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한국 여자배구 대표팀 선수들 ⓒ 박진철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따내기 위한 세계 배구 강국들의 대혈전이 모두 끝났다.

여자배구는 지난 2일부터 5일까지, 남자배구는 9일부터 12일까지 '2020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공식명칭 대륙간 예선전)을 펼쳤다.
 
여자배구는 A조 세르비아(세계랭킹 1위), B조 중국(2위), C조 미국(3위), D조 브라질(4위), E조 러시아(5위), F조 이탈리아(8위)가 조 1위로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남자배구는 A조 브라질(세계랭킹 1위), B조 미국(2위), C조 이탈리아(3위), D조 폴란드(4위), E조 러시아(5위), F조 아르헨티나(7위)가 조 1위로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차지했다.

이로써 남녀 배구 모두 개최국 일본을 포함해 7개국이 도쿄 올림픽 본선 출전권을 획득했다. 이제 남은 도쿄 올림픽 티켓은 남녀 각각 5장이다. 이는 내년 1월 6~12일에 열리는 5개 대륙별 예선전에서 우승을 차지한 5개 국가에 돌아간다.

유럽 '초강세'... 중국 여자배구, '아시아 유일' 본선 티켓

이번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은 남녀 세계랭킹 상위 24개국 대부분이 최정예 멤버를 구성해 마치 전쟁 같은 총력전을 펼쳤다. 세계 배구의 국가별 현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셈이다.

남녀 올림픽 티켓 획득 국가에서 보듯, 세계 배구는 유럽과 미국·브라질 등 북미·남미 국가가 초강세였다. 아시아 국가들은 남자배구와 여자배구가 큰 차이를 보였다.

여자배구는 '초장신 군단'인 중국이 세계 최강의 면모를 보이며, B조 1위로 당당히 도쿄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했다.

한국 여자배구도 본선 티켓 획득에는 실패했지만, 세계랭킹 5위 러시아를 패배 직전으로 몰고가며 놀라운 경기력과 투지를 보여주었다. 

한국은 러시아에 세트 스코어 2-3으로 역전패를 당했다. 그러나 배구계와 팬들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광경에 깜짝 놀랐다. 한국 대표팀이 대회 직전에 주전 세터 2명이 부상과 건강 문제로 전원 교체되는 '대형 악재'를 겪었기 때문이다. 반면, 러시아는 1군 주전 멤버가 모두 풀로 경기를 뛰었다. 한국이 1세트도 따기 힘들다는 비관적인 전망이 압도적이었다.

경기 이후 배구계와 팬들은 한동안 충격에 휩싸였다. 패했기 때문이 아니다. 승리를 거의 손에 넣었다가 놓친 아쉬움이 충격적으로 컸기 때문이다.

경기를 현장에서 지켜 본 대한민국배구협회 관계자는 귀국 후 기자와 전화 통화에서 "숙소 입구에 주저앉아 한참 동안 펑펑 울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고 회고했다.

한국 여자배구, 아쉬움 속 '세계 강팀' 가능성 확인

아쉬움이 컸지만, 소득도 적지 않았다. 대표팀 선수들은 세계랭킹 9위인 한국 여자배구도 충분히 '세계적 강팀'이라는 걸 스스로 증명했다. 

라바리니 감독을 비롯 세계 정상급의 코칭스태프와 함께 훈련을 체계적으로 잘 수행하고, 승리에 대한 투지로 똘똘 뭉쳤을 때 세계 강팀도 무너뜨릴 저력이 있다는 걸 팬들에게 보여준 것이다.

한국 여자배구의 국제경쟁력은 세계 최고 완성형 공격수인 김연경(31세·192cm)의 존재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는 점은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세계 배구의 흐름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요소가 한 가지 더 있다. 한국 여자배구가 장신화 부분에서 세계 강팀들에 결코 떨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중국, 러시아 등 일부 초장신 군단을 제외하고 '주전 평균 신장'에서 세계 강팀들과 엇비슷하기 때문이다.

한편, 태국은 올림픽 세계예선전 A조에서 1승 2패로 3위를 차지하며 본선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그러나 유럽 강호로 떠오르고 있는 폴란드와 풀세트 접전을 벌이는 등 나름 선전했다.

남자배구, 아시아 '전원 탈락'... 아시아 최종 예선 '매우 험난'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 한국-벨기에 경기 (2019.8.12)

한국 남자배구 대표팀...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 한국-벨기에 경기 (2019.8.12) ⓒ 국제배구연맹

  
남자배구는 아시아 국가가 이번 도쿄 올림픽 세계예선전에서 한 팀도 본선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불운'도 겹쳤다. 세계 정상권 전력인 이란이 하필 세계 최강 러시아와 같은 조에 편성됐다. 세계랭킹 8위인 이란은 러시아(5위), 쿠바(18위), 멕시코(21위)와 함께 E조에 편성됐다. 러시아는 지난 6~7월에 열린 '2019 발리볼 네이션스 리그(VNL)' 우승 팀이다.

이란은 러시아와 조 1위 결정전에서 매세트 접전을 벌이며 선전했다. 그러나 결과는 0-3(19-25, 23-25, 23-25) 패배였다. 본선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때문에 내년 1월 '도쿄 올림픽 아시아지역 최종 예선전(대륙별 예선전)'에 출전해 한국, 중국, 호주 등과 마지막 본선 티켓 1장을 놓고 경쟁하게 된다.

그러나 이란도 본선 티켓을 장담할 수 없는 '강력한 변수'가 등장했다. 바로 호주(세계랭킹 16위)다. 이번 대회에서 세계 강팀들과 대등한 경기력으로 배구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호주는 C조 1위로 올림픽 본선 티켓을 획득한 이탈리아를 상대로 풀세트 혈전 끝에 2-3(25-21, 19-25, 26-24, 17-25, 13-15)으로 패했다. 너무도 아까운 패배였고, 이탈리아는 지옥 문턱까지 갔다 온 셈이다. 호주는 또 다른 강호 세르비아와도 대접전을 펼쳤다.

호주는 주전 선수 6명 전원이 200cm가 넘는 '초장신 군단'으로 재무장했다. 레프트 공격수인 사무엘 워커(24세)가 208cm에 달하고, 심지어 세터인 도산지(23세)마저 무려 205cm다. 호주는 내년 올림픽 아시아 예선전에서 이란의 '최대 적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국(세계랭킹 20위)도 F조에서 핀란드(19위)에 승리하고, 강호 캐나다(6위), 아르헨티나(7위)와도 풀세트 접전을 벌였다. 그러나 1승 2패로 올림픽 본선 티켓 획득에 실패했다.

한국 남자배구, '현격한 격차'... 지도자·프로구단 반성해야

한국 남자배구(세계랭킹 24위)는 이번 올림픽 세계예선전 B조 대회에서 미국(2위), 벨기에(12위), 네덜란드(15위)에 모두 패했다. 전패를 했지만, 대표팀 선수들은 주어진 조건에서 최선을 다했다.

그럼에도 세계와 격차가 매우 크다는 사실 또한 재확인했다. 특히 장신화 부분에서 세계 강팀은 고사하고 이란, 호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도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단신 군단'이었다. 신장의 열세를 극복할 만한 스피드, 파워, 어려운 볼 결정력, 서브, 수비 조직력 등에서도 장신 군단인 이란, 호주, 중국보다 경쟁력이 떨어졌다. 

한국 남자배구가 어디서부터 바뀌어야 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으로 다시 돌아온 셈이다. 특히 국내 감독 등 지도자들과 V리그를 이끌어가는 프로구단이 가장 큰 문제로 떠올랐다.

세계 배구와 너무 동떨어진 '단신 군단'으로 팀을 구성하고, 무얼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한국식 정교한 배구'만 주장하는 고정관념, 외국인 위주의 V리그 풍토. 그런 낡은 방식들이 남자배구의 국제경쟁력 추락을 계속 부채질하고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남자배구 대표팀 감독은 올림픽 세계예선전을 앞두고 있음에도 대표팀을 그만두고 프로 팀으로 가려고 했다는 논란이 불거졌다. 결국 비난 여론에 휩싸여 감독이 중도 낙마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다른 국가들이 올림픽 세계예선전에 임하는 자세와 너무도 달랐다.

한국 남자배구는 냉정하게 표현하면, '당장의 성적에 연연할 만한' 전력도 되지 못한다. 길게 보고 세계 배구 흐름에 맞는 대표팀 구성과 체계적인 육성이 절실한 상황이다. 지금 방식을 유지해서는 영원히 올림픽에 못 가는 건 자명하다. 이제는 아시아 중위권 국가들마저 한국을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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