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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게 에키타이 안(Ekitai Ahn)의 친일·친나치 행적의 증거다."
 

이해영 한신대 교수의 말이 끝나자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한 귀퉁이에 설치된 빔프로젝트 스크린에서 동영상이 재생됐다. '에키타이 안'은 애국가를 작곡한 안익태 선생의 일본 이름이다. 이 교수의 설명이 이어졌다.
 
"(1942년 9월) 독일 베를린에서 연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음악회에서 안익태가 '만주환상곡'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이다. (다음 장면에서) 그리고 여기 있는 사람이 '오시마 히로시'이다. 히틀러가 가장 사랑한 일본인이다. 히틀러는 일본에 '히로시를 주독 일본대사로 보내달라'고 요구까지 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란 주제로 공청회가 열렸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란 주제로 공청회가 열렸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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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선생이 '친일을 넘어 친나치였다'는 주장이 국회공청회 장에서 제기됐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 열린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라는 제목의 공청회가 열렸다.

이날 이 교수는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위에 대한 보고서'란 주제로 발제에 나서 "에키타이 안은 친일 행적만 있는 게 아니다, 친나치 행적도 있다"며 "나치 독일에서 유일한 조선 출신이 제국음악원 회원이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에키타이 안은 베를린 주재 만주국 외교관이었던 에하라 고이치를 찾아가 그의 베를린 자택에서 1941~1944년까지 머물며 히틀러의 생일 기념 연주회를 지휘한 적도 있다"라며 "부마항쟁과 광주항쟁, 6월 항쟁 때도 부른 애국가지만 그때는 우리가 이런 사실(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을) 몰랐을 때라 용서가 된다. 하지만 2000년대부터 안익태의 친일 행적이 드러나기 시작했는데 이를 알고도 계속 부를 거냐"고 말했다. 

친일인명사전 편찬위원장을 역임한 윤경로 한성대 명예교수도 "안익태가 처음부터 친일은 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실의 길을 걸을 것인가, 역사의 길을 걸을 것인가'의 갈림길에서 그는 현실을 선택했다"라며 "(현실을 선택한 그는) 엄혹한 식민지 시대에 잘 먹고 출세했다. 음악·영화·미술을 통해서 대중에게 왜곡된 현실을 인식하게 하는 예술인들은 엄중한 역사의 판결을 받아야 한다"라고 비판했다.

안익태의 친일 행적에 분노하며 '안익태 곡조 애국가'를 부르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김원웅 광복회장은 "애국가 작곡가가 친일·반민족 인사라는 데 대해 형언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끼고 있다"며 분노했다. 항일독립선열선양단체연합 회장인 함세웅 신부도 "안익태가 만든 곡조가 익숙하지만 잘못된 사실을 확인한 만큼 이를 버려 민족애를 확인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라고 지적했다.

안익태의 친일행적이 논란이 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00년대 일제에 부역한 정황이 확인되면서 안익태는 친일인명사전에 이름이 올랐다. 지금까지 알려진 안익태의 행적을 살펴보면, 1920년 일본으로 유학을 떠난 그는 1930년 봄 동경국립음악학교를 졸업하고 같은 해 가을에 미국으로 이주해 신시내티 음악원 등에서 첼로를 공부했다.

애국가를 작곡한 것은 1935년 말로 알려져 있다. 이후 1938년 2월에는 아일랜드에서 자신이 작곡한 '코리아 판타지(한국환상곡)'를 초연했으며, 같은 해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음악원의 교환학생으로 작곡과 지휘를 공부했다. 1940년부터 'Ekitai Ahn'(에키타이 안)이란 이름으로 헝가리 등 동유럽 각국과 이탈리아에서 오케스트라를 지휘했다. 1965년에는 문화훈장 대통령장을 받기도 했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란 주제로 공청회가 열렸다.
 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안익태 곡조 애국가 계속 불러야 하나?"란 주제로 공청회가 열렸다.
ⓒ 정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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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공청회에선 안익태의 친일·친나치 행적만 꼬집은 게 아니다. '안익태 애국가'가 불가리아의 노래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О, Добруджански кра·오 도브루자의 땅이여)'를 표절했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김정희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안익태의 표절과 자기표절'이란 발제에서 "(안익태 애국가) 전체 16마디 중 4마디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서 선율의 유사성이 매우 높다"라며 "애국가의 출현음 총 57개 중 맥락과 음정이 일치하는 음도 모두 33개로 58%의 일치도를 보였다. 변주된 음까지 포함하면 모두 41개로 유사도가(일치도) 72%로 높아진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 정도 유사도로는 표절의 의도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결과적으로 표절임을 부인하기 어려운 수치"라며 "(불가리아의 노래) '오 도브루잔스키 크라이'는 오래전에 만들어져서 저작권 관련 법적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표절인 것을 확인한 이상 공식적인 행사에서 이를 부르길 강요하거나 권장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라고 밝혔다.

구자운 문화기획 '얼룩소' 대표는 "안익태는 군국주의 일본과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Propaganda·선전선동)에 자발적으로 협력했다"고 했다.

구 대표는 "안익태는 유럽에서 주로 한국환상곡을 연주했다고 주장하나 실제로는 일본인 '에키타이 안'으로 활동했다"라며 "일본 황실 음악을 주제로 작곡한 '에텐라쿠(월천악)'와 일본 황기 2600년을 기념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가 작곡해 헌정한 '일본축전곡', 일본의 괴뢰국인 만주국 건국 10주년을 기념해 작곡한 '만주환상곡' 등을 주로 지휘했다"라고 비판했다. 따라서 구 대표는 "안익태의 애국가가 초중등 교과서에 '국가'로 실리고 그의 신화는 지금도 끊임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라며 "안익태 곡조 애국가를 부르지 말자"고 했다.

참석자들은 친일파 작곡가의 애국가를 더 부르지 말자는 주장에 박수를 치는 것으로 동의한다는 의사를 표현했다. '안익태 애국가'를 대처할 새로운 애국가가 필요하다는 주장에도 박수갈채로 답했다.

문화운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임진택 판소리명창은 '안익태 애국가'를 대체할 새로운 애국가를 제안했다. 그는 "만약 현재 애국가 가사에 국민 모두가 알고 있는 아리랑 곡조를 입혀 부른다면 그것은 '아리랑 애국가'가 된다"라며 "애국가류의 범주를 넓혀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을 허용하거나 공모를 통해 애국가류의 노래를 선정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했다.

이날 공청회를 주최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안민석 의원은 인사말에서 "한일 경제 갈등이 고조되는 경제전쟁 국면이지만, 이번 기회야말로 친일 잔재를 청산할 수 있는 최적기라고 생각한다"라며 "친일 작곡가 안익태에 대한 불편한 진실을 국회에서 꺼내놓고 국민에게 판단을 맡겨보자는 제안을 받고 공청회를 주최하게 됐다"라고 말했다.

태그:#안익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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