. 역시 인생은 예측 불가다. 내가 수질검사원으로 일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달콤한 늦잠도 이제는 안녕이다. 오전 9시 출근이니 조금만 늑장 부리면 지각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몸을 구겨 넣는다. 서두르지 않으면 좋아하는 핸드드립 커피를 내릴 시간도 없다. 지하철에서 내려 10분이 채 안 되는 거리의 사무실까지 무조건 뛴다. 어느덧 5개월이 지났다. 이제는 아침 6시 반이면 저절로 눈이 떠진다.

배정된 지역에 도착하면 오늘 정해진 할당량을 채워야 한다는 일념밖에 없다. 한 집 한 집 초인종을 누르며 외친다. "수질검사 나왔습니다!" 처음 한 달 동안은 이 소리를 내기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추억의 "찹쌀떡 사~려~" 도 아니고, 수질검사 나왔다고 소리를 지르려니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범한 직장인은 평일 하루 8시간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아침부터 수질검사원이 벨을 누른다고 "어서 오세요" 하면서 문을 열어주는 시민은 대부분 더 이상 자신의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사람이거나, 이제는 팔아야 할 노동력이 바닥이 나서 집을 지키는 일이라도 해야 하는 어르신이거나, 가족의 돌봄 노동을 담당하는 주부다.

친절하게 문을 열어주는 시민을 만나면 기분이 좋다. 오늘의 할당량이 하나씩 채워질 때의 기분, 그것은 마치 보험설계사가 계약에 성공해 수당을 받는 것처럼 짜릿하다. 

"더운데 고생이 많으십니다, 우리 집 수돗물은 괜찮은가요?"라는 질문과 함께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주는 어르신, 한평생 가족밖에 모르고 산 주부님을 만나면 별것도 아닌 이 일에 자부심이 생긴다. 

"선생님 댁의 수돗물 수질은 아주 좋습니다. 탁도도 좋고, 잔류염소 수치와 pH(산성화농도)는 물론 철, 구리 모두 서울시에서 정한 먹는 수돗물 기준보다 좋게 나왔어요. 안심하고 드셔도 됩니다. 아침에 일어나시면 30초 정도 고인 물을 빼고 사용하세요. 서울의 수돗물은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할 만큼 좋은 물이에요. 끓이지 않고 그냥 드셔도 됩니다. 괜히 돈 들여 정수기 사지 마시고요."

검사 결과에 덧붙여서 설명을 해줘도 못 믿겠다는 표정을 보면 문 열어줘서 좋았던 기분은 온데간데없다. 

"수돗물에서 염소 냄새가 나서 그냥은 못 먹겠더라구요. 가끔 이물질도 나오는 것 같고... 마시는 물은 정수기를 쓰거나 생수를 사다 마셔요. 밥할 때와 요리할 때는 수돗물을 사용해요." 

갑자기 수돗물 전도사가 된 기분

다섯 달 동안 수질검사를 하면서 발견한 놀라운 사실은 99%의 가구가 정수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수도사업소가 생긴 지 30년, '아리수 품질확인제 사업'을 한 지 10년이 되었는데 수돗물에 대한 신뢰가 왜 이렇게 낮을까. 의문이 생겼다. 십 년 동안 수질검사를 해주고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수질을 높였는데 시민들은 믿지 않고 있다.
 
서울 수돗물의 원수는 팔당댐부터 한강 잠실 수중보까지 약 25Km 구간에 위치한 팔당, 강북, 암사, 구의, 풍납(영등포), 자양(뚝도), 취수장에서 끌어온다. 원수의 수질 보호를 위해 팔당 상수원 보호 구역을 관리하고 하수처리장 등 환경 기초 시설을 운영하며 상수원 보호 감시활동을 펼친다. 이 과정에서 24시간 수질을 감시한다. 거기다 법정 항목 60개 이외에 감시항목 111개를 추가하여 총 171개 항목의 수질 검사를 하는 등, 고도의 정수처리를 하고 있다. 20년 이상 된 낡은 수도관도 교체해 주며 모든 시민이 안심하고 수돗물을 먹을 수 있도록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 출처 : 서울시상수도사업본부 홈페이지

이렇게 긴 설명을 해 준다고 믿을까? 설명해 줄 시간도 없지만 이렇게 깐깐하게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하면 다음 문제를 들고나온다. 

"우리 집 수도관은 어떤가요?" 
"20년 이상 된 노후 수도관은 사업소와 상담 후 교체해 줍니다." 


수돗물 관리를 믿지 못하고 오래된 수도관 때문에 불안하니까 각 가정의 개수대 옆에는 정수기를 둘 수밖에 없다. 이해를 못하는 건 아니다. 나는 마지막 카드를 꺼낸다.

"수돗물에는 정수기에 없는 미네랄이 살아있어요. 정수기는 몸에 좋은 성분을 모두 거르기 때문에 맛이 없어요. 실제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해봤는데 수돗물을 선택하는 사람이 가장 많았어요. 안대를 벗으며 깜짝 놀라죠. 정수기 물 아니면 생수인 줄 알았대요. 저도 그냥 수돗물 마셔요."

실제로 우리 집에는 정수기가 없다. 수돗물을 믿었다기보다는 '수돗물 먹어도 안 죽는다'는 남편의 말을 믿고 안 샀지만. 이 일을 하면서 수돗물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 수돗물을 먹지 않는 사람들에게 수돗물을 먹게 하기 위한 더 설득력 있는 아이템은 무엇일까? 공신력 있는 매스컴을 통해 대대적인 홍보를 하는 것은 어떨까? 갑자기 수돗물 전도사가 된 기분이다. 

일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건지 집착이 생긴 건지 집집마다 놓인 정수기를 보면 없애고 싶다는 충동이 생길 때도 있다. 수돗물 관리에 들인 돈이 줄줄 새고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일에 대한 자부심도 떨어졌다. 더운데 고생한다면서 검사원을 반기는 시민들을 만나도 즐겁지 않다. 가장 기분이 좋을 때와 반가울 때는 '정수기가 없는 집'을 만날 때다. 

일하는 재미가 점점 줄고 있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사건이 터졌다. 지난 5월 30일 인천에서 붉은 수돗물이 나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수질검사원으로 경험한 붉은 수돗물 사건  
   
 탁도를 재는 기계로 수치를 측정하고 있다.
 탁도를 재는 기계로 수치를 측정하고 있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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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약 한 달 뒤, 서울 문래동에서도 갑자기 붉은 수돗물이 나온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번엔 인천 사태 때보다 더 관심이 갔다. 하필 내가 수질검사원으로 일하고 있는 때 사건이 터지다니.

상부에서도 '아리수품질확인제' 사업을 시작한 이래 한 번도 없던 일이라고 했다. 사업소는 비상체제로 들어갔다. 기간제 노동자인 16명의 수질검사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평일뿐만 아니라 주말에도 관할 사업소인 남부수도사업소로 지원을 나갔다. 문래동 인근의 학교와 안전이 시급한 산후조리원을 우선적으로 검사했다.

사고 지역의 가정집으로 수질검사를 하러 가면 어떻게든 주민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정중하게 설명했다. 수질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홈그라운드를 벗어나 일하고 온 검사원들 역시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서로를 격려했다. 사태의 원인을 하루빨리 찾고 대책이 나오길 바랐다. 

6월 21일 문래동 붉은 수돗물 사건이 터지고 20여 일이 지난 7월 12일, 본부에서는 더 이상 지원 근무를 나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한시름 놓았다. 나는 지원 근무를 두 번밖에 안 나갔지만 관계자들은 정말 고생이 많았다. 

나를 포함해서 15명의 검사원들에게 이 일자리는 매우 소중하다. 육아와 경력단절 등으로 오랫동안 경제활동을 못하다가 재취업했기 때문에 더 열심히 일하고 있다. 가족을 위한 재생산 노동만 하다가 경제활동을 하니 삶의 활력을 찾았다는 분도 있다.

나 역시 전공을 살려서 다시 일해보고 싶었으나 오라는 곳은 없고 절차는 까다로워 재취업이 쉽지 않았다. 그래서 더 감사한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가끔씩 튀어나오는 안 좋은 성질머리가 훼방을 놓기도 했지만.

나이가 들었고 경험도 많으니 이해해 줄 것이라고 믿었지만 조직은 냉철했다. 개성이 강했고 살아온 환경이 다르고 경험이 다르니 차이는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문제가 생기면 그것을 함께 풀고자 하는 모습을 보였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5개월 동안 매일 얼굴 보며 일하다 보니 어느새 정이 들었다. 계약이 종료되는 10월이 되면 많이 아쉬울 것 같다. 철없는 내 행동을 조금씩 귀엽게 봐주기 시작했는데.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모자 쓰고 선크림 잔뜩 바르고 양팔에 토시도 끼고 완전 무장 후 '출장'을 나가 외친다. 

"수도사업소에서 수질검사 나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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