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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이 격주 토요일로 등교하던 10년 전, 지하철을 이용해 출근하는 길이었다. 책을 읽고 있는데, "너희들 중 누가 제일 예쁘다고 생각하냐? 누가 제일 잘 나가냐?"는 말이 들려왔다. '뭐지?' 나도 모르게 멈칫, 돌아봐졌다. 내 옆에 서 있는 여학생들 앞에 앉아있는 60대쯤으로 보이는 남자가 한 말이었다.

한눈에 봐도 술에 취한 얼굴이었다. 여학생들을 번갈아 훑던 남자는 한 아이를 턱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네가 제일 섹시하고 예쁜 것 같다. 너네들 중 얘가 젤 잘 놀지?"

남자의 추태에 어떤 여학생은 낮게 투덜댔고, 민망한지 얼굴 붉히는 여학생도 있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남자에게 직접 싫다고 항의하는 사람은 없었다. 더더욱 아쉬운 것은 그 여학생들이 그 남자 앞을 떠나지 않고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는 것이다.

10년 전 일이다. 그동안 우리도, 사회도 많이 바뀌었다. 여성으로서 뭣보다 많이 다행이다 싶은 것은 성차별 관련 인식이 그나마 좀 바뀐 것 같다는 것. 물론 바람직한 쪽으로 말이다. 그에 움츠리고 있던 성차별 피해자들이 억울함을 이야기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여성들의 억울함을 공분하는 남성들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고는 하지만...

그런 만큼 이제는 그 남자처럼 공공장소에서 여성 혹은 여학생들을 성희롱하는 간 큰 남자는 없을 것 같다. 요즘 학생들 또한 그처럼 참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이런 변화가 가능한 것은 뭣보다 최근 몇 년 우리 사회 진행 중인 페미니즘 덕분이라고, 그 일환인 미투운동 영향 때문이라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없으리라.

그런데 여기서 잠깐 생각해보자. 정말 내가 느끼는 것처럼 우리 사회 성차별이 많이 사라졌는가. 또한, 사라지고 있는가. 내가 단지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그 아이들처럼 누군가로부터 성희롱을 당했다면 망설임 없이 신고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성차별에 대한 인식과 마땅한 대응을 가능케 하는 페미니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등을. 
 
 <페미니즘 탐구생활> 책표지.
 <페미니즘 탐구생활> 책표지.
ⓒ 사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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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뭐니 뭐니 해도 얼굴이 예뻐야? (똑똑한 여자는 피곤하다?) ▲여자니까? 여자라서?(넌 여자잖아. 여자가 왜 그래? 여자니까 그래선 안 돼!)
▲동화나 만화, 드라마나 영화 등에선 왜 항상 '남자 영웅'이 여자를 구할까?
▲강한 남자가 멋진 남자라고?
▲나에 대한 간섭,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에?(데이트폭력) ▲남자와 여자는 다른 인종, 다른 존재다?(어렸을 때부터 주입하는 성 역할)
▲'그날'? '매직'? '빨간 날'? 우리는 왜 월경이라 말하지 못하는 걸까? ▲그냥 농담인데 뭐 어떠냐고? (일상 대화 속 성차별에 맞서기)
▲모든 걸 다 잘해야 멋진 여자다?
▲왜 죄다 작은 옷만 파는 거야? (뚱뚱한 것은 게을러서? 내 몸 긍정하기)
▲성차별은 여성만의 문제이며 페미니즘은 여성만의 운동? 남성의 문제이기도. -목차 일부 인용 정리.

<페미니즘 탐구생활>(사계절 펴냄)은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페미니즘 입문서이다. 책이 뭣보다 와닿는 것은 이처럼 일상에서 흔히 일어나는 성차별 관련 26가지 주제를 설정, 페미니즘을 설명한다는 것. 이해가 훨씬 쉽다.

26가지 주제 모두 같은 형식으로 되어 있다. 책은 ① 10년 전 필자가 지하철에서 목격한 것과 같은 성차별 관련 사례나 관련 자료 등을 통해 페미니즘이란 무엇인가?를 설명한다. 이어 ② '페미니스트 역사'란 제목으로 주제와 관련된 페미니즘 사건이나, 관련 인물 등을 소개하는 것으로 페미니즘 역사를 들려준다.

오늘날 전 세계인들에게 매우 중요한 수단인 무선 전화와 와이파이의 기초 기술을 이미 1940년대에 발명한 할리우드 배우 '헤디 라마르', 발생 수십 년이 지난 오늘날까지 논란거리로 남아 있는 '키티 제노비스 살인사건', 1978년 당시 '남자가 월경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와 같은 제목의 글로 성차별을 비꼰 글로리아 스타이넘의 삶 등, 페미니즘 관련 중요하거나 흥미로운 이야기들을 접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가장 흥미롭게 읽은 코너이다.

이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은 ③ 모든 주제마다 '바로 해보는 페미니즘'이란 코너를 배치, 피해에 마땅한 대응이나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돕는다는 것이다.

실천 페미니즘

십 년 전 그날 무리 지어 있던 아이들은 일곱 명이었다. 아무도 '싫다'고 표현하지 않았지만 모두 남자의 말을 모욕적으로 느꼈을 것이며, 왜 그러냐고 따져 묻거나 신고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 누구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사실, 나 또한 신고하자 생각했지만 막상 쉽지 않았다. 당사자가 아닌 목격자라 우선 망설여졌다. 술에 취한 그 남자가 충동적으로 무슨 짓을 하면 어쩌나? 두렵기도 했다. 신고와 함께 번거로운 일로 시간이 지체되고 그러면서 출근에 차질이 생긴다는, 남일로 손해 보고 싶지 않은 마음에 더욱 망설였었다.

이처럼 그것이 성차별이며 억압, 폭력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어떤 대응은 막상 쉽지 않기도 하다. 이런저런 이유나 사정으로 묻히거나 간과되기도 할 것이다. 또한 잠잠할라치면 관련 뉴스들이 보도되곤 하는 것은 여전히 되풀이되고 있다는 방증 아닐까? 이런 현실에 단지 설명하는 책은 크게 도움 되지 않을 것이다.

책은 이런 현실을 감안 ▲ (성차별 대응 혹은 성평등을 위해) 십 대들이 할 수 있는 사회적 활동(44~45쪽), ▲ 성교육 수업 평가하기와 토대로 스스로 성교육 수업 만들어 보기(78~79쪽), ▲ 책이나 영화에서 성차별 요소 찾아보고 새로운 관점으로 써보기(100쪽), ▲평소 원하지 않는 상황에 '싫어!'라고 연습해보기(168쪽), ▲내게 주어진 권리와 자유 목록표 만들어 보기(177쪽) 등, 성차별 관련 문제 발생 시 보다 적극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들을 제시한다.

제시한 방법들은 보다 페미니즘적인 자세를 위한 방법들이지만 자존감이나 정체성 관련 교육에도 매우 유용할 것 같다. 그런 만큼 교육 현장에서 두루 많이 활용되었으면 좋겠다.
 
십대들이 폭력적인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도록 도움을 주는 곳들이 있어요. 한국의 경우 아하서울시립청소년성문화센터나 한국여성의전화,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도움을 주고, 여성긴급전화(국번없이 1366)로 전화를 걸면 바로 상담받을 수도 있어요. 여러분이 폭력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면 이곳(또는 가정 폭력 피해자 쉼터 같은 곳)에 연락하기 전에 먼저 반드시 안전한 곳으로 가서 애인이 접속할 수 없는 컴퓨터나 휴대전화를 사용하세요. 여성에 대한 폭력은 무서울 만큼 흔합니다. 그러나 그것에 대해 더 많이 알면 알수록 도움이 필요할 때 더 쉽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어요. (264~265쪽)

우리 사회 큰 반향을 일으킨 미투운동은 스쿨미투운동으로까지 번져 청소년들을 병들게 하는 부당한 현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청소년들은 페미니즘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어떻게 이해할까? 전반적으로 쉽게 설명한다. 게다가 위 인용처럼 필요한 경우 우리의 현실을 반영해 설명한다. 때문인지 훨씬 현실성 있게 와닿는 <페미니즘 탐구생활>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계간 <우리교육> 2019년 가을호에 실립니다.


페미니즘 탐구 생활

게일 피트먼 (지은이), 박이은실 (옮긴이), 사계절(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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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