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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치러지는 15일 오전 서울 중구 이화여자외국어고등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2019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을 치르는 한 수험생이 긴장된 모습으로 고사장에서 시험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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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사회를 넘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A 고등학교의 시험지 유출 사건이 시나브로 잠잠해져가고 있다. 누군가는 책임을 지고 어떻게든 결말이 나겠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 흐지부지될 공산이 크다는 게 지역사회의 대체적인 여론이다. A 고등학교가 '잘 나가는' 사립학교라는 이유에서다.

지난 주말, 군에서 막 제대한 제자들과 만났는데, 공교롭게도 그 자리에 A 고등학교 졸업생 두 명이 함께 했다. 제자 두 명과 같은 대학에 다니는 군대 동기라는데, 다른 친구들과도 이물 없이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군 복무기간 단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가 싶더니, 이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A 고등학교의 시험지 유출 사건으로 화제가 옮겨졌다.

대다수 아이들 버리고 극소수에 올인

A 고등학교는 지역사회에서 '자사고 같은 일반고'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중3 자녀를 둔 많은 학부모들은 A 고등학교에 배정 받는 걸 축복으로 여겼고, 아이들도 '공부 하나는 제대로 시키는' 학교로 인식하고 있다. 만약 A 고등학교 배정 통지서를 받아들고 울먹이는 경우라면, 공부와는 담을 쌓은 아이들일 거라고 생각한다.

A 고등학교 교문에는 1년 365일 현수막이 내걸려있다. 대학입시철이면 명문대 합격을 축하하는 현수막이 걸리고, 누군가 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을 전해주기도 한다. 이따금 졸업생들 중 군 장성이나 고위공직 승진을 축하하는 현수막도 있고, 취업하기가 바늘구멍이라는 세태 탓인지 대기업 취직과 공무원 시험 합격을 알리는 것들까지 등장하기도 한다.

오가다 현수막의 내용을 읽다보면 솔깃해지기 마련이다. 내 자녀도 저 학교에 보내면 현수막에 이름을 올릴 수 있지 않을까 내심 기대하는 학부모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두 말할 나위 없는 착각이지만, 한 번 굳어진 선입견은 웬만해선 사라지지 않는 것 같다. 온갖 사달이 나도, A 고등학교의 인기는 지역사회에서 여전하다.

최근 한 재학생의 고발로 시험지 유출 사건이 드러났지만, A 고등학교의 내신 성적과 관련된 유사한 비리는 오래 전부터 있어왔다고 한다. A 고등학교의 졸업생이 들려주는 '후일담'은 정녕 그곳이 학교인가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다.

최상위권 아이들만 따로 모아놓고 특별 수업을 진행해왔다는 건 이야깃거리도 못 된다. 아이들 사이에 차별을 조장하는 '특별반'이나 '심화반' 운영은 금지되어 있지만, '자율 동아리'로 그럴듯하게 이름만 바꿔 그대로 운영하는 학교가 여럿이다. 그들 시각에서 보면, 이번 일은 최상위권 아이들에게 특혜를 주는 과정에서 '삐끗한' 것일 뿐이다.

듣자니까, 지금 A 고등학교의 내부에선 주변 학교들도 별반 다르지 않은데 억울하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설마 '재수 없이 걸렸다'고 여기는 걸까. 이른바 '물귀신 작전'이라도 써야 할 만큼 다급한 처지라는 뜻일 테지만, 공신력을 생명으로 하는 시험문제를 사전에 특정 아이들에게만 알려주는, 그렇게 간 큰 학교는 없다.

지난해 서울의 숙명여고에서 벌어진 시험문제 유출 사건은 어디까지나 쌍둥이 딸에 대한 빗나간 부정(父情)에 기인한 것으로, 이번 A 고등학교의 경우와는 또 다르다. 명문대 진학 실적을 높이기 위해 최상위권 아이들을 지속적으로 '특별 관리' 해왔음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지역 명문고라는 평판은 고작 대다수 아이들을 '버리고', 극소수에 '올인'한 결과였던 셈이다.

A 고등학교 졸업생은 그들의 모교를 이렇게 비아냥거렸다. 최상위권에게는 '천당'이고, 나머지에게는 '지옥'이라고. 기실 이번 일로 극명하게 드러났듯이, 영문도 모른 채 수학시험 문제들을 '찍어야만 했던' 대다수의 아이들은 최상위권의 내신 등급을 올려주기 위한 들러리였을 뿐이니, 그들의 조롱을 수긍할 수 있다.

그들로부터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기 힘든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그러한지 알 수 없다는 전제를 덧붙였지만, 몇 해 전까지만 해도 특정 과목 시험 문제에 배점이 표기되지 않았다고 한다. 대개 문제지에는 출제교사가 난이도 등에 따라 문항별로 배점을 표기하도록 되어있다. 그래야만 시험 후 아이들은 답지를 받아들고 자신의 점수를 곧장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시험 후 OMR 카드의 채점이 끝나야 비로소 배점을 알 수 있었다고 한다. 문항별 정답보다 배점을 더 나중에 알게 됐다면서, 친구들끼리 맞힌 문항 수와 실제 득점이 달라 희비가 교차하는 해프닝이 심심찮게 벌어지곤 했단다. 당시에도 최상위권 아이들의 점수를 올려주기 위한 얄팍한 술수라는 소문이 파다했다고 한다.

그 학교에 자녀를 보낸 학부모도 그랬다고 하는 걸로 보아 과거에 그런 일이 있긴 있었나 보다.

온갖 편법에 도가 튼 학교, 교육청은 '감히' 대적 못해 

고등학교 입학 당시의 성적이 거의 변화 없이 졸업할 때까지 이어지는 배경이라고 그들은 분석했다. 당시만 해도 중학교의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기 위해 고등학교 교사들이 중학교 교무실의 문턱이 닳도록 오가던 때였다. 애초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안다'며, 1지망으로 입학한 최상위권 아이들에겐 3년 내내 장학금을 보장해주기도 했다.

그들은 이번 일이 그다지 놀랍지 않다고 했다. 언젠가 터질 게 터졌을 뿐이고, 이보다 더 심한 일도 있었는데 얼마 못가 묻혔다면서, 온갖 편법에 도가 튼 모교의 '위세'는 교육청 정도로는 감히 대적할 수 없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그러면서 의미심장한 한 마디를 던졌다.

"직접 문제를 유출한 선생님은 말할 것도 없지만, 동료 선생님들도, 학부모들도, 이웃 학교들도, 나아가 감사를 벌이겠다며 호들갑떠는 교육청도 모두 공범이에요. 모르긴 해도, 그들 모두 특정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교육은 죄다 썩었다는 여론이 심화되길 바라고 있을 걸요. 그게 두루 책임을 면하는 길이니까요."

스스로도 공범이라는 그에게 시선이 모였다. 오랫동안 유사한 비리가 저질러졌지만, 누구 하나 말 꺼내지 못했다는 걸 에둘러 나무란 것이다. 그가 이번 일의 최초 제보자인 후배의 용기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도 그의 '훗날'을 진심으로 걱정해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실제로 재학생들 중엔 이번 일로 대학 진학에 상당한 피해가 있을 거라는 이야기가 떠돌고 있다.

불법임을 알면서도 자신에게 득이 되면 눈 감고 마는 건 비단 후배들만의 모습은 아니라고 했다. 직접 가담하지 않았을 뿐, 동료 교사들도 모두 알고 있었을 거라고도 했다. 재학생도, 졸업생도 다 아는 사실을, 아무리 다른 학년, 다른 과목 교사라고 해서 몰랐다는 건 말이 안 된다는 것이다. 기실 '남의 일'에 일절 관여하지 않는 게 교직 사회의 불문율이긴 하다.
 
 우리나라에서는 대학입시 성적으로 학벌 피라미드의 아래 칸에 자리 잡는 순간, 차별과 혐오 공격에 노출될 것을 각오해야 한다. 사진은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쌍둥이 아들에게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차민혁 교수(김병철 분).
 JTBC 드라마 <스카이 캐슬>에서 쌍둥이 아들에게 “피라미드 꼭대기에 올라가야 한다”고 역설하는 차민혁 교수(김병철 분).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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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모들에겐 더욱 가혹했다. 공범이라기보다 차라리 주범이라 해야 옳다는 것이다. 특혜를 받은 아이의 학부모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나머지 대다수의 학부모들도 이런 내막을 몰랐을 리 없다고 말했다. 자신의 경험으로 미루어, 시험 문제 유출 같은 구체적인 것까지야 몰랐다 해도 최상위권 아이들에 대한 특혜는 외려 당연시해왔다는 것이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누리는 특혜를 시샘하지 말고, 공부 못하는 스스로를 탓하라'는 이야기를 부모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들었다고 했다. 당신의 자녀가 최상위권 아이들을 위한 들러리였음에도 그러한 현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그는 이를 두고 마치 '쥐가 고양이 생각해주는 꼴' 아니냐며 반문하기도 했다.

대학입시가 끝난 연말이면 고등학교별 진학 실적이 알려지고, 명문대 진학자 수에 따라 서열이 매겨져왔다. 명문대 합격 현수막을 내걸거나 홍보하지 말라는 교육청의 지침은 늘 그래왔듯 종이 호랑이일 뿐이다. 아무리 쉬쉬해도 학교마다 통계가 나돌고, 실적이 좋지 않은 학교 관리자들의 표정은 일그러진다.

A 고등학교의 경우처럼 명문대 진학자 수가 많은 곳은 주변 학교의 '롤 모델'로 등극한다. 그들의 방식을 벤치마킹하기 위해 안달이고, 그 과정은 늘 불법과 편법 사이를 오가게 된다. 이번 일이 터지지 않았다면, 사달이 난 시험 문제 유출도 유사한 편법이 동원되며 암암리에 다른 학교로 퍼져나갔을지도 모른다.

여론 떠보며 적당히 덮고 가자는 식으로 대처

한편, 아이들은 지금 A 고등학교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감사를 벌이고 있는 교육청의 관료들조차 '초록은 동색'이라며 입을 모았다. 그들은 일이 터질 때마다 마치 전혀 몰랐다는 듯 놀라워하지만, 늘 여론을 떠보며 적당히 덮고 가자는 식으로 대처해왔다는 거다. 하긴, 그의 말마따나 교육청은 매번 사립학교법 규정을 들먹이며, 스스로 '을'의 자리로 내려오곤 했다.

'결과만 좋으면 다 좋다'는 식의 비뚤어진 사고방식이 학교 현장에 만연해 있다. 물론, 결과란 오로지 대학입시 실적이다. 인공지능이 세상을 지배하게 된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도 여전히 학벌서열을 따져가며 애면글면하는 고등학교의 추레한 현실이 서글프고, 치부가 까발려진 채 제자들로부터 핀잔을 들어야하는 뒷맛이 개운치 않다.

그럼에도 희망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술자리를 함께한 제자들은 이번 시험 문제 유출 사건과 관련된 교사와 학생, 학부모들까지도 일벌백계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이는 어쩌면 학창시절 알면서도 나 몰라라했던 자신들의 비겁한 태도에 대한 고해성사일지도 모른다.

"학교에서 불법적 특혜를 받고도 당연시 한 이들이라면, 나중 개인적으로 성공할지는 몰라도 공동체를 위해 헌신할 가능성은 없다고 봐요. 특권의식에 절어있는 아이들에게 공공성과 연대감을 기대하는 건 우물에서 숭늉 찾는 격이죠. 그런 아이들이 과연 '인재'일까요? 이제 학교의 인재상도 달라져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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