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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복더위에 죽령고개에 모인 사람들
 
 단양지역 의병전적지 답사에 참가한 사람들
 단양지역 의병전적지 답사에 참가한 사람들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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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좌의진 제2대 의병장 이강년 선생의 전적지를 찾아가는 답사가 8월 10일(토) 소백산 자락 단양과 죽령 일원에서 이루어졌다.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 기념사업회가 주관하고, 제천 의병유족회, 단양향교와 문화원, 김상태 의병장 추모기념사업회, 백두대간 의병답사회가 공동으로 주최한 행사였다. 오전 9시 30분 죽령 고개에 모인 사람들은 80명 정도였다. 버스 한 대가 문경 예천 영주 지역에서 왔고, 승용차가 서울, 충주, 제천, 단양, 영월에서 왔다.

이들은 모두 의병의 후손이거나 의병에 관심이 많은 학자와 연구자들이었다. 의병 후손으로는 운강 이강년 의병대장의 증손녀인 이순희 시인이 참가했다. 의병대 사객(司客) 장충식 선생의 고손자들인 장영구 제천의병유족회장 4남매가 참가했다. 신태식 의병장 고손자인 신재식 신대식 형제가 참가했다. 이주승 선생의 손녀인 이칭훈 여사가 참가했다. 이칭훈 여사는 <호서의병사적>을 쓴 노촌 이구영 선생의 외동딸이다.
 
 죽령 고개
 죽령 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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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지는 크게 두 군데다. 하나는 죽령에서 도솔봉과 묘적령을 지나 사동(寺洞)으로 내려가는 이동로다. 다른 하나는 죽령에서 매바위를 지나 장림역(長林驛)에 이르는 전투로다. 이들 지역에서의 의병활동은 1907년 11월과 12월에 이루어졌다. 11월 2일부터 11일까지 죽령, 매바위, 장림에 이르는 지점에서 일본군과 의병대간에 치열한 접전이 벌어졌다. 12월 4일부터 9일까지 의병대는 문경 명전을 출발해 도솔봉과 묘적령을 지나 단양 사동에 이르는 고난의 행군을 했다.

이처럼 산길을 이동한 것은 일본군이 단성면 벌천리와 수산면 도기리에 주둔하고 있다는 정보 때문이었다. 의병대는 이들을 피해 대강면 올산리로 갔고, 도솔봉을 넘어 풍기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추위와 굶주림에 의병대는 더 나가지 못하고, 묘적령을 거쳐 대강면 사동리에 이르게 된다. 사동에서는 주민의 기지로 일본군을 다른 곳으로 보냈기 때문에, 의병대는 무사할 수 있었다. 12월 9일 의병대는 사동리에서 단양읍 수촌리로 이동한다.

매바위에서 벌어진 열흘간의 전투
 
 매바위 입구
 매바위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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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령에서 도솔봉과 묘적령을 거쳐 사동으로 내려가는 산행팀은 25명 정도였다. 그리고 죽령에서 매바위를 거쳐 장림역으로 내려가는 답사팀은 50명 정도였다. 매바위는 대강면 용부원리(用富院里)에 있다. 용부원은 장림역에 속한 여관촌으로 용부원리 터골에 위치했다. 용부원리는 1914년 터골(基洞), 매바위(鷹巖), 새터(新基) 세 개 마을을 합쳐 생겨난 법정리 명칭이다. 매바위는 용부원리 시내버스 주차장에서 북쪽 산길로 500m쯤 올라가면 만날 수 있다.

골짜기 위에 바위가 있어, 매바위를 선점하면 골짜기를 올라오는 적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다고 한다. 이강년이 이끄는 호좌의진 의병대는 1907년 10월 31일 장림역에 주둔한다. 11월 1일 의병 선봉대는 매바위로 진군해 길목을 지킨다. 11월 2일 일본군은 죽령을 거점으로 싸움을 걸어온다. 고개 아래에서 교전이 벌어졌고 일본군 여섯 명을 사살한다. 11월 5일 야간에도 일본군의 기습으로 교전이 벌어진다.
 
 호좌의진 주둔지 장림역의 현재: 대강초등학교
 호좌의진 주둔지 장림역의 현재: 대강초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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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6일에는 오전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매바위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여 8명의 적을 사살한다. 의병부대 본진은 장림으로 회군한다. 11월 7일 일본군은 복수를 위해 매바위의 의병을 공격한다. 그러나 의병군은 힘을 합쳐 일본군을 죽령으로 몰아낸다. 전투가 다시 벌어진 것은 11월 10일이다. 동이 틀 무렵 일본군이 공격했으나 오히려 4명을 사살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11일 다시 매바위를 점령한 일본군이 대대적인 공격을 펼침으로써, 의병부대는 소백산 능선으로 달아나며 적과 싸울 수 밖에 없었다.

"험한 길을 따라 산마루에 이르니 초겨울 눈보라가 사람의 살과 뼈를 찌르는 듯하였고, 게다가 종일토록 굶주리고 목마른 병사들이 엎어지고 쓰러졌다. 단양고을의 박 포수는 새로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 군대의 제도에 익숙하지 못하여 뒤에 처져 고개에 있다가 밤에 얼어 죽었으니 참혹함이 이루 말할 수도 없었다. 청풍의 선비 임석준은 기침하는 병이 있었고 잘 걷지도 못하였는데 별진을 따라 뒤따라오다 갑자기 변을 당하였다." (<국역 창의사실기>)
 
 정미년 창의가를 낭독하는 이순희 시인: 의병대장 이강년 장군의 증손녀
 정미년 창의가를 낭독하는 이순희 시인: 의병대장 이강년 장군의 증손녀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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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매바위 입구 버스정류장에서 박갑로 백두대간 의병답사회장으로부터 전투상황에 대한 설명을 듣는다. 이때의 상황을 신태식 의병장이 <정미년창의가(丁未年倡義歌)>라는 가사로 남겼다. 그중 매바위와 죽령 전투상황을 이강년 의병대장의 증손녀인 이순희 시인이 낭독한다.

이틀을 쉬고 나니 사방이 격서(檄書)로다.
토벌대 오백 명은 예천으로 넘어오고
수비대 사백 명은 원주 제천 덥허오고
병마대(兵馬隊) 백여 명은 충주 청풍 드러온다.
매바우 유진(留陣)하고 철통갓치 단속할제
기호(旗號)를 놉히달고 훤화(喧譁)를 일금(一禁)하라.
각장관(各將官) 취립(聚立)하고 군령을 전포(傳布)할제
본진선봉 전세영(全世榮)은 죽령을 방어하고 […]


의병주둔지 장림역의 현재
 
 장림역에서 바라 본 죽령과 소백산
 장림역에서 바라 본 죽령과 소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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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바위를 떠난 우리 일행은 의병대 본진 주둔지인 장림역으로 향한다. 장림역은 현재 대강초등학교로 변해 있다. 배산임수의 전형적인 지형으로, 학교 앞으로 죽령천이 흐른다. 장림역은 단양군 관아 동쪽 10리에 있는 역으로, 죽령을 넘어가기 전 말을 바꿔 타는 교통의 요지였다. 그러므로 이곳은 죽령길의 입구이자 목에 해당하는 전술적 요충지였다.

의병부대가 장림역에 주둔한 것은 죽령을 넘어오는 일본군을 차단하기 위함이었다. <정미년창의가>에서 언급한 예천토벌대 오백 명과 맞서기 위한 전략이었다. 그리고 뒤쪽으로 접근해 오는 원주 제천의 수비대와 충주 청풍의 병마대도 만만치는 않았다. 그러나 한강이라는 결정적인 방어선이 있어 의병부대는 예천토벌대와 상대하기만 하면 되었다.

장림역에서부터 아래로 대강양조장과 대강면사무소가 있고, 그 아래로 거릿말이 있다. 거릿말은 장터거리가 있는 마을로, 이곳에서 4일과 9일에 장이 섰다고 한다. 대강양조장은 대강막걸리로 유명하다. 노무현대통령이 단양을 방문해 막걸리 맛을 본 다음 대강막걸리가 청와대 만찬주로 사용되면서 더 유명해졌다. 대강양조장은 판매장, 체험관과 갤러리, 생산공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체험관과 갤러리를 살펴보니 역사와 전통이 살아 있다.
 
 대강양조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
 대강양조장의 역사를 보여주는 자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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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이 넘는 세월의 힘, 4대를 이어 여기까지 왔음'을 보여준다. 대정 13년(1924) 4월 주조장(酒造場) 면허를 취득해 탁주, 약주, 소주를 생산하기 시작했으니 그 역사가 95년이 넘었다. 대강양조장에는 항아리, 소주 고리, 맷돌, 체 등 옛날 주조용품이 있다. 그리고 1940년대 사용하던 영업용 책상, 등잔 등도 있다. 대강양조장의 주인은 홍보와 마케팅에도 뛰어난 재주를 보여준다. '단양의 산세와 소백산의 좋은 물'을 이용해 술을 빚는다고 홍보한다.

'막걸리의 향과 함께 맛이 익어가는 시간'도 강조한다. 느림의 미학으로 만들어지는 대강막걸리가 전통 막걸리고 진짜 막걸리라는 것이다. 술도 이 정도면 스토리텔링이 된다. 3대 조국환 회장과 4대 조재구 사장은 오직 한길만 걸어왔다는 자부심이 대단하다. 길이 좁고 험하고 막힐 때도 있었지만 한 번도 술도가의 길을 후회해 본 적은 없다고 말한다. 이게 바로 장인(匠人)의 자부심이고 긍지다. 의병들이 창의한 의로운 땅 단양에서 자부심 가득한 장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덧붙이는 글 | 의병전적지 답사 도볼송과 묘적령 산행팀은 오후 7시 30분은 되어 사동리에 내려 왔다. 한여름이라 예정보다 두 시간이나 늦은 하산이었다. 의병들이 가장 추운 겨울 산을 타고 이동을 했다면, 의병답사 산행팀은 가장 더운 여름 이들의 흔적을 찾아보았다. 다음 회에는 단양읍내와 온달산성을 찾아 의병의 흔적을 찾아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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