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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주일에 한 번꼴로 박근혜-최순실게이트 사건을 비롯해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사건들을 다룹니다. 각 사건의 핵심내용 소개에 그치지 않고 사건 관계자들의 범죄 또는 부패 장면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고 기록합니다. 그래서 정확하고 구체적으로 권력부패를 기억하는데 주춧돌이 되고자 합니다.[편집자말]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이재만, 안봉근.
ⓒ 공동취재사진/이희훈/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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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7월 25일, 서울고등법원 형사13부(재판장 구회근 부장판사)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선고했다.

"징역 5년에 추징금 27억 원"

1심에서 선고된 징역 6년보다 1년, 추징금 33억 원보다 조금 줄어든 형량이다.

이 재판은 국정원장에게 배정된 특별사업비 명목의 국정원 예산을 박근혜에게 상납한 이른바 '국정원 특활비 상납사건'에 대한 재판이었다. 국정원 특활비를 박근혜에게 상납한 사건에 대한 재판은 모두 3개로 나뉘어 진행되었다. 상납을 요구한 박근혜에 대한 재판과 상납을 했던 국정원장 등에 대한 재판, 그리고 국정원에서 온 돈을 받아 박근혜에게 전달한 박근혜 측근 3인방에 대한 재판이다.

25일 박근혜에 대한 2심 판결이 선고됨에 따라 이 세 재판은 모두 2심까지 끝났다. 이제 대법원 판결만 남은 상태이다.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 와중에 국정원 특활비 상납 요구

박근혜는 국가정보원의 도움을 받아 대통령이 되었다. 국정원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와 2012년 12월에 실시된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인터넷 등에서 여론전을 전개했다. 명목은 국가안보를 위한 것이었지만, 실상은 여당 지지와 야당 비방, 정부비판 세력 비방을 통한 여당 집권 연장이었다.

국정원의 불법선거 개입과 정치 개입의 꼬리가 살짝 드러났다. 2012년 12월 19일 대통령 선거를 일주일 쯤 앞둔 12월 11일, '댓글작전'을 전개하던 국정원 심리전단 직원 김하영의 거주지(오피스텔)를 민주통합당 소속 의원과 당직자들이 급습하였다.

그러나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선거 직전 마지막 텔레비전 토론회가 열린 12월 16일 밤 11시에 '대선 후보 관련 게시글은 발견하지 못했다'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다. 이틀 후 실시된 제19대 대선 결과 여당의 박근혜 후보가 야당의 문재인 후보를 근소하게 따돌리고 승리하였다.

국정원의 도움을 받은 후보가 당선된 만큼 국정원의 선거개입 사건의 진실이 밝혀지는 것은 어려워보였다. 경찰은 대통령 취임식(2013년 2월 25일)보다 50여일 뒤인 2013년 4월 18일에 국정원 직원 몇 명에 대해서만 수사를 마치고 검찰에 사건을 넘겼다.

취임 초기 박근혜의 위세는 조금도 꺾이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취임한 후 얼마 안 된 2013년 5월부터 매달 정기적으로 국정원 자금을 상납받기 시작한다. 수사를 통해 밝혀진 것을 보면 박근혜가 상납하라고 지시한 것은 최소한 5월 이전으로 보인다. 검찰로 넘어간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가 완료될 때까지는 조심할 만한데 박근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국정원 예산은 철저히 비밀에 부쳐지고 국회나 감사원이 구체적인 지출 상황을 파악할 수 없다는 점을 박근혜는 악용했다. 2013년 5월부터 2016년 9월까지 매달 5천만 원에서 1억 원이 청와대로 들어간다. 명절이 있을 때에는 한 달에 2억 원이 보내졌다. 이 기간 중에 박근혜에게 전달된 것으로 재판에서 확인된 돈은 모두 35억 원이다.

주요 인물 9명과 보조 인물 2명

국정원 예산이 박근혜에게 상납된 사건의 전개 과정을 하나하나 보기 전에 이 사건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부터 보자.

우선 청와대쪽 사람들이다.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주역이다. 다음으로 박근혜를 보좌한 그의 측근 3인방인 이재만,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들 그리고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이 등장한다.

이재만 비서관은 박근혜의 대통령 취임부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2016년 10월까지 줄곧 청와대 총무비서관으로만 일했다. 안봉근은 2015년 1월까지는 청와대 제2부속비서관이었고 그 후 2016년 10월까지는 청와대 국정홍보비서관으로 일했다. 정호성은 2016년 10월까지 청와대 제1부속비서관 또는 부속비서관으로 일했다. 이들 세 사람은 청와대 근무 이전부터 10년 이상 박근혜의 비서진으로 일하며 '박근혜의 문고리 3인방'으로 불렸다. 이원종 비서실장은 2016년 5월부터 2016년 10월까지 짧은 기간 비서실장이었다. 이 사건에 등장한 주요 인물 중 유일하게 형사처벌을 받지 않았다.

다음은 박근혜의 요구에 부응한 국정원쪽 사람들이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이헌수. 남재준은 박근혜 정부의 첫 번째 국정원장으로 2013년 3월부터 2014년 5월까지 재직했다. 이병기는 2014년 7월부터 2015년 2월까지 국정원장이었다. 그는 국정원장에서 물러난 뒤에는 곧바로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옮겨갔다. 이병호는 박근혜가 임명한 세 번째 국정원장으로 2015년 3월부터 박근혜 탄핵 후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2017년 5월까지 국정원장으로 일했다. 이헌수는 국정원 간부 출신으로 박근혜 정부 들어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으로 국정원에 복귀한 인물이다. 그는 2013년 4월부터 2017년 6월까지 국정원 기조실장으로 일했다. 박근혜 정부의 시작과 끝을 함께한 인물이다.

재판에 회부된 이들은 이러했지만, 남재준 원장의 비서실장이었던 박 아무개 실장, 오 아무개 정책특별보좌관도 자금 상납에 관여한 인물들이다. 특히 박 아무개 비서실장은 이헌수 기조실장이 돈 전달 역할을 맡기까지는 직접 돈을 청와대 이재만 비서관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맡았다.

국정원장에게 이미 말해두었다는 대통령의 지시

이들의 범행은 2013년 5월에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5월 초 어느 날, 박근혜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에게 말한다.
 
"남재준 국정원장에게 청와대 지원 예산 관련해서 이야기해두었는데 소식이 없다. 남재준에게 한 번 확인해보라."

비슷한 때에 박근혜가 이재만 총무비서관에게 말한다.
 
"국정원으로부터 봉투가 올테니 받아놔라."

마침 남재준 원장이 참석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회의가 청와대에서 열린다. NSC 회의가 끝난 뒤를 기다렸다가, 안봉근은 남재준 원장을 청와대 경내의 '서별관' 건물 밖 정원에서 만난다. 안봉근은 남재준에게 '대통령님이 청와대 지원예산과 관련해 원장님과 말씀하신 게 있다는데...'라며 말한다.

이 일이 있은 직후 남 원장은 자신의 사무실에서 오 아무개 국정원장 정책특별보좌관을 불러 지시한다.
 
"청와대에서 돈을 좀 보내달라는 연락이 왔다. (국정원장) 특별사업비 중에서 5천만 원을 현금으로 만들어 청와대에 전달하라."

이 지시는 이헌수 기획조정실장에게 전달되고 국정원의 예산을 총괄하던 이 실장은 특별사업비 지출계획서를 예산관 등에게 작성하게 한다. 이 실장은 정 아무개 예산관이 가져온 지출계획서를 결재한 다음 특별사업비 5천만 원을 현금으로 인출해, 은행표시 없는 띠지와 고무줄로 묶어 오 보좌관에게 전달하라고 시킨다. 은행표시가 없는 띠지는 자금 출처를 가리기 위한 방편으로 쓰이는 고전적인 방식이다.

오 보좌관은 예산관으로부터 5천만 원어치 현금 다발을 받는다. 그는 5월 중순경에 이 돈을 서류 봉투에 담아 남재준 원장의 비서실장인 박 아무개 실장에게 전달한다. 그러고는 이 돈 봉투를 청와대에 전달해 달라고 부탁한다. 이미 박 실장도 남 원장으로부터 같은 지시를 받은 상태였다.

박 실장은 돈 봉투를 전달할 때와 장소를 의논하기 위해 이재만 청와대 비서관에게 연락한다. 이재만 비서관과 상의한 대로 그는 청와대에 파견 중인 국정원 직원을 만난다는 명목으로 청와대 연풍문을 거쳐 청와대 경내의 이 비서관의 사무실을 직접 방문한다. 그곳에서 이 비서관에게 직접 돈이 든 봉투를 전달한다.

서너 번째부터는 방문확인 절차 거치지 않고 청와대로

봉투를 받은 이재만은 대통령 관저로 가서 박근혜에게 곧장 전달한다. 박근혜는 이재만에게 관저에 있는 금고에 넣어 보관하라고 시킨다. 한 달 후인 6월에도 똑같은 방법으로 박 아무개 실장을 통해 돈 봉투를 받은 이재만이 관저에서 박근혜에게 돈 봉투를 전달한다. 이때 박근혜는 이재만에게 이렇게 말한다.
 
"청와대 특수활동비에 준해서 엄격히 관리하라." 

이재만의 주장에 따르면, 이 때 처음으로 자신이 전달한 봉투 안에 든 것이 돈이라는 것을 알아챘다고 한다.

국정원의 박 실장은 처음 두 세 번은 국정원 파견 직원을 만나러 왔다는 명목으로 방문기록을 남긴 후에 청와대 경내로 들어갔다. 그러다 두 세 번이 지난 후부터는 청와대 인근에서 이재만 비서관이 보낸 차를 타고 청와대 경내로 들어간다. 별도의 검문이나 방문 확인 절차를 거치지 않는 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이재만 비서관이 돈 봉투인 것을 알게 된 후부터는 문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박 실장의 출입방법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 사실은 재판에서 이재만 비서관의 범죄사실에 처음 두 번 받은 돈은 제외되고 그 다음부터 받은 돈만 범죄사실에 포함되는 이유가 되었다.

이런 식으로 매달 5천만 원이 박근혜에게 상납된다. 남재준 원장이 2014년 4월 16일에 발생한 세월호 참사 사건을 계기로 퇴임한다. 물론 그 직전에 터진 서울시 공무원 유우성씨 간첩조작 사건의 여파로 이미 퇴진 압력을 받고 있던 남재준 원장이었다. 그가 2014년 5월 22일에 퇴임하였는데, 그가 재임하던 2014년 4월까지 매달 5천만원 씩 상납되었으니, 남재준 원장 시절에 상납된 돈이 6억 원이나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 상납은 멈추지 않는다.
 
탄핵 앞둔 청와대, 정문 앞은 한산 박근혜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둔 9일 오전 청와대 정문 앞은 주변과 달리 평소와 같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며 청와대 주변 도로에는 경찰 병력과 차벽이 줄 지어 대기하고 있다.
▲ 2017년 3월, 탄핵 앞둔 청와대 지난 2017년 3월 9일 박근혜 탄핵 심판 선고를 하루 앞두고 청와대 정문 앞은 주변과 달리 평소와 같이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반며 청와대 주변 도로에는 경찰 병력과 차벽이 줄 지어 대기하고 있다. 이 주변은 국정원장들이 박근혜 청와대에 정기적으로 돈을 상납할 때 접촉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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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에게 가는 돈은 2배가 되고

이병기 국정원장은 남재준 원장의 후임자로 2014년 7월에 취임한다. 이 원장은 취임 직후 이헌수 기조실장한테서 다음과 같이 보고받았다.
 
"전임 남재준 원장 때부터 특별사업비 중에서 매달  5천만 원씩을 청와대에 보내왔습니다."

그런데 이병기 원장은 2배 증액한 1억 원을 대통령에게 보내라고 지시한다. 2014년 7월 18일경의 지시다. 남재준 원장 퇴임 후 자신이 취임할 때까지의 공백 기간이었던 2014년 5월과 6월에는 5천만 원을 상납하지 못했다. 이병기 원장은 이것이 마음에 걸렸는지 한 달치 5천만 원에 더해 두 달치 1억 원을 보내라고 이 실장에게 지시하였다.

하지만 7월 이후에도 매달 청와대에 보내는 상납금은 1억 원을 유지했다. 7월 이후에도 왜 1억 원이었을까? 그건 박근혜의 측근 정치인이자 '친박근혜계(친박)' 실세였던 최경환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의 요구 때문이었다. 국정원장에 취임한 7월에 이병기 원장이 최경환 장관과 점심 식사를 함께 한다. 이 자리에서 최 부총리는 청와대가 어려우니 제공하는 돈을 늘려주라고 말한다. 이 원장은 이를 자신의 수첩에 적어두었다. 그래서 8월부터도 계속 1억 원을 보내게 되었다고 이 원장은 재판에서 진술하였다.

전임 남재준 국정원장 시절과 달라진 점은 또 하나 있다. 이병기 원장 시절에 돈을 전달하는 역할은 이헌수 기조실장으로 바뀐다. 이 실장은 이병기 원장의 지시를 받은 직후 기조실 소속의 예산관에게 현금 1억 원을 준비하라고 하고, 그로부터 5천만 원짜리 돈다발 묶음 2개를 받는다. 이 실장은 그 돈다발을 넣은 서류가방을 가지고 청와대 근처로 간다. 그러면 안봉근 비서관이 청와대 인근 연무관 옆 골목길로 차를 끌고 나온 뒤 그 곳에서 이 실장을 차에 태운다.

안 비서관의 차에 탄 후에 이 실장이 곧바로 돈가방을 주고 두 사람이 헤어지지도, 또는 안 비서관이 이 실장을 태우고 청와대 경내로 바로 들어가지도 않는다. 두 사람은 연무관 주변을 한 바퀴 돌거나 하면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고 자연스러운 만남인 것처럼 위장한다. 차에 탄 채 청와대 주변을 배회한 뒤에 이 실장은 돈 가방을 차의 조수석에 두고 내린다. 그러면 안 비서관이 돈가방만 가지고 유유히 청와대로 다시 들어간다.

돈가방을 받아온 안 비서관은 다시 이재만 비서관에게 전달하고, 이 비서관은 다시 박근혜에게 전달한다. 2014년 7월부터 매달 이 방법이 반복된다. 이런 식으로 이병기 원장이 퇴임하는 2015년 2월까지 8개월 동안 매달 1억 원씩 모두 8억 원의 국정원장 특별사업비가 박근혜의 관저 속 금고로 들어갔다.

명절에는 좀더 상납하고 싶었던 이병호 국정원장

이병기 원장도 2015년 2월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후임으로 이병호 원장이 2015년 3월에 취임한다. 원장은 바뀌지만, 국정원장 특별사업비 몫의 국정원 예산이 청와대에 제공되는 것만큼은 바뀌지 않는다. 2015년 3월 중순 이헌수 기조실장은 이병호 신임 원장에게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보고하고, 이 원장은 계속 그렇게 하라고 지시한다.

돈 가방을 준비하여 청와대에 전달하고 또 전달받는 과정에도 변함이 없다. 이병기 전임 원장 시절의 방식이 그대로 이어진다. 돈을 전달하고 받는 역할을 맡은 이들도 이헌수 실장과 안봉근, 이재만 비서관으로 똑같다.

그렇다고 모든 게 똑같지는 않고 한 가지 바뀐 게 있다. 이병호 원장은 전임 남재준이나 이병기 원장 때는 없었던 '명절 상납'을 추가했다. 이병호 원장은 매달 정기적 상납 외에 명절에는 1억 원을 더 상납하게 했다. 2015년 3월에 취임한 그는 2015년 9월의 추석과 2016년 1월 설 명절을 맞아 상납금을 각 1억 원씩 더 보낸다.

이렇게 세심히 챙기는 것은 박근혜도 마찬가지였다. 2013년 초에 내렸던 상납 지시 한 번으로도 국정원에서 차곡차곡 돈을 매달 보내왔다. 그럼에도 박근혜는 2016년 5월에 이병호 원장에게 전화로 또 한 번 말한다.
 
"그간 국정원에서 지원한 자금이 있지 않습니까. 그거 계속 지원해 주세요".

돈을 꾸준히 받는 도중에도 계속 돈을 보내라고 지시하는 지나친 세심함이 돋보인다.

최순실게이트로 멈춰버린 상납, 스스로 재개한 국정원장

2016년 7월 말에서 8월 사이에 안봉근 비서관이 국정원에 돈을 보내지 말라고 한다.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이헌수 기조실장이었다. 박근혜 탄핵 사태를 촉발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서막이 된 TV조선의 첫 보도가 7월에 나왔다. 아직은 국민들의 관심을 끌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지만 조심하는 게 좋겠다고 본 이 실장은 국정원 자금이 청와대로 지원된다는 것까지 알려지면 문제가 커질 수 있으니 중단하면 안 되겠느냐고 안봉근에게 물어본다. 안봉근이 이런 우려를 박근혜에게 보고하는데, 안 비서관은 중단하라는 박근혜의 지시를 이 실장에게 전달한다. 그래서 2016년 8월치 상납금은 청와대에 보내지 않는다.

그런데 다음 달인 9월 박근혜는 다시 국정원의 돈을 받는다. 청와대가 다시 돈을 보내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었다. 한 달치 돈을 보내지 않았던 국정원 스스로 나선 일이다. 2016년 추석을 앞둔 8월 하순, 이 실장은 안 비서관에게 요즘 청와대는 어떻냐고 물어본다. 그러자 안 비서관이 대통령이 금전적으로 어렵다, 명절에 격려금이나 금일봉이 필요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답한다.

이 실장이 이 말을 이병호 원장에게 보고하자, 이병호는 "그 전에 드리는 것보다 조금 더 드려라"고 지시한다. 그래서 이 실장은 기조실의 예산관으로 하여금 2억 원을 현금으로 준비하게 한 뒤 이를 가방에 담은 뒤 과거와 동일하게 청와대 인근 연무관 옆 골목길로 간다.

돈가방을 받으러 나온 이는 안봉근 비서관이 아니었다. 이 실장은 박근혜의 측근 비서관 3인방 중 또 다른 1명인 정호성 비서관을 만난다. 안 비서관이 사전에 이 실장에게 "2억 원은 대통령에게 직접 올려드리는 돈이니, 전달 방법은 정호성 비서관과 상의하라"는 취지로 말했고, 정호성 비서관에게도 "이 실장과 연락해서 이번에 한 번 돈을 받아 대통령께 올려드려 달라"고 이미 부탁했기 때문이다.

돈 가방을 받은 정 비서관은 "국정원에서 추석 때 쓰시라고 좀 보내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박근혜에게 직접 돈 가방을 전달하였다. 이렇게 해서 이병호 원장 재임 기간동안 박근혜에게 상납된 돈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첫 보도가 나오기 전인 2016년 7월까지 17개월 동안 보낸 19억 원과 2016년 9월 추석 명절에 맞춰 보낸 2억 원이었다. 모두 21억 원이었다. 만약 최순실게이트가 2016년 9월 말에 폭발하지 않았다면 돈의 규모는 더 늘었을 것이다.

박근혜에게 건넨 돈은 국정원장 특별사업비
 
 16일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검찰이 발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남재준,이병호 (왼쪽부터), 이병기 전 국정원장 (지난 11월13일 검찰 출석 당시 사진)
  "국고손실" 등의 혐의로 검찰이 발부한 구속영장 실질 심사를 받기 위해 법원에 출석하는 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전 국정원장(왼쪽부터)
ⓒ 최윤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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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재준 원장 시절부터 이병기 원장을 거쳐 이병호 원장 때까지 박근혜가 상납받은 국정원 예산은 모두 35억 원이다. 이 돈은 국정원장 특별사업비로 배정된 돈이었다. 이 돈은 예산명세서상에는 '특수공작사업비'라는 별도 항목으로 편성되는데, 연간 40억 원이 배정되고 있었다.

이 돈의 불출 및 집행절차는 이렇다. 국정원장이 기획조정실장에게 불출을 지시한다. 그러면 기조실장은 기획조정실 소속 예산관에게 지출결의서 작성을 지시한다. 예산관이 지출결의서를 작성해 제출하면 기조실장이 결재를 하고, 다시 예산관은 지출결의서에 적힌 금액만큼을 국고 계좌에서 현금으로 인출한다.

그 뒤 기조실장은 국정원장에게 불출 금액을 보고하고 국정원장의 지시에 따라 그 돈을 쓴다. 통상적으로는 국정원장의 별도 지시가 없어도 기조실장이 매달 반복적으로 일정 금액을 현금으로 국고 계좌에서 인출해 원장에게 전달하거나 국정원 사무실의 금고에 보관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어 쓴다.

이런 특별사업비의 실제 사용처는 국정원장만이 알고 있거나 국정원장의 지시를 받은 극소수의 국정원 직원만이 알 수 있다. 그리고 국정원 예산에 관한 회계 검사는 국정원장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므로 이 돈에 대해 외부인이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같은 범행이 3년 넘게 이어질 수 있었다.

혼자만 받는 게 미안했을까

그런데 박근혜는 혼자서만 돈을 받는 게 미안했는지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돈을 보내주라고 국정원에 지시하기도 했다.

2016년 6월 경, 박근혜는 대통령 집무실에서 이병호 국정원장을 만난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대통령 비서실장에게 매월 5천만 원 정도 지원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원종이었다.

매달 박근혜에게 1억 원씩을 상납하고 있던 이병호 원장은 이헌수 기조실장에게 국정원장의 특별사업비에서 돈을 빼내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에게도 주라고 지시한다. 이원종 비서실장에게 돈을 직접 전달한 사람은 국정원장의 비서실장이었던 박 아무개였다. 박 아무개 비서실장은 2016년 6월부터 8월까지 3번에 걸쳐 서류봉투에 돈을 담아, 이원종 실장의 수행비서의 안내를 받아 청와대 경내로 들어와 이원종 실장의 집무실에 들어갔다.

이 곳에서 이원종 비서실장은 직접 5천만 원이 든 서류봉투를 받았다. 이런 식으로 3차례에 걸쳐 현금 5천만 원씩 모두 1억5천만 원을 받았다. 이병호 원장한테서 '다섯개쯤 보내주겠다'는 말을 들은 바 있는 이원종 실장은 처음에는 5백만 원으로 생각하고 있다가 실제 받은 돈이 5천만 원이어서 박근혜에게 질문까지 하였다.

박근혜는 '내가 국정원에 요청한 것이니 쓰라'고 하고 '비서실 운영비로 쓰면 된다'고 이 실장에게 말하였다. 이원종 실장은 이 돈을 수행비서의 의견에 따라 비서실장 집무실이 아니라 비서실장 관저 금고에 보관하다가 소속 직원 등의 격려금 등의 용도로 사용하였다고 재판에서 주장하였다.

3개로 나뉘어 진행된 재판의 결과는

이 사건으로 기소되어 재판을 받은 사람들은 박근혜 전 대통령과 남재준·이병기·이병호 국정원장,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 이재만·안봉근·정호성 청와대 비서관 등 모두 9명이었다.

이들에 대한 재판은 피고인별로 따로 이루어졌다. 돈을 받은 박근혜는 이 범행만으로 단독 기소되어 혼자 재판을 받았다(박근혜 재판). 돈을 제공한 측인 국정원쪽 피고인들 네 명과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함께 기소되어 재판(국정원장 등 재판)을 받았다. 박근혜와 국정원 사이에 중개역할을 한 이재만 비서관 등 박근혜 측근 3인방들도 따로 기소되어 재판(이재만 비서관 등 재판)을 받았다.

이들에 대한 재판이 2심까지는 3곳의 재판부에서 제각각 진행되다보니, 법률 적용면에서 차이가 발생하였다.

국정원장을 국고 손실죄의 적용 대상인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수 있느냐에 따라 처벌이 조금 달라졌다. 박근혜 재판의 2심 재판부와 국정원장 등 재판의 2심 재판부는 국정원 기획조정실장은 '회계관계직원'이지만 국정원장은 아니라고 보았다. 따라서 국정원 기조실장인 이헌수가 관여한 행위에 대해서만 국고 손실죄나 공범죄가 적용될 수 있고, 이 실장이 관여하지 않은 행위에 대해서는 횡령죄나 횡령죄 공범으로만 처벌할 수밖에 없다.

또 박근혜가 따로 지시하거나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2016년 9월에 이병호 국정원장의 지시로 이헌수 실장이 박근혜에게 준 2억 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느냐도 재판부에 따라 차이가 있었다. 뇌물죄가 적용되지 않으면 국고 손실죄나 횡령죄로만 처벌된다.

2019년 7월까지 진행된 이들 피고인들에 대한 2심 판결을 기준으로 보면 다음과 같다.

박근혜는 징역 5년에 추징금 27억 원을 선고받았다. 남재준 원장 시절에 받은 돈 6억 원에 대해 횡령죄 공범으로, 이병기 원장 시절과 이병호 원장 시절에 받은 8억과 19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유죄가 선고되었다. 또 이원종 실장이 받은 1억 5천만 원에 대해서도 국고 손실죄 공범이 인정되었다. 다만 이병호 원장으로부터 2016년 9월에 받은 2억 원에 대해서는 무죄가 선고되었다. 이 돈은 박근혜가 요구한 적이 없는 돈이었기 때문에 박근혜에게 책임을 함께 물을 수 없다는 이유였다.

남재준 원장 시절에 받은 돈과 후임 원장 시절에 받은 돈에 대해 다른 죄명이 적용된 이유는 앞에서 말한 바와 같다. 남재준 원장 시절 범행에는 이헌수 기조실장이 직접 가담하지 않아서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것이 2심 재판부들의 이유였다. 다만 국고 손실죄보다 형량이 조금 낮은 횡령죄는 적용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남재준 원장 역시 횡령죄(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는 현대차그룹을 압박하여 재향경우회에 특혜를 제공한 범죄와 합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병기 국정원장은 남 원장과 달리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유죄를 선고받았다. 앞서 말한 대로 회계관계직원의 지위를 가진 이헌수 국정원 기조실장과 함께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에 횡령죄보다 형량이 높은 국고 손실죄 공범이 되었다. 그 역시 최경환 부총리 등에게 1억 3천200만 원을 제공한 범죄와 합쳐서 징역 2년 6월을 선고받았다.

이들의 후임자였던 이병호 국정원장의 경우에는 박근혜에게 21억 원을 제공한 것은 국고 손실죄 공범으로, 이원종 비서실장에게 1억 5천만 원을 제공한 것은 업무상 횡령죄로 처벌되었다. 이원종 실장에게 돈을 전달하는데는 회계관계직원인 이헌수 실장이 직접 개입하지 않았기 때문에 각각 다른 법률이 적용되었다. 그 역시 청와대의 2016년 총선 관련 여론조사비용 5억 원 대납 사건과 합쳐서 징역 2년 6월과 자격정지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헌수 기조실장도 당연히 처벌받았다. 남재준 원장 시절 박근혜에게 보낸 6억 원 중 4억 원에 대해 업무상 횡령 방조죄가 적용되었다. 이병기 원장 시절 8억 원과 이병호 원장 시절 21억 원 제공에 대해서는 국고 손실죄로 처벌되었다. 이 실장 역시 다른 범죄들(재향경우회 특혜 제공과 안봉근 비서관에게 뇌물제공)과 합쳐서 징역 2년 6월 형을 선고받았다.

국정원장도 회계관계직원으로 보아 더 높게 처벌된 측근 3인방

돈을 전달받는 역할을 하였던 박근혜의 측근 3인방은 어떤 처벌을 받았을까. 이들에 대해 재판을 한 법원은 국정원장도 회계관계직원으로 판단하여, 박근혜 재판과 국정원장 및 이헌수에 대한 재판과는 조금 다른 결과가 나왔다. 또 이병호 원장 시절인 2016년 9월에 제공한 2억 원도 뇌물로 보았다.

이재만 비서관은 남재준 재임 시절 5억 원과, 이병기 재임 시절의 8억 원, 이병호 재임 시절 19억 원, 총 32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다른 범죄사실(국정조사 증인 불출석 사건)과 합쳐서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받았다. 이 비서관의 경우에 남재준 시절 박근혜가 받은 6억 원 중 1억 원은 제외되었다. 이것은 처음 두 달동안에는 그가 전달한 봉투에 돈이 들어있었는지 몰랐다고 한 이재만 비서관의 말을 재판부가 인정해주었기 때문이다.

안봉근 비서관의 경우에는, 남재준 원장 시절 6억 원, 이병기 원장 시절 8억 원, 이병호 원장 시절 19억 원, 총 33억 원에 대해 국고 손실 방조죄로, 이병호 원장 시절인 2016년 9월 2억 원을 추가로 전달한 것에 대해 뇌물수수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안 비서관도 다른 범죄들(이헌수 실장으로부터 뇌물 수수 및 국정조사 불출석)과 함께 징역 2년 6월과 벌금 1억 원, 추징금 1350만 원을 선고받았다. 이병호 원장 시절 받은 돈 중 2억 원에 대해 다른 재판부들과 달리 뇌물죄로 처벌받았다.

끝으로 정호성 비서관도 이병호 원장 시절 2016년 9월에 전달된 2억 원에 대해 뇌물수수 방조죄로 처벌받았다. 그에게 선고된 형량은 징역 1년 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1억 원이었다.

한편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은 처벌받지 않았다. 검찰이 그를 뇌물 수수죄로 기소하였지만, 법원에서는 대통령의 지시로 받았고 직무성 대가를 바라고 주고 받은 돈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물론 돈을 준 이병호 원장이나 돈을 주라고 요구한 박근혜 모두 횡령죄로 처벌되었다.

국정원장을 법적으로 회계관계직원으로 볼 것인가와 이병호 원장 시절에 보낸 돈 중에 2억 원을 뇌물로 볼 수 있는가 여부는 이제 대법원에서 가려질 것이다. 그에 따라 재판은 좀더 길어질 수도 있고, 처벌 형량도 바뀔 수 있다.

이 사건들에 대해 법원에서 인정한 범죄사실과 법률 적용 등을 자세히 알고자 하면, 이 재판의 판결문을 읽어보면 된다.

박근혜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8고합20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2150 사건이다.
남재준과 이병기, 이병호 국정원장, 이헌수 기조실장, 이원종 대통령 비서실장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233, 2018고합118(병합)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1729 사건이다.
이재만과 안봉근, 정호성 비서관에 대한 재판은 1심은 서울중앙지법 2017고합1173, 1247(병합), 2018고합43(병합) 사건이고, 2심은 서울고법 2018노2073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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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참여연대에서 재벌개혁운동을 시작으로, 권력감시와 사법개혁, 반부패 운동, 정치개혁 운동을 경험하였습니다. 약 20년 시민운동 경험을 또 다른 곳에서 펼쳐보려 노력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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