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 소감 밝히는 성우 박일  성우 박일이 2013년 11월 18일 오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국무총리 표창을 수상한 뒤 소감을 밝히고 있다.

성우 박일(자료사진) ⓒ 연합뉴스

 
"무한한 공간 저 너머로!"

<토이스토리>의 버즈 역으로 한국어 더빙을 맡아온 성우 박일이 가장 기억에 남는 대사라며 꼽은 말이다. 위기였던 애플을 살린 효자이자 애니메이션 명가 픽사가 전성기를 구가하게 한 <토이스토리> 시리즈의 24년 역사는 곧 박일의 발자취기도 했다.

바로 일주일 전까지 매체 인터뷰를 진행했던 그의 사망 소식이 전해진 7월 31일, 많은 이들이 놀랐고, 깊이 애도했다. 향년 69세. 1967년 TBC 3기 공채 성우로 데뷔 후 그는 본업인 성우뿐만 아니라 연극 무대와 TV 드라마에도 종종 모습을 드러내며 대중과 깊고 넓게 소통해왔다.

외화 더빙의 상징적 인물

50년이 넘는 경력만큼 박일의 활동을 기억하고 추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1990년대, 각 지상파 방송사에서 저마다 더빙 외화 프로를 마련했을 무렵 박일은 특유의 중후하고 굵은 목소리를 십분 살리는 주연 캐릭터를 맡아 왔다. '007 시리즈'에서 그는 제임스 본드였고, <대부>에선 비토 콜레오네였다. 대배우 알랭 들롱, 클린트 이스트우드, 알파치노가 나오는 작품이 방영 될라치면 대부분 그가 목소리 더빙을 맡았다.

'TV 외화의 역사'는 곧 박일의 경력이자 역사였다. 특히 영화 <엑소더스>의 주제가로도 알려진 오케스트라 음악으로 시작을 알리던 MBC <주말의 명화>는 박일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잘생긴 백인 중심이던 할리우드 캐스팅이 1990대 말을 기해 흑인 및 개성파 배우가 주연을 맡는 식으로 범주가 넓어져 국내 성우 기용 또한 다양해졌음에도, 그는 대부분의 TV 외화 더빙에 참여하며 꾸준히 경력을 쌓아갔다. 

중년 이상의 세대에겐 이런 외화 더빙으로 기억되겠지만, 비교적 젊은 세대에게 그는 미국드라마 'CSI 과학수사대' 시리즈의 길 그리섬 반장으로 기억되기도 한다. 지금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등으로 전 세계 드라마를 쉽게 접하지만, 당시엔(2000년대 초반) 미국드라마 또한 지상파를 통해 접할 수 있었다.

일흔이 가까운 나이에 세대를 가리지 않고 그의 이름과 목소리가 기억되는 건 이렇게 그의 활발한 활동 덕일 것이다. 

뚝심과 애정
 
 성우 박일은 '토이스토리' 시리즈에서 버즈 역할의 목소리 더빙을 맡았다. 최근 개봉한 <토이스토리4>에도 버즈 목소리 더빙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성우 박일은 '토이스토리' 시리즈에서 버즈 역할의 목소리 더빙을 맡았다. 최근 개봉한 <토이스토리4>에도 버즈 목소리 더빙으로 참여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안타까움을 주고 있다. ⓒ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그의 뚝심을 상징하는 몇 가지 일화가 있다.

2006년 한 예능 프로에서 그는 두 번의 이혼을 겪으면서 3남 1녀를 혼자서 키워왔다고 고백한 바 있다. 이 사연을 전하며 그는 눈물을 보였는데, 평소 활발한 성격의 그가 방송에서 우는 모습을 보고 주변 지인들이 많이 놀랐다는 후문이다. 홀로 양육한 사연 역시 친한 사람이 아니면 다들 알지 못했던 사실이라고 한다. 그 때문인지 박일은 종종 밤무대에도 출연하며 종횡무진으로 움직였다고 한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아토피로 심하게 고생하는 둘째 아들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니며 약을 구했을 정도였다고. 

"결혼했으면 서로 사랑하며 살고, 어떤 일이 생겨도 이혼은 하지 말라 당부하곤 한다. 그렇다고 싫은 사람과 억지로 살라는 얘긴 아니다. 어쩌면 이혼이 자신의 핸디캡이 될 수도 있고, (화해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순간의 화나 자존심을 못 참아 이혼하면 후회를 할 수도 있잖나." (박일, 2006년 <레이디경향> 인터뷰 중)

양육에 충실하려 했던 만큼 그는 후배들에게도 관심이 많았다. 한창 주가를 올릴 때 여러 대학교에서 강의를 요청했지만 그는 거부 의사를 밝혔다. 이후 그는 2005년 무렵 후배 양성을 위한 성우 전문학교를 세우기도 했다.

박일 STA로 알려진 성우 교육 아카데미를 두고 그는 "학교는 정해진 시간에 얽매이지만 성우 아카데미에선 누구 눈치 볼 것 없이 젊은 학생들과 아무 대본이나 들고 즐겁게 대화하고 제 노하우를 가르칠 수 있다"며 "부자는 아니지만 죽을 때까지 남에게 소주 한잔은 사줄 수 있을 정도는 벌었다"라고 뿌듯한 마음을 고백한 바 있다.

이후 박일의 후배인 박영화씨가 운영하는 아카데미와 합병됐고, 박일은 일선에서 물러나 더빙 활동에 매진했다.

국내 성우들과 업계에 대한 고민은 고인이 사망 일주일 전 한 매체와 했던 인터뷰에서도 드러난다. TV 외화 프로가 거의 사라지고, 방영되더라도 더빙이 아닌 자막 처리된 작품을 틀면서 성우 역시 점점 활동 폭이 좁아지는 요즘이다. 예능 프로나 교양 프로에 한정돼 보이는 작금의 현실을 그 역시 안타까워했다는 후문이다.   

평소 매일 2, 3시간씩 운동하면서 동년배보다 훨씬 건강했다던 그의 죽음이 그래서 더욱 안타깝다. 53년차 성우로서 부끄럽지 않게 활동해 온 박일. 그 발자취에서 우리는 배워야 할 것, 고민해야 할 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박일 토이스토리 성우 사망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