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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장애를 다룬 톰 행크스 주연 영화 <포레스트 검프>. 제목을 듣고 주인공 '포레스트 검프'가 주는 풍자 - '워터게이트 사건'에 영향을 주고, '존 레논' 등 시대의 아이콘들에게 영감을 주며, 히피문화를 비꼬는 장면 등 - 을 떠올렸다면 당신은 40대 전후일 가능성이 높다. 벌써 4반세기 전인 1995년 작 영화이기 때문이다.  
  
'숨은 의도 파악 더뎌', 범죄에 쉽게 노출

'포레스트 검프'는 사실 지적장애인은 아니다. 지능지수(IQ) 75로서 '경계선지능인'에 해당한다. 극중에선, 어쩌다보니 미국 사회의 굵직한 사건과 유명인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행운의 캐릭터로 분한다. 영화는 영화일 뿐, 현실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4반세기가 지난 현재까지도 '경계선지능인'의 삶은 녹록지 않다.

남성들로부터 떡볶이․모텔비를 받았다는 이유로 자발적 성매매 청소년 판결을 받은 '경계선지능인' A양(당시 15세) 사례만 봐도 그렇다. 장애인 범주가 아닌데다 소위 '매대'를 받았으니 성폭행으로 볼 수 없다는 것이다.

A양은 예측이나 대처능력이 현저하게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경계선 지능만으로 장애판정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이 상황에서도 장애인수준의 보호를 받을 수 없다.

"'경계선지능인'은 가까운 미래에 대한 예측이나 적절한 대처능력이 부족하고, 타인의 숨은 의도를 파악하지 못하거나 갈등상황에서 자기방어능력이 부족하다"는 게 경계선지능연구소 '느리게 크는 아이' 박현숙 센터장의 말이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재학하는 동안에는 괴롭힘이나 소외를 당하고 졸업한 이후에는 타인의 불순한 의도에 이용당하거나 본의 아니게 범죄 등에 연루되기도 한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하는 모양새다.

'경계선지능인' 13.59%, 전체 장애인구보다 2.5배 이상 많다

실제로 미국에서 일반학급교사에 의해 위험군(at-risk)으로 의뢰된 학생 중 48%가 '경계선지능인'이다(Macmillan, Gresham, Bocian, & Lambros, 1998). 이들은 성인기에 노숙자, 약물중독, 알콜중독, 십대임신, 실업, 하향취업, 정부보조를 받거나 배우자 폭행으로 구속되기도 한다는 연구결과들이 있다.

지능의 정규분포 곡선에 따라 추정해보면 '경계선지능인'은 전체 지적장애인 2.3%의 6배에 달하는 13.59%나 된다. 전체 장애인구 추산치 5% 대비 2.5배 이상으로, 특수교육 범주에 속하는 전체 학생들보다 더 많은 셈이다.

국가지원책은 초중등교육법 1개… 졸업 뒤엔 어쩌나

'경계선지능인'은 현행법상 장애인이 아니다. 지적장애 진단기준인 IQ 70보다 높은 지능지수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문자 그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선'에 놓여 있으니 특수교육지원 대상도 아니고 적절한 공적 서비스도 제공받기 어렵다.

일명 '느린학습자 지원법'(대표발의 국회의원 조정식, 2016년 개정입법)으로 불리는 초중등교육법이 있긴 하다. 현재로선 유일한 법률이지만, 이마저도 '경계선지능인'만을 위한 법제가 아니다. 입법 뒤 지원을 받던 학생들이 벌써 졸업하여 청년이 될 시기니, 일자리를 통한 자립 지원 제도나 서비스가 급한 상태다. '경계선지능인'들의 절박한 심정과 달리 입법적 후속조치는 전무하다. 이번 20대 국회 제개정 발의안은 0건, 사례조차 없다.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는 일자리를, 당사자는 같이 놀 친구를 원하는데, 살펴보면 동일한 욕구”라고 말한다.
▲ 경계선 지능.지적장애 대안학교 ‘스타칼리지’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는 일자리를, 당사자는 같이 놀 친구를 원하는데, 살펴보면 동일한 욕구”라고 말한다.
ⓒ 추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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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가 말하는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 자녀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것이고, 당사자가 말하는 놀이는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에 기반한다”고 전했다. 두 가지 욕구 모두 사회관계성 증진이라는 같은 맥을 갖고 있다.
▲ 경계선 지능?지적장애 대안학교 ‘스타칼리지’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가 말하는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 자녀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것이고, 당사자가 말하는 놀이는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에 기반한다”고 전했다. 두 가지 욕구 모두 사회관계성 증진이라는 같은 맥을 갖고 있다.
ⓒ 추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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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선지능청년을 위한 프로젝트 그룹 '더딤(The DIM; The Do It Myself)'은 6월부터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환경노동위원회 위원 보좌진들을 만나가며 입법 가능성을 타진 중이다. '더딤'은 아산나눔재단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산 프론티어 아카데미' 훈습생 6명(동대문종합사회복지관 서미연 과장, 사랑의장기기증운동본부 김소정 팀장, 사랑의힘 고희경 상임이사, 춘천사회혁신센터 윤효주 팀장, 한국사회복지사협회 추주형 차장, 한국해비타트 정태민 팀장, 이상 단체명 가나다순)이 만든 프로젝트 그룹이다.

노동자립 통한 사회관계망 형성… 사회적 비용 누수 및 개인 퇴행 방지

'경계선지능인'과 그 부모가 원하는 건 '사회관계망'이다. 경계선 지능․지적장애 대안학교 '스타칼리지' 안지은 대표교사는 "부모는 일자리를, 당사자는 같이 놀 친구를 원하는데, 살펴보면 동일한 욕구"라며, "부모가 말하는 일자리는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게 아닌 자녀의 자존감 향상을 위한 것이고, 당사자가 말하는 놀이는 어울리고자 하는 욕구에 기반한다"고 전했다. 두 가지 욕구 모두 사회관계성 증진이라는 같은 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경계선지능연구소 '느리케 크는 아이' 박현숙 센터장은 "학창시절 학습과 대인관계에서의 실패경험이 누적되면서 경계선 지능이 악화되어 청소년기나 성인기에 지적장애 판정을 받기도 하며, 과도한 약물치료나 학교를 떠난 후에 사회적 관계망이 결여되면서 정신병리적 문제가 결부되어 심각한 수준으로 퇴행하는 경우도 있다"며, "장애판정으로 공적부조 영역에 들어오면 오히려 사회적 비용이 더 커지는 만큼, 자립을 지원해 자아실현을 돕는 후속 정책을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일반지능인에 비해 학습속도가 느릴 뿐이니 대상에 적합하게 직업교육을 실시하고, 취업 이후에도 지속적인 사례관리를 통해 안정적인 자립을 할 수 있도록 도우면 성공적인 자립이 가능하다"며 "'경계선 지능 노동자'에 대한 '사용자 매뉴얼'을 갖추거나 청년 단계에서의 자립을 지원하는 해외사례도 있다"고 덧붙였다.
 
경계선지능인'이란?
'경계선지능인'은 IQ 71~84 사이에 해당하는 지적능력을 지닌 사람을 일컫는다. 전체인구의 13.59%라는 연구 보고가 있다. 지적장애인으로 분류돼 특수교육을 받기에는 수준이 맞지 않고, 비장애인 교육을 받기에는 벅찬 상태다. 문자 그대로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선'에 놓여, 노동과 복지에서 소외되고, 범죄에도 쉽게 노출되는 등 사각지대에 있다.

덧붙이는 글 | '더딤(The DIM; The Do It Myself)' 활동과 관련해 매월 1회 이상 연재 기사를 작성 예정이며, <베이비뉴스>에도 송고합니다.


태그:#경계선, #경계선지능, #지적장애, #느린학습자, #더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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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의 생산과 소비의 주체가 일치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두 아들 아빠입니다.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생활을 꾸려가는 사회복지사입니다. 분배 행정과 재분배 역학관계에 관심이 많습니다. '민중의소리' 전직 기자로 전용철 농민열사 국과수 부검현장을 기자로서 유일하게 취재했고, WTO홍콩각료회의 원정투쟁 현장 취재로 제2회 인터넷기자상을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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