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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아베 정권 규탄한다"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한국YMCA, 흥사단 등 682개 단체 소속 회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아베 정권을 규탄하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촉구하고 있다.
▲ 시민단체 "화이트리스트 한국 배제 아베 정권 규탄한다" 민주노총, 한국진보연대, 한국YMCA, 흥사단 등 682개 단체 소속 회원들이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한국을 백색국가(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한 아베 정권을 규탄하며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파기를 촉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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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7월 31일, '역적'과 '매국노'라는 조롱을 감내하며 일본에 왔다. 이미 오래 전부터 구체적인 계획이 잡혀있었던 데다, 수개월 전 항공권과 숙박비 결제까지 끝난 상태였다. 기꺼이 위약금을 물어가며 일본 여행을 취소하는 이들의 결기 앞에 눈치를 보며 잔뜩 움츠린 채 짐을 쌌다.

환전하는 일부터 만만치 않았다. 당장 은행 직원부터 '이 와중에 대단하다'며 눈을 흘겼고, '무사히 다녀오라'는 격려 아닌 격려를 건넸다. 엔화를 건네받으려니 옆 창구에서 순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죄다 무슨 구경거리라도 되는 양 쳐다보았다.

뒤통수가 따가워 달아나듯 은행을 뛰쳐나왔다. 순간 집 앞 어느 일본 브랜드 의류 매장에는 들락거리는 손님보다 매장 밖에서 그들의 숫자를 세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우스갯소리를 한 이웃으로부터 들은 기억이 났다. 아무튼 이렇게까지 하며 일본에 가야하나 싶었다.

일본을 찾은 두 가지 이유

은행 직원의 말마따나, '이 와중에' 일본을 찾은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하나는 '답사'고, 다른 하나는 '방문'이다. 일본의 심장부인 도쿄에서만 8일을 머물며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흔적들을 찾아볼 요량이었고, 도쿄에 살고 있는 제자를 근 10년 만에 만나기 위해서다.

제자는 국내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일본에 건너와 대학원 공부를 이어갔다. 석사와 박사 과정을 거치면서 체류 기간이 시나브로 늘어났다. 끝내 박사 학위는 받지 못했지만, 건실한 일본 기업에 취업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청년이다.

그와 함께 보낼 하루를 제외하고, 꼬박 일주일은 답사 일정으로 채웠다. 기존의 여행안내서는 지하철 노선이나 할인권 등 교통 정보 등을 제외하면 별 쓸모가 없다. 도쿄만 해도 수십 종이 나와 있지만, 과문한 탓인지, 독립운동 유적에 관해 소개하고 있는 건 단 한 권도 없었다.

일단 구글 맵의 도움을 받고,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찾아갈 작정이다. 교통비가 턱없이 비싼 도쿄에서 불매 운동에 동참하는 마음으로 폭염 속에서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닐 각오다. 도쿄 내 독립운동 유적에 관한 여행안내서를 최초로 만든다는 심정으로.

내비게이션조차 헤맨다는 도쿄에서 그곳들을 굳이 찾아가려는 건, 2019년 올해가 우리에겐 '특별한' 해이기 때문이다. 주지하다시피,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지 100주년이고, 동시에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항일무장의거단체인 의열단 창립 100주년인 까닭이다.

참고로, 의열단은 약산 김원봉의 주도로 1919년 11월에 중국 길림에서 결성되었다. 그들은 총독부와 동양척식회사 등 일제의 통치기구를 폭파하고, 일왕과 총독 등 거물급 정치인과 친일 고위관료의 처단을 목표로 삼았다. 하여 그들의 활동 무대는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도쿄는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의열단의 자취를 동시에 아우를 수 있는 곳이다. 하지만, 뜨거웠던 역사의 현장에는 아무런 표식이 남아있지 않아 찾아가기도 힘들뿐더러 찾아가지도 않는다.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 정부만큼이나 독립운동사에 대한 우리의 무관심 탓도 크다.

3.1운동의 기폭제가 된 유학생들의 '2.8 독립선언'의 현장도, 백범 김구가 이끈 한인애국단 소속 이봉창이 쇼와 일왕에게 폭탄을 투척한 곳도 이곳 도쿄의 한복판이다. 의열단원 김지섭이 왕궁을 향해 폭탄을 던진 곳도 이봉창의 의거지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이봉창의 도쿄 의거는 직후에 일어난 윤봉길의 상해 훙커우 공원 의거와 함께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존재를 다시금 부각시킨 역사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무장 의거라는 의열단의 독립운동 방식에 대해 성과를 인정하는 셈이었고, 향후 두 세력이 힘을 합치는 계기로 작용하게 된다.

생각과 달랐던 일본 분위기
 
관동 대지진 희생자 추도비 아라카와 강변 주택가에 아담하게 세워진 추도비의 모습. 주변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와 봉선화가 담처럼 심어져 있다.
▲ 관동 대지진 희생자 추도비 아라카와 강변 주택가에 아담하게 세워진 추도비의 모습. 주변엔 우리나라를 상징하는 무궁화와 봉선화가 담처럼 심어져 있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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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집단학살 추정지, 아라카와 강변 도쿄 북동부 아라카와 강변은 지금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현재 집단학살의 자취를 찾아볼 수는 없고, 인근 주택가에 추도비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집단학살 추정지, 아라카와 강변 도쿄 북동부 아라카와 강변은 지금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다. 현재 집단학살의 자취를 찾아볼 수는 없고, 인근 주택가에 추도비가 세워져 있을 뿐이다.
ⓒ 서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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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1923년 관동 대지진 당시 학살당한 조선인들을 기억하는 일도 빼놓을 수 없다. 6천여 명이 학살되었다는 숫자도 추산일뿐더러 그들의 유해를 찾아 모시는 건 불가능한 일이 됐다. 집단 학살된 곳조차도 당시 생존자의 증언에 의존해야 간신히 더듬어볼 수 있다.

10년 전인 2009년에 이르러서야 도쿄의 변두리 학살터로 추정되는 곳에 아담한 추도비가 세워졌다고 한다. 당시 가해자였던 선조들의 잘못을 사죄하며 일부 시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세운 것이다. 역사적 사실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정부에겐 눈엣가시일지도 모른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다시 답사 일정을 고민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도쿄의 분위기는 우리와 하늘과 땅 차이다. TV에서 한국과 교역 갈등이 있다는 뉴스가 연일 나오고 있지만, 시민들의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사람들에게 부러 물어봐도 대부분 별 관심 없다는 듯 시큰둥하다.

덕분에 떠날 때 숱하게 들었던 '안전'에는 별 문제가 없지만, 과연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숫제 정기적으로 열리고 있는 도쿄 도심의 '혐한 시위'도 이번 일로 격화되었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한일 두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양상이 달라도 너무 다른 느낌이다.

문제는 트위터 등 SNS에서 떠돌아다니는 '가짜 뉴스'가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TV 등 공중파 방송의 영향력이 예년만 못하다는 건 일본도 별반 다르지 않다고 한다. 반한 감정을 부추기는 '가짜 뉴스'가 되레 TV 뉴스를 견인하며 왜곡된 여론을 확산시키고 있다.

개중엔 한국에서 북한으로 군수물자가 흘러들어가 일본에 군사적 위협이 되고 있다는 내용도 있고, 한국 경제는 일본의 도움 없이는 지탱될 수 없다는 황당한 주장도 있다. 한국은 국가 간의 조약을 일방적으로 무효화시키는 무도한 나라라는 내용은 TV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아직까지 일본의 분위기는 평온하지만, 애먼 시민들 사이에서도 반한 감정이 가랑비에 옷 젖듯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 10년 가까이 일본에서 생활한 제자의 말에 따르면, 또래인 20~30대 젊은이들의 아베 총리에 대한 지지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데 그 이유가 시답잖단다.

그들 대부분은 아베를 정치인이라기보다 '연예인'으로 여긴다고 했다. 과거 1980년대 '땡전 뉴스'처럼 TV를 켤 때마다 맨 먼저 등장하는 얼굴이다 보니 가장 '친숙한' 정치인이라는 거다. 일본의 젊은이들 중에 아베 말고 내각의 대신 이름을 아는 경우는 없을 거라고 단언했다.

그는 일본 젊은이들의 정치적인 무관심이 이미 회복하기 힘든 수준까지 이르렀다고 말했다. 예능 프로그램이 장악한 TV와 어용화한 언론은 사회적 공기로서의 역할을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거다. 무엇보다도 그들 대부분은 학창시절 선택교과인 역사를 공부하지도 않았다.

하물며, 지난 2일 한국에 대한 일본 정부의 '화이트 리스트' 배제 결정에 대해 그 의미를 이해하는 젊은이들은 얼마나 될까. 이유야 어떻든 시민들의 정치적 무관심은, 안타깝게도 정부 정책의 맹목적인 '신뢰'로 표출되기 십상이다. 정치인들이 뭐라든 상관할 바 없다는 거니까.

그래서 도쿄에서의 첫 일정은 '1인 시위'를 해보기로 했다. '가짜 뉴스'에 포획되어가는 일본 시민들에게 이방인으로서 '진짜 뉴스'를 보여주기 위해서다. 써넣을 문구는 생각해두었고, 일본어를 전혀 할 줄 모르니 피켓을 만드는 건 제자에게 도움을 청하기로 했다.

극우 세력에 포획된 일본 정부의 무모한 경제 보복으로 시작된 갈등의 수위가 설상가상 높아져만 가고 있다. 정부 간 대화도 단절되고 외교적 노력마저 힘을 잃어가는 형국이다. 이런 마당에 양국의 시민들까지 등을 돌리면 파국이다.

'1인 시위'는 한일 두 나라의 국민들이 공존과 번영, 정의와 평화를 향해 함께 손 맞잡고 나아가자는 뜻이다. 범람하는 '가짜 뉴스'들에 맞선 이방인 여행자의 몸부림으로 이해해주면 좋겠다. 물론, 도쿄의 시민들이 그 손을 따뜻하게 잡아줄지 매몰차게 내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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