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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끼고 사랑하는 진짜 '가족'의 범위는 사람마다 다르다.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혈연 집단인 가족이 어떻게 사람마다 다를 수 있냐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아끼고 사랑하는 진짜 '가족'의 범위는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어떤 사람은 가족이면 당연히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전통적인 가정에서는 가족끼리 뭉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가족이 남만도 못하다고 인연을 끊는 사람도 부지기수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가족을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의 범위에서 잘라내는 사람이 있다면, 가족의 범위를 확장시키는 사람도 있다. 피가 이어지지 않은 사람이나 법적으로 가족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을 혈연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사는 사람도 있다. 이렇듯 개인이 진짜 믿고 의지할 수 있는 '가족'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범위는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다.
 
딸에대하여
 딸에대하여
ⓒ 김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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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 장편소설 <딸에 대하여>는 누가 나의 가족이고 나의 돌봄을 받아야 하는 사람인지 정하는 문제에 대한 책이다. 이 책의 주인공은 남편과 사별한 중년의 여성이다. 열심히 딸을 키워서 이제 다 가르쳤다고 생각하자 삶에 위기가 닥쳐왔다.
 
주인공은 남편이 먼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딸을 키우는 막중한 임무를 혼자서 짊어지게 되었다. 궂은 일은 물론이고 지금까지 요양병원에서 일하며 간신히 딸을 키워 고학력 여성으로 만들어냈다. 그런데 이제 다 키우고 나니 주인공은 딸에 대해 하나도 모르겠다. 저자의 딸은 대학에서 강사를 하지만, 그걸로 자신의 밥벌이를 챙기기는커녕 타인의 도움이 필요할 정도로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대체 애가 왜 공부를 많이 했는데도 점점 일반적이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것인지 이해가 안 된다. 공부시키느라 뒷바라지하고 고생 다 했더니 이제 아무 말도 안 듣겠단다. 더 어이없는 것은 이제 자신이 모르는 세계로 가서 돌아올 생각도 않는다는 것이다. 주인공의 딸은 여자를 사랑한다. 이것도 받아들이기 힘든 사실인데 딸은 애인을 집안에 들여온다.
 
저자는 자신의 삶이 고단하지만 일반적인 삶에 속한다고 생각한다. 자기가 특별히 잘못된 일을 했다는 생각도 없고, 그저 남편의 빈자리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아이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뒷바라지를 하며 살았다. 그런데 무슨 죄를 지어 자신의 딸이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된 것인가 절망스럽다. 아니,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네가 하는 말 같지도 않은 말은 이미 많이 들었다. 무슨 말을 또 얼마나 해서 가슴에 대못을 치려는지 모르겠지만. 나한테도 권리가 있다. 힘들게 키운 자식이 평범하고 수수하게 사는 모습을 볼 권리가 있단 말이다." -66P
 
이 책은 끝까지 어떻게 딸을 대해야 할지, 딸의 애인에게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그냥 그런 존재에 대해 신경도 안 쓰고 살았는데 어느 날 딸이 데리고 들어오니 혼란이 가득하다. 심지어 딸은 존재가 어머니에게 고통으로 다가오는데 적극적으로 자신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과 싸우기까지 한다. 어머니는 이 모든 것이 다 싫다. 딸이 하는 말이 듣고 싶지도 않다. 딸의 여자 친구는 이해할 수조차 없는 존재다.
 
 "이 애들은 유식하고 세련된 깡패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는 주먹을 쓰는 대신 주먹보다 강한 걸 쓰는 방법을 가르쳐줬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뺏긴 줄도 모르고, 당한 줄도 모르고, 어쩔 수 없다고 여기는 나 같은 피해자가 나오는 거겠지." -46P
 
한편, 주인공의 직업은 요양 보호사로, 노인 요양병원에서 노인을 돌보면서 살아간다. 병원 일은 원래 힘든 일이지만 주인공은 특히 고통을 겪는다. 환자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을 보면서 눈물이 나게 슬프기 때문이다. 주인공이 관심을 갖게 된 한 명의 환자가 있다. 젊어서 많은 사람들을 돕고 나이가 드니 쓸쓸하게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한 삶을 사는 사람. 공익을 위해서 인생을 다 버렸지만 자신의 삶은 처참한 외로움 속에 남은 사람이다.
 
그 환자의 이름은 젠이다. 주인공은 나이 먹은 여성인 젠이 고통을 받는 것이 너무 속이 상하고 다른 사람들이 젠에게 막 대하는 것도 보기 싫다. 잘 생각해보면 그 환자는 전에 선하게 살았지만 저자와는 아무런 가족 관계가 없는 사람인데도 말이다.
 
주인공은 이 젠이라는 사람이 인생을 안쓰럽게 끝내는 것이 보기가 너무 싫어서, 자신의 직업적인 의무를 넘어서 젠을 돕기 위해 인생에 있어서 모험을 감행한다. 자신의 인생의 궤도에서 벗어나는 모험을 말이다. 결과적으로 어머니와 딸 모두 자신과 피가 섞이지 않은, 관습적으로 인정되지 않는 타인을 가족으로 여겨서 고난을 감내하는 길을 걷게 된다.
 
이 책은 대체 누가 나의 가족으로 인정받고 나와 함께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주인공의 딸은 모르는 사람과 연대하고, 사회 운동에 나서다가 끊임없이 마음을 다친다. 온갖 불행을 겪는 딸의 삶을 보며 읽으면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주인공은 이미 삶의 절반을 마친 중년이고, 기존에 자신이 살았던 '평범한 삶'을 정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딸의 행동에 끊임없이 고통을 받는다. 딸이 인생을 제대로 사는 법을 알기나 하는지도 의심스럽다. 딸의 사생활은 너무 이상해서 진저리가 나고 이해할 엄두도 잘 나지 않는다. 주인공이 이해하기에는 딸의 세계는 너무나 복잡하다.

하지만 그러는 주인공 본인도 타인이 존엄을 유지하고 사는 모습을 보기 위해 평범한 삶이 아닌, 남들과 다른 삶을 택하는 쪽으로 나아간다는 점이 흥미롭다.

딸에 대하여

김혜진 지음, 민음사(2017)


태그:#가족, #딸, #어머니, #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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