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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의 가족> 표지
 <숲의 가족> 표지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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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이라는 말은 단순히 교통과 정보통신의 발달 때문에 생긴 단어가 아니다. 부족 중심, 국가 중심의 사회에서 벗어나 모든 인류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세계로 나아가고자 하는 따뜻한 의미가 담겨 있다. 이는 인류가 자행했던 숱한 전쟁과 학살에서 그 의미를 찾아볼 수 있다. 자신과 다른 생김새를 가졌다는 이유로, 생각과 사상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과 폭력, 분노와 조롱이 만연한 사회를 인류는 기록해 왔다.

이스라엘의 유명 소설가이자 저널리스트였던 아모스 오즈의 소설 <숲의 가족>은 짧은 동화와도 같은 이야기로 다름을 증오하고 차별하는 시대를 이야기한다.

작품의 공간인 한 마을은 회색빛이 감도는 곳이다. 이 마을에는 과거 동물이 있었으나 모두 사라져 버렸고 마을의 어른들은 처음부터 동물이 없었던 것처럼 아이들에게 가르친다. 오직 인간만을 아는 아이들은 자신들과 다른 동물의 존재를 믿으려 하지 않는다.

어느 날 임마누엘라 선생은 학생들에게 동물에 대해 가르쳐주고 아이들 사이에서 왕따인 니미는 이 동물에 빠져든다. 하지만 아이들은 니미가 동물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마다 입을 막고 폭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그런 니미가 숲에서 사라지고 돌아온 뒤 입을 다물고 이상한 괴성을 질러대자 마을 사람들은 숲의 저주라며 아이들에게 절대 숲과 동물의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당부한다.

호기심 많은 소녀 마야와 소년 마티는 동물의 존재와 밤이면 숲에 나타나는 아홉 번째 나무의 존재에 호기심을 가진다. 어느 날 두 아이는 물고기를 보게 되지만 그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지 못한다. 그 이야기를 하는 순간 그들도 니미처럼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고 괴롭힘을 당하게 될 것이라 생각해서다. 하지만 여전히 동물의 존재를 잊지 못하는 어른들을 위해 마야와 마티는 깊은 밤 숲속을 향하기로 결심한다.

이 작품에는 두 부류의 사람들이 등장한다. 첫 번째는 동물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다. 임마누엘라 선생을 비롯해 농부 알몬, 마야의 어머니 릴리아, 재봉사 솔리나와 남편인 장애인 기놈은 그들이 기르던 동물을 잊지 못한다. 릴리아는 빵가루를 바닥에 뿌리는가 하면 임마누엘라는 학생들에게 동물의 존재를 가르치려고 한다. 두 번째는 동물을 잊으려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동물의 존재를 부정하며 아이들에게 동물이 없다고 가르친다.

동물이 어느 날 모두 사라진 것처럼 또 누군가 사라질까 하는 공포에 밤이면 집에 빗장을 치는 이들의 자세는 다른 생각과 의견을 포용하지 못하고 다름을 거부하는 태도를 보여준다. 이는 아이들에게도 영향을 끼친다. 아이들은 동물소리를 내는 니미를 왕따 시키는 건 물론 장애인인 기놈과 눈이 잘 안 보이는 알몬을 무시하고 모멸한다.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평범한 사람'들과는 다른 사회의 소수자 혹은 소수이기에 무시당하고 멸시당한다.

임마누엘라는 결혼을 꿈꾸지만 번번이 실패하는 노처녀이고 알몬은 키우던 개를 잊지 못해 허수아비와 대화를 한다. 릴리아는 미혼모이고 기놈은 장애인이다. 마을 사람들은 이들을 온정의 시선을 주거나 동등한 인간으로 대우하지 않는다. 아이들이 니미에게 했던 거처럼 말이다. 이런 마을의 모습은 어떤 색도 내지 못하고 품지 못하는 회색으로 작품에서 비유된다.

인간만이 남은 마을은 그 인간 사이에서도 다른 이를 찾아내고 억압과 차별을 반복한다. 인간과 다른 존재인 동물이 사라져도 변하지 않는 이런 폭력의 굴레를 담아냄과 동시에 숲을 향한 마야와 마티를 통해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이 작품은 작가 아모스 오즈의 생각과 사상이 동화적인 상상력을 통해 낭만적으로 구현되었다 할 수 있다. 아모스 오즈는 평화운동가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관련 팔레스타인의 독립국 건립을 공개적으로 찬성하며 반전운동을 펼친 인물이다.

그는 사회가 정한 테두리와 기준 안에 있기 보다는 그 밖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들을 바라보고 포용할 줄 아는 삶을 살아왔고 그의 이런 정신은 <숲의 가족>을 통해 서로가 버팀목이 되고 사랑을 줄 수 있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표현된다. 지구촌(村)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인류가 그 어떤 순간보다 시간적·공간적 제약을 벗어나고 가까워졌다는 의미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나의 마을을 이룰 만큼 서로가 가까워지고 신뢰와 믿음을 보이는 관계로 나아가야 한다.

하지만 여전한 차별과 억압, 인류애와 상반되는 역사의 반복은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 다름(동물)이 사라져 버린, 사랑이 사라져 피폐해지고 그 안에서도 차별의 대상을 찾고 다름을 억압하는 그릇된 방향을 보여준다. <숲의 가족>은 동화가 지닌 환상성과 순수함 속에 인류가 지닌 폭력의 역사의 순환과 그 단절을 바라는 열망을 담아낸 작품이라 할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준모 기자의 개인 블로그, 브런치, 씨네 리와인드에도 게재됩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숲의 가족

아모스 오즈 지음, 박미영 옮김, 창비(2008)


태그:#숲의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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