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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작가회의에서는 '2019 대전방문의 해'를 기념하여 연속기고를 시작합니다. 대전의 볼거리와 즐길거리, 추억담을 독자들과 나누고 대전이라는 도시의 정체성을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편집자말]
대전 송촌동 동춘당 호연재 김씨의 시비 '야음(夜吟)' 앞에 멈추고 섰다.

참으로 오랜만의 만남이다. 호연재 김씨와 야음을 밟으며 놀았던 그 때가 문득 떠오른다.
 
야음(夜吟)

달빛 잠기어 온 산이 고요한데(月沈千장靜)
샘에 비낀 별빛 맑은 밤(泉暎數星澄)
안개바람 댓잎에 스치고(竹葉風煙拂)
비이슬 매화에 엉긴다(梅花雨露凝)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인데(生涯三尺劍)
마음은 한 점 등불이어라(心事一懸燈)
서러워라 한해는 또 저물거늘(調帳年光暮)
흰머리에 나이만 더하는구나(衰毛歲又增)

 
 
시를 읽어 내려가는 내 눈빛이 평온하다. 십오 년 전쯤 되었던가. 호연재 김씨의 시비 앞에 서서, 달빛에 잠기어 비와 이슬 매화에 엉긴 모습을 함께 감상하며 그녀와 맑은 물을 서로 나눠마셨던 게 말이다.

호연재란 浩然, 즉 마음이 넓고 깨끗하다는 의미로 다가온 그녀라면, 얽히고설킨 내 인연을 과감히 풀어헤쳐도 모두 받아줄 듯싶었다.

그녀가 '夜吟야음' 한 시를 지을 무렵이 40대 초반이라 했던가, 그 나이와 비슷했을 그 어느 날, 나는 대전 대덕구 동춘당 인근 아파트에 두 아이와 단출한 짐을 풀었다.

한 여성의 이름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다만, 두 아이의 어미로써 '삶이란 석자의 시린 칼'의 느낌을 경험했어야 했던 시기였다.

지나온 모든 시간이 아팠다. 앞으로 다가올 시간마저 아플 것만 같았다. 아무것도 점쳐지지 않은 일상이 고장 난 수레바퀴에 실려 힘겹게 언덕을 오르고 있는 느낌이 계속해서 들어섰다.

바람이 몹시 불던 저녁이었다. 물병에 맑은 음료를 담아 들고는 동춘당 좁은 샛길로 접어들었다. 물병 안에 든 맑은 음료는 바로 소주였다. 소리 내어 펑펑 울고 싶던 날, 물병에 소주를 담아들고는 호연재 고택으로 찾아들었다. 오랜 침묵 속에 가라앉아 있던 호연재 김씨의 시를 읊으며 그녀를 고택에서 불러냈다.

그리고 그곳에서 밤이 깊도록 호연재 김씨와 술잔을 겨누며 펑펑 울었다.
 
醉後乾坤闊(취후건곤활) : 취하고 보니 천지가 넓고
開心萬事平(개심만사평) : 마음을 여니 만사가 평탄하네
悄然臥席上(초연와석상) : 초연히 자리 위에 누우니
唯樂暫忘情(유락잠망정) : 즐겁기만 해 잠시 정을 잊었네.

 

호연재 김씨의 한시 '醉作취작'이다.

삼백년 전의 그녀도 나처럼 같은 마음이었던가. 취하고 나니 고요한 자리에 누울 수 있었을까. 시린 칼날 같은 일상을 잊어야만 했기에, 온 산이 고요한 때 비로소 나를 세상 밖으로 끄집어 낼 수 있었던 것이다.

주옥같은 시를 남긴 조선 여성 문인
 
 대전 동춘당
 대전 동춘당
ⓒ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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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연재 김씨를 만나려면 대전 대덕구 송촌동 동춘당 공원으로 들어서야한다. 그곳에는 오랜 역사를 품은 '동춘당 종택'과 '소대헌·호연재 고택'이 잘 정비되어 있다.
'대전 동춘당 종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89호로 지정되었으며, 조선 후기 기호학파의 대표적인 학자인 동춘당 송준길(1606~1672)의 5대조 송요년(1429~1499)이 15세기 후반에 처음 지었다고 한다.

'대전 소대헌·호연재 고택'은 중요민속문화재 제290호로 지정되었으며, 동춘당 송준길의 둘째 손자인 송병하(1646~1697)가 1674년 종택에서 분가하여 법천동(현, 대덕구 법동)에 건립한 고택이다. 이후, 송병하의 아들 소대헌 송요화(1682~1764)가 1714년에 현재의 위치(송촌동)으로 옮겼다고 전해진다.

호연재 김씨는 1681년 8월 19일 홍성군 갈산면 오두리에서, 아버지 김성달과 어머니 연안 이씨 사이에서 6남 4녀 중 여덟째로 태어났다. 호연재의 문학적 재능은 안동김씨의 가통을 이어받아 어렸을 때부터 두드러지게 나타났다고 전해진다. 19세에 동춘당의 증손 소대헌 송요화와 혼인했다. 호연재 남편의 가문은 당대를 대표하는 노론의 핵심가인 송시열 계열의 명문가였다. 28세에 아들 오숙재 송익흠(보은현감, 오숙재)을 낳고, 딸 하나를 낳았으며, 42세에 생을 마감하기까지 194 수의 한시를 남겼다.

호연재 김씨는 조선 후기 사대부 여성의 절제된 감정과 사유를 시문에 담았는데, 세 권이 전해진다. 친정마을 오두리를 추억한 34수 <鰲頭追致>오두추치, <浩然齋遺稿> 호연재 유고집과 스스로를 곧추 세우는  경구 92수 <自警篇> 자경편이 후손 송용억에 의해 출간되었다.

호연재 김씨는 조선후기 17세기에서 18세기로 넘어가는 시기에 시를 쓴 여성문인이었으며, '신사임당'과 '허난설헌'의 뒤를 이어 주옥같은 시를 남겼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호연재 김씨와 동춘당 달빛 아래
 
 대전 동춘당
 대전 동춘당
ⓒ 이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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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째던가, 호연재 김씨의 시비 앞에 서 있던 나의 모습이 점점 변해갔다. 세월의 무게를 망각이란 시간 속에 부려놨는지 점점 세상을 향해 던져지는 그 모든 것들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호연재 김씨와 동춘당 달빛 아래에서 술 한 잔 하며 거친 숨을 가다듬어야했던 그 시간들이 이젠 먼 옛날처럼 아득하기만 하다. 사랑하는 이의 마음 한 점까지도 찾아내어 노래하던 내 젊은 시절은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음의 등불마저 커진지 오래다. 깊었던 사랑은 가고 그 기억조차 엷다. 아팠던 지난 시간보다 등불이 커진 지금의 시간이 더 안타까울 따름이다.

밤, 깊어간다. 동춘당 호연재 고택에 바람조차 불지 않는다. 맑은 소주가 담긴 물병이 그리워진다.

[약력]

이경 (소설가)
1997년, 농민신문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 '오라의 땅'으로 등단, 동서커피문학상 단편소설 대상 당선 '청수동이의 꿈'장편소설 '는개' 단편소설집 '도깨비바늘'장편소설 '탈'출간 등
2012년, 제4회 김호연재 여성백일장 대상, 여성가족부장관상 수상

대전 작가회의 회원, 불교공뉴스 신문사 편집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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