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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30주년을 맞아 유럽한인총연합회에서 강원도 접경지역 학생 24명을 초청했다. 우리는 7월 19일부터 24일까지 4박 6일 동안 독일을 다녀왔다. 독일 통일을 가까이서 보고 배우며 우리의 통일의 길을 돌아보고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

* 공동 취재: 강원도교육청 학생기자단 김하경(고성고1), 전민관(고성고1), 신예진(고성고2), 박우솔(인제고1), 이진하(인제고1), 이선민(인제고3), 원세한(양구고3)

  
 강원도교육청 학생기자단이 이동한 경로다.
 강원도교육청 학생기자단이 이동한 경로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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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분단의 아픔을 느낄 수 있는 곳, 포인트 알파

우리가 독일에 도착해 가장 먼저 간 곳은 '포인트 알파'다. 포인트 알파는 한국의 DMZ와 같은 곳으로, 미국과 동독의 팽팽했던 대치상황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지금 세대의 아이들은 분단의 아픔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부를 남겨놨다고 한다.
 
 당시 전기가 통하던 철조망.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다.
 당시 전기가 통하던 철조망. 지금은 일부만 남아있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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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단선을 기준으로 DMZ 비무장지대가 있는 한반도와 달리 독일은 철조망 하나로 동독과 서독을 갈라놨다. 전기가 흐르는 철조망은 그 길이만 무려 1400km나 됐었다. 당시 철조망 주위는 나무 한 그루 없고, 풀도 자라지 않은 황량함의 극치였다고 한다. 심지어 발자국을 인지하기 위해 특수처리를 해서 어느 방향으로 갔는지까지 알아볼 수 있게 했었다. 
  
 미군과 동독의 감시탑. 한 장면에 담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서 서로를 감시했다.
 미군과 동독의 감시탑. 한 장면에 담을 수 있을 만큼 가까이서 서로를 감시했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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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물관에 있던 자동무기. 철조망을 건들면 힘을 받아 총이 저절로 나가는 시스템이다.
 박물관에 있던 자동무기. 철조망을 건들면 힘을 받아 총이 저절로 나가는 시스템이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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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알파의 국경선을 거닐다 보면 독일 분단의 아픔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서독의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아놓은 시멘트 덩어리, 탈주민을 잡기 위해 풀어놓은 사냥개 모형은 분단의 아픈 역사를 가슴 깊이 새겨줬다. 

철조망 너머 있는 포인트 알파 박물관에서는 독일의 분단 역사뿐만 아니라 분단 과정 중 희생당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배울 수 있었다. 우리는 그곳에서 희생자를 애도하고, 평화를 위한 길은 무엇인가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평화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는 곳, 강제 수용소
 

강원도교육청 학생기자단이 다음으로 향한 곳은 나치 정권의 잔재가 그대로 남아있는 '강제 수용소'였다.

처음 수용소에 받을 내디뎠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독일 현지 학생들이었다. 독일 학생들이 열심히 설명을 듣는 모습을 보면서, 언어가 달라 비록 무슨 내용을 듣고 이야기하는지 알 수 없었지만, 자신들의 아픈 역사를 알고 기억하려는 열의를 느낄 수 있었다.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인근에 위치한 동상이다.
 부헨발트 강제수용소 인근에 위치한 동상이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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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학생들을 뒤로하고 우리는 본격적으로 나치수용소를 둘러봤다. 수용소로 들어가는 길에 넓은 평원이 있는데, 당시 이곳을 꽉 채울 정도로 사람들이 가득했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 밟고 있는 이 땅에 나치 정권에 희생된 사람들이 있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무거웠다.

우리는 모두 약속이라도 한 듯 그곳의 기운을 느끼며 잠깐 침묵했다. 그리고 난 뒤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만든 비석(일정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만지며 희생자들의 평안을 빌었다.

우리가 방문한 월요일에는 수용소를 개방을 하지 않아 내부는 자세히 볼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분위기만으로도 당시의 참혹함과 나치 정권의 잔혹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독일 통일의 시작, 라이프치히

'라이프치히(Leipzig)' 중앙역은 독일에서 가장 큰 역이다. 기차역 내부에는 음식점, 카페, 쇼핑몰들이 있고, 플랫폼으로 통하는 길은 우리나라의 공항과 비슷하다.

그런데 이곳에서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 시발점이 된 시위가 일어났다. 라이프치히 중심가에 있는 니콜라이교회(Nikolaikirche)를 주축으로 1989년 9월에 여행의 자유, 군축 및 인권보호를 주장하는 시민운동이 일어난 것. 동독 정부의 진압에도 시위는 라이프치히를 넘어 다른 도시까지 번졌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이다.
 라이프치히 중앙역이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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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역에서 바라본 노을풍경이다.
 중앙역에서 바라본 노을풍경이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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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을 하듯 트램을 타고 라이프치히 중앙역으로 이동하면서 봤던 노을은 정말 예뻤다. 기차역의 외관은 반짝거렸고, 독일 사람들은 가게 앞 벤치에서 맥주를 마시며 자유를 만끽하고 있었다. 치열했던 역사의 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독일이 있다 생각하니 풍경 하나도 왠지 새롭게 보였다.
  
통일의 주인공이 될 우리들의 이야기

이번 캠프를 통해 우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평화와 통일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캠프에 참가했던 학생들은 일본과 달리 과거를 반성하는 독일의 자세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고 얘기했다. 그리고 독일의 통일 과정을 보며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손하윤 학생(김화고등학교)은 "비슷한 시기에 분단됐지만 우리는 독일에 비해 통일에 대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라며 "독일이 통일을 이룬 후 불가능했던 것들을 가능하게 만든 것을 보면서 우리나라도 통일을 하면 독일처럼 이룰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했다"라고 말했다.

독일은 통일 이후에 동독과 서독 사람들의 차별과 적대감으로 사회문제를 겪고 있다. 하지만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한 노력도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다. 독일의 노력을 우리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

[독일에서 만난 사람①] 자유를 향한 한 청년의 이야기 
 
 포인트알파에서 만난 탈동독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포인트알파에서 만난 탈동독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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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인트 알파에서 우리는 실제 동독을 탈출한 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야기는 2시간을 넘겼지만, 생생한 이야기에 시간이 가는 줄 몰랐다.

그의 꿈은 언론인이었다. 하지만 동독에 언론인은 존재하지 않았다. 16살이 됐을 때 그는 이런 나라에서 살 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학교 친구들과 탈출 계획을 짰고, 가족들이 다치는 것을 막기 위해 탈출 계획을 집에 절대 남기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탈출에 성공한 그가 숙소에 도착했을 때 1000여 명의 독일 학생들이 모여 있었다. 생활습관부터 하나하나 다시 배우며 그는 결국 기자가 됐고, 40년 뒤 독일이 통일됐을 때 기차를 타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가 우리에게 해준 말이다.

"독일에서 얻은 자유를 다시 잃지 않기 위해 사람들에게 항상 투표하라고 얘기한다."

[독일에서 만난 사람②] 유럽한인총연합회 회장 유제헌 
 
 유럽한인총연합회 유제헌 회장님과 인터뷰했다.
 유럽한인총연합회 유제헌 회장님과 인터뷰했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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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84년에 독일에 왔어요. 그때 동서독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었고, 많은 젊은이들이 자유를 찾아 장벽을 넘다가 죽는 일도 많았어요. 독일이 통일되는 모습을 보면서 저는 우리에게도 통일이 어느 순간에 갑자기 찾아올 수 있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어쩌면 통일을 가장 실감할 수 있는 강원도 친구들이 분단과 냉전의 상징이었던 이곳에서 평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통일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느꼈으면 하는 바람에 초청을 하게 됐어요.

한반도의 통일이 독일보다 어렵다고 얘기하는데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북한의 노동력, 손재주, 지하지원과 남쪽의 기술력, 자본력이 잘 결합하면 독일의 통일보다 한반도의 통일이 더 쉽고 빨리 안정될 수 있어요. 그러면 통일 이후에 오래 지나지 않아 대한민국은 강대국이 될 겁니다. 젊은 친구들이 그런 희망을 깨닫는다면 저는 분명히 통일을 바라보는 인식도 달라질 거라 생각해요."


[독일에서 만난 사람③] 독일 시민들 
 
 독일시민과 독일분단, 통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독일시민과 독일분단, 통일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 신예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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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도 분단 국가에서 통일이 된 거라서 한국 분단에 대해 많이 알고 있습니다. 한국이 통일을 하기 위해 북한과 계속 교류를 하고 국민들은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독일은 학교에서 통일에 대해 배우지만, 요즘 아이들은 와 닿게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아요. 어른세대는 직접 느꼈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와 닿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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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배우는걸 좋아하고 다행히 부족한게 많아 하루하루 배우며 살아가는 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