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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이후 한일관계가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매일 수많은 분석과 주장과 논란들이 쏟아지고 있다. 하지만, 많은 부분이 정확한 사실에 입각해 있지 않다. 오랜 역사를 가진 문제이고 법적으로도 복잡한 문제인 만큼 사태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 시리즈에서는 법적인 측면에 초점을 맞추면서 주요 쟁점들을 정리해보기로 한다.[편집자말]
국제법 위반?

2018년 10월 30일, 대법원 판결이 선고된 그 날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국제법에 비추어 있을 수 없는 판단이다"라고 반발했다. 다음 날인 10월 31일에는 나카소네 히로후미(中曽根弘文) 전 외무대신이 "국제 상식에 비추어 있을 수 없다", "국가의 자격이 없다"라는 극언까지 쏟아냈다. 일본 언론의 논조 역시 비난 일색이었다. 대법원 판결의 내용과 의미를 차분히 분석한 기사나 사설은 놀랍게도 거의 전무했다.

이후 아베 정부는 사안에 대해 언급할 때마다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했다'라는 주장을 빠뜨리지 않고 반복하고 있다. 도대체 무슨 국제법을 어떻게 위반했다는 것인가? 다른 나라를 '국제법 위반'이라고 비난할 때, 그것은 보통 국제사회의 일반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한 경우이거나 국제조약을 명백하게 위반한 경우이다. 대법원 판결은 그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

게다가 아베 정부는 주장의 명확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국제법 위반'이라는 아베 정부의 비난은 아무런 근거 없이 '한국은 나쁜 나라다'라고 동네방네 떠드는 할리우드 액션에 불과한 것이다.

「청구권협정」 위반?

아베 정부의 그나마 정리된 입장은 10월 30일과 미쓰비시중공업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이 선고된 11월 29일에 발표된 외무대신 담화에서 발견된다. 그 전문은 아래와 같다.
 
1. 대한민국 대법원의 판결은, 일한청구권협정 제2조에 명백히 반하며, 1965년의 국교정상화 이래 구축해온 일한 우호협력관계의 법적 기반을 근본으로부터 뒤집는 것이다.
2. 일본으로서는, 대한민국이 즉각 국제법 위반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3. 즉각 적절한 조치가 강구되지 않는 경우에는, 국제재판(이나 대항조치)도 포함하여, 모든 선택지를 시야에 넣으면서, 의연한 대응을 강구한다.

- 「대한민국 대법원에 의한 일본 기업에 대한 판결 확정에 관해」(외무대신 담화)

위의 담화에 등장하는 비난의 유일한 근거는 '대법원 판결이 「청구권협정」 제2조에 반한다'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청구권협정」 제2조 위반'을 가지고 '국제법 위반'이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청구권협정」은 조약이니 국제법의 일부인 것은 맞다. 하지만 규정 자체가 애매하다. 그 애매한 규정에 대해 한국 대법원이 국제법의 조약 해석 기준에 따라 해석을 했다. 그것이 곧바로 '국제법 위반'이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베 정부가 제기하는 문제의 실체는 너그럽게 보아도 '한국 대법원 판결의 해석이 우리의 해석과 다르다'라는 데 머문다. 그렇다면 자신의 해석을 제시하고 그 근거를 밝히면서 대법원 판결을 탄핵하는 것이 정상적인 대응의 모습이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자신의 해석이 무엇인지 그 근거가 무엇인지는 일절 밝히지 않는다. 그러니 결국 아베 정부의 주장은 '내 마음에 들지 않는 해석은 국제법 위반이다'라는 것이다. 참으로 오만한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자료사진)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자료사진)
ⓒ 연합뉴스/UP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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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상의 분쟁은 존재하는가?

보다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애당초 대법원 판결의 해석은 아베 정부의 해석과 다른가, 즉 해석상의 분쟁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라는 문제이다.

대법원 판결의 해석은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아베 정부가 그 해석이 잘못된 것이라고 하려면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다'라고 맞서야 맞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그렇게 주장하지 않는다.

아베 정부는 '강제동원'이라는 표현 자체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에 '징용'이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대법원 판결 이후 아베 정부가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라는 새로운 표현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건 특별한 의미가 없다. 대법원 판결 사건에서의 원고들이 징용이 아니라 모집이나 관 알선으로 일본에 갔다는 사실을 강조하여 그들의 '자발성'을 두드러지게 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하지만 원고들 중 일부는 일본 현지에서 징용으로 전환된 경우도 있고, 무엇보다 역사학자들의 연구에 의해 모집이나 관 알선도 기만에 의한 강제연행, 강제노동이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에, 그 의도는 애당초 허망한 것이다.

보다 근본적으로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는 그 자체가 지나치게 포괄적이고 애매해서 애당초 법적인 의미를 가지기 어렵다. 따라서 아베 정부의 주장을 법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 재구성하면 '징용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다'라는 것이 된다.

요컨대, 대법원 판결은 '강제동원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하는 데 대해, 아베 정부는 '징용 문제는 「청구권협정」의 대상이다'라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양자의 해석이 다르다고 하려면, 그래서 해석상의 분쟁이 존재한다고 하려면, 한국 측이 'A(강제동원 문제)는 B(「청구권협정」의 대상)가 아니다'라고 하는 데 대해 일본 측은 'A는 B이다'라고 맞서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한일간 대립의 실질은, 한국 측이 'A는 B가 아니다'라고 하는 데 대해, 일본 측은 'A는 B이다'가 아니라 'C(징용 문제)는 B이다'라며 맞서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논리적으로는 분쟁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한국 정부가 답을 가져와라?

사정이 이런데도, 아베 정부는 한국 정부에 대해 "즉각 국제법 위반의 상태를 시정하는 것을 포함하여, 적절한 조치를 강구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지난 6월 19일 무렵에는 한국 외교부가 전달한 '방안'을 그것으로는 "국제법 위반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므로 일본으로선 받아들일 수 없다"라며 내쳤다. 7월 19일에는 외무대신이 한국 대사와 마주 앉은 자리에서 "한국 측의 제안은 국제법 위반 상태를 시정하는 해결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은 이전에 한국 측에 전달했다"라며 "그걸 모르는 척하면서 제안하는 것은 극히 무례하다"라는 극언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한국 정부가 취해야 할 '적절한 조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일절 이야기하지 않는다. 결국 '내 마음에 드는 답을 가져올 때까지 무조건 퇴짜다'라는 것이다. 참으로 무례한 행태가 아닐 수 없다.

한국 정부가 나서서 대법원 판결을 뒤집는 선언을 하라는 것인가? 한국 정부가 압력을 가해 대법원으로 하여금 판결을 뒤집게 하라는 것인가? 한국 정부가 대법원 판결에 따른 강제집행을 하지 못하게 하라는 것인가? 이것 말고 아베 정부가 말하는 '적절한 조치'를 달리 생각하기 어렵다.

하지만 말할 것도 없이 이것은 삼권분립을 원칙으로 하는 민주주의국가에 대해 도저히 할 수 없는 요구이다. 게다가 대한민국은 삼권분립을 침범했다는 혐의로 전직 대법원장이 기소되어 있고, 그 '거래'의 상대인 전직 대통령은 감옥에 있는 나라이다.

중재?

한편 아베 정부는 「청구권협정」에 관한 자신의 해석이 무엇인지는 제시하지 않으면서, 한일간에 '분쟁'이 존재한다며 「청구권협정」 제3조의 절차를 요구했다.

「청구권협정」 제3조 1항에는 "본 협정의 해석 및 실시에 관한 양 체약국간의 분쟁은 우선 외교상의 경로를 통하여 해결한다"라고 규정되어 있고, 2항 이하에는 1항에 의해 "해결할 수 없었던 분쟁"에 대해 결정할 중재위원회의 구성 및 그 결정의 효력에 관해 규정되어 있다.

아베 정부는 지난 1월 9일에 제3조 1항을 근거로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협의를 요청했고, 5월 20일에 제3조 2항을 근거로 중재위원회 구성을 요청했고, 6월 19일에 제3조 3항을 근거로 "중재위원을 지명할 제3국을 선정"할 것을 요청했다. 한국 정부는 그 요청들에 응하지 않았고, 6월 19일로부터 30일이 지난 7월 18일 자정에 아베 정부의 '중재 카드'는 불발로 끝났다.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 규탄 2차 촛불문화제가 7월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596개 시민단체가 모인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열렸다.
▲ "NO아베" 촛불 광화문광장으로 진출 역사왜곡, 경제침략, 평화위협 아베 규탄 2차 촛불문화제가 7월 27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전국 596개 시민단체가 모인 아베규탄시민행동 주최로 열렸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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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태를 어떻게 볼 것인가? 아베 정부는 한국 정부가 「청구권협정」 제3조의 절차에 따를 의무를 위반해서 "추가적인 협정 위반"을 저질렀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제3조의 절차에 따르는 것이 의무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2011년 8월 30일에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해결에 나서지 않는 한국 정부의 부작위는 위헌이라고 선고한 직후, 한국 정부가 외교상의 경로를 통한 협의를 요청했을 때 일본 정부가 응하지 않은 전례가 있다.

보다 근본적으로 무엇에 대한 협의이고 중재인지가 명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 협의든 중재든 주제가 명확해야 시작할 수 있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국제법 위반', '구 조선반도 출신 노동자 문제'에 대해 협의하고 중재하자고만 한다. 막연하다. 이걸 가지고 협의를 하자고 하는 것이나, 3인의 중재위원으로 구성되는 중재위원회에 결정해달라고 하자는 것은 기본적인 요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요구이다.

'강제동원 문제가 「청구권협정」의 대상인가?'에 대해 따지자고 한다면 주제가 조금 더 구체화된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그렇게 주제를 잡을 수 없다. '강제동원' 자체를 부정하기 때문이다. '징용 문제가 「청구권협정」의 대상인가?'라고 해도 주제가 조금 더 구체화된다. 하지만 대법원 판결은 '징용' 문제의 「청구권협정」 대상 여부에 대해 판단한 것이 아니므로, 이 또한 주제가 될 수 없다.

설혹 어떻게든 중재에 맡겨서 일정한 결론을 낸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끝나는 것도 아니다. 일본군'위안부', 사할린 한인, 원폭 등의 문제도 있다. 이 문제들도 모두 중재에 맡기지 않으면 안 되게 된다.

국제사법재판소?

아베 정부가 내비치는 국제사법재판소(ICJ) 제소도 마찬가지 문제점을 안고 있다. 일본 정부가 ICJ에 제소를 하려면 분쟁의 주제를 표시해야 하는데, 이에 관해서는 중재의 경우와 마찬가지의 문제가 있다.

게다가 일본 정부가 ICJ에 제소하려면 관할권 성립의 근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한국 정부가 재판진행에 동의하지 않으면 ICJ의 관할권은 성립되지 않는다. 따라서 'ICJ 카드'는 공허한 외침에 불과하다. 실제로도, ICJ 제소가 대단한 카드인 양 떠들던 아베 정부는 '중재 카드'가 불발로 끝난 7월 19일 이후 'ICJ 카드'도 슬그머니 접었다.

한편, 국내에서도 중재에 응하자라거나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보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묻는다. '무엇'에 대해 중재에 맡길 것이며 ICJ에 부탁할 것인가? 중재나 ICJ 이야기를 하려면 먼저 이에 대한 대답부터 명확하게 제시해야 할 터이다.

청구권협정의 운명 재촉하는 아베

아베 정부의 주장이 대법원 판결의 그것과 맞물리지 못하는 이유, 아베 정부의 공격이 공허한 이유는 사안의 본질이 「청구권협정」의 틀을 넘어선 것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이 제기한 문제가 단순히 「청구권협정」의 기술적인 해석과 실시라는 영역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기본조약」 제2조에 직결되는, '일본에 의한 한반도 지배의 성격'이라는 한일관계의 근원적 대립점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대법원 판결은 일차적으로는 「청구권협정」에 대한 해석이지만, 동시에 그 해석을 통해 「청구권협정」이라는 틀 바깥에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다. 그런데, 아베 정부는 자신에게 유리하다고 생각하는 「청구권협정」이라는 틀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그래서는 대법원 판결을 탄핵할 수 없다. 아베 정부의 '영토의 분리에 따른 문제 해결'이라는 '틀 안'의 논리로는, 대법원 판결의 '불법강점에 따른 반인도적 불법행위 문제 미해결'이라는 '틀 밖'의 논리에 대항할 수 없다. 싸우려면 「청구권협정」 바깥으로 나가야 한다. 그래서 '합법지배였으니 애당초 문제가 아니다'라고 맞서야 한다.

아베 정부도 내심으로는 그러고 싶을지 모른다. 그러나 '강제동원'의 심각한 피해 실태가 속속 드러나고 그에 대한 규탄이 차곡차곡 쌓여온 지금, '합법지배이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라는 주장은 너무 뻔뻔한 시대착오적인 주장이니 차마 입에 올리기가 어렵다.

식민지 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과 마음으로부터의 사과'를 언급한 「무라야마담화」 이래 역대 일본 총리의 담화 내용과도 충돌한다. 그래서 그저 「청구권협정」 안에 눌러 앉아 농성을 하며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한국이 해결해라'라고 억지만 부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청구권협정」은 지금 파탄 직전이다. 나름의 역할이 없었던 것은 아니니, '수명이 다해간다'라고 하는 것이 보다 적절한 표현일지 모른다.

「청구권협정」은 21세기의 한일 간 대립을 덮어 가리기에는 이미 너무 낡았다. 1965년에는 그럭저럭 문제를 덮어 가린 듯이 처리하고 넘어갈 수 있었지만, 더 이상 그럴 수 없다.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피해자들의 호소에 응답하기 위해 '자료와 논리'를 거듭 쌓으며 따지고 들어간 결과, 그것이 매우 낡고 헤진 그물 조각이라는 사실이 점점 더 명확해졌다.

그런 「청구권협정」에 매달리면 매달릴수록 그 '운명의 순간'은 더 앞당겨질 뿐이다. 그래서 무리에 무리를 거듭하며 덮으려 했던 본질적인 문제가 더욱 더 선명하게 부각될 뿐이다. 지금 아베 정부가 하고 있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대법원 강제동원 판결 국면 점검' 글 싣는 순서

1. 한-일 '강대강' 대결의 진원... 대법원 판결 핵심 정리
http://omn.kr/1k7th

2. '불법강점'은 청구권협정의 대상이 아니었다
http://omn.kr/1k829

3. '강제징용'이 아니다, '강제동원'이다
http://omn.kr/1k8bz

4. 청구권협정, 파탄 직전이다

5. 한국 정부가 나서야 한다?

6. 대법원 판결이 잘못됐다?

7. 그래서 무엇을 해야 하나?

(* 제목은 바뀔 수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김창록 기자는 경북대학교법학전문대학원 교수입니다.


태그:#강제동원, #대법원 판결, #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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