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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을 벗어나 국도를 달린다. 환한 햇살이 쏟아지는 시골마을을 지난다. 녹음이 짙어가는 산길. 소음조차 숨죽인다. 숲길에 들며 뒤엉킨 마음도 맡겨버린다. 구불거리는 좁다란 산길 위에서 너울거리는 계절을 느낀다. 비로소 그 땅의 너그러움에 마음이 열리기 시작한다. 충북 진천이다.      

삼층 목탑 양식의 건축, 보탑사의 꽃 정원

 
꽃 속의 보탑사 연인들
 꽃 속의 보탑사 연인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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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거진천(生居鎭川)이라 했다. 살아서는 진천이라 함이 저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산천이다. 서울에서 출발해서 자동차로 두 시간 정도 달리면 진천에 닿는다. 친절한 사람들이 비켜주는 좁다란 숲길을 따라 산 밑을 지나면 길 옆의 계곡이 물소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산 아래 정갈한 사찰 보탑사( 寶塔寺)가 조용히 앉혀져 있다.

고려시대의 절터로 추정되는 곳에 대목수 신영훈 장인을 비롯 문화재급 전문가들과 비구니인 지광·묘순·능현 스님들이 모여 1996년에 창건했다. 그후 지장전·영산전·산신각 등을 건립하고 2003년 불사를 마쳤다.

역사가 길진 않지만 이 절이 많은 이들에게 관심을 받는 이유가 몇 가지 있다. 못을 사용하지 않고 끼워 맞추는 전통방식으로 지어진 목탑이라는 것이다. 내부에는 3층까지 오르는 계단이 있다. 108척 높이의 대웅전, 법보전, 미륵전의 3층 목탑은 내부도 웅장해서 놓치지 말고 들여다볼 만하다.
      
무엇보다도 온 천지에 꽃들이 가득하다. 여름과 가을에도 쉬지 않고 피어나는 꽃들을 볼 수 있는 절이 보탑사다. 목탑 주변은 경계석이나 담이 없고 야생화를 가득 담은 대형 화분들이 풋풋하게 자리 잡고 있다.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는 아담한 처소 앞에도 자잘한 꽃들이 텃밭을 채우고 있다. 군데군데 예사롭지 않은 석탑과 반가사유상, 불족석, 영산전, 전각, 격조전 입구의 석불과 와불상의 평온한 표정은 꽃과 자연 속에서 제 몫을 보여주니 바라보는 느낌이 달라진다.

사찰 계단을 오르면 입구에 화들짝 피어난 탐스런 작약이 맞이한다. 그것을 시작으로 경내 어디든 발걸음마다 꽃이다. 심지어 계단참에도, 돌무더기에도, 바위틈 갈라진 곳에 구절초가 눈부시고, 담장 허리춤에도 꽃이 제 모습을 내밀었다. 산속의 정원이 바로 여기 있었다.

여느 사찰들처럼 규모가 웅장하거나 근엄한 모습이 아니다. 평온하고 아늑하다. 불자가 아니어도 편안히 꽃 속에 머물다 가려는 여행자들이 조용히 오간다. 야생화 앞에 앉아 사진 담기에 열중하는 사진가도 보인다. 온통 꽃과 나무들로 어우러진 경내를 걷다 보면 사찰이 아니라 어느 조용한 고택에 온 듯도 하다.

봄빛 화사한 초봄부터 사계절 꽃 피우는 보탑사, 그 사찰 뜰을 거닐며 소원도 빌어보고 싶은 곳, 보련산 자락 깊은 산속에 자연에 순응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은 보탑사는 사계절 언제든 나서볼 만한 곳이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641 보탑사. 043-533-0206
     
자연생태공원에서 함께하는 시간을
 
만뢰산 생태공원의 데이트
 만뢰산 생태공원의 데이트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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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를 나와 주차장에서 핸들을 돌려 5분 남짓 달리면 만뢰산 자연생태공원이 나온다. 11만 8500여㎡의 넓은 자연환경이다. 잔디광장, 생태교육장 등 열린 마당과 생태습지, 수목원, 야생초화·허브원, 가족 피크닉장, 습생초지원, 열매나무원 등을 갖춘 체험 숲으로 구성돼 있다.

이곳은 남녀노소 누구라도 가볼 만하다. 아이들의 자연학습장으로 더없이 좋다. 연인들이 손잡고 산책로를 따라가고 있다. 만뢰산으로 이어지는 등산로가 생태공원과 이어져 있어서 건강하게 걷는 이들을 볼 수도 있다.
      
물소리길, 별 따라가는 길, 산내음 길 숲을 걸으며 산으로 둘러싸인 생태공원의 신선한 공기를 맛본다. 넓은 잔디밭엔 아이들이 축구를 하고 몇 개의 텐트 앞에 앉아 휴식 중인 가족들의 모습이 평화롭다.

생태공원 인근의 연곡저수지와 백곡저수지는 살아있는 시골 풍경이다. 종(鐘) 박물관과 참숯 테마공원도 있다. 만뢰산과 연계한 다양한 문화와 자연환경으로 둘러싸인 지역이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 연곡리 34-1
      
역사를 잠깐 짚어보는 시간
 
김유신장군의 태실이 보관되어 있는곳, 한적함을 즐겨보는 시간.
 김유신장군의 태실이 보관되어 있는곳, 한적함을 즐겨보는 시간.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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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뢰산 자연 생태관에서 다시 1~2분 정도 잠깐 달리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것이 길가에 있다. 사적 제414호 진천 김유신 탄생지와 태실(鎭川 金庾信 誕生址와 胎室)이다. 오랜 세월이 느껴지는 느티나무가 우뚝 서 있고 대뜸 보아도 역사적인 느낌을 준다.

김유신 장군의 태실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 김유신 장군이 태어났고 출산한 뒤 나온 탯줄이 이곳에 있다. 김유신의 아버지 김서현 장군이 이곳 진천(옛 지명으로는 만뢰)의 태수로 지내고 있을 때 김유신이 태어났다. 뒷산인 태령산에 탯줄을 묻었고 집 한 채와 김유신의 유허비가 있다.

한적한 나무 그늘 아래 캠핑 중인 텐트가 있었고 데이트 중인 젊은 연인도 보인다. 앞마당엔 냉이꽃이 가득 피어있고 민들레 홀씨가 날리고 있었다. 잔잔하게 여유로운 풍경이다. 입구 둘레엔 수국이 탐스럽고 역사가 고여 있는 자리답게 얼핏 보아도 무심한 멋이 느껴져 들러볼 만하다.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170-4, 외 129필지(상계리). 전화번호.043-539-3840 
     
천년의 다리
 
산천은 의구하되 생거진천의 천년의 농다리도 여전히 그 자리에...
 산천은 의구하되 생거진천의 천년의 농다리도 여전히 그 자리에...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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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진천 하면 빠뜨릴 수 없는 것이 농다리다. 예부터 돌을 차곡차곡 쌓아 내(川)를 건널 수 있는 정겨운 다리를 놓았다. 진천의 농다리도 그런 다리와 비슷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되고 긴 돌다리이다. 두툼하고 널찍한 돌들을 포개어 쌓아 올려 다리가 되었고 그 교각 사이로 물살이 흘러나가는 모습에 옛 분들의 손길이 느껴져 따뜻하다.
 
농교(농다리)는 상산군의 남쪽 1리에 있는데 세금천(미호천의 옛 이름)과 가리천이 합류하는 굴치산 앞에 있는 다리이다. 지금으로부터 900여 년 전 임장군이라는 사람이 창설하였는데… (중략) … 장마물이 넘칠 때면 다리 위로 흘러 몇 길에 이르고 노한 파도와 놀란 물결이 그 사이에서 소리를 내었다. 일찍이 하나의 돌도 달아나지 않았지만 세월이 오래되어 네 칸이 매몰되어 지금은 25칸이다. 그 설치된 것을 돌아본 즉, 흩어져 있는 돌을 포개어 쌓은 것에 불과한데도 험한 여울에 가로질러 있으면서 능히 천년의 오랜 시간을 지탱하였으니 세상에서 신기하다고 일컫는 것이 당연하다.

1932년에 농다리의 기록이 이러하니 가히 천년의 다리로 추정할 만하다. 그렇게 우직하게 오랜 세월을 견뎌왔고 천년의 농다리가 지금도 그 자리에 있는 것이다. 한적한 냇가에서 묵묵히 그 세월을 견디고 사람들의 발걸음을 지탱해 온 농다리다. 단지 돌을 얹어 놓은 것뿐인 것 같은데 무수한 세월을 그대로 버텨온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첨단 토목 기술로 만들어낸 다리도 오랜 세월이 지나면 재공사를 하거나 때론 무너지기도 한다. 그런데 천년 세월 무수한 풍상을 겪으며 홍수가 나도 유실됨 없이 끄떡없다니 신비롭다.

이제는 역사의 다리가 되어 매년 5월 중하순 경이면 '천년의 발자취! 농다리에 반하다'라는 제목으로 진천 농다리축제가 열린다. 최근에는 수변산책로도 조성되어 간 김에 조용히 산책시간을 보내기도 좋을 듯. 볼거리가 많아 북적이는 여행지가 아닌 이렇게 한적한 곳을 찾아보는 기분도 특별하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 농다리
 
그 산길을 내려오면 수더분한 토속음식을 맛볼수 있다.
 그 산길을 내려오면 수더분한 토속음식을 맛볼수 있다.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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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탑사를 나와 잠깐 달리면 길 옆으로 숯막 간판이 나타나고 전원적인 수수한 음식점 두 집이 마주 보고 있다. 민물새우찌개와 수제비, 정갈한 더덕구이정식이나 묵밥을 먹을 수 있다. 물론 파전과 동동주도 있다. 제법 오래된 맛집이다. 산속의 음식점에 앉아 창 밖으로 보이는 산속의 시골길을 내다보며 평화로움도 함께 맛보는 시간이다. 매달 5일. 10일 진천 장날도 참고하면 좋다.
 
생거진천의 냇가에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
 생거진천의 냇가에서 동심으로 돌아가는 시간...
ⓒ 이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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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부터 생거진천(生居鎭川), 사거용인(死居龍人)이라 전해온다. 물 좋고 비옥한 평야에 풍수해가 없이 농사가 잘 되는 고장이어서 생거진천(生居鎭川), 산세가 순하고 사대부가의 지리적 명당으로 좋다 하여 사거용인(死居龍人)이라 불렸다고 전한다.

때로 조용한 시간이 필요할 때가 있다. 그럴 때 자동차 핸들을 잡고 훌쩍 서울을 떠나보자. 고속도로를 두 시간여 달리면 충북 진천이다. 일탈이나 휴식과 피서가 동시에 가능한 여행이 된다. 도시를 떠나 시골길을 달리고 산속에 파묻혀볼 수 있는 하루 코스 생거진천(生居鎭川)이다.

▶자가용 : 네비게이션에 <충북 진천군 진천읍 김유신길 641 보탑사> 주소를 넣고 달린다.
▶버스 : 시외버스 종합터미널-진천 시외버스터미널-연곡리행 버스-보탑사 정류장 하차.

덧붙이는 글 | 여행에세이 <잠깐이어도 괜찮아> 의 저자입니다. 이 기사는 타 커뮤니티에도 실립니다.


태그:#생거진천, #보탑사, #농다리, #하루코스 여행, #충북 진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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