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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위에 '초등학생 수저 크기' 문제 진정서를 냈던 오문봉 교사.
 인권위에 "초등학생 수저 크기" 문제 진정서를 냈던 오문봉 교사.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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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 결정문 앞부분엔 '각하'라고 되어 있어서 마음에 안 들었어요. 그런데 두 번 세 번 읽으면서 인권위에서 '어린이용 수저 제공' 의견을 표명하기 위해 여러 이유를 드는 등 많은 노력을 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하여튼 제 얘기를 잘 들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인권위법상 교육권은 인권위 조사 대상에 해당하지 않아 오 교사의 진정은 각하됐다. 인권위는 대신에 결정문을 통해 어린이용 수저를 사용하라고 따로 의견을 냈다. - 기자주)

손전화를 든 오문봉 교사(49, 인천 가원초)가 수화기 너머에 있는 인권위 조사관에게 말하고 있다.  2일 오후 1시 30분, 인천에 있는 한 커피숍에서다.

"인권위와 교육청에 고맙다"

하루 전인 1일, 인권위는 '초등학교 급식에서 성인용 수저 제공 관련 의견표명'이란 제목의 결정문을 냈다. 주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관련 기사 : "초등학교 급식에서 성인용 수저 제공하면 '인권침해'" http://omn.kr/1k8tx)
 
"'학교급식법' 제3조 제2항에 따른 학교급식에 관한 계획을 수립·시행할 때, 아동이 사용하기에 알맞은 수저 등의 제공을 포함하여, 학교급식 제공에서도 아동 최선의 이익 원칙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는 의견을 표명한다."

인권위는 이 결정문에서 "진정인은 초등학교 학생들의 급식에서 성인용 수저가 제공되고 있어 초등학생 피해자가 음식물 섭취가 어려운 등의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인권침해라는 진정을 제기했다"면서 "학교급식은 가장 기초적인 교육이자 의무교육의 첫 단계인 초등교육 과정의 일부라는 점, 아동 최선의 이익 등을 고려할 때, 학교급식에서 아동이 사용하기에 알맞은 수저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초등학생 수저'에 대한 색다른 결정문을 끌어낸 진정인은 누굴까? 바로 오문봉 교사다. 그는 2018년 12월 11일 인권위에 '초등학생들에게 아동용 수저를 제공해 주세요'란 제목의 진정서를 냈다. (관련 첫 보도 : "초등학교 1학년 '고사리손'에 어른용 큰 수저?" http://omn.kr/1g7xe)

오 교사의 진정 사실이 알려지자 올해 초부터 서울, 인천 등 상당수의 시도교육청은 초등학생에게 '어린이용 수저' 제공 요청 공문을 학교에 보냈다. (관련 기사 : "초등학생에 맞는 수저 제공을..." 서울시교육청 첫 공문 http://omn.kr/1gvd5)

하지만 이 같은 인권위 의견표명 내용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아이들이 수저를 직접 갖고 다녀라" "아이들이 어른용 수저로도 밥만 잘 먹는다" "수저 문제가 무슨 인권 문제냐" 등의 주장이 그것이다.

인권위 진정 당사자인 오 교사를 2일 오후 1시부터 2시30분까지 직접 만나 인터뷰했다. 인권위 결정과 비판론에 대한 의견을 듣기 위해서였다.

"아이들과 제가 가진 수저 크기가 똑 같아, 부끄러웠다"

- 인권위 의견표명에 대한 소감부터 말해 달라.
"의견표명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학교 현장에서 문제를 제기하고 해결을 해보려고 했지만 너무 어렵고 힘들었습니다. 인권위에 진정을 접수하고 언론에 보도가 되면서 많은 시도교육청에서 실태조사와 함께 수저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올해 3월부터 적용되는 많은 학교 현장의 소식을 접했는데요. 교육감들에게도 감사드립니다. 학교, 교육청, 교육부, 그리고 우리 사회가 이 문제를 계기로 어린이와 학생들을 차별하지 말고 배려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 수저 크기에 대한 생각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지난해 3월 학교를 옮겼는데 교실 배식이 아니라 식당 배식이었어요. 식당 배식학교로 와서 아이들과 같은 식탁에서 밥을 먹는데 (그 부분이) 확 보였습니다. 어린이들이 젓가락질을 잘하지 못하잖아요. X자로 먹는 아이가 많았어요. 가만히 봤더니 애들이 먹는 수저 크기와 제가 먹는 수저 크기가 똑같더라고요. 그걸 뒤늦게 알아챈 순간 제 자신이 너무 창피했고 부끄러웠어요."

- 왜 부끄러웠나?
"교사로서 너무도 늦게 알아챈 것 같아 그랬어요. 2008년도에 교육부 공문 시행으로 학교에서 학생 수저를 제공함으로써 수저 문제는 끝났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10년이 지나 수저 크기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됐습니다."

- 오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수저를 제공해야 한다'는 주장을 이전부터 펼쳐오지 않았나?
"2000년대 초중반부터 학교에서 아이들에게 수저를 제공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 당시엔 수저를 직접 가지고 다니게 했거든요. 교무회의 때 이것은 차별이라고 의견을 제시했죠. 모든 식당에서 수저는 다 공용이잖아요. '어느 나라 식문화가 먹는 사람이 도구를 들고 다니느냐'고 주장을 했지요. 그런데 이런 의견에 동조해주는 분들이 많지 않았어요."

- 이 문제는 2008년 교육부 공문 한 장으로 해결된 것으로 아는데.
"2006년 7월 한국소비자보호원이 '초등학생 수저 집에서 식중독균을 대거 검출했다'고 발표했어요. 그러면서 학생용 수저를 모두 학교에서 제공하는 것으로 2008년에 바뀌었죠."

- 그런데 이번에 수저 크기 문제로 인권위에 진정을 낸 이유는 뭔가?
"2018년 5월에 교무회의에서 '아이들에게 아동용 수저를 제공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어요. 그런데 같은 해 7월, 제가 배제된 논의기구에서 '지급을 안 해도 된다'는 결론을 내렸어요. 그래서 고민하다가 12월에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거죠."
 
 한 초등학생이 어른용 수저로 음식을 찍어먹고 있다.
 한 초등학생이 어른용 수저로 음식을 찍어먹고 있다.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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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위에 진정을 넣은 사실이 보도가 많이 됐다.
"상당히 놀랐습니다. 인권위에 진정을 넣고 난 뒤 언론 보도가 나오자 시도교육청이 즉각적으로 실태조사를 하고 후속 대책을 내놨어요. 인천시교육청의 경우 급식팀장이 저를 직접 만나 의견을 듣기도 했어요. 서울 등 다른 교육청들도 이 문제를 해결했고요.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 오 교사가 용기 있게 진정을 처음 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고 생각한다.
"시도교육감이나 교육청들이 발 빠르게 움직였어요. 인권위 결정도 나지 않았는데 실태조사도 하고 후속 대책도 내놓고요. 무엇보다 <오마이뉴스>가 이 문제에 대해 처음으로 관심을 두고 보도하고 다른 많은 언론도 보도해 주었어요. 이 문제가 해결되는데 언론이 큰 힘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해 의견서와 성명서를 내준 경남 초록우산어린이재단과 서울교사노조에도 고마운 마음입니다."

- 하지만 수저 보도에 대한 인터넷 댓글에는 반대 의견도 많았다.
"'아이들이 숟가락 직접 갖고 다녀라'는 댓글도 봤는데요. 어른들은 회사에서 단체 급식을 할 때 숟가락 가지고 다니나요? 수저를 매번 가지고 오는 것도, 씻는 것도 매우 힘든 일입니다. 아이들이 어른 수저에 대해 불평하지 않는다고 해서 문제가 없는 게 아닙니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들은 그런 불평을 학교에 말하지 못합니다."

"어른 수저 사용은 어른 구두 신고 다니라는 격"

- '수저가 무슨 인권이냐'는 반론도 있었는데.
"인권의 문제 이전에 차별과 배려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어른들한테는 어른에게 맞는 수저를 주면서 아이에게 맞는 수저를 주지 않는 것은 차별이면서 배려가 부족한 문제라고 봅니다. 차별과 배려의 문제는 바로 인권 문제입니다. 아이들이 어른 수저를 사용하는 걸 좋아한다는 댓글도 봤는데요. 아이들이 엄마 아빠 구두 신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아이들한테 어른 발 크기에 맞는 구두를 신고 다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 아닐까요?"

- 인권위에서 말한 '아동 이익 최우선의 원칙' 때문에 피해 보는 사람이 있나?
"이렇게 한다고 교사나 어른 중 피해받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아직도 학교는 학생들의 불편함을 감수하게 하는 게 여러 개 있어요."

- 무엇이 있나?
"화장실 내 화장지 문제. 교직원 화장실엔 화장지가 있는데 과거 학생 화장실엔 화장지가 없는 경우가 많았어요. 대부분 학교가 학생들에게 개인 화장지를 가지고 다니게 했어요. 현재 많은 학교가 화장지를 제공하지만 주로 화장실 칸막이 밖에 걸어두고 있어요. 화장지를 아끼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학교는 아이들이 공부하고 생활하는 공간이잖아요. 화장실 칸막이 안에는 물론이고 교실에도 화장지를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들이 학교에 5~6시간 있는데 화장지만큼은 제공해야 한다고 봐요."
  
- 학생들 이익이 침해당하는 다른 것도 있나?
"정사각형에 가까운 조그만 사물함도 그래요. 지금 아이들 사물함이 교과서만 둘 수 있는 구조로 되어 있어요. 사물함이 작다 보니 점퍼 등을 넣어둘 데가 없어요. 긴 직사각형 형태로 되어야 옷도 보관하고 다른 도구도 같이 보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학교는 이런 기본적인 배려가 없네요. 안타깝습니다."

- 끝으로 수저 문제 제기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
"솔직히 '너만 아이들 생각하느냐' 하는 비아냥거리는 눈길을 견디기 힘들었어요. 일부 교장들은 물론 소수지만 교사들에게서도 이런 소리가 들려오는 걸 들으면서 마음이 아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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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