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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년쯤 전 터키에 놀러갔을 때 일이다. 온천으로 유명한 지역의 호텔 수영장에서 친구와 열심히놀고 있는데 70살은 되어 보이는 땅딸막한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묻는다.

"Thailand?"
"No, Korean."


우리는 동방예의지국에서 온만큼 얼굴에 웃음을 띄고 대답한다.

"Ah, Korea! Deutschland, Deutschland!"

자기를 가리키며 말한다. 독일에서 왔나보네. 내가 알겠다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

할아버지가 또 뭐라고 얘기를 하는데 못 알아듣겠다. 영어가 익숙하지 않은 듯했다. 내가 계속 못 알아듣겠다는 표정을 하자 손을 들어 주무르는 동작을 하더니 "Massage? Massage?" 한다.
 
갑자기 뭔 뜬금없이 마사지를 찾나 어리둥절한 가운데 친구와 난 여전히 친절하게 웃으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하고는 우리끼리 수영을 계속했다. 그러다 퍼뜩 그 할아버지 질문의 의미를 깨닫고는 수영장 한가운데 섰다. '태국, 마사지.' 우리에게 매춘을 하냐고 물어본 것이다. 독일 사람들이 태국으로 매춘 관광을 많이 가서 사회적 문제가 된 적이 있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떠오르면서 나도 모르게 욕이 나왔다.  

여행할 당시 터키엔 독일 관광객, 특히 은퇴 후 여행을 하는 노년층을 많이 볼 수 있어서 그들과 한두마디 주고받는 것이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경계심 없이 대했는데 저런 쓰레기 같은 일을 당했다. 너무 분해서 며칠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어제 아베 총리 보좌관이 방일한 여야 의원에 "한국은 과거 매춘 관광국"이라고 발언했다는 기사를 읽고 예전 일이 떠올랐다. 부끄러움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얼굴로 나에게 매춘을 묻던 독일 할아버지. 오히려 분함과 수치심은 나의 몫이었다. 이번에도 부끄러움은 당하는 우리 몫인 것 같다.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사람은 안다, 1970년대 정부에서 관광객 유치를 위해 매춘 관광을 암묵적으로 승인했다는 것을. 그리고 그 관광객의 대부분이 일본인이었다는 것을. 1970~1980년대에는 '기생관광', '일본인 현지처'라는 말이 공공연히 사용되었고, 1990년대 초중반까지 서울시내 특급호텔 중 일부는 일본인 매춘 관광객으로 돈을 벌었다. 부끄럽지만 우리의 한 과거다. 하지만 그 과거가 우리만 부끄러워할 일인가. 우리나라에 단체 매춘 관광을 왔던 일본인들은 떳떳한가.

대부분의 국가는 성매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성을 파는 사람도, 사는 사람도 처벌대상이다. 어쩌면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성판매보다는 성구매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더 강력하게 하는 것처럼, 독일이 태국으로, 한국이 동남아시아로 '섹스관광'을 떠나는 것을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비판하며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성구매는 판매보다 더 부끄러워해야 할 일인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 해도 성구매는 그 자체로 매우 부끄러워할 일이다. 그런데 아베 보좌관이 한국의 국회의원들을 앞에 두고 '한국은 매춘 관광국'이라는 말을 당당하게 하는 것을 보면 자신들이 과거에 성을 구매한 일에 대해선 아무 문제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마치 처음 보는 동양인 여자에게 수치스러움 없이 마사지 매춘을 물었던 그 독일 할아버지처럼 일부 일본인은 성을 구매했던 과거가 부끄러워할 일도, 숨겨야 할 일도 아니라고 생각하는지, 더 나아가 성을 구매했던 상황에 일종의 우월감을 느끼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과거 식민지 역사에 대해 아베 정부가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기존의 그들의 언행으로 충분히 알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문제를 풀어야 할 숙제로 인식하고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해결해야 할 숙제가 역사적 사건을 바라보는 것의 차이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우리는 너네와 다르다'는 우월한 시각에서 비롯된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이번에도 며칠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다. '너는 나와 동등하지 않다'라는 차별적 발언에 분개하는것은 나의 몫이기에. 어떻게 행동했길래 이런 취급을 받는지 자책하는 것 역시 나의 몫이기에. 그리고 무엇이 잘못인지 모르고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도 모르는 자가 역시 부끄러움을 모르기에.  

태그:#한국, #일본, #매춘 관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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