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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영업실적이 좋지 않아 회사 대표로부터 질책을 받았다. 속상한 마음에 직원들과 소주 한 잔을 하고 대리운전을 해서 집으로 갔다. 잠을 자기 위해 방으로 들어가다 아내를 보니 그때까지도 스마트폰으로 모바일 쇼핑을 하고 있었다. 아침에 아이들에게 먹일 음식을 'OO프레시'로 주문한다고 했다. 밤에 주문하는데 어떻게 아침에 배송이 되냐고 물으니 한심한 눈빛으로 나를 쳐다본다. 요즘은 다 된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집을 나섰다. 어젯밤에 아내가 주문한 제품들이 집 앞에 놓여있었다. 세상 참 살기 좋아졌다고 생각하며 집을 나서는데 정문에서 경비 아저씨가 인사를 하셨다. 지난밤 지하주차장에 차를 대고 올 때도 만났던 분이었다. 아버지뻘 되는 분이 밤새 근무하시느라 피곤하실 법도 한데 아침이면 항상 밝게 인사를 하신다.

강화된 음주운전 처벌 규정에 따라 차는 놔두고 택시를 탔다. 회사로 가는 중에 기사 아저씨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기사 아저씨는 밤새 운전대를 잡고 교대를 위해 차고지로 가는 길이라고 했다. 경기가 어려워 돈벌이가 시원찮다는 말에 거스름돈은 안 받겠다고 하자 굉장히 고마워하시며 몇 번이나 인사를 하신다.

사무실 건물에 도착하니 건물 입구가 반질반질하게 청소가 되어 있다. 입이 텁텁해서 양치질을 하려고 화장실에 가니 화장실이 반짝반짝 윤기이 날 정도로 깨끗하다. 아주머니 한 분이 새벽에 나와 7층 건물의 복도와 화장실을 혼자 청소하신다는 말은 들었지만, 나는 한번도 그 아주머니를 뵌 적이 없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야간 노동자 이야기 <달빛 노동 찾기>
 
<달빛 노동찾기> 책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도 가족의 얼굴은 정작 잘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삶을 사는 야간 노동자 이야기
▲ <달빛 노동찾기> 책 가족을 위해 일하면서도 가족의 얼굴은 정작 잘 보지 못하는 아이러니한 삶을 사는 야간 노동자 이야기
ⓒ 조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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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빛 노동 찾기> 이 책의 부제는 '당신이 매일 만나는 야간 노동자 이야기'이다. 어젯밤부터 아침까지 나는 많은 야간 노동자들과 만났거나 그 야간 노동자들의 땀과 노력이 깃든 제품이나 서비스를 만났다.

어제 저녁 술을 파는 식당에서 일했던 시급 8350원의 아르바이트생, 내가 지불한 대리운전비 1만8000에서 수수료 20%를 제하고 1만4400원을 가져갔던 대리기사, 어젯밤과 오늘 아침에 밝은 얼굴로 나에게 인사했던 24시간 교대 근무를 하시는 우리 아파트 경비 아저씨, 밤새 소리 소문 없이 우리 집 앞에 아내가 주문한 물건을 배송한 기사 아저씨, 밤새 좁은 택시 안에서 여러 손님들 비위 맞추시느라 힘들어하셨던 택시 기사, 한 번도 만나지 못한 우리 회사 건물 청소하시는 아주머니…

이 책은 그런 '밤을 잃은' 노동자들의 이야기이다. 2급 발암물질이라는 야간 교대 근무에 종사하면서 생사여탈권을 가진 회사와 용역회사, 정규직들에게 눈치를 보며 항상 비굴한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었다.

노동조합이라는 것을 만들어 노동자들의 권리가 아니라 사람의 기본적인 권리를 법의 테두리 내에서 보장해달라고 외친다. 하지만 돌아오는 것은 '달빛 노동' 조차 빼앗아 버리는 사회와 기득권의 무자비한 폭력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으로 계급이 정해졌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태어날 때 부모의 직업과 재산으로 한 번, 부모의 재산과 여유로 결정되는 대학 입학으로 한 번, 취업할 때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로 또 한 번의 신분의 등급을 부여받는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거나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거나 정규직이 되라고 한다.

같은 회사 내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으로 나뉜다. 국가가 만든 학교라는 직장 안에는 정규직 교사가 있고, 기간제 교사도 있고, 무기계약직 직원도 있다. 그 구분이 직장과 학교 안에서는 곧 신분이다. 나이가 많고 적고는 그 신분이라는 이름 앞에서 의미가 없어진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책과 법전에서만 등장하는 용어이고 실질적인 노동시장에서는 "차별노동 차별임금"이 일반화되어 있는 것이 현실이다. 노동의 가치를 떠나 노동자들의 신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나라. 그게 내가 사는 대한민국이다.

밤새 우편물과 택배를 분류하는 우정 실무원 비정규직 노동자, 24시간 불이 켜져 있는 대학교 시설을 관리하는 시설관리 노동자, 화려한 방송 프로그램에 감추어진 열악한 노동환경의 방송작가들, 잠들지 않는 지하세계에서 일하는 서울교통공사 노동자, 24시간 고속도로를 지키는 고속도로 안전순찰원, 피라미드구조와 실제 감옥에서 일하는 교정직 공무원들… 이들 모두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야간 노동자들이다.

이 책에 나오는 병원지원직 노동자 조영재씨는 응급실에서 일하면서 느꼈던 것을 이렇게 말한다.
 
"저희한테는 쌍욕을 하지만 의사 선생님이 나오면 고분 고분 해지는 거죠. 환자나 보호자분들도 보는 눈이 있어요. 응급실에 잠깐만 있어보면 돌아가는 거 다 알잖아요. '아, 저기 의사가 있고 여기는 그 밑에 있는 잡다한 사람들이구나.' 그래서 저희처럼 만만한 사람들에게만 항의를 하는 거죠. "  _ <달빛 노동 찾기> 책 85쪽

내가 누리는 편안함과 밝음 뒤에는 불편함과 어둠 속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누군가 그랬다. 우리가 사는 공화국(republic)의 의미는 공개념, 공익, 공공성, 연대, 평등이 핵심가치라고.

누구나 노동을 하고 살아간다. 직업에 귀천은 없다고 말하고 노동의 가치는 신성하다고 말한다. 하지 만 엄연히 직업에 귀천은 있고 같은 직업 안에서의 계급과 신분의 강도는 그 세기를 더해만 간다. 대한민국은 과연 공화국일까? 아님 대한민국에서만 공화국의 의미가 변질이 된 것일까? 

덧붙이는 글 | 시민기자의 블로그에도 싣습니다.


달빛 노동 찾기 - 당신이 매일 만나는 야간 노동자 이야기

신정임.정윤영.최규화 지음, 윤성희 사진, 김영선, 오월의봄(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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