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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희전문학교시절 두 분의 모습, 중국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와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정병욱은 연희전문학교 선후배로 만나 절친한 글벗이 되었다. 두 분의 아름답고 끈끈한 우정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빛을 불어넣어주었다.
 연희전문학교시절 두 분의 모습, 중국 용정에서 태어난 윤동주와 전남 광양에서 태어난 정병욱은 연희전문학교 선후배로 만나 절친한 글벗이 되었다. 두 분의 아름답고 끈끈한 우정이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빛을 불어넣어주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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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이 막힐 듯한 폭염에 발이 묶여버린 날. 컴퓨터에 저장해둔 영화 <동주>를 보았다. 영화는 수의를 입은 창백한 얼굴의 동주 앞에서 일제 고등형사가 윽박지르는 장면으로 시작해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며 진행된다. 손바닥만 한 옥창 밖 밤하늘에는 수많은 별이 촘촘하다. 윤동주를 연기한 배우 강하늘이 담백한 목소리로 '별 헤는 밤'을 읊조린다. 흑백의 영상미가 돋보이는 영화 '동주'는 담담하고 잔잔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한편의 서정시를 읽는 것 같았다. 후쿠오카의 형무소에서 점점 피폐해지는 동주. 결국 동주는 광복 6개월을 앞두고 차디찬 감옥에서 고통스럽게 스러져간다. 영화가 끝난 후 눈물이 톡 떨어졌다. 3년 전 개봉하는 날 달려가서 보았던 때의 아픈 마음이 고스란히 되살아났다.
    
 정병욱생가의 모습. 1925년에 지어진 목조주택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하는 점포형 주택이다. 200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병욱생가의 모습. 1925년에 지어진 목조주택으로 양조장과 주택을 겸하는 점포형 주택이다. 200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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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풍이 비를 뿌리고 간 다음 날, 광양 망덕포구를 찾았다. 강변 큰 길가에는 동주의 연희전문학교 시절 2년 후배이며 글을 통해 절친한 벗이 된 정병욱의 생가가 있다. 윤동주는 자필로 쓴 원고를 모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라는 제목을 붙여 출간하려 하였으나 일제에 가로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고 그중 한 부를 아끼는 후배 정병욱에게 주었다. 그 후 동주는 독립운동 혐의로 체포되어 옥사하였고 정병욱은 전쟁에 끌려나가며 어머니께 원고를 숨겨달라고 부탁하였다. 노모는 마루를 뜯고 그 아래에 동주의 원고를 숨겨놓았다.

해방되자 노모는 몰래 숨겨놓았던 원고를 꺼내놓았고 연희전문 문과 동기생이었던 강처중이 힘을 보태면서 동주의 유고시집<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정병욱선생의 노모가  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육필원고를 숨겨 놓았던 곳. 마루 색깔이 다른 쪽이 뜯어 내었던 곳이다.
 정병욱선생의 노모가 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육필원고를 숨겨 놓았던 곳. 마루 색깔이 다른 쪽이 뜯어 내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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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가는 1925년에 지어진 일본식 목조건물로 요즘은 보기 힘든 점포주택이다. 윤동주와 정병욱의 우정을 기려 2007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병욱의 노모가 뜯었던 마루는 다시 막아놓았다. 전시된 동주의 육필원고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동주가 일본 유학 시절에 쓴 '쉽게 씌어진 시'가 떠오른다.
육첩방은 남의 나라/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처럼 올 아침을 기다리는 최후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으로 잡는 최초의 악수 - '쉽게 씌어진 시' 중에서 

조국의 독립도 보지 못하고 옥중에서 요절했지만 그 고통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기대와 희망을 포기하지 않았던 동주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꽉 막혀온다.

길을 건너 강가로 나갔다. 가슴이 먹먹해져 온다. 섬진강은 말없이 흐른다. 연인으로 보이는 젊은 남녀가 손을 맞잡고 활짝 웃으며 걸어오는 게 보인다. 문득 그들의 모습 위로 영화의 한 장면이 오버랩된다. 동주가 설레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던 이여진, 그녀는 동주와 함께 문예활동을 하던 이화여전 학생이었다. 새까만 밤하늘에는 별들이 물방울처럼 흐르고 동주와 여진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걷는다. 영화에서는 두 사람의 마음이 더 표현되지 않았지만 동주를 포함하여 그 시대를 살아가던 청춘들도 설레는 사랑을 하고 싶었을 것이다. 젊은 연인은 생가를 그냥 지나쳐간다. 저들은 지금 자신의 자유롭고 예쁜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알고 있을까.
 
 망덕포구 무접섬일대에 조성해놓은 윤동주 시비공원.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 중 별헤는 밤을 제외한 30편의 시를 시비로 제작하여 설치했다.
 망덕포구 무접섬일대에 조성해놓은 윤동주 시비공원. 유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에 수록된 31편 중 별헤는 밤을 제외한 30편의 시를 시비로 제작하여 설치했다.
ⓒ 김숙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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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질곡의 역사 속에서 고작 28년을 살다간 청년 시인의 슬픔과 고통이 더욱더 가슴 아프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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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은 마치 숨을 쉬는 것처럼 나를 살아있게 한다. 그리고 아름다운 풍광과 객창감을 글로 풀어낼 때 나는 행복하다. 꽃잎에 매달린 이슬 한 방울, 삽상한 가을바람 한 자락, 허리를 굽혀야 보이는 한 송이 들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날마다 꿈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