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앨리스 죽이기' 언론시사회에서 김상규 감독(아래)과 신은미 씨가 화상통화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신씨는 지난 2014년 토크 콘서트에서의 발언으로 종북 논란을 불러와 2015년 강제출국돼 5년간 재입국이 금지됐다.

22일 오후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에서 열린 다큐멘터리 영화 '앨리스 죽이기' 언론시사회에서 김상규 감독(아래)과 신은미 씨가 화상통화로 간담회를 하고 있다. 신씨는 지난 2014년 토크 콘서트에서의 발언으로 종북 논란을 불러와 2015년 강제출국돼 5년간 재입국이 금지됐다. ⓒ 연합뉴스

 
사전적으론 북쪽을 쫓는다는 의미의 단어인 '종북'. 유독 한국에선 조선민주주의공화국, 다시 말해 북한의 사상과 체제를 추종한다는 뜻으로 확장돼 쓰이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더이상 젊은 세대는 쓰지 않을 것 같은 이 단어의 힘은 막강했다. 5년 전 재미교포 신은미씨도 그 희생자였다.

"대동강 맥주가 참 시원하고 맛있더라", "북한의 핸드폰 가입자 수가 250만대더라" 등 한 개인의 감상 표현과 사실 전달이 국가보안법 위반이 되는 현실. 2014년 대한민국의 단상이었다. 다큐멘터리 영화 <앨리스 죽이기>는 신씨의 삶에서 가장 격변의 때였던 지난 5년을 담으며 우리 사회게 깊게 깔린 뿌리 깊은 '레드 콤플렉스'를 지적하고 있다.

애초에 신은미씨가 특정 정치 지향점을 공유한 특정 당원이었던가 어떤 사상가나 정치인이었다면 어느 정도 이런 논란이 예상됐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보수성 짙은 대구 출신으로 자유당 의원이었던 외할아버지 등에게 반공 교육을 철저히 받은 한 시민이었다. 1986년 성악가의 삶을 위해 미국으로 이민 간 이후 2011년 처음으로 북한 여행을 하기 직전까지 그 역시 북한 사람하면 머리에 뿔 달린 괴물을 상상하거나, 통일과 민족이라는 단어를 입에 담지도 않던 이였다.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조금은 특별했던 여행

사실 북한 여행 역시 시작은 단순했다.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다른 국적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히 가능한 북한 관광이기에 남편의 "조금 특별한 여행을 해보자"는 제안이 전부였다. 떠나면서도 두려움이 더 컸다는 사실이 영화 초반부에 잘 담겨 있다. 

그리고 신씨는 그저 자신이 몇 차례 다녀온 북한에 대한 감상을 여행기 형식으로 썼을 뿐이다. 그의 여행기는 <오마이뉴스>에 연재됐고, 이후 책으로 출판됐으며 문화체육관광부가 우수도서로 선정까지 됐다. 영화는 그럼에도 어떻게 신은미씨가 빨갱이 딱지를 붙이게 됐고, 심지어 사제 도시락 폭탄 공격까지 받게 됐는지 그 전후 맥락을 충분히 잘 그리고 있다. 여행기에 표현한 문구를 근거로 TV조선 등 보수 언론이 '종북' 수식어를 붙이기 시작했고, 그게 삽시간에 번져나간 것.

나와 정치적 성향이 맞지 않으면 매도해버리는 사회. 특히 그것이 북한과 관련한 것들이라면 그 정도는 더 심하곤 했다.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능력을 인정받던 한 재미 성악가는 그렇게 2014년 이후 한국에서 종북 인사가 됐고, 심지어 북에서 보낸 공작원 취급까지 받았다. 친모는 그런 신씨에게 당분간은 볼 자신 없다며 등을 돌렸다. 지인과 친척들 역시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낸다.

결국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강제 출국 명령을 받은 그는 5년째 한국에 들어오지 못하고 있다. "사랑하던 사람에게 배신당한 기분"이라며 그는 당시의 심정을 묘사한다. 그만큼 상처가 크다는 뜻일 터.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영화 <앨리스 죽이기>의 한 장면. ⓒ 인디플러그

 
사회적 진보를 묻다

<앨리스 죽이기>의 미덕은 이런 비이성, 비합리적 과정이 현재 대한민국에도 실재하며 그 원인 중 하나가 맥락과 취재를 거세한 일부 보수 언론 및 종편 채널에 있다는 사실을 당당히 드러낸다는 데 있다. 영화엔 취재 명목으로 현장을 지키는 여러 보수 언론 기자들의 모습이 꽤 비중 있게 나온다. 그만큼 이들의 엄중한 책임을 묻는 카메라의 시선이 잘 살아있다.

여전히 우리에겐 생경한 북한을 이해하고, 함께 평화를 얘기해보자며 시작한 토크 콘서트는 어느새 아수라장이 됐다. 상황과 이유를 생각하지 않고 폭력으로 일관한 백발의 노인들로 구성된 보수 단체, 자신이 싫어한다는 이유로 사제 폭탄을 만들어 행사장에 던지기까지 한 한 고등학생의 모습은 상당한 씁쓸함을 안긴다. 

일본으로부터 해방 이후 약 100년, 그리고 한국 전쟁과 분단의 현실을 견디며 꿋꿋하게 민주주의 사회를 구현해 온 대한민국은 과연 건강한가. 이렇게 시간만 흐른다고 우리 사회는 진보할 수 있을까. 대체 국가보안법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앨리스 죽이기>는 꽤 복잡하고 무거운 질문을 던지게 한다. 

이 질문은 그간 국내 몇 개의 다큐멘터리가 꾸준히 던져온 물음과도 이어진다. <앨리스 죽이기>를 관람한다면 <불안한 외출>, 그리고 <자백> 등을 먼저 보는 것도 권한다. 두 영화 모두 공권력과 편견이 어떻게 무고한 시민들을 간첩으로 만들었고, 그들의 삶을 파괴했는지 예리하게 짚은 작품이다. 공교롭게도 세 작품 모두 근 5년 내 등장한 최근 영화들이다. 

역사와 사회는 진보하지 않는다. 적어도 누군가가 예리하게 문제를 짚고 찌르기 전까진 말이다. 그래서 이 영화들의 존재가 소중하다.  

한 줄 평 : 보수 언론이 쏜 작은 공, 결국 혼란과 분노만 증폭시키다
평점 : ★★★★(4/5)

 
영화 <앨리스 죽이기> 관련 정보

연출: 김상규
출연: 신은미, 정태일, 황선, 오세현
제작: 지킬필름
배급: 인디플러그
러닝타임: 81분
관람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2019년 8월 8일
 
신은미 황선 국보법 북한 빨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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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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