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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겉표지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겉표지
ⓒ 돌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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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에 숨이 턱 막혔다. 2014년에 사망한 고 김동준군이 생전에 쓰던 일기장이었다. 오른쪽 귀퉁이가 접히고 코팅이 벗겨져 군데군데 색이 바랬다. 'Be Happy'라는 문구 아래 아이의 손글씨가 그대로 남았다. 'JJ Note 김동준'  

특성화고를 다니던 동준 군은 2013년 CJ 진천 공장에 현장실습생으로 투입됐다. 학생 신분이었지만 노동 강도는 여느 직원과 같거나 더 강했다. 과도한 업무량과 강압적인 회사 문화. 나이가 어리고 지위가 낮은 동준군은 자주 폭력의 희생양이 됐다. "선생님, 저 무서워요." 아이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문자 메시지였다.

이 책은 1부 '김동준'과 2부 '김동준들'로 나뉜다. 1부는 동준군이 살아 있을 때 쓴 글들과 어머니 강석경씨를 포함한 주변인의 증언으로 이루어졌다. 프로그래머의 꿈을 이룰 수 있을 거라며 즐거워하던 아이의 천진함은, 전공과 다른 육가공 일을 맡고 회식을 강요 당하고 상사의 폭력에 내몰리며 혼란과 고통으로 바뀐다. 한 호흡으로 읽기가 힘들다.

2부엔 고 이민호군의 아버지 이상영씨의 인터뷰가 담겼다. 동준군의 3주기이던 2017년, 제주 한 음료 공장에서 현장실습생 이민호군이 컨베이어 벨트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아버지는 아이들이 아무리 다치고 죽어나가도 변하지 않는 사회에 분노했다.
 
"제가 느낀 게 뭐냐면요. 대한민국에 살면서 말 잘 들으면 죽는다는 거예요. 말 잘 들으면 회사에서 이용해 먹고 최악의 업무만 시키니까 말 잘 들을 이유가 없어요. 대한민국에서는 돈 없는 사람은 살 가치가 없어요. 돈 없고 힘없는 사람을 위한 정책은 안 나와요."(p.29)

"공부 못하면 공순이 된다"는 농담이 통하던 시절

함부로 위로를 건넬 수 없는 비극들 앞에서 저자가 '겸손한 목격자'가 돼 기록한 목소리들은 숨을 멈추고 가슴을 쓸게 했다. 어쩌면 나도 이 비극의 한복판에 있었을지도 모르니까. 내 언니는 부품 공장에서 일하던 현장 실습생이었다.

"집에 돈이 있으면 가서 간판이라도 달고 나오면 되는데, 말씀드렸다시피 특성화고 서열에서 성적 낮은 애들이 가정 형편도 어려워요." 특성화고 장윤호 교사가 지적한 것처럼 계급은 대물림됐다. 가난한 가정의 장녀인 언니는 자연스럽게 인근 실업계고에 진학했다. 

선생님은 내게 자극을 시킨답시고 "너 공부 못하면 공순이 된다"라는 말을 서슴지 않고 했다. 공순이 언니가 있던 내게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하면 화가 나지만 그땐 "공부해서 미팅 할래, 공장 가서 미싱 할래" 같은 말이 급훈으로, 유머로 통용되던 시절이었다.

지하철을 고치고, 자동차를 만들고, 뷔페 음식점에서 수프를 끓이고, 승강기를 수리하고... "우리가 먹고 마시고 이용하는 모든 일상의 영역"에 청소년 노동자들이 있다. 공부만이 학생의 본분이라고 강요하는 사회에서 노동하는 청소년들은 자주 지워지고 무시당한다.

노동 현장이 개선되지 않는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가장 여린 아이들의 노동이 보호받지 못했기 때문에 열악한 곳은 열악한 대로, 위험한 곳은 위험한 대로 방치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고3 여름날,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나 너무 힘들어. 집에 가면 안 될까?" 숨죽여 우는 소리가 들렸다. 평소 사이가 좋지 않아 말 한마디 섞지 않던 내게 전화하다니, 언니는 그만큼 절박한 심정이었다. "일도 너무 힘들고 같이 공장에 온 친구들도 다 그만둬서 외로워."

그러나 나는 해선 안 될 말을 했다. "일이 다 힘든 거지, 간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돌아와? 조금만 더 버텨봐." 전화를 끊고 짜증과 걱정이 뒤섞인 상태로 교실로 돌아왔다. 나도 모르는 새 일은 다 힘든 거라는 사회 분위기에 물들어 있었다. 아이를 특성화고에, 회사에 못 가게 했어야 했다고 자책하는 강석경씨를 보며 작가는 자신도 아이에게 선뜻 돌아오라고, 일을 그만두라고 말하지 못했을 거라고 고백한다.
 
"'아파도 학교 가서 아파라, 쓰러져도 회사 가서 쓰러져라.' 우리 세대는 그렇게 배웠고 그렇게 살았다. 힘들어도 참는 게 인생이라고, 가기 싫어도 안 가면 인생 낙오자가 된다고 들었다. 근면한 신체는 부모가 자식에게 물려줘야 할 유산이었다."(p.21)           

그때 내가 언니를 얼마나 벼랑 끝으로 내몰았는지 꾹꾹 눌러서 외면하고 있던 죄스러움이 책을 읽고 다시금 밀려들었다.

"힘든 거 꼭 해야 해?" 너무 무책임한 말일까

지난 7월 26일, 이 책을 쓴 은유 작가의 북토크에 다녀왔다. 은유 작가와 동준군 어머니 강석경씨, 민호군 아버지 이상영씨가 무대에 선 자리였다. 질의응답 시간이 끝나갈 무렵 용기를 내 손을 들었다. 마이크를 잡자마자 눈물이 쏟아져 말을 잇기가 어려웠다.

"우선 이 책을 써주셔서 정말 감사하단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사실 저희 언니도 비슷한 일을 겪고 힘들어하면서 집에 돌아가고 싶다고 호소했었는데 선뜻 돌아오라고 얘기하지 못했습니다. 그게 지금도 정말 미안하고 죄스러운데요. 만일 시간을 돌릴 수 있다면 제가 언니에게 어떤 말을 해줘야 했을까요."

나를 보던 동준군 어머니 강석경씨와 눈이 마주쳤다. 

"'너무 힘들면 안 하면 안 돼?' '네가 편한 거 찾아서 하면 안 돼?' '좋은 거 하면 안 돼?' '힘든 거 꼭 해야 하나?' 이런 건 너무 책임감 없는 말일까요? 저는 잘 해주지 못했던 말이거든요. 그 말을 못 해준 게 지금도 계속... 그 생각하면 항상 마음이 아픈데... "

연일 현장실습생이 다치고 죽는 기사가 터지는데도 그 고통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못했다. 애써 힘든 일상에 무뎌진 탓이라고 변명해 보지만, 그 매정한 무감함에 나조차도 스스로가 혐오스러워질 때가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은 누구라도 비슷한 예감을 했을 것이다. 이젠 돌이킬 수 없이 그 고통에 아파하고 말겠구나 하는 예감. 이 책은 해결책보다 증언에 초점을 맞췄다. 단번에 바뀌지 않을 문제를 문장 몇 개로 끝낼 수 없기 때문이다. 독자가 그저 "'사회구조' 운운하면서 비판의 포즈를 취하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이들의 울부짖음을 쉽게 잊지 않는 것. 그게 남은 자들이 버텨야 할 슬픔의 무게이고 애도의 책임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개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은유 (지은이), 임진실 (사진), 돌베개(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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